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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佛敎)

불교문헌

 1914년 권상로가 불교의 홍보와 교리적인 해설을 위하여 창간한 잡지.   불교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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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14년 권상로가 불교의 홍보와 교리적인 해설을 위하여 창간한 잡지.불교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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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발행인 권상로(權相老)가 시작하여 108호까지 발간하였다가 휴간된 것을 1931년한용운(韓龍雲)이 인수하여 속간하였다. 1933년 당시의 불교종합종단이었던 선교양종중앙교무원(禪敎兩宗中央敎務院)으로 운영권이 넘어갔으나 그 뒤 재정난을 이유로 폐간되었으며, 1937년 해인사·통도사·범어사 등 3본산 종무협의회에서 재정을 지원받아 다시 속간하였다.
이 잡지는 뚜렷한 세 가지의 성격을 띠고 변모하였다. 첫번째 시기인 1914년부터 1931년까지는 개척시대로 이때는 주로 불교의 홍보, 교리적인 해설 등을 중점 테마로 삼아왔으나 내용과 체재가 빈약하였다.
두 번째 시기는 1931년 한용운이 발행인이 되면서 1933년까지 항일운동의 기수역할을 맡은 시기이다. 이 시기에 실린 한용운의 논설은 「불교청년운동에 대하여」, 「불교 신임 중앙간부에게」 등 총 45편에 달한다. 그 내용은 기성종단에 대한 혁신적인 개혁론, 정교분립(政敎分立) 등을 내세워, 일본의 우리나라 불교에 대한 탄압을 항변한 것, 해외포교 등 불교의 선진화에 대한 언급 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과격한 논조는 결국 재정난을 내세워 『불교』지를 폐간하도록 만든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세 번째 시기는 한용운이 발행을 그만 둔 1933년 이후의 『불교』지가 지녔던 친일적 성향이다. 이 시기에는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 등의 권두언이 실리는 등 일제에 동조하는 논설들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이때부터 한용운은 『불교』지의 일에서 손을 떼게 되고 그 실질적 운영권도 일본 측에 넘어갔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이 잡지는 광복 이후까지 이어온 가장 비중 있는 불교잡지였으며 한용운·권상로 등 당대의 석학들이 남긴 시문·논문·평론·수필 등이 담긴 근세불교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불교근세백년(佛敎近世百年)』(강석주·박경훈,중앙일보사출판국,1980)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정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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