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중평(中平), 호는 희암(希庵) 또는 삼연재(三淵齋). 아버지는 송경(宋憬)이며, 어머니는 고흥유씨(高興柳氏)로 가선대부(嘉善大夫) 유규승(柳奎乘)의 딸이다. 송내희(宋來熙)의 문인이며, 위기(爲己)의 학문에 힘썼고, 특히 예서(禮書)에 밝았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에는 부사 정관섭(丁觀燮)의 추대로 의병장이 되어 강화도로 진군하던 도중 프랑스군이 퇴각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해산하였다.
1895년 단발령이 선포되자 이에 반대하는 내용의 격문을 각 고을에 보내 반대운동을 벌일 것을 종용하였다. 집 뒤에 삼연재를 세워 많은 학자들을 교육하였으며, 저서로는 『희암집(希庵集)』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