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어는 친족용어와 함께 어휘의미론뿐만 아니라, 언어철학·문학비평·문화인류학 등등의 여러 분야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되고 있다. 특히 언어상대성이론에서는 각 언어의 색채어를 주요한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언어상대성이론(言語相對性理論)이란 현실 세계는 비분절적이며 연쇄적인 것인데, 이러한 세계를 언어는 인간의 인식방법이나 사회적 조건에 따라 분절시켜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색채어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데, 물리적인 색채의 스펙트럼(spectrum)은 비분절적인 연속체이다. 그런데 이것을 인간은 각각 분절하여 언어로 표현하는데, 분절하는 방식이 각 언어마다 상이하기 때문에, 각 언어마다 상이한 색채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에 따르자면, 국어의 기본 색채어는 순우리말에 해당하는 ‘검다·희다·붉다·푸르다·누르다’ 등의 5가지인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국어 색채어의 한 중요한 특색을 발견할 수 있다.
중국어나 영어에서는 ‘청(靑)’과 ‘녹(綠)’, ‘blue’와 ‘green’ 등과 같이 두 단어로 분절되어 지시되는 색의 덩어리를 국어에서는 “산도 나무도 푸르고, 또한 강도 바다도 푸르다.”라는 문장에서 보듯이, ‘푸르다’라는 한 단어로 지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국어의 색채어는 접사와 음운대립에 의한 어휘의 분화방식이 발달되어 있어서, 색의 명도·채도·농도 및 색에 대한 어감 등을 아주 세세하고 미묘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특징도 가진다.
접두사의 예로는 ‘새·샛-, 시·싯-’이 있는데 모두 “매우 짙고 선명하다”는 뜻을 더해주지만, 어기의 첫 음절이 무엇이냐에 따라 구분되어 쓰인다.
‘새’와 ‘샛’은 첫 음절의 모음이 양성모음일 때 쓰이지만, 첫 음절의 초성이 무성음일 때에는 ‘새’가, 유성음일 때에는 ‘샛’이 쓰인다.(‘새파랗다’, ‘샛노랗다’)
‘시’와 ‘싯’의 쓰임 역시 어기 첫 음절의 초성이 무성음이면 ‘시’가, 유성음이면 ‘싯’이 쓰이는데, ‘새·샛-’과는 달리 첫 음절의 모음이 음성모음일 때에만 쓰인다.(‘시퍼렇다’, ‘싯누렇다’)
접미사의 예로는 ‘-(으)스름하-, -께하-, -끔하-, -(으)무레하-, -칙칙하-, -잡잡하-, -죽죽하-’ 등이 있는데, 각 방언지역에 따라 독특한 접미사가 쓰이기도 한다. 이렇게 접미사를 부착시키는 방법으로도 세세한 색상차이를 표시할 수 있다.(‘푸르스름하다·누르끼리하다·불그므레하다·누르죽죽하다·거무칙칙하다·거무충충하다·가무잡잡하다’ 등)
접사를 붙이는 파생의 방법 이외에도 기존에 존재하던 색채어 어기 둘을 합성하여 만들어진 색채어도 있다.(‘검붉다’, ‘검푸르다’ 등)
음운대립에 의한 미묘한 색상, 또는 어감의 대립은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에 의한 모음대립, 그리고 예사소리와 된소리에 의한 자음대립에 의하여 실현된다.
‘발갛다·벌겋다, 까맣다·꺼멓다, 노랗다·누렇다’ 등은 모음대립에 의하여 앞의 항목이 뒤의 항목보다 더 밝고 진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으며, ‘가맣다·까맣다’ 등은 자음대립에 의한 어감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국어는 위에서 살펴본 고유의 색채어 외에도 한자어 등의 외래어에 ‘색(色)’을 결합시키거나 일반사물을 나타내는 단어에 ‘색(色)’ 또는 ‘빛’을 결합시켜 색채를 표시하는 데 사용한다. ‘홍색(紅色)·청색(靑色)·녹색(綠色)·갈색(褐色)·자주색(紫朱色)·하늘색·루비빛·초콜릿빛·쥐색·나무색’ 등이 그 예이다. 이들 색채어는 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점점 다양해지고 복잡해져가고 있다.
색채어는 또한 그것에 상응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기도 하는데, 이를 색채상징이라고 한다. 가령, ‘장미빛’과 ‘보라빛’은 미래의 밝음과 어두움을 나타내는 정반대의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대체로 빨강은 사랑과 정열, 녹색은 희망, 황색은 안정과 같은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이 색채상징도 각 나라나 시대마다 달라지는데, 가령 어떤 언어에서 흑색은 권위의 상징이지만, 다른 언어에서는 죽음의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적색에 대한 상징적 의미는 자본주의권과 사회주의권에서 전혀 달리 이해된다. 이러한 색채상징은 시나 소설 등의 문학작품에서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색채어의 문학적 접근도 가능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