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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베리아국민회(─國民會)

    근대사단체

     1910년 이후 시베리아 치타에서 조직되었던 항일독립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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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10년 이후 시베리아 치타에서 조직되었던 항일독립운동단체.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1910년 8월 29일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한국동포는 북으로 망명하여 시베리아 영토에 정착하였다. 이 때 유인석(柳麟錫)·이상설(李相卨)·김학만(金鶴萬) 등은 성명회(聲鳴會)를 조직하고 일본왕에게 서신을 보내 국제공약의 배신행위를 질책하였다.
    이 때 이상설 등 20여 명이 러시아관리에게 붙잡힘으로써 사실상 항일투쟁을 전개할 수가 없었다. 이 때 한국동포들은 분연히 일어나 시베리아국민회를 조직하게 되었다. 이 모임에는 이강(李剛)·정재관(鄭在寬)·박공륙(朴公六) 등 10여 명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미국에 있는 국민회와 연락하면서 동포의 자치 및 항일독립운동의 구심점으로 삼으려 하였다. 시베리아국민회는 그 중심지를 치타에 두고 오소리(烏蘇里) 각지로부터 페테르스부르크에 이르기까지 한국동포가 거주하고 있는 곳에는 모두 그 지회를 설치, 운영하였다.
    동포간의 친목과 고국의 정치형세, 독립운동의 진전상황, 교포의 생활증진 등을 수시로 점검, 확인하고 지원하는 데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치타는 시베리아의 정치·경제·교통의 요충지로 번영을 구가한 곳으로 완충정부인 치타정부가 함께 설치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이들은 그곳 국민회를 중심으로 강연과 고국소식을 주고받았다. 동포사회의 연락처와 항일운동의 구심점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 (애국동지원호회,1956)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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