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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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인물
동아시아 전통에서 추위를 관장하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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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동아시아 전통에서 추위를 관장하는 신.
내용

예로부터 겨울철에 날씨가 너무 추워서 백성의 생활에 불편을 주는 것이 사한신의 작용이라고 하여 이 신에게 날씨가 춥지 않고 백성의 생산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기구하는 풍속이 있었다.

그리고 겨울날씨가 춥지 않은 것도 이변이라고 생각하여 적당한 추위를 유지하도록 사한신에게 빌기도 하였다. 사한신에게 처음 제사를 지낸 것은 춘추시대의 소왕(昭王) 4년으로, 당시 큰 우박이 내렸을 때 검은 소와 검은 폐백과 제물을 사한신에게 바치고 추위나 우박으로 인한 재액이 없기를 빌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고려시대부터 사한제를 지냈다고 하나 문헌에는 보이지 않고 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사한신에게 제사한 기록이 있다. 제사 지내는 단은 서울의 남쪽 석빙고(石氷庫)의 북방에 있었으며, 그 규모는 영성단(靈星壇)·우사단(雩社壇)과 같이 한 변이 6.3m의 정방형으로 높이는 0.75m이며, 4면에 계단이 있고 주위에는 낮은 토담을 둘러쳤다.

제례는 소사(小祀)로 매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날을 가려서 제사를 지냈다. 삼헌관은 정부의 관리로 3품 이상의 품계를 가진 사람이 하도록 정하였고, 전사관(典祀官)은 봉상시주부 이하의 관원으로 충당하도록 하였다.

처음 우사단의 제사는 잦은 데 비하여 사한제를 지내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사한제를 소홀하게 취급하였으나, 1731년 영조가 사한제를 소홀하게 취급하여 백성들이 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명한 뒤부터 더 큰 비중을 두었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춘관통고(春官通考)』
집필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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