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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희(朴士熹)

유교인물

 조선전기 『묵재일고』를 저술한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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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묵재일고』를 저술한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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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덕명(德明), 호는 묵재(默齋). 훈도(訓導) 박형(朴馨)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로 돈용교위(敦勇校尉) 정양명(鄭揚名)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며, 8세에 아버지로부터 『소학』을 배우기 시작, 14, 15세에 이미 경사(經史)를 통달하였다. 효성이 극진하였으며, 반룡산(盤龍山) 아래에 우거하며 반계(盤溪)라 자호하고, 성리학에 침잠, 실천궁행에 힘썼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이황이 도산(陶山)에서 도학을 강론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었으며, 집도 그 곳에 가까운 가야촌(佳野村)으로 이사하였다. 이황이 그를 높게 평가하여 ‘優游厭飫沈潛默識(우유염어침잠묵지)’라는 글과 함께 묵재(默齋)라는 호를 주었다.
1539년(중종 34) 충청도 향시에 합격하고, 1551년(명종 6) 경상도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정시(庭試)에 낙방하였다. 1548년 학행으로 천거되어 장사랑(將仕郎)·의홍훈도(義興訓導) 등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이듬 해 종사랑(從仕郎)·승사랑(承仕郎), 다시 1559년 무공랑(務功郎), 그 이듬 해 선무랑(宣務郎)·신녕훈도(新寧訓導)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고 오직 학문 연구에 전심하였다. 시문에 능하고 글씨에도 뛰어났다. 마곡정사(磨谷精舍)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묵재일고(默齋逸稿)』 2권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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