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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神主)

가족물품

 죽은 사람의 위(位)를 베푸는 나무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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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육상궁 신주
분야
가족
유형
물품
시대
조선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죽은 사람의 위(位)를 베푸는 나무패.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오경이의 五經異義』에 의하면 신주는 신상 (神像)을 뜻하며 “상주가 장사를 모시고 나서 그 마음을 의탁할 곳이 없어 우제(虞祭) 때에 신주를 세워서 모신다. 오로지 천자와 제후만이 신주를 모시고 경대부(卿大夫)는 모시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한 『춘추공양전 春秋公羊傳』에 의하면 “대부는 속백(束帛)으로 신을 의지하도록 하고, 선비〔士〕는 띠풀을 엮어 초빈(草殯)한다.”고 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연원 및 변천
이로 보아 신주는 중국에서 왕권이 확립된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후세에 내려오면서 일반에 보편화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미 신주가 보편화된 이후에 간행된 중국의 예서에 따라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시게 된 것으로 보인다.
『가례』에 따르면, 신주를 만들어 죽은 사람의 혼을 의탁시키기까지는 몇 단계를 거쳐 각각 다른 물체로 혼을 대신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첫번째 단계로 초혼(招魂)에 의하여 죽은 사람의 웃옷에 실려 시신에 의탁한다. 두번째 단계는 습(襲) 후에 혼백(魂帛)을 접어서 의탁시키며 동시에 명정(銘旌)을 세운다.
마지막 단계로 시신을 매장한 다음 신주를 만들며, 혼이 여기에 깃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혼백은 빈소에 모시다가 대상(大祥)이 지난 뒤 태워버리며, 신주는 그 4대손이 모두 죽을 때까지 사당에 모시고 지내다가 산소에 묻는다.
영역닫기영역열기재료 및 형태
신주는 주(周)나라 때의 예를 따라 단단한 밤나무를 사용하여 만든다. 신주는 치장(治葬) 때에 만들어다가 하관하여 매장한 다음에 제주(題主)를 하여 모신다. 신주는 주신(主身)과 받침대〔跗〕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주신은 앞쪽〔前身〕과 뒤쪽〔後身〕으로 나뉘는데, 합쳐서 이루어지며, 받침대에 끼우게 되어 있다.
주신은 주척(周尺:1척이 약 21㎝)으로 높이 1.2척(12개월을 상징함.), 너비 3촌, 두께 1.2촌으로서, 그 두께의 3분의 1이 전신, 3분의 2가 후신이 되도록 만든다. 후신의 위는 양옆을 5푼〔分〕 정도 깎아 둥글게 이마를 만들고, 이마의 1촌(寸) 아래에 두께의 3분의 1 정도를 깎아내어 턱이 지게 한다. 턱이 지게 깎아낸 다음, 그 속에 길이 6촌, 너비 1촌, 깊이 4푼 크기의 함중(陷中)을 파고 양옆에 구멍을 뚫어 함중과 통하게 한다.
전신은 후신의 턱 아래로 깎아낸 크기와 같도록 만들어, 후신에 끼우고 함께 받침대에 심어 끼우면 신주가 된다. 전신과 후신의 이마에는 분칠을 한다. 제주 때에 이 전신의 분면(粉面)에 아버지의 경우 ‘현고모관봉시부군신주(顯考某官封諡府君神主)’와 ‘효자모봉사(孝子某奉祀)’라는 방제(旁題)를 쓰고, 함중에 ‘고모관모공휘모자모신주 (故某官某公諱某字某神主)’라고 쓴다.
이 신주는 비단으로 만든 덮개〔韜〕및 깔개〔藉〕와 함께 흑칠을 한 독좌(櫝座)에 모시고 독개(櫝蓋)를 덮은 다음에 창독(窓櫝)에 넣어 사당의 감실(龕室)에 보관한다. 그리고 제사 가운데 차례와 기제 때에는 신주를 내어 모시고 제사를 올린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四禮便覽(李縡)

  • 家禮彙通(鄭煒)

  • 五先生禮說(鄭逑)

  • 家禮增解(李宜朝)

  • 禮疑類輯(朴聖源)

  • 家禮儀節(丘濬)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장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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