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이충무공 유허는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있는 현충사(顯忠祠)의 사역으로, 1967년 3월 18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 유적에는 정문인 충무문을 비롯하여 홍살문, 충의문, 본전, 고택, 연지(蓮池), 정려각,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등이 배치되었다.
이순신은 서울특별시 건천동(현재 중구 인현동 부근)에서 태어나 적어도 8세 이전에는 아산으로 옮겨와 무과에 급제하던 32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곳 방화산 기슭의 현충사 안에는 이순신이 벼슬길에 오른 뒤에도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던 종가가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종가의 앞뜰에는 우물과 수백 년 된 은행나무가 서 있는데, 평소 이순신이 무예를 닦던 활터라고 하며, 이곳 종가에 이순신의 친필로 쓴 『난중일기(亂中日記)』와 「장계」 등이 보존되어왔다.
북편의 현충사는 1704년(숙종 30)에 고장 유생들이 사당의 건립을 위한 상소를 올려 1706년(숙종 32) 조정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처음 세워졌는데, 이듬해인 1707년(숙종 33)에는 숙종이 친필액자를 하사하였다.
그 뒤 대원군 집정 때 철폐되었다가 1932년 이충무공유적보존회와 동아일보사가 중심이 되어 전국민의 성금을 모아 다시 세웠고, 광복 후에는 해마다 음력 4월 28일 이순신탄신제를 지내왔다.
1967년에 현충사의 정문인 충무문이 건립되었고 1932년에 본전의 정문인 충의문이 처음 건립되어 1968년에야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한때 박정희 대통령은 충의문을 ‘자앙문(自仰門)’으로 부르기도 했으나 현재의 액호(額號)로 바꾸었다.
이 밖에도 사역 안에는 충무공 이순신을 비롯하여 강민공 이완(李莞), 충숙공 이홍무(李弘茂), 충민공 이봉상(李鳳祥), 이제빈(李悌彬)의 정려각 및 복원한 생가, 활을 쏘며 무예를 연습하던 활터 등의 부대시설, 그리고 아들 이면의 무덤이 있다.
본래 현충사의 경역은 4,438.5㎡였던 것을 1962년 1만7803.5㎡로 넓혔고, 사당과 종가를 포함한 역내의 유적과 시설들은 1966년의 성역화사업으로 새로이 정비되기 시작하였다. 이순신이 살던 종가는 1973년에 완공되었다. 1967년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사역이 35만1704.1㎡로 늘어났고 1973년에는 71만4044.1㎡로 확장되었다.
한편 2011년 입구에 세운 충무공 이순신기념관은 사역 내부에 있던 유물전시관을 확장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