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첨의평리진찬성사, 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첨의평리진찬성사|정승
목차
정의
고려 후기에, 첨의평리진찬성사, 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래 상인(商人)이었으나 충숙왕(忠肅王)의 총애로 대호군(大護軍)이 되어 시종한 공으로 토지와 노비를 받았으며, 총부전서(摠部典書)를 거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에 오른 뒤 추성협보공신(推誠寶輔功臣)의 호를 받았다. 원나라에 있을 때 심왕(瀋王)과 당(黨)을 이루어 왕위를 엿보던 무리들을 물리친 공으로 충숙왕이 복위, 환국한 뒤 철권(鐵卷)이 내려지고 추성수의좌리공신(推誠守義佐理功臣)의 호가 더해졌으며, 첨의평리진찬성사(僉議評理進贊成事)가 되었다.

그러나 충숙왕은 복위 직후 손기를 충혜왕(忠惠王)의 폐신(嬖臣)으로 오해하여 직첩을 탈취하고 섬으로 귀양보냈다가 곧 소환하였다. 1341년(충혜왕 복위 2) 5월 왕의 동생 강릉대군(江陵大君) 왕기(王琪: 공민왕)가 원나라에 들어갈 때 전(前) 첨의평리로서 수행하였다. 1351년(충정왕 3) 평해부원군(平海府院君)이 되었다. 이듬해 6월 공민왕(恭愍王)에 의하여 연저수종공신(燕邸隨從功臣) 1등이 되어 전민(田民)을 받았으며, 이 해 8월에 정승(政丞)으로 치사(致仕)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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