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부정목차버튼
바로가기
내 검색어

    부정(副正)

    고려시대사제도

     고려 후기의 4품 관직.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부정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정(正)의 부직(副職)이다. 1308년(충렬왕 34)충선왕(忠宣王)에 의해 관제(官制)가 개편되면서 사복시(司僕寺)·서운관(書雲觀)·사의서(司醫署)·내알사(內謁司) 등 네 곳에 처음 설치되었다.
    품계는 사복시의 경우 정4품이고 나머지는 모두 종4품이었으며, 사복시와 내알사에 2인, 서운관과 사의서에 1인씩을 각각 두었다.
    그러나 다음해에 내알사가 액정원(掖庭院)으로 개편되면서 내알사의 것은 곧 폐지되고, 얼마 뒤에는 사복시의 것이 부령(副令)으로 고쳐졌으며, 서운관과 사의서의 것들도 1356년(공민왕 5)의 관제개혁에서 없어짐으로써 충선왕 때 설치되었던 부정(副正)은 모두 혁파되었다.
    그 뒤 1362년 또다시 관제가 개편되면서 이번에는 사복시·전농시(典農寺)·서운관·전의시(典醫寺) 등 네 관서에 종4품, 정원 1인의 관직으로 다시 두었다. 그리고 1369년에 소감(少監) 또는 소경(少卿)으로 바뀌거나 폐지되었다가 1372년에 다시 설치되어 고려 말에 이르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곧 폐지된 듯하며, 1414년(태종 14)의 관제개혁에서 종래의 소감을 대신하여 종3품 관직으로 다시 두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종친부(宗親府)·돈녕부(敦寧府)·봉상시(奉常寺)·사복시·군기시(軍器寺)·내자시(內資寺)·내섬시(內贍寺)·사도시(司䆃寺)·예빈시(禮賓寺)·사섬시(司贍寺)·군자감(軍資監)·제용감(濟用監)·선공감(繕工監)·사재감(司宰監)·관상감(觀象監)·전의감(典醫監)·사역원(司譯院) 등에 각각 1인씩이 있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익주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