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군 ()

대동여지도 중 경상남도 의령, 진주 부분
대동여지도 중 경상남도 의령, 진주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경상남도 중앙에 위치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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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중앙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창녕군, 동남쪽은 함안군, 서쪽과 북쪽은 합천군, 서남쪽은 진주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8°07′∼128°26′, 북위 35°15′∼35°31′에 위치한다. 면적은 482.87㎢이고, 인구는 2만 8544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2개 면, 238개 행정리(116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중동리에 있다.

자연환경

지형은 외곽지구와 내부지구로 구분, 남북의 외곽지구는 동북쪽은 강원도함백산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강원도와 경상북도 지역의 중서부를 남류하다가 이 군의 관내에서 낙서면 · 부림면 · 유곡면 · 지정면에 이르기까지 사행천의 곡류를 나타낸다.

내부지구는 소백산맥의 작은 지맥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군의 북부 합천군황강에 의해 단절된 뒤 곳곳에 산지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남북 양쪽에서 흐르는 두 강의 영향으로 내륙부는 비교적 저평한 평야지와 구릉성의 낮은 산지 지역이 특징적이다. 중앙부와 서북부는 산간지구이나 동남부는 평야지대에 속한다. 대표적인 산으로는 자굴산(0x974c屈山, 897m) · 미타산(彌陀山, 662m) · 산성산(山城山, 741m) · 국사봉(國士峰, 669m) · 벽화산(碧華山, 521m) · 신덕산(新德山, 587m) · 마등산(馬嶝山, 427m) · 만지산(606m) · 한우산(746m) · 응봉산(鷹峰山. 585m) 등이 있다.

한편, 군 남서쪽은 지리산쪽에서 발원한 남강이 동류하다가 진주시를 거쳐 군의 남서부의 화정면 · 의령면 · 용덕면 · 정곡면 · 지정면에 이르러 동북쪽으로 흐르다가, 남류하는 낙동강과 합수해 낙동강 본류를 형성하며 동류하고 있다. 한편, 하천의 수계는 대부분의 소하천이 남강과 낙동강에 흘러든다. 즉 의령천 · 화정천 · 남산천 · 용소천 · 용덕천 · 두곡천 · 성황천 · 백야천 등이 모두 군의 중앙에서 남류하며 곳곳에 하안평야부를 만들면서 남강으로 흘러든다. 또, 동부의 신반천(新反川) · 유곡천(柳谷川) 등은 중앙부에서 관류해 곳곳에 산간분지를 형성하면서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온대기후대에 속하나 의령군은 겨울에는 기온의 일교차와 연교차가 크고 강수량이 적은 대륙성기후를 나타내고 여름에는 해양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해양성기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연평균기온 13.5℃, 1월 평균기온 0.0℃, 8월 평균기온 26.1℃, 평균습도는 70%, 연강수량은 1447.6㎜이다(2007년 기준).

지질은 중생대 경상계 낙동통의 진주층의 사암 · 혈암 · 이암 · 역암 등과 산지부의 화강암계 지층으로 되어 있다. 식생은 온대남동부 유형으로서 편백 · 리기다소나무 · 버지니아소나무 · 오동나무 · 호도 등의 수종이 자란다.

역사

이 지방은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하는 곳으로, 두 강과 그 지류의 유역에는 지석묘 · 입석 등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아직 발견된 바 없으나 청동기시대에는 이미 상당한 인구가 이 지방 전역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시대에는 함안의 아라가야(阿羅伽倻)나 창녕의 비사벌(比斯伐) 영역으로 의령과 신반(新反)지방이 정치 중심지 가운데 한 곳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신라가 아라가야와 비사벌을 차례로 병합해 지금의 창녕에 하주(下州)를 설치한 555년(진흥왕 16)까지는 이 지방도 신라의 세력권에 들어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신라 때 이 지방은 장함현(獐含縣)이라고 했는데, 757년(경덕왕 16) 의령현으로 개칭해 함안군의 영현이 되었다. 신반 지방은 본래 신이현(辛尒縣) 또는 주오촌(朱烏村) · 천천현(泉川縣)이라고도 했는데, 이 때 의상현(宜桑縣)으로 개칭해 강양군(江陽郡:지금의 陜川郡)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 의령현이 진주목(晋州牧)의 영현이 되었으며 1390년(공양왕 2)에 감무를 두었다. 의상현은 고려초 신번현(新繁縣)으로 개칭했으며 1018년 합주(陜州)에 소속되었다가 1390년 의령현의 영현이 되었다.

1413년(태종 13) 감무제도를 폐지하고 현감을 두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세종 때 의령현의 호구는 504호 1,629인이었고 신번현은 555호 982인이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는 4월 22일 고향인 유곡면 세간리에서 구국의 기치를 들고일어나니 이것이 의병의 효시이며, 이곳이 의병의 발상지였다. 그는 홍의(紅衣)를 입고 의병을 지휘해 의령 · 창녕지방에서 왜군을 물리치는 전공을 세워 홍의장군이라고 불렸다. 정유재란 때에도 그의 휘하에 모여든 군민을 이끌고 유격전으로 이 지방을 끝까지 지켰다. 지금 의령 · 창녕 · 현풍 지방에 있는 산성들은 대개 이 때 곽재우가 수축한 고전장(古戰場)이다. 『의령현읍지』에 의하면, 1771년(영조 47) 당시 호구는 6,844호 2만 9,565인이었다.

1895년 지방관제 개정으로 진주부 의령군으로 개편되었다가 1896년 경상남도 의령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합천군 궁류면을 편입해 13개 면으로 되었다. 1919년 독립운동 때에는 3월 14일 의령면에서 연 3일간의 시위를 시작으로 부림면 · 지정면 · 칠곡면 · 화정면 등지에서 대규모의 시위가 일어났다. 독립운동 뒤 이곳 출신 안희제(安熙濟)는 영남의 유지들과 부산에서 백산상회(白山商會)라는 무역회사를 설립해 해외의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는 한편, 기미육영회를 조직해 많은 인재를 구미 각국에 유학시키는 등 국권회복운동에 헌신하였다.

1950년 6·25전 때 이 지방은 공산군의 낙동강 도하작전지역으로 큰 피해를 보았으며, 특히 읍내의 중심부가 거의 불타 버렸다. 1979년 5월 1일 의령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3년 2월 15일 합천군 적중면의 권혜리와 묵방리가 부림면에 편입되었다. 1989년 1월 1일 합천군의 대양면 오산리 일부가 봉수면에, 삼가면 외토리 일부가 대의면에 각각 편입되었다. 1995년 8월 14일 화정면 덕교리 임촌마을이 덕교마을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96년 부림면 감암리 일부를 신반리에, 궁유면 벽계리 일부를 궁유면 평촌리에 편입하였다.

유물 · 유적

불교 유산으로는 의령읍 하리에 의령 보천사지 승탑(보물, 1968년 지정) · 보천사지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정곡면에 성황리 삼층석탑이 있고, 중교리정곡초등학교에는 부근의 절터에서 옮겨온 중교리 석조여래좌상 2구와 광배 · 대좌 · 석등의 석재가 있는데 석불은 일부 파손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국보, 1964년 지정)은 1963년 대의면 하촌리에서 발견된 것으로, 고구려의 불상이 이곳까지 오게 된 경위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봉수면 서암리의 신라시대 절터에서는 금동여래좌상이 출토되었다. 현존하는 사찰로는 운암사(雲巖寺) · 영법사(玲法寺) · 수도사(修道寺) · 유학사(遊鶴寺) · 옥련암(玉蓮庵) 등이 있다. 성황리 삼층석탑은 1974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중교리 석조여래좌상은 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유교 유산으로는 의령읍 서동리의 의령향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하리의 덕곡서원이 있다. 덕곡서원은 1985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정자와 누각은 의령읍 동동리의 칠정려(경상남도 기념물, 1977년 지정), 지정면 성산리의 보덕각(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용덕면 소상리의 사월정(沙月亭), 대의면 중촌리의 이의정(二宜亭) 등이 있다. 사월정은 낙동강변의 돈대산에 있는 재실로, 임진왜란 때 순절한 강수남(姜壽男)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지은 것이다. 이의정은 조선 인조 때 허목(許穆)이 병자호란을 피해 자굴산 골짜기인 이곳에 우거하면서 거의 10년 동안 시(詩) · 서(書)를 벗삼아 은거한 곳이다.

분묘로는 의령읍 서동리 · 무전리와 정곡면 석곡리 · 오방리에서 청동기시대의 지석묘와 유물이 조사되었다. 고분으로는 정곡면의 의령 죽전리 고분군(경상남도 기념물, 1990년 지정)을 비롯해, 의령읍 중동리 · 동동리 일대의 언덕지대와 부림면 경산리에 삼국시대의 고분군이 분포되어 있다. 의령읍 하리에는 소규모의 고분들이 군집되어 있으나 거의 파괴된 상태이다.

임진왜란 때 김성일(金誠一) 막하에서 활약한 이로(李魯)의 「용사일기(龍蛇日記)」는 난리가 일어난 뒤부터 다음해 1593년 5월까지의 전투기록으로서 중요한 사료이다. 정곡면 오방리에 그 초간본의 목각판인 용사일기목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이로 송암문집 및 이만승 괴당집책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이 있다. 대의면 중촌리에는 허목 미수기언 목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이 보존되어 있다.

민속자료로 화정면에 의령 덕교리 강씨 고가(경상남도 민속자료, 1986년 지정)와 의령 상정리 조씨고가(경상남도 민속자료, 1993년 지정) · 부림면 입산리에 백산 안희제 생가(경상남도 민속자료, 1993년 지정)가 있다.

의령큰줄땡기기는 1997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어 의병제전행사에 맞춰 3년마다 치러지는 역사성이 매우 깊은 전통 민속놀이이다. 1800년대부터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날 의령현을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의 사람들이 대거 참여하여 1910년대까지 연례행사로 치러오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당시 잠시 중단된 뒤 1975년부터 의병제전의 부대행사로 이어져 오고 있다. 큰줄땡기기 또는 줄사움이라고 부르며 신라시대부터 유래를 찾을 수 있다. 큰 줄은 직경이 5자 정도에 길이가 200자 이상이며, 곁줄은 양쪽 모두 100가닥이 넘어, 200여 마을에서 2∼3일간 제작한 것을 합사(合絲)하여 쓴다.

정곡면 죽전리에는 호미산성(경상남도 기념물, 1990년 지정), 의령읍 하리에 벽화산 성지(경상남도 기념물, 1983년 지정) 등이 있다.

의령읍 중동리에 있는 충익사에는 곽재우 유물 일괄(보물, 1980년 지정)이 보관되어 있다. 1972년 군민들이 곽재우와 휘하 17명의 의병장 및 의병들의 전공을 기리고 그들의 구국정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남산 아래에 의병탑(義兵塔)을 세우고, 1978년에는 충익사를 건립해 곽재우와 의병들을 위해 제를 지내고 있다. 그리고 유곡면 세간리에 현고수(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가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의령읍 서동리에 빗자국의 화석인 의령 서동리 백악기 빗방울자국(천연기념물, 1968년 지정), 정곡면에 의령 성황리 소나무(천연기념물, 1988년 지정), 유곡면 세간리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 의령읍 중동리에 충익사 모과나무(경상남도 기념물, 1987년 지정) 등이 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의령향교가 있다. 이 향교는 30명의 유생을 수용해 교임(校任) 3명을 두었다. 이곳은 임진왜란 전에는 읍의 동쪽에 있었으나 1618년(광해군 10) 지금의 위치인 서동리로 이전하였다. 향교와 별도로 흥학당(興學堂)이 있어서 관가에서 섬학전(贍學錢)이라는 기금을 마련해 유생들의 학업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서원으로는 1656년(효종 7)에 설립되어 1660년(현종 1)에 사액된 덕곡서원을 비롯해, 용덕면 죽전리의 태암서원(泰巖書院), 부림면 경산리의 낙산서원(洛山書院)이 있다. 그 밖에 용덕면 운곡리의 어강서원(漁江書院), 대의면 신전리의 미연서원(嵋淵書院), 정곡면 중교리의 도계서원(陶溪書院), 유곡면 칠곡리의 의령서원(宜寧書院), 부림면 신반리의 신계서원(新溪書院) 등이 있었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안희제가 1907년 의령읍에 개교한 의신학교(宜新學校)와 1908년 부림면 입산리에 개교한 창남학교(刱南學校)가 최초이다. 1910년 의령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해 점차 1면 1교의 학교체제가 갖추어졌다. 1945년 의령농업전수학교가 개교해 중등교육이 시작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4개교, 중학교 5개교, 고등학교 4개교, 전문대학 1개교(마산대학 의령캠퍼스)가 있다.

의령문화원에서는 1972년부터 해마다 의병문화제를 주관하고 있다. 이 행사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곽재우의 용기와 충성심을 이어받기 위해 개최되는 향토문화행사로서, 의령의 종합문화예술제이며 군내의 각 예술 · 문화단체들이 참여하는 군민의 제전이다.

민속

이 고장의 대표적 민속놀이로는 줄다리기와 지신밟기를 들 수 있다. 의령읍과 신반(新反)에서 풍농과 태평을 기원하며 놀았던 줄다리기는 인근 주민들까지 축제의 분위기로 몰아넣는 고을의 큰 대동놀이였다. 의령읍의 줄다리기에서는 큰길을 기준으로 길 위[路上]편이 수줄을, 길 아래[路下]편이 암줄을 당기게 되고, 신반에서도 윗줄이 수줄이고 밑줄이 암줄이 된다. 짚 200∼300동이 들 정도로 줄의 규모가 컸으며, 줄 자체를 신성시해 행사 전날 두 편이 각각 극진히 고사를 지냈다. 줄다리기 전후에는 가장행렬 · 농악 등 민속놀이가 행해지고, 용두머리에 비녀목을 꽂고 시합이 시작되면 청장년뿐만 아니라 아낙네들도 합세를 하였다. 근래에는 안타깝게도 이 줄다리기가 행해지지 않다가 최근에 재현되었다.

이 고장에서 ‘집돌금’이라고 불리는 지신밟기는 정초에 마을의 농악대가 동제당에 가서 당산굿을 하고 공동우물에서 샘굿을 한 뒤, 정월 보름까지 가가호호를 방문해 조왕풀이 · 성주풀이 · 철륭풀이 등의 축원을 해주는 놀이이다. 이 때 각 가정에서 내놓는 돈이나 곡식은 마을의 공동사업에 쓴다.

이 밖에 특기할 만한 것은 신반이 전문유랑예인 집단인 신반대광대패의 본거지로, 예전에는 유명한 오광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고장 사람들은 신반이 한말의 명창 손덕겸(孫德謙)을 배출한 영남조의 본고장이라고 자랑하면서 지금도 시조창을 널리 부르고 있다. 그 밖에도 연날리기 · 널뛰기 · 돈치기 · 제기차기 · 씨름 · 낫치기 · 호미치기 등의 놀이가 행해지고 있다.

이 고장의 각 마을에서는 대개 당산신 혹은 동신이라 부르는 마을수호신을 모시고 매년 당산제 또는 동신제를 올린다. 일반적으로 신체(神體)는 거목이며 제일은 섣달 그믐과 정월 보름 자정인 경우가 많다. 유래가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칠곡면 외조리의 당산제는 안태봉에 있는 당산목을 신성시하고 있다. 해마다 음력 12월 보름경 동회를 열어 부정하지 않은 동민 중에서 제관을 선정하는데 이를 ‘소임’이라 부른다. 제관은 섣달 그믐날 삿갓을 쓰고 장에 나가 제물을 구입해 그날 자정 무렵 당산목 앞에 진설하고 마을의 태평과 풍농을 기원한다.

설화 · 민요

이 고장에는 자굴산과 의령읍 · 부림면을 중심으로 한 지명전설과 풍수지리전설이 많이 전해오고 있다. 인물전설로는 이 고장에서 탄생했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대승한 곽재우에 관한 전설이 많이 전승되고 있다. 또 명관 고창녕 등의 원(員)에 관한 전설과 신통한 점장이 왕태사(王太師)와 의적에 관한 전설 등이 전해오고 있고 근대의 인물 안희제에 관한 일화와 칭송이 대단하다.

곽재우에 대한 설화 내용은, 용마소(龍馬沼)에서 나온 적마(赤馬)를 어른도 잡지 못했는데 열세살의 어린 곽재우가 잡아서 탔을 정도로 비범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곽재우가 붉은 옷을 입고 산봉우리를 날아다녀서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이라 불렸고, 왜병들은 곽재우의 모습만 보고도 도망쳤다고 한다. 곽재우의 전투에 대한 설화도 많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면, 곽재우는 강을 뛰어 넘을 정도로 비범했는데, 낙동강과 남강이 합쳐지는 기강나루에서 왜병과 대적할 때 밤에 허수아비를 만들어 옷을 입혀 놓고 줄에 매달아 불을 붙여 흔들어서 수백 명이 강을 막고 서 있는 것처럼 위장전술을 써서 승전했다는 이야기이다.

「배곡(拜谷)과 오망곡(誤望谷)의 유래전설」은 풍수지리에 통달한 황덕유(黃德柔)가 의령현감으로 부임해 오다가 보니 의령땅 형국이 천하명지라서 절을 했다고 하여 ‘배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가까이 와서 보니 형편없는 지세여서 남산에 나무를 심고 물길을 내어 풍요로운 땅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으로, 지세를 잘못 보고 실망한 곳을 ‘오망곡’이라 했다고 한다. 이 밖에 의적 맹개목과 강목발이에 대한 전설과 의령의 인물은 자굴산의 정기를 타고난다는 등 자굴산에 얽힌 설화가 많이 전해오고 있다. 또한, 「장자못전설」 · 「아기장수설화」 등 다양하고 많은 설화가 구비전승되고 있다.

이 고장은 북부와 서부가 산악지대이고, 남 · 동부는 남강 · 낙동강과 면한 비옥한 평야가 펼쳐져 있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산촌형 민요와 농촌형 민요가 함께 전승되고 있다. 산촌형 민요로는 「자굴산타령」 · 「나물캐는 노래」 · 「고사리타령」 · 「엄바구덤바구」 · 「왈짜타령」 등이 있다. 농촌형 민요로는 「모심기노래」 · 「논매기노래」 · 「밭매기노래」 · 「보리타작노래」와 다양한 길쌈노동요 등이 널리 구전되고 있다.

시조창 영남제의 본고장이라고 자랑하는 고장답게 신반과 의령읍에서는 「매화타령」 · 「군밤타령」 등 가락에 변화가 많은 비기능요가 발달되었다. 「자굴산타령」은 산에 나물 캐러 갈 때나 놀이할 때 부르는데, 가락은 「아리랑」 가락에 맞추어 부른다. “처녀야 총각아 내따라가자/자굴산 상봉에 꽃꺾어주마/꽃을 꺾으면 작기나 꺾었나/처녀 총각에 아름을 꺾었네.”라고 부른다. 「나물캐는 노래」는 남도령과 서처녀가 산에 올라 점심을 바꾸어 먹고 부부가 된다는 내용의 서사민요로, 젊은 여인들이 나물 캘 때 부른다. “에헤/남산밑에 남도령아/서산밑에 서처녀야……이럭저럭 짐심때되여/짐심을먹고서 나물캐자……짐심식사를 하실때/이때마침 어느땐고/백년기약이 완연하네……”라고 부른다. 「왈짜타령」은 「산타령」이라고도 불리는데 역시 나물 캐러 가면서 부른다. “칠락콩 팔락콩 홍갑사 댕기는/곱은 때도 안묻어서 날받이 왔구나/날은 받아서 품안에 옇고요/중신애비 상투끌고 경찰서 갑시다/울오라비 똑똑다고 소문만 났지요/경찰서 마당에 생똥만 누는구나.”라는 해학적 내용이다.

「동국각시」는 두레삼을 삼을 때 노동의 지루함을 잊기 위해 부르는 노래이다. 내용은 동국각시가 지나가는 청년에게 물을 떠주었다고 부모에게 쫓겨나 중이 되었다가 그 청년과 만나 부부가 되어 친정에 왔더니 집은 폐허가 되고 풀만 무성하더라는 내용의 서사민요이다.

이 밖에 길쌈노동요로 「누에노래」 · 「물레노래」 · 「진주낭군」 등이 있고, 「시집살이노래」도 기능은 대개 길쌈노동요일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고장 민요의 특징으로 부녀자들이 놀이할 때 서서 자기 치마를 잡고 흔들면서 부르는 「치마노래」가 널리 불리고 있다. 또한, 짐승을 풍자적으로 노래한 「소노래」 · 「닭노래」 · 「이노래」 등이 전승되고 있다.

산업 · 교통

낙동강 · 황강 등의 유역에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관개용수의 이용이 편리해 주로 벼농사에 치중하고 있다. 농업생산은 화정면 · 의령읍 · 용덕면 일대의 정암평야와 유곡천 유역의 유곡평야, 부림면의 부림평야가 주곡산지이다. 또한, 가례면의 서암저수지 · 운암저수지, 부림면에 익구저수지, 칠곡면에 산남저수지 등이 있어 관개용수를 공급한다.

총 경지면적은 7,250㏊이고 이 중 논은 5,281㏊, 밭은 1,969㏊이다. 논밭의 경지비율은 각각 72.8%와 25.2%로서 전통적인 농업지역인 이 징역에서 논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농가호수는 2008년 현재 5,503호이고 농가인구는 1만 1505명이다. 농업의 발전을 위해 설정된 의령군의 농업진흥지역과 농업보호지역은 각각 4,185.9㏊와 843.3㏊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콩 · 감자 · 고구마 등이며, 참깨 등의 특용작물과 약용작물, 양파 · 오이 · 배추 등의 채소류의 생산도 많다.

축산물로는 한우 · 돼지 · 닭 · 꿀벌 등의 사육도 활발한 편이다. 임산물로서 용재 · 죽재와 유실수로서 특히 밤의 생산량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이 지역의 특산품인 의령한지가 부림면 · 봉수면 · 유곡면 일대에서 생산되고 있다.

산업구조의 특성은 제1차 산업에 속한 농업 · 임업관계의 사업체가 9개 업소에 198명의 종업원이 고용되어 있다. 제2차 산업에 속한 광공업을 보면, 관내에 대성 · 가례 등의 광산에서 금 · 은 · 동 · 고령토 · 규사 등이 매장된 6개의 광구가 있으나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 고장의 광업 사업체 및 종사자는 전무한 상태다. 제조업은 225개 업소에 1,902명이 고용되어 있는데, 음식료품제조업 · 펄프종이 및 종이제품제조업 · 기타기계 및 장비제조업의 비중이 크다. 그러나 이 지역의 제조업은 경상남도의 다른 기초지자체와 비교하여 다소 발달이 부진한 편이다.

제3차 산업에 속하는 상업 및 서비스업의 경우, 총사업체수 1,552개 업체에 5,489명이 고용되어 있다. 도 · 소매업과 음식 및 숙박업, 그리고 공공 · 수리 및 개인서비스업의 비중이 가장 크다(2008년 기준). 동동 · 정곡 · 부림 · 봉수농공단지에 총 70개 업체가 입지하고 있다.

상업활동은 상설시장 1개, 정기시장 7개가 있어 군내의 유통거래기능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의령읍 의령장은 3·8일에 열리는 정기시장으로서 특산품인 한지 및 장판지가 주로 거래되었으나 근대화로 인해 이제는 상설시장이 되었다. 부림면의 부림장은 4·9일에 열리며 예로부터 ‘신반장(新反場)’이라고 하여 종이시장으로 그 이름이 높았다. 궁류면의 궁류장이 1·6일, 칠곡면의 칠곡장이 5·10일에 열리며, 주요 거래품목은 고추 · 마늘 등의 채소류이다.

의령읍을 중심으로 국도 20호가 창녕과 합천으로 연결되고, 이 외에도 지방도가 각 면으로 발달해 있다. 그리고 군의 남쪽인 함안군을 지나는 남해고속도로와도 연결되어 있다.

관광

의령의 관광자원으로는 곽재우 장군을 모신 충익사와 의병제전 등 의병 관광과 의령 예술촌의 농촌적이고 서정적인 문화예술 전시관, 전통한지 및 도자기의 체험 관광지로서의 여건, 전통 병풍과 칠보공예, 그리고 산재되어 있는 문화 유적과 자연 관광 자원인 벽계 관광지, 한우산, 자굴산 등이 있다.

의병제전 및 군민의 날행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망우당곽재우 장군과 17장령을 추모하고 그 정신을 받들기 위하여 개최하는 의령군민의 문화예술행사이다. 이외에도 정월대보름 전통민속축제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달집태우기 등이 있다.

의령읍 동동리의 군민문화회관은 군민문화회관은 연극, 음악, 무용 등의 각종 공연과 대규모 각종 주민강의 및 교육, 토론회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의령읍 동동리에 위치한 의령박물관은 1993년에 개관하였으며 고고역사실과 민속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선사시대 유물을 비롯한 다종의 국가유산을 전시하고 있다. 궁류면 평촌리에 있는 의령예술촌은 매년 11대 기획시리즈를 비롯하여 각종 문화행사와 공연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의령군에는 의령 · 정곡 · 지정 · 부림 · 궁유 · 유곡 등 모두 6개의 공설운동장 시설을 갖추고 체육행사를 통한 의령군민의 화합과 군민의 체력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이외에 궁도장과 노인복지의 차원에서 많은 게이트볼구장을 보유하고 있다.

읍 · 면
  1. 의령읍(宜寧邑)

군의 남부에 위치한 읍. 면적 34.28㎢, 인구 9,488명(2015년 현재). 읍소재는 중리이다. 본래 의령군 지역으로 풍덕면(風德面)이라 하여 서문 · 동부 · 서부 등 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덕곡면과 덕암면의 일부를 병합해 10개 리로 개편되었으며, 1916년 의령면으로 개칭하고, 1979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읍의 동부에 100∼200m 높이의 구릉산이 남북으로 달리고, 서부에는 벽화산 등의 산지가 남북으로 뻗어 있다. 이 산지 사이를 남강의 소지류인 남산천과 의령천이 남류해 중부에 소규모의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산간지대에도 곳곳에 분지가 발달해 대체로 생활환경이 좋은 편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감자 · 콩 등이 생산된다. 또한 농가마다 밤을 생산해 소득을 높이고 있으며, 이 지방의 특산물인 한지를 생산하고 있다. 읍의 중앙에는 화정면과 연결되는 도로가 진주∼마산 간의 지방도와 만난다. 북부에는 합천군 · 산청군과 연결되는 국도가 통과하고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서동리 · 무전리의 지석묘, 중동리 · 동동리 일대의 고분군, 하리의 보천사지삼층석탑 · 보천사지부도 · 벽화산성지 · 정암나루 · 덕곡서원과 서리의 의령향교, 중동리의 충익사와 곽망우당유물, 동동리의 칠정려 등이 있다.

중동(中洞) · 서동(西洞) · 동동(東洞) · 정암(鼎巖) · 상(上) · 중(中) · 하(下) · 대산(大山) · 만천(萬川) · 무전(茂田) 등 10개 리가 있다.

  1. 가례면(嘉禮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35.55㎢, 인구 1,88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가례리이다. 본래 의령군 지역으로 가례골의 이름을 따서 가례면이라 하여 가례 · 진목 · 봉두 등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1895년 지방관제개정에 의해 일가례면 · 이가례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시 합해 가례면으로 되었다. 면의 주위를 자굴산 · 신덕산 · 한우산 등이 에워싸고 있어 산지가 우세하며, 칠곡면에서 발원한 의령천이 대천리를 지나 의령읍으로 들어간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콩 등이며, 특산물로는 산지를 이용해 재배하는 밤이 많이 생산되고 약용작물의 재배도 활발한 편이다. 교통은 사천∼경주간의 국도가 면의 남부를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갑을리에 연대 미상의 두 개의 절터가 있으며, 운암리에 영법사와 양천사지(楊泉寺址)가 있다. 명승지로는 갑을리에 명종대(明鐘臺) · 원효단(元曉壇), 운암리에 강선폭포 등이 있으며, 가례리의 가례동천에는 이황(李滉)이 친필로 각자했다는 ‘가례동천(嘉禮洞天)‘이라는 글자가 있다.

가례(嘉禮) · 갑을(甲乙) · 양성(陽城) · 개승(介承) · 괴진(槐津) · 수성(修誠) · 운암(雲巖) · 대천(大川) · 봉두(鳳頭) 등 9개 리가 있다.

  1. 궁류면(宮柳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3.57㎢, 인구 1,26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토곡리이다. 본래 의령군 지역으로 일류곡면(一柳谷面)이라 하여 문창 · 토동 · 당동 · 죽림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류곡면(二柳谷面)의 계현리 일부와 합천군 궁소면의 대현 · 예동 등 7개 리를 합해 궁소와 유곡의 이름을 따서 궁류면이라 하여 7개 리로 개편되었다. 산성산 · 성현산(城峴山) · 마등산(馬嶝山) · 만지산(萬芝山) · 장등산(長嶝山) · 한우산 등 크고 작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 사이로 벽계리산성산에서 발원한 유곡천이 유곡면으로 들어가 이 주변이 유일한 통로가 된다.

주요 농산물 쌀 · 보리 · 감자 등이며, 그 밖에 약용작물을 약간 재배하고 있다. 교통은 함안∼합천 간의 지방도가 북동부를 지난다.

문화유적은 벽계리에 벽계산성(碧溪山城), 압곡리에 의병의 격전지로 알려진 성지, 운계리에 정수사지(淨水寺址), 평촌리에 봉황대 · 봉황루가 있다.

토곡(土谷) · 평촌(坪村) · 벽계(碧溪) · 운계(雲溪) · 압곡(鴨谷) · 계현(桂峴) · 다현(多峴) 등 7개 리가 있다.

  1. 낙서면(落西面)

군의 동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23.45㎢, 인구 85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전화리이다. 본래 의령군 지역으로 낙동강 서쪽에 있다 하여 낙서면이라 하여 전화 · 부곡 · 방계 등 1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아근 · 내제 등 6개 리로 개편되었다. 서쪽 전화리쪽에 매봉 등 산지가 솟아 있고, 동 · 남 · 북부를 모두 낙동강이 에워싸서 평지를 형성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등이며, 오이 · 참외 · 파 · 시금치 등의 채소류를 많이 생산한다. 교통은 면내를 연결하는 군도가 부림면으로 통한다.

문화유적은 내제리에 봉래정(蓬來亭), 정곡리에 이감사묘(李監使墓) 등이 있다.

전화(全火) · 율산(栗山) · 정곡(井谷) · 여의(如意) · 내제(來濟) · 아근(阿近) 등 6개 리가 있다.

  1. 대의면(大義面)

군의 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35.87㎢, 인구 1,12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마쌍리이다. 본래 의령군 지역으로 대곡면(大谷面)이라 하여 다사 · 마쌍 · 축산 · 심지 · 천곡 등 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모의면(募義面)의 신전 · 내동 · 중촌 · 마전 등 7개 리를 병합해 대곡과 모의의 이름을 따서 대의면이 되었다. 1989년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일부를 편입하였다. 면의 대부분이 자굴산 · 한우산 · 망룡산(望龍山) 등을 비롯한 산지로 형성되어 있다. 중촌리 뒷산에서 발원한 하천이 합천군 삼가면을 거쳐 양천강으로 들어가는데 이 하천 주변에는 약간의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감자 등이며, 특산물로는 밤의 생산이 많다. 교통은 시천∼경주 간의 국도가 면을 동서로 가로지르면서 고성∼선산 간의 국도와 만난다.

문화유적은 신전리에 한천정(寒泉亭)과 은행나무가 있고, 중촌리의 이의정에 미수기언책판이 보관되어 있다. 다사리에 사지가 있으며, 하촌리에서 발굴된 연가7년명금동여래입상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마쌍(馬雙) · 신전(薪田) · 행정(杏亭) · 중촌(中村) · 하촌(下村) · 다사(多士) · 추산(秋山) · 심지(深池) · 천곡(泉谷) 등 9개 리가 있다.

  1. 봉수면(鳳樹面)

군의 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33.06㎢, 인구 1,08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죽전리이다. 본래 의령군 지역으로 봉산(鳳産)의 이름을 따서 봉산면이라 하여 상곡산 · 죽전 · 사현 등 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수면(佳樹面)의 8개 이와 초계군(草溪郡) 백암면(伯巖面)의 2개 리를 합해 봉산 · 가수면의 이름을 따서 봉수면이라 하여 7개 리로 개편되었으며, 1989년 합천군 대양면 오산리 일부를 편입하였다. 북부에 봉산, 남부에 만지산 · 장둥산 등이 솟아 있어 면 전체가 산지이며, 두 산줄기 가운데 약간의 평지가 있어 주거지 및 농경지로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감자 등이며, 그밖에 양파재배와 약용작물재배가 활발하다. 교통은 합천군 대양면과 부림면 · 정곡면을 연결하는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서암리에 서호정(西滸亭)과 연대 미상의 절터가 있고, 천락리에 명석정 등이 있다. 명승지로는 구사봉 산성의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죽전(竹田) · 청계(淸溪) · 서암(西巖) · 신현(新峴) · 삼가(森佳) · 서득(西得) · 천락(天樂) 등 7개 리가 있다.

  1. 부림면(富林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7.96㎢, 인구 3,32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반리이다. 본래 신번현 지역인데 1391년(공양왕 3) 의령현에 편입되고, 조선시대에 부림리로 되었다. 1895년 지방관제개정에 의해 부산면(富山面)과 보림면(寶林面)으로 분리해 각각 15개 리와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경산면(景山面)의 경산 · 박진의 2개 리와 낙서면의 부곡리 일부, 가수면(嘉樹面)의 서득리 일부를 합해 다시 부림면이라 하고 10개 리로, 개편되었다. 1983년 합천군 적중면 권혜리와 묵방리를 편입하였다. 남쪽에 방개봉, 동남쪽에 매봉, 서쪽에 왕령산(王嶺山)이 자리 잡아 산지를 이루며 이 사이에 신반리를 중심으로 농업이 발달하였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감자 · 콩 등이며, 특히 무 · 배추 · 마늘 · 양파의 재배가 활발하다. 예로부터 신반리를 중심으로 한지 생산이 활발하였다. 교통은 의령 · 합천 · 창녕으로 연결하는 국도가 면의 중앙부를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여배리에 유학사, 신반리에 소천정, 경산리에 대성산성 · 고분군, 입산리에 안희제의 생가와 묘가 있다.

신반(新反) · 감암(甘巖) · 막곡(莫谷) · 경산(景山) · 단원(丹原) · 입산(立山) · 손오(孫吾) · 대곡(大谷) · 여배(餘背) · 익구(益口) · 권혜(卷惠) · 묵방(墨方) 등 12개 리가 있다.

  1. 용덕면(龍德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33.83㎢, 인구 1,72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운곡리이다. 본래 의령군 지역으로 용바위가 있으므로 용암면(龍巖面)이라고 하여 상용소 · 하용소 · 연동 등 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덕암면(德巖面)의 이목 · 가미 · 와요 등 11개 리와 풍덕면(豊德面)의 무리를 합해 용암과 덕암의 이름을 따서 용덕면으로 되었다. 서부와 북부는 대체로 낮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동쪽은 남강변의 평지이며, 남쪽 역시 의령읍으로 통하는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칠곡면에서 발원한 의령천이 가례면과 의령읍을 지나 교암리 · 소상리 · 정동리를 지나 남강으로 들어간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감자 · 콩 등이며, 채소류와 밤의 생산이 많다. 교통은 의령에서 합천 · 창녕 등지로 연결되는 국도가 면의 동남부를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이목리에 수도사, 운곡리에 고분터, 죽전리에 내암서원, 소상리에 사월정 등이 있다.

운곡(雲谷) · 이목(梨木) · 가미(佳美) · 와요(瓦要) · 가락(佳樂) · 죽전(竹田) · 신촌(新村) · 교암(橋巖) · 소상(召湘) · 정동(井洞) · 연(淵) · 용소(龍沼) 등 12개 리가 있다.

  1. 유곡면(柳谷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47.56㎢, 인구 1,32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칠곡리이다. 본래 의령군 지역으로 미요리(未要里) 또는 유곡리라고 하였다. 1895년 지방관제개정에 의해 이류곡면이라 하여 남촌 · 동촌 등 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곡면의 고송 · 야산 · 덕천 등 7개 리와 능인면(能仁面)의 7개 리를 합해 다시 유곡면이라 하고 11개 리로 개편되었다. 면의 대부분이 마등산 · 장등산 · 방개봉 등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 사이를 유곡천이 흘러 송산리에서 궁류면을 지나 부림면으로 흘러 들어가 낙동강에 이른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감자 등이며, 그 밖에 약간의 약용작물이 생산된다. 교통은 함안∼합천 간의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세간리의 망우당터 · 현고수 · 의병훈련지 등과 천연기념물인 은행나무가 있다.

칠곡(漆谷) · 상촌(上村) · 상곡(上谷) · 오목(烏木) · 신촌(新村) · 송산(松山) · 마장(馬場) · 마두(馬頭) · 당동(塘洞) · 덕천(德川) · 세간(世干) 등 11개 리가 있다.

  1. 정곡면(正谷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40.13㎢, 인구 1,55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중교리이다. 본래 의령군 지역으로 화곡면이라고 하여 죽전 · 호미 · 중교 등 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일정동면(一正東面)의 상촌 · 성황 등 9개 리를 합해 화곡과 일정동의 이름을 따서 정곡면이라 하여 10개 리로 개편되었다. 북부와 서부에는 우봉산(牛峰山) · 삼봉산(三峰山)등 산지가 우세하며, 남부의 남강 유역에 비교적 넓은 평지가 발달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감자 · 콩 등이며, 특히 남강 유역의 평지에서 무 · 배추 등의 채소류가 많이 생산된다. 교통은 시천∼경주 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을 지나고, 함안∼합천 간 지방도가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중교리에 석가여래좌상, 성황리에 삼층석탑, 오방리에 송암문집 및 괴당집책판, 죽전리에 고분군과 호미산성(虎尾山城) 등이 있다. 경승지로는 남강변에 있는 죽전리 탑암(塔巖)이 있다.

중교(中橋) · 죽전(竹田) · 석곡(石谷) · 오방(五方) · 상촌(上村) · 성황(城隍) · 예둔(禮屯) · 가현(佳峴) · 백곡(白谷) · 적곡(赤谷) 등 10개 리가 있다.

  1. 지정면(芝正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46.91㎢, 인구 2,03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봉곡리이다. 본래 곤명현(昆明縣)의 지산향(砥山鄕)인데 고려 때 의령군에 편입되었고 조선시대에 지산면이 되어 오천 · 웅곡 등 1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정동면(二正東面)의 다안 · 백야 등 7개 리를 합해 지산과 이정동의 이름을 따서 지정면이라 하여 10개 리로 개편되었다. 면의 서부와 중앙부를 거의 야산이 차지하고 있으며, 성당리 · 마산리 · 성산리 등 남강과 낙동강가에 있는 마을를 중심으로 평야가 전개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감자 등이며, 그 밖에 무 · 배추 · 참외 · 토마토 · 시금치 등의 생산이 많다. 교통은 철원∼신반산간의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유곡리에 고려장터로 알려진 9기의 고분군 흔적과 유곡성지(柳谷城址) · 백야성지(白也城址), 태부리에 조선시대 도요지터, 성산리에 보덕각 등이 있다.

봉곡(鳳谷) · 오천(梧川) · 두곡(杜谷) · 성산(城山) · 유곡(柳谷) · 태부(太夫) · 득소(得所) · 성당(城堂) · 마산(馬山) · 백야(白也) 등 10개 리가 있다.

  1. 칠곡면(七谷面)

군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22.37㎢, 인구 1,22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외조리이다. 본래 의령군 지역으로 의령읍내 서쪽이 되므로 서면(西面)이라 하다가, 1660년(현종 1)에 칠곡면으로 고치고 1872년(고종 9)에 도북면(道北面)으로 하였다. 이듬해 다시 칠곡면으로 고쳐 신포 · 신촌 등 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6개 리로 개편되었다. 면의 동북 경계에 자굴산이 있고, 산남리의 서쪽에 망룡산에서 발원한 물이 칠곡저수지에 모였다가 의령천을 이루어 남강으로 들어간다. 면 중앙부에 약간의 평지가 형성되어 있어 주거지 및 경작지로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감자 · 콩 등이며, 밤의 생산이 많다. 교통은 사천∼경주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부를 가로질러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도산리의 학가정(學稼亭), 외조리의 쌍효각(雙孝閣) 등이 있다.

외조(外槽) · 내조(內槽) · 신포(新浦) · 도산(陶山) · 산남(山南) · 산북(山北) 등 6개 리가 있다.

  1. 화정면(華井面)

군의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38.31㎢, 인구 1,67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상정리이다. 본래 의령군 지역으로 화양면(華陽面)이라 하여 11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5개 리로 개편되었다. 1933년 부곡리를 화양리로 이름을 고쳤으며, 중촌 · 하촌의 2개 리를 폐지하고 상정면의 4개 리를 합해 화정면이 되었다. 벽화산 등의 산지가 현저하며 면의 중앙부를 가수리에서 발원한 하천이 관통해 남강으로 들어간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감자 · 콩 등이며, 그 밖에 누에치기가 매우 활발해 뽕밭의 면적과 뽕나무 수, 고치생산량이 모두 군내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교통은 진주∼마산간의 지방도가 지난다.

문화유적은 석천리에 성지, 화양리에 십완사지(十翫寺址), 상일리에 호암사, 덕교리에 강씨고가, 상정리에 조씨고가 등이 있다.

상정(上井) · 가수(加樹) · 덕교(德嬌) · 석천(石泉) · 상일(上一) · 상이(上二) · 화양(華陽) 등 7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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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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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지지(大東地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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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내고장 전통』(의령군, 1985)
『의령군지』(의령군지편찬위원회, 1983)
『경남교육사』(경상남도교육위원회, 1980)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80)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의령군(http://www.uiryeo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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