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군 ()

대동여지도 중 경상남도 합천, 산청 부분
대동여지도 중 경상남도 합천, 산청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경상남도의 서부에 위치한 군.
정의
경상남도의 서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합천군과 의령군, 서쪽은 함양군, 남쪽은 진주시와 하동군, 북쪽은 거창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7°41′∼128°07′, 북위 35°13′∼35°34′에 위치한다. 면적은 794.83㎢이고, 인구는 3만 6071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0개 면, 285개 행정리(119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옥산리에 있다.

자연환경

규모는 동서 38.8㎞, 남북 40.3㎞로서 주위는 대부분이 준엄한 산령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지세는 지리산 천왕봉을 깃점으로 한 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하동군·함양군과의 경계를 이루고 합천군과는 백운산의 지맥인 황매산이 양군의 분수령을 이룬 분지이다.

북부에 갈전산(葛田山, 764m)·바랑산(797m)이 거창군과, 그리고 동부의 황매산(黃梅山, 1,108m)·전암산(傳岩山, 696)이 합천군과 경계를 이루며, 서남쪽의 천왕봉(天王峰, 1,915m)·제석봉(除石峰,1,806m)·촛대봉(燭臺峰, 1,704m)이 함양군과, 남쪽의 삼신봉(三神峰, 1,284m)·주산(主山, 831m )·우방산(牛芳山, 570m)이 하동군과 경계를 이룬다.

그리고 내부에도 송의산(松義山, 538m)·왕산(王山, 923m)·정수산(淨水山, m)·웅석봉(熊石峰, 1,099m)·둔철산(屯鐵山, 812m)·감투봉(768m)·구곡산(九谷山, 961m) 등의 산들이 도처에 산재하고 있다.

하천은 경호강(鏡湖江)이 군의 중앙을, 양천(梁川)과 황매산에서 발원하는 단계천(丹溪川)이 군의 동부를, 덕천강이 서부를 각각 남류하면서 남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들 하천유역인 단성·시천·생비량·차황·산청 등지는 지세가 비교적 평탄하고 관개가 편리하며 토양이 비옥하여 농경에 적합하나, 산곡의 침식으로 형성된 개석평야인 까닭에 규모가 대단히 작다.

기후는 온대기후구에 속하나 내륙 고산지역의 특성을 반영하여 대륙성기후를 나타내며 연평균기온은 13.8℃, 1월 평균기온 1.8℃, 8월 평균기온 26.3℃ 내외이며 고원 산악지역에서는 특히 기온의 변화가 심하다. 습도는 66%이고 연강수량은 1,775.9㎜이다(2007년 기준).

지질은 군의 동부는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경상계 낙동층으로 편마암과 화강암을 기반으로 혈암·사암·역암 등이 분포되어 있고, 서남부의 지리산 일대의 경우, 주로 화강편마암이 현저하나 일부지역에 화강암층이 분포하고 있다. 토양은 갈색 산림토가 지배적이나 표층은 갈색, 하층은 황갈색을 띤다. 그리고 하천유역의 평지부는 층적토로 되어 있다.

식생은 온대 중부산림대와 온대 남부산림대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데 소나무·전나무·잣나무 등의 침엽수와 참나무·박달나무·단풍나무 등의 활엽수 등이 자라고 있다.

역사

단성면 강루리와 군내 각처에서 선돌·고인돌 등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고 있음을 볼 때, 청동기시대에는 이미 이 지방의 전 지역에 사람들이 널리 퍼져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최근에 강루리에서 빗살무늬토기의 포함층이 확인된 사실을 비추어 볼 때, 일찍이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사람들이 남강을 따라 이곳에 올라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시대에는 생초면 어서리와 신안면 중촌리 고분군의 규모와 부장품의 내용으로 보아 5, 6세기경 가야계열의 부족국가가 이 지방에 분립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통일 후 이 지방은 지품천현(知品川縣)이라 불렸고 단계지방은 적촌현(赤村縣)이라 불렸다. 단성지방은 궐지군(闕支郡)인데, 757년(경덕왕 16)에 궐성군(闕城郡)으로, 지품천현이 산음현(山陰縣)으로, 적촌현이 단읍현(丹邑縣)으로 개칭되어 산음·단읍 2현이 궐성군 소속의 영현으로 되었다.

신라인들은 지리산을 오악의 하나로 숭앙하였으며, 신라말 선종(禪宗)이 성행하면서 단속사(斷俗寺)·삼장사(三壯寺) 등 대소 사원들이 이 지방 산중에 건립되어 불교의 큰 중심지를 이루었다.

고려초 궐성군은 한때 강성현(江城縣)으로 강등되었다가 뒤에 강성군으로 되었으며, 단읍현은 단계현(丹溪縣)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현종 9) 산음·단계 2현은 합주(陜州 : 지금의 陜川)에, 강성군은 진주목(晉州牧)에 소속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단계는 강성군의 영현으로 복귀하고 산음·강성에 감무(監務)가 두어졌다.

1363년(공민왕 12) 강성 사람 문익점(文益漸)이 원나라에서 면화종자를 가져와 장인 정천익(鄭天益)과 협력하여 단성면 사월리에서 재배와 방직에 성공하여 국민생활과 국가경제에 크게 공헌하였다. 근년에 후손들이 이곳 면화시배지에 사적비를 세우고 유물관을 지어 면업가공발전사를 소장, 전시하고 있다.

1399년(정종 1) 거제도의 명진현(溟珍縣)이 왜구를 피하여 강성현으로 옮겨오면서 두 현이 합쳐져 진성현(珍城縣)으로 개칭되었다. 1413년(태종 13) 산음현의 합주 소속이 해제되면서 현이 지금의 산청읍으로 옮겨지고 현감이 두어졌다. 1432년(세종 14)명진현이 거제도로 수복되면서 강성현과 단계현이 합쳐져 단성현(丹城縣)으로 개칭되었고 현감이 두어졌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세종 때 산음현의 호구수는 257호 1,138인이었고 진성현은 234호 872인이었으며, 단계현은 139호 496인이었다.

1555년(명종 10) 조식(曺植)은 단성현감으로 제수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지리산 아래 덕산동에 들어가 산천재를 세우고 학문연구와 후진교육에 전념하였다. 그의 학행은 이황(李滉)과 더불어 당세의 사표로 추앙되었으며 뒤에 영남일대를 크게 교화하였다.

임진왜란 때 조종도(趙宗道)·이로(李魯) 등은 의병을 규합하여 진주성의 외곽에서 유격전을 전개했으나 진주성 함락 후 이 지방은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다. 그리하여 왜란 직후 1599년(선조 32) 단성현이 폐지되고 그 일부가 산음현으로 편입되었다가 1613년(광해군 5) 복구되었다. 1767년(영조 43) 산음현이 산청현으로 개칭되었다. 1771년(영조 47) 산청현의 호구수는 2,114호 8,989인이었으며 단성현의 호구수는 2,526호 9,994인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으로 산청현과 단성현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 정비에 따라 진주군의 삼장(三壯)·시천(矢川) 등 6개 면이 산청군으로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단성군이 산청군으로 통합되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한말의 거유 곽종석(郭鍾錫)은 거창에 은거하다가 문인 김황(金榥)과 더불어 전국의 유림을 규합하여 만국평화회의에 한국독립청원서를 내는 등 유림의 구국운동을 주도하였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과 1950년 6·25전쟁 때 지리산으로 도피한 공비로 인해 군민의 희생과 상처가 매우 컸다. 1962년 6월 5일단성면서부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3년 7월 1일 신등면 상법리·철수리가 차황면에 편입되었다. 1975년 1월 1일 금서면서하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9년 5월 1일 산청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하동군 옥종면 중대리가 시천면에 편입되었고, 1988년 산청읍 옥동과 한동이 옥산리와 산청리로 각각 개칭되었으며, 1994년 단성면서부출장소 관할의 길리가 단성면 관할로 되었다.

유물·유적

불교문화재로는 단성면 운리의 단속사지동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단속사지서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삼장면 대포리의 내원사 삼층석탑(보물, 1992년 지정)·산청대포리삼층석탑(보물, 1992년 지정)·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1990년 지정), 유평리의 대원사다층석탑(보물, 1992년 지정)이 있다.

또한 시천면 중산리의 법계사삼층석탑(보물, 1968년 지정), 신등면의 율현리의 율곡사대웅전(보물, 1963년 지정)와 단계리석조여래좌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생비량면의 도전리마애불군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등이 있다. 또 현재 서울 경복궁에 있는 산청범학리삼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과 진주시에 있는 산청 사월리 석조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도 이 지역에서 옮겨간 것들이다.

향교는 산청읍 지리의 산청향교(경상남도유형문화재, 1983년 지정)와 단성면 강루리의 단성향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가 있는데, 단성향교에는 1717∼1786년까지 70년간의 단성현 주민 1만2160인의 산청 단성현 호적장부(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13권이 보존되어 있다.

시천면 원리에 있는 덕천서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은 조식(曺植)이 생전에 강학을 하던 곳으로 그의 사후 군내 사림들이 세웠으며, 이 서원 안에는 조식이 세웠던 산천재(山天齋)라는 서재와 송시열(宋時烈)이 세운 신도비, 그리고 조식 유적(사적, 1984년 지정)이 보전되어 있다.

이 밖에도 산청읍 지리에 서계서원(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단성면 사월리에 배산서원(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금서면 화계리에 덕양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이 있다.

삼국시대의 유적으로 생초면 어서리의 산청생초고분군(경상남도 기념물, 1974년 지정)과 신안면의 중촌리고분군이 있다. 금서면 화계리에는 가락국전구형왕릉(사적, 1971년 지정)이라는 거대한 석총이 있다. 1793년(정조 17) 김해김씨 문중에서 각종 석물을 설치하여 왕릉의 면목을 갖춘 뒤, 왕릉의 수호와 재실을 겸한 덕양전을 창건하고 종전에 왕산사(王山寺)에 전해온 기록 및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한편, 신안면 신안리에 도천서원신안사상재(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3년 지정), 청현리에 일신당문집 및 필집책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3년 지정), 산청읍 지리에 오건 덕계문집 목판, 오장 사호집 목판, 오한 수오당문집 목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시천면 사리에 조식 남명문집 목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이 있다.

또한 신등면 평지리에 이택당 문집 목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단계리에 김인섭 단계일기(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김인섭 단계문집 목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권도 동계문집 목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3년 지정), 고건축으로는 단계박씨고가(경상남도 민속자료, 1983년 지정)과 산청단계리박씨고가(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산청단계리권씨고가(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가 있다. 그 외에 생초면에 산청대포리민씨고가(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6년 지정), 단성면에 산청사월리최씨고가(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산청사월리이씨고가(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산청소남리권씨고가(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6년 지정) 및 산청소남리조씨고가(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6년 지정) 등이 보존되어 있다.

선사유적으로는 단성면 강루리의 남강퇴적평야에서 고인돌·빗살무늬토기층 등이 발견되었고, 산청읍 옥산리·내리, 삼장면 덕교리 등지에서는 마제석기·토기 등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단성면 백운리에서도 세형청동검 등 여섯 점이 출토되었으나, 그 유적의 성격을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신등면의 장천리 도요지(경상남도 기념물, 1974년 지정)에서는 조선 초기의 청자와 분청사기의 파편이 많이 출토되었다.

고산성은 꽃봉산의 우측 양봉우리를 감싼 형태의 테뫼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석축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으나 산의 정상부에서 발견되는 기와편과 자기편 등을 통해 조선시대의 유구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강산성(江山城), 강산석성(江山石城), 동산성(東山城), 단성산성(丹城山城), 동성산성(東城山城)등으로 불리어진 백마산성은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축 부분이 남아 있다. 망춘대를 지난 동쪽 사면과 서쪽 사면에는 웅덩이가 있다.

동산성(東山城), 생초산성(生草山城)으로도 불리운 어외산성에 대한 뚜렷한 기록은 없으나 임진왜란 때 곽재우가 이곳을 거점으로 큰 전과를 올렸다고 한다. 봉우리를 정점으로 하여 석축된 성벽이 있고, 남쪽 단애면 상에도 석축을 한 곳이 있으며 일부 자연 암벽을 성벽으로 이용한 곳도 있다. 테뫼형의 석축산성이다. 이구산의 이구산성은 석성이지만 임진왜란 전후시기에 쌓은 민보용(民堡用)의 산성으로 여겨진다. 성벽은 잔존하고 있으며 길이는 약 150m 정도이다. 지곡산성은 계곡을 중심으로 하여 막은 차단성으로 전란이 있을 때 적의 침입을 차단하는 용도로 축조한 것으로 보여진다.

단성은 고려 말 중국에서 목화 씨앗을 가져온 문익점의 고향으로, 단성면 사월리 배양마을 앞에는 산청 목면시배 유지(사적, 1963년 지정)와 사적비가 있고, 신안면 신안리에는 문익점묘(경상남도 기념물, 1983년 지정)와 문익점신도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문익점의 사당인 노산정사가 있다. 노산정사는 1461년(세조 7)에 건립되어 임진왜란 때 불탔으나 1612년(광해군 4) 재건되어 도천서원이라고 불렸다. 1787년(정조 11) 사액 되었으나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노산정사라고 개칭되었으며, 1952년 건물이 중수된 바 있다.

이 밖에 산청읍 산청리에는 산청척화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93년 지정)가 있고, 삼장면 유평리의 지리산 대원사 일원(경상남도 기념물, 1991년 지정), 신등면 평지리의 이요정(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산청평지리은행나무(경상남도 기념물, 1991년 지정), 시천면 중산리의 성모사와 지리산성모상(경상남도 민속자료, 1991년 지정) 등이 있다. 박해용 금관조복(경상남도 민속자료, 1983년 지정)도 이 고장의 중요한 역사유물이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고려 인종 때 창건되어 1752년(영조 28)에 중건된 단성면 강루리에 단성향교와, 1440년(세종 22) 창건되어 1755년에 산청읍 지리의 지금 위치로 이건된 산청향교가 있다. 시천면 원리의 산천재(山天齋)는 조식이 1561년(명종 16) 건립한 서재로 1576년(선조 9) 유림에서 이곳에 덕천서원을 건립하였다. 1626년(인조 4)산청읍 지리에 오건(吳健)을 봉사하는 서계서원(西溪書院)이 창건되었고,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도천서원이 노산정사가 되었다. 그 밖에도 청곡서원(淸谷書院)·두릉서원(杜陵書院)·완계서원(浣溪書院)·배산서원(培山書院)·문산서원(文山書院)·평천서원(平川書院) 등의 서원과 크고 작은 많은 서당과 사숙들이 있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8년 지금의 산청초등학교와 단성초등학교가, 1927년산청중학교가 개교하였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3개 교, 중학교 6개 교, 고등학교 9개교가 있다.

산청읍에는 산청도서관이 있으며, 1960년산청문화원이 개원되어 활동하고 있다. 1969년 두류평화제로 시작되어 1977년 지리산평화제로 개칭된 지역문화 예술행사가 해마다 가을에 지리산산신제 등의 각종 행사로 열린다.

민속

집집마다 삼을 재배했던 이 지방에서는 ‘두레삼놀이’가 중요한 민속놀이로 전승되고 있다. 삼은 껍질을 벗겨 옷감을 만들 뿐만 아니라 농기구의 끈과 줄의 재료로 필요하였다. 삼대는 겨릅대라 하여 초가집 지붕을 이는 받침대로 쓰이기 때문에 모심기를 마치고 나면 마을 공동으로 삼굿을 만들어 ‘삼묻이기’를 하였다. 부녀자들도 단체를 이루어 품앗이 삼을 삼았는데 이를 ‘두레삼’이라고 하였다. 평소 마음대로 외출하지 못하고 억눌린 생활을 하던 부녀자들이 한 곳에 모여 쌓였던 애환의 감정을 담은 구성진 가락으로 「삼삼기노래」를 부르고 구수한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밤새는 줄도 모르고 일을 하였다. 이밖에 농악·탈놀이·연날리기·씨름 등 각종 민속놀이가 행해지고 있다.

이 지방에 전래하는 동제는 대체로 목신제·장승제·입석제·성황제 등이며, 보통 시월 상달, 섣달 그믐, 또는 상원절 중에 택일하여 지낸다. 해마다 제일이 다가오면 마을 공동기금으로 제물을 마련하고 노인들이 모여 복덕이 있는 사람 중에서 제관을 선정하는 한편, 제단 주변을 깨끗이 청소한 뒤 황토를 깔고 금줄을 친다. 방식은 대개 유사하여 분향·강신·참배·헌작·독축·재배의 순으로 진행되는데, 축문의 내용에는 마을의 안녕과 풍작, 재해의 방지 등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노거수, 즉 목신을 제사지내는 곳은 상당히 많다. 산청읍 내수리의 괴목은 마을의 수호목으로써, 어느 날 이 마을에 도둑이 들어와 소를 몰고 달아나던 중 이 나무에 이르러 정신을 잃고 밤새 나무를 안고 돌다가 새벽에 붙잡혔다는 이야기가 전하면서, 마을의 액운과 손재를 막아준다 하여 제를 지낸다. 경상남도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신등면 법물마을의 은행나무는 그 형태가 장엄하여 ‘성인나무’라고도 불리는데, 간혹 백발노인의 모습으로 마을주민에게 현몽하여 계시를 내린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은 섣달 그믐에 이 나무에 제를 지낸다. 또한, 단성면 강루리에는 석장승이 남아 있어 장승제가 행해지고 있으며, 성황제의 누석단은 산청군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금서면 수철리, 금서면 틉재, 생초면 고촌, 차황면 솔티재, 신안면 청고개와 차돌박재에는 비교적 규모가 큰 것이 있다. 누석단은 질병과 재화를 막는 마을의 수호신이 있는 곳으로 생각되어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설화·민요

이 지방에 전래되는 설화 중에는 지리산의 봉우리나 계곡·사찰·폭포 등과 관련된 것이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리산 성모사 전설」이다.

지리산의 수호신은 ‘마야부인’이고 반야봉(般若峰)의 산신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어느 날 남편의 옷을 기워 놓고 오기를 기다리던 마야부인은 백무동 뒷산에 핀 왕새꽃의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남편의 모습으로 여러 번 착각하였다. 이에 화가 난 부인은 왕새꽃을 모두 뜯어버리고 남편의 옷을 찢어버렸다. 그 뒤 백무동에서는 지금까지 왕새꽃이 피지 않으며, 그 찢겨진 옷자락들은 ‘천왕할머니모시가래풀(실풀)’이 되어 높은 나뭇가지나 절벽에 핀다고 한다. 이 마야부인을 모신 사당이 ‘성모사’이며, 여기에는 훼손을 금지하기 위한 금기설화도 전해온다.

세석평전(細石平田)의 「음양수전설(陰陽水傳說)」은 지리산 최초의 주민이었다는 남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자의 이름은 호야이고 여자의 이름은 연진인데, 이들은 지리산에 들어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들에게 단 한 가지 한스러운 일이 있다면 자식이 없는 것이었다. 어느 날 호야가 과일을 따기 위해 산골 깊이 들어간 사이에 검정곰이 연진을 찾아와 세석평전에 있는 음양수를 마시면 자식을 낳을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이 말을 듣고 연진은 당장 그 샘터로 달려가 물을 마셨다. 한편, 평소 곰과 사이가 나빴던 호랑이가 곰과 연진의 대화 내용을 산신령에게 고해바치니, 산신령이 대노하여 음양수의 신비를 인간에게 발설한 곰을 토굴 속에 감금하고 연진은 세석평전의 돌밭에서 평생토록 혼자 철쭉꽃을 가꾸게 하였다. 꽃밭에 피눈물을 뿌리며 언제까지나 철쭉꽃을 가꾸던 연진은 그 뒤 촛대봉의 정상에 촛불을 켜놓고 산신령을 향해 빌다가 망부석이 되었다. 산신령은 노여움을 풀고 기적의 샘 음양수를 인간에게 개방하여 그 혜택을 받게 하였다. 그리하여 지금까지도 자녀를 원하는 많은 여인들이 이곳에 찾아온다고 한다.

이 밖에도 지리산 내원사의 「폐사설화」, 성장군이 왜구를 격퇴하였다고 전하는 「장터목설화」, 고부간의 갈등에서 빚어진 비극을 그린 「승지골전설」, 병으로 죽은 신부의 한을 그린 「신행당고개전설」 등이 있으며, 동물이 인간에게 은혜를 갚은 생초면의 「충마총전설(忠馬塚傳說)」, 신등면의 「의구총전설(義狗塚傳說)」 등이 전해오고 있다. 또한, 이 지방은 영남 우도 성리학이 번성한 곳으로 많은 인물설화도 전래되고 있다.

이 지방의 민요는 거창·함양·하동 등지의 것과 유사한 것이 많다. 등지(모내기요)나 부요(婦謠)는 그 대표적인 것으로 지명이나 세부의 몇 가지만 변용되어 불리고 있다.

가령, 등지 가운데 “(앞) 아침이슬 채전밭에 불똥꺾는 저큰아가·(뒤) 불똥이사 꺾네마는 고흔홀목 다 젖는다.”라 부르는 「모심는 노래」나 “잠아잠아 오지 마라 시어머니 눈에 난다/ 시어머니 눈에 나면 님의 눈에 절로 난다/님의 눈에 절로 나면 시집살이 다 살았다.”라고 부르는 「시집살이요」가 그러한 예에 속한다. 부녀자들이 다같이 모여 삼을 삼을 때 “남해금산 긴삼가래/집에서는 달을 삼고/남의 집에 불을 삼네/아버님 직님 지을까 도복을 지을까요/야야 도복을 지어라.”고 부르는 「두삼노래」는 이 지방 특유의 노래이다.

그 밖에 이 지방의 경관을 잘 살려 부르는 「방아노래」는 “함양산청 물레방아 물을 안고 돌고/우리 집에 우리 님은 나를 안고 돈다/지리산 머루다래는 앙기당기 열었는데/단성들에 면화송이 봉실봉실 피었네/경호강 금잉어는 토실토실 살이 찌고/지리산 단풍잎은 울긋불긋 물들었네.”하고 부르는데, 지명과 그 특성이 재미있게 나열되고 있다.

부요 중 하나인 「벼슬노래」도 다른 지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은잔에는 은꽃피고 놋잔에는 놋꽃 피고/주전자라 행자판에 햇님꽃이 피었구나/우리 님의 받은 술잔 급제꽃이 피었구나.”라고 부르는 이 노래에는 부부의 금실이 잘 나타나 있다.

산업·교통

총 면적의 약 78.3%가 임야이고,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이밖에 보리, 콩, 조 등의 잡곡류와 채소류의 생산이 많다. 특용작물인 잎담배와 누에치기, 인삼재배 등이 성행하기도 하였으나 근년에는 수확고가 감소되는 추세이며 과실류인 사과와 배, 감 등이 특산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 군의 총 경지면적은 9,995.3㏊이고 이 중에서 논과 밭은 전체 경지의 약 73%와 27%에 해당하는 7,305.5㏊와 2,689.8㏊이다. 산간분지에 흘러내리는 물을 이용한 벼농사가 밭농사보다도 훨씬 탁월하게 발달할 수 있는 입지적 조건으로 인하여 논과 밭의 비중은 큰 차이를 나타낸다. 군의 농가호수는 7,342호, 농가인구는 1만 7,127명으로서 군 인구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48.6%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로는 주곡인 쌀 외에도 보리·밀·콩·조·토란·면화·저마 등이 생산된다. 특용작물로는 누에고치가 전국의 군부 중 제1위를 점유하고 있으며, 그 밖에도 인삼·오미자·닥나무·당귀·백작약·목단·잎담배·채소류 등을 지역특산물로 들 수 있다.

그리고 축산업도 활발하여 한우와 젖소·비육우·산양·돼지·닭 등을 사육하며, 양봉도 일부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다. 산청군에서는 농업의 장려를 위하여 농업진흥지역(4,744.8㏊)과 농업보호지역(409.2㏊)을 지정하고 있다.

임야 및 기타부분이 군의 전면적의 79.1%를 점유하여 산간지역의 특성을 현저히 나타내고 있는 산청군의 임야에서는 용재·죽재·과실·버섯 등의 산출도 적지 않다. 산청군의 총 사업체수는 2,272개이고 종사자수는 9,010명이다. 이 중 농림업관계 사업에는 10개 업소에 130명이 고용되어 있다.

제2차산업에 속하는 광업과 제조업활동은 경상남도 다른 군과 비교하여 다소 부진한 편이다. 218개 업체에 1,064명이 고용되어 있다. 광구는 총 103개이나 82개가 가동되지 않는 상태이고 21개 광구에서만 활동하고 있다. 이 지역의 고령토 광산은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은데 연간 약 35만t(2007년 기준)이 생산되고 있다. 특히 산청군은 하동군과 함께 고령토 매장지로서 전국 생산량의 약 절반이 산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이를 재료로 요업이 발달되었는데 특히 생초토기는 전국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는 특산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제조업은 비금속광물제품제조업·음식료품제조업에 거의 국한되어 있다. 상업활동은 상설시장과 7개의 정기시장이 있는데, 역사적으로 유명한 장터목 시장을 비롯하여 단성·화계·차황·생초·문태·덕산 등의 시장이 아직도 정기시장의 기능을 잘 발휘하고 있으며, 오지의 특성을 반영하여 산약·산초·곶감 등과 산간오지 주민들의 생필품이 주로 거래된다.

교통은 국도가 단성면에서 사방으로 갈라져 함양∼진주, 지리산∼합천과 그 외의 도로가 연결되어 있어 편리하다. 2005년 12월에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국도 3호선 남해·초산선과 국도 20호선 시천·경주선, 그리고 국도 59호인 광양·양양선이 동서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다. 국도 3호선 진주·산청구간은 4차선으로 확·포장되었으며, 생초구간은 4차선으로 확·포장 되었다.

지방도로는 기존 3개 노선을 비롯하여 3개 노선이 추가되어 고성군하이·고제선(단성 관정∼금서 주상)·서포·단성선(단성 당산∼단성 창촌)·명석·차황선(신안 청현∼차황 신기)·오부·대양선(오부 오전∼차황 장박)·유림·성산선(생초 어서∼생초 향양)·신등·부황선(신등 단계∼신등 사정) 등이 서로 통한다. 군도는 각 면 소재지까지 연결되어 이 고장의 도로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관광

국립공원인 지리산과 그 동쪽 산기슭에 자리잡은 이 군은 수려한 산천과 곳곳의 명승고적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중산리 등산로는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 오르는 최단 등산로이다. 중산리에서 덕천강을 따라 깊은 계곡과 급류, 기암괴석으로 장관을 이루는 용추(龍湫)를 지나 칼을 세워 놓은 듯 하늘 높이 솟은 칼바위와 첩첩의 기암과 기이한 모양의 고송으로 유명한 문창대를 차례로 거치면 곧 신라의 고찰인 법계사(法溪寺)에 도착한다. 이어 멀리 남해를 내려다보며 천왕봉에 오르는데 그 경치는 절승이다.

그 밖에 산청에서 지리산으로 오르는 길은 금서면 평촌리에서 서쪽으로 4㎞에 있는 대원사(大原寺)에서 오르는 것도 있다.

지리산 이외에 군내에는 신동면 율현리에서 산길을 도보로 30여 분 오르면 651년(진덕여왕 5)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율곡사(栗谷寺)가 있고 오층석탑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신등면 단계리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인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신안면 신안리 북동마을에 노산정사가 있고, 노산정사에서 700m 오른 제공산 중턱에 문익점묘가 있다. 신안면 하정리 원마을에서 산청읍으로 약 2㎞를 가면 경호강이 흐르고 그 오른쪽에 적벽산(赤壁山)이 있는데, 이 곳은 한여름 피서와 낚시·캠핑에 적합하다.

단성면 사월리 배양마을에 면화시배지가 있으며, 묵곡리의 묵곡강변유원지는 여름철 피서와 가을철 단풍완산에 좋은 곳이다. 유원지는 북쪽으로 비스듬히 누운 엄혜산을 기점으로 솔숲과 대숲이 1㎞에 걸쳐 강가에 울창하게 뻗어 있고 남강 상류인 경호강변의 산청읍에는 장선탄이라는 절경지가 있다.

그 밖의 유적지로는 단성면 운리의 단속사지, 시천면 원리의 산천재, 삼장면 대포리의 내원사, 삼장면 평촌리의 삼장사지, 유평리의 대원사, 금서면 화계리의 전구형왕릉, 생초면 어서리의 토봉산 동남기슭에 있는 고분군(古墳群) 등이 있다.

산청시장, 차황시장, 문대시장, 단계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 고장의 5일장은 전통적인 장시의 역할을 계승하고 있다.

조선시대 실천유학의 대가인 남명 조식의 삶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8월 열리는 남명선비문화축제는 서사극 공연, 의병출정식, 선비문화체험 등 다양한 행사로 구성된다.

남명기념관은 남명의 학덕을 추모하고 선생이 추구한 경의사상(敬義思想)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취지에서 2005년 개관한 전시관이다. 생초면 어서리에 있는 생초국제조각공원은 가야시대 고분군 2기와 현대 조각품 2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읍·면
  1. 산청읍(山淸邑)

군의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68.92㎢, 인구 6,828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지리이다. 본래 산청군 지역으로 군청이 있으므로 군내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월동면을 병합하여 군내면과 월동면의 이름을 따서 군월면이 되었고 1918년지수면을 병합하여 산청면이 되었고 1979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읍의 동쪽에 정수산·둔철산, 서쪽에 경호강, 남쪽은 웅석봉, 북쪽에는 구인산이 읍의 경계가 되어 산간분지를 이루며 읍의 중앙 남쪽에는 꽃봉산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이며 누에치기 및 한우의 사육도 한다. 가내공업으로 하는 창호지·부채 등의 명산지이며, 최근에 특히 벽지의 생산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광업으로는 고령토·철·갈탄 등이 산출되며, 그중 고령토의 질과 양은 전국에서 제일로 꼽힌다.

도로망은 거창∼산청∼진주 간의 국도가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고, 산청을 중심으로 차황면·금서면·시천면을 잇는 지방도와 군도가 연결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지리에 삼적사·서계서원과 산청향교가 있다.

산청(山淸)·옥(玉)·지(池)·모고(慕古)·송경(松景)·차탄(車灘)·부(釜)·병정(幷亭)·내수(內水)·정곡(正谷)·척지(尺旨)·범학(泛鶴)·묵곡(默谷)·내(內) 등 14개 리가 있다.

  1. 금서면(今西面)

군의 서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76.27㎢, 인구 2,91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매촌리이다. 본래 산청군 지역으로 금석면(今石面) 또는 검석면(黔石面)·오석면(烏石面)이라고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상면(西上面)의 가등(佳鐙) 등 5개 리와 서하면(西下面)의 화계(花溪) 등 5개 리가 통합되어 12개 리로 개편되었고 금석면과 서상면의 이름을 따서 금서면이 되었다. 면 소재지는 특리에 있었으나 1957년매촌리로 옮겨졌으며, 1975년에는 주상리에 서하출장소(西下出張所)가 설치되었다. 면의 서남부는 지리산의 영향이 뻗어 있는 산지이며, 면의 중앙에 왕산과 팔봉산이 자리잡고 있다. 경호강의 지류가 면의 동부를 지나 산청읍으로 흘러든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과 채소류이며,이고장의 ‘금서한방촌쌀’은 매우 유명하다. 특산물로는 토종벌꿀과 인삼이 유명하고 양질의 고령토가 많이 생산된다.

도로는 면의 북부지역을 동서로 관통한다.

문화유적은 오봉리에 화림암, 화계리에 덕양전과 전구형왕릉이 있다. 전구형왕릉은 우리나라 유일한 적석총으로 피라미드형 7단으로 쌓여있으며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매촌(梅村)·평촌(坪村)·향양(向陽)·수철(水鐵)·지막(紙幕)·특(特)·주상(舟上)·신아(新鵝)·화계(花溪)·자혜(自惠)·방곡(芳谷)·오봉(五峰) 등 12개 리가 있다. 방곡리에는 한국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산청·함양양민학살 추모공원’이 있다.

  1. 단성면(丹城面)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108.65㎢, 인구 5,76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성내리이다. 본래 단성군 지역으로 단성현이 있던 곳이므로 현내면(縣內面)이라고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당면의 배양 등 5개 리, 파지면(巴只面)의 4개 리, 금만면(金萬面)의 4개 리, 백곡면(栢谷面)의 5개 리, 대평면(大坪面)의 일부, 대각면(大覺面)의 일부, 시천면의 사리 일부, 오산면(吾山面)의 일부가 병합되어 단성면이 되었다. 1962년창촌리에 서부출장소가 설치되었다. 면의 남부에 망해봉(望海峰, 257m), 면의 북단에 웅석봉과 감투봉이 있으며, 중앙에 석대산(石岱山, 535m)이 있다. 면의 동쪽 경계를 따라 경호강이 남류하고, 중앙에는 남강의 상류가 흐르며 서부에는 덕천강의 상류가 남류하고 있다.

강유역에 평지가 발달하여 주요 농산물에는 쌀·보리·콩 등과 채소류가 재배되며, 특산물로는 양질의 고령토와 매실·곶감 등이 있다. 명승지로는 묵곡리에 강변유원지가 있으며,

문화유적은 성철스님생가(겁외사), 강루리에 단성향교, 사월리에 면화시배지와 배산서원, 운리에 단속사지동·서삼층석탑과 금동제여래편불(金銅製如來篇佛)이 있다. 교통이 발달하여 성내리를 중심으로 산청·진주·합천과 시천면중산리로 국도가 연결되어 있다.

성내(城內)·강루(江樓)·방목(放牧)·청계(淸溪)·운(雲)·입석(立石)·남사(南沙)·사월(沙月)·묵곡(默谷)·소남(召南)·관정(官亭)·창촌(倉村)·길(吉)·호(虎)·당산(堂山)·백운(白雲)·자양(紫陽) 등 17개 리가 있다.

  1. 삼장면(三壯面)

군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103.29㎢. 인구 1,87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대포리이다. 본래 진주군 지역으로 삼장사(三壯寺)가 있으므로 삼장면이었으나 1906년산청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포·석남 등 8개 리로 개편되었다. 면 소재지는 석남리였으나 1958년대포리로 옮겨졌다. 면의 동부에 웅석봉과 감투봉이 솟아 있고, 면의 서부에는 지리산의 영향이 미치는 산지를 이루고 있다. 면의 중앙에 덕천강의 지류가 남쪽으로 흘러 유역의 경장지에 관개용수로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이며, 송이·석이·오미나·당귀·오갈피 등의 임산물이 많이 산출되고, 특산물로는 대나무와 부채가 있으며, 고령토가 생산된다. 도로는 산청∼시천을 잇는 군도와 유평∼명상 간의 군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평촌리에 철불(鐵佛)·삼층석탑·석등 등이 남아 있는 산장사지가 있으며, 유평리의 대원사는 지리산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으로 수려한 계곡과 울창한 송림, 지리산의 준봉으로 유명한 명승지이다. 대포리의 내원사에는 삼층석탑과 비로자나불이 있으며, 유평리에 대원사다층석탑이 있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깨끗한 계곡으로 관광자원이 풍부한 고장이다. 대포숲, 송정숲, 계림정숲과 같은 자연휴식지가 있다.

대포(大浦)·내원(內源)·대하(坮下)·덕교(德橋)·석남(石南)·평촌(坪村)·유평(油坪)·홍계(洪界) 등 8개 리가 있다.

  1. 생비량면(生比良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으로서 진주시, 의령군, 합천군 등 3개 시군을 경계로 하고 있다. 면적 44.0㎢, 인구 1,27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도리이다. 본래 단성군 지역으로 생비량면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도산면(都山面)의 어은 등 4개 리와 삼가군(三嘉軍)아곡면(阿谷面)제보동(諸寶洞) 일부지역이 편입되어 5개 리로 개편된 뒤 산청군에 편입되었다. 면 소재지는 가계리였으나 1944년도리로 옮겨졌다. 면의 남단에 집현산(集賢山, 572m)이 있고 북부에 갈미봉이 있을 뿐 높은 산은 없으나 구릉이 있다. 면의 중앙부를 양천강이 관통해 서쪽으로 흐르고 있어 평지가 많은 편이다.

따라서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이다. 도로망은 의령·합천에서 단성으로 통하는 국도가 중앙부를 동서로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가계리에 고인돌, 도전리입암산(笠巖山)에는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다. 그리고 도전리에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불군상이 있으며, 해주오씨 문중에 오국헌(吳國獻)의 문집인 어은문집책판(漁隱文集冊板)도 있다.

도(道)·도전(道田)·화현(禾峴)·제보(諸寶)·가계(可溪) 등 5개 리가 있다. 국도20호와 33호선 좌우로 촌락이 형성되어 있다.

  1. 생초면(生草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53.02㎢, 인구 2,27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어서리이다. 본래 산성군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생림면(生林面)의 신연 등 6개 리, 초곡면(草谷面)의 계남 등 16개 리, 고읍면(古邑面)의 보전 등 5개 리, 모호면(毛好面)의 갈전리 등 7개 리가 통합되어 12개 리로 개편되었고 생림과 초곡의 두 면의 이름을 따서 생초면이 되었다. 면의 북단에 덕갈산(德葛山)과 갈전산이 있어 산지를 형성하며, 이 산지에서 발원하는 경호강의 지류가 면의 중앙부를 남류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과 채소류이며 인삼이 특산물이다. 교통은 면의 서남부에 거창∼산청 간의 국도가 지나며 군도가 군의 중앙을 관통해 국도로 연결된다.

명승지로는 함양군 마천면지리산 계곡의 물과 안의면의 용추사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합류하는 어서리에 강정이 있다. 문화유적은 어서리의 포병마을에 생초고분군이 있으며 신라·백제·가야의 국경지대였던 곳에 어외산성(於外山城)이 있다. 경호강변 관광화 사업과 조각공원 정비사업 등을 통하여 이 고장은 새로운 관광지로 변모하고 있다.

어서(於西)·노은(老隱)·구평(邱坪)·향양(向陽)·월곡(月谷)·신연(新淵)·대포(大浦)·갈전(葛田)·평촌(坪村)·하촌(下村)·상촌(上村)·계남(桂南) 등 12개 리가 있다.

  1. 시천면(矢川面)

군의 서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127.70㎢, 인구 4,36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사리이다. 본래 진주군 지역으로 시천면이었으나 1906년산청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리·천평 등 10개 리로 개편되었고 1983년에 하동군 옥종면 중태리가 편입되었다. 면의 동북단에 감투봉, 동남부에 우방산이 있고, 서부는 지리산의 산지이며 남단에 주산이 있다. 지리산에서 발원하는 덕천강의 지류가 면의 중앙부를 지나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채소류이며, 특산물로는 작설차·소이·석이·오갈피 등이 있다. 누에치기가 활발하며 내대리 예치마을에서는 복조리를 많이 생산한다. 도로는 단성에서 시천면 중산리를 연결하는 국도가 중앙부를 거의 동서로 관통하며 시천에서 산청, 내대리에서 신천리에 이르는 군도가 있다.

명승지로는 지리산국립공원의 천왕봉이 중산리에 있다. 문화유적은 삼장면과의 경계에 임진왜란 때 의병이 활동했던 의방산(義方山) 손장굴이 있다. 남명조식이 후학을 양성하던 지역으로 이와 관련한 문화유적 들이 많다. 사리에 산천재와 남명조식신도비를 비롯하여 원리에 덕천서원, 중산리에 법계사삼층석탑과 법계사가 있다.

사(絲)·원(院)·천평(川坪)·외공(外公)·내공(內公)·반천(反川)·신천(新川)·중산(中山)·내대(內大)·동당(東堂)·중태(中台) 등 11개 리가 있다.

  1. 신등면(新等面)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56.90㎢. 인구 2,18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단계리이다. 본래 단성군 지역으로 신등면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법물면의 평지 등 12개 리와 도산면 벽계동의 일부지역이 편입되었다. 1973년상법리와 철수리가 차황면에 편입되었다. 면의 동남단에 갈미봉(葛味峰, 363m)이 있고 서부에 정수산과 천암산이 있으며, 단계천과 면이 동부를 남류하는 사정천이 단계리에서 합류하며, 사정천 주변에는 소규모의 평야가 발달한다. 따라서 면의 북서부는 대체로 산지이며 동쪽에 약간의 농경지가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콩 등과 채소류이며, 특산물로는 인삼이 있다. 도로는 단계리를 중심으로 차황면 신기리와 가회면 장대리에 이르는 군도가 면의 동부와 서부를 지난다.

문화유적은 모례리에 정추암, 율현리에 율곡사가 있고, 평지리의 이락정이 있고 여택당물산영정각(麗澤堂勿山影幀閣)에는 성재문집책판(性齋文集冊板)이 보존되어 있다. 단계리에 단계석조여래좌상이 있고 단계선생일기와 단계선생문집판이 두곡서원에 보관되어 있다. 장천리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도요지가 남아 있다. 희귀수목으로는 수령 700여 년의 법물은행나무가 평지리에 있다.

단계(丹溪)·양전(陽前)·가술(可述)·간공(艮公)·사정(射亭)·평지(坪地)·장천(長川)·율현(栗峴)·모례(慕禮) 등 9개 리가 있다.

  1. 신안면(新安面)

군의 중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72.16㎢. 인구 5,95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하정리이다. 본래 단성군 지역으로 북동면(北洞面)의 갈전·내북 등 12개 리가 관할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5개 리로 개편되어 산청군에 편입되었고, 1928년북동면과 도산면을 통합하여 신안면으로 개칭하였다. 1942년도산면(都山面)의 7개 리가 병합되어 신안역의 이름을 따라 신안면이 되었다. 면의 서북부에 둔철산과 남부에 백마산이 있으며, 양천이 면의 동부를 흐르고 경호강이 서부경계를 흘러 하천유역에 평지를 전개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이며, 특산물로 문대리의 숫돌(砥石)이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도로는 의령∼합천∼단성, 산청∼진주를 잇는국도가 면의 동부와 서부를 각각 지나며, 신등면에서 단성에 이르는 군도가 장죽리부근에서 국도와 합쳐진다.

명승지로는 하정리에 적벽산이 있으며, 안봉리에 수월폭포가 있다. 문화유적은 적벽강 절벽 위에 신라와 백제가 공방전을 벌이던 백마산성을 비롯하여, 신안리에는 도천서원신안사상재, 문익점묘, 신계서원제기가, 청현리에는 일신당문집및필첩책판이, 중촌리에는 가야 및 통일신라시대의 고분군과 고인돌이 있다. 그리고 신안리에 백마사노산정사와 문익점묘가 있다.

하정(下丁)·신기(新基)·청현(靑峴)·문대(文대)·장죽(長竹)·소이(所耳)·외고(外古)·갈전(葛田)·안봉(安峰)·외송(外松)·신안(新安)·중촌(中村) 등 12개 리가 있다.

  1. 오부면(梧釜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35.06㎢, 인구 1,10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양촌리이다. 본래 산청군 지역으로 오곡면(梧谷面)과 부곡면(釜谷面)이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합쳐 8개 리로 개편되었고 오곡과 부곡의 이름을 따서 오부면이 되었다. 면 소재지는 내고리에 있었으나 1942년양촌리로 옮겨졌다. 면의 동부에 송의산(松義山, 539m)이 있고, 북부에 바랑산(797m)과 소룡산이 있어 면의 경계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이며 채소류의 생산도 많다. 양질의 점토가 예로부터 많이 생산되어 지금도 여러 곳에서 도기를 굽는다. 도로는 산청∼거창 간의 국도가 면의 서남단을 통과하는 군도가 국도에 연결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내곡리에 오부내곡요지(梧釜內谷窯址)를 비롯하여 송계제와 용산서당이 있다.

양촌(陽村)·내곡(內谷)·방곡(芳谷)·일물(一物)·오전(梧田)·중촌(中村)·왕촌(旺村)·대현(大峴) 등 8개 리가 있다.

  1. 차황면(車黃面)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8.81㎢, 인구 1,53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장위리이다. 본래 산청군 지역으로 차현면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황산면의 법평리 등 10개 리와 삼가군 소야동(所也洞) 일부가 병합되어 차현과 황산의 이름을 따서 차황면이 되었다. 1931년 면 소재지를 신기리에서 장위리로 옮겨졌다. 1973년신등면 철수리와 상법리를 편입하였다. 면의 동북부 경계에 황매산, 동남부에 전암산, 서부에 송의산, 남부에 정수산 등이 둘러싸여 있어 산간분지를 이루며, 이들 산지 사이를 단계천이 서북·동남방향으로 관류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콩 등이며, 벌꿀과 누에고치가 이 지역의 특산물이다. 도로는 신기리를 중심으로 법평리와 산청읍, 신안면 장죽리, 거창군 신원면 고정리에 연결되는 지방도로가 있다.

문화유적은 부리에 경신재(敬信齋)사서석의판각(四書釋義板刻)과 효렴재문집책판(孝廉齋文集冊板)이 있다.

장위(長位)·양곡(陽谷)·상중(上中)·실매(實梅)·장박(長朴)·법평(法坪)·상법(上法)·철수(鐵水)·신기(新基)·부(傅)·우사(愚仕) 등 11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산청군통계연보』(산청군, 2008)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한국의 발견·경상남도·』(뿌리깊은나무, 1983)
『내고장 전통』(산청군, 1982)
『경남교육사』(경상남도교육위원회, 1980)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80)
산청군(www.sancheong.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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