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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安山市)

인문지리행정지명

 경기도 남서부 해안가에 위치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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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경기도 남서부 해안가에 위치한 시.
영역닫기영역열기개관
동쪽은 군포시, 서쪽은 서해, 남쪽은 화성시와 의왕시, 북쪽은 시흥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6°28′∼126°56′, 북위 37°04′∼ 37°22′에 위치한다. 면적은 149.50㎢이고, 인구는 69만 7885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구, 25개 행정동(30개 법정동)이 있다. 시청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자연환경
북부와 북동부에는 200∼400m의 야산이 솟아 있고, 서북부와 남부는 낮은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에는 마산(痲山, 246m)·수리산(琇理山, 474m)이 시흥시와 경계를 이루고, 동남쪽에는 나봉산 같은 100m 내외의 구릉이 남북으로 지난다. 중앙에는 광덕산(光德山, 205m)·가사미산(可使美山, 142m) 등이 솟아 있다.
주요 하천은 안산천·신길천·화정천·구룡천·반월천 등의 소지류 천이 바다로 흘러든다. 이들 하천유역과 해안에는 평야가 발달하고 있는데, 하천수와 저수지 물은 관개용수 또는 생활용수로 이용된다. 특히 반월천과 안산천은 하구에 대단위 하천평야를 만들고 있다.
기후는 황해안에 면해 있어 내륙지방에 비해 겨울이 덜 춥고 여름이 시원하며 강수량이 많은 편이다. 연평균 기온은 11.4℃, 1월 평균기온은 -4℃, 8월 평균기온 26℃이며, 연 강수량은 1,439㎜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역사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적은 없지만, 인접한 화성시 지역에서 석영암제석기들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지역의 구석기 유적 존재 가능성은 크다. 특히 서해안 지역의 침하현상으로 대부분의 구석기 유적은 갯벌이나 바닷물 속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으로는 별망패총과 대부도의 패총 등이 있는데, 토기의 형식으로 볼 때 신석기시대 중·후반에 속하는 유적들이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야앙·월피·선부동에 고인돌이 있는데, 선부동의 고인돌은 북방식이다.
삼국시대에는 황해안의 요충인 남양만에 별망성을 쌓아 삼국 쟁패의 거점이 되기도 했으며, 당나라 사신이 상주했다고 한다. 고구려 때에는 장항구현(獐項九縣) 또는 고사야홀차(古斯也忽次 또는 左斯也忽次)였다가, 757년(경덕왕 16)에 장구군(獐九郡)으로 개칭되어 한주(漢州)에 속해 태수가 배치되었다.
940년(태조 23) 안산군(安山郡)으로 개칭되었고, 1018년(현종 9) 지방제도 개편 때 양광도남경유수(楊廣道南京留守)주 01) 소속 수주(水州)주 02)의 속현으로서 안산현이 되었다가, 1308년(충렬왕 34) 문종의 탄생지라 해 지군사(知郡事)로 승격되었다. 성종·목종·현종 때의 문신인 김은부(金殷傅)가 이곳 출신으로 안산군개국후(安山郡開國侯)에 추증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안산군은 읍격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당시 호구는 302호에 588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을 연성(蓮城)이라고도 했는데, 『안산군읍지』에 따르면 성종 때 좌찬성을 역임한 강희맹(姜希孟)이 1463년(세조 9)에 중추원부사로서 진헌부사(進獻副使)가 되어 중국의 난징(南京)에 다녀오는 길에 연꽃 씨를 가지고 와 이곳에 심은 뒤 널리 퍼지게 되어 별칭으로 연성이라 했다고 한다.
또 1797년(정조 21) 정조의 화산(華山) 능행(陵幸) 때 이곳의 형세를 읊은 시에 “지세(地勢)가 한데 서려 일 만 떨기의 연꽃같이 뭉쳤으니……”라는 구절이 있는데, 지금도 노인들 사이에서는 연성으로 불린다.
일동에는 숙종·영조 때의 실학자 이익(李瀷)이 학문과 후진양성에 힘썼던 유적과 유택이 있으며, 이곳에서 저술한 『사칠신편(四七新編)』·『관물편(觀物編)』·『백언해(百諺解)』·『해동악부(海東樂府)』·『성호사설(星湖僿說)』 등의 저서가 전해온다.
1895년에는 인천부 안산군이었다가 1896년 4등군으로서 경기도 안산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금천군(시흥)·과천군과 함께 통합되어 시흥군이 되었다.
부곡동에서 태어난 유익수(柳益秀)는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3월 30일 수암·군자·반월면 일대의 동지를 규합해 김봉문(金奉文)·김병권(金秉權)·윤동욱(尹東旭)·강경식(姜敬植)과 안산읍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만세시위운동을 벌이다가 일본경찰에게 붙잡혀 옥고를 치렀으며, 죽은 뒤인 1983년 8월 30일 건국공로포상을 받았다.
일제강점기에 농촌문맹퇴치의 산실로서 소설 『상록수』의 작품배경이 되었던 청석골은 이곳 천곡(泉谷, 샘골)마을이다. 지금도 본오동에는 당시 강습소로 사용되었던 천곡교회가 있고, 교회 옆 언덕에는 주인공 채영신의 모델이었던 최용신(崔容信)의 묘가 있다. 1974년 11월 30일 루씨고녀동문(樓氏高女同門)과 천곡교회에서 유달영(柳達永)이 지은 비문으로 최용신의 묘비를 세웠다.
1976년 12월 31일 이곳에 경기도 반월 도시개발지원사업소가 설치되었다가 1979년 8월 10일 반월지구출장소로 승격되었고, 관내에 반월·수암·군자 등 3개 지소를 두었다.
1986년 1월 1일 안산시로 승격했으며, 1994년 화성군 반월면 팔곡·건건·사사리 일원과 옹진군 대부면 일원이 편입됨에 따라 대부·반월동·대부출장소가 신설되었다. 1995년에는 이웃 시흥시의 수암·장상·장하동 일원과 화정동 일부가 편입됨에 따라 안산동을 신설하였다. 2002년 11월 1일 상록구와 단원구가 신설되어 2구 1출장소 25개 행정동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유물·유적
반월공업단지 개발에 앞서 1978년 문화재관리국이 조사한 반월동의 11세기경 폐고분에서 동전·숟가락·젓가락 등이 출토되었다. 월피동의 석영질규암으로 된 고인돌에서는 돌도끼 2점과 민무늬토기조각이 출토되었고, 양상동에 있는 13기의 고인돌군에서 민무늬토기·돌자귀·숫돌 등이 출토되었으며, 양상동과 월피동에 있는 적석토광묘에서 민무늬토기조각 8점이 출토되었다.
1978년 서울대학교박물관조사단이 발굴한 초지동 조개더미에서는 빗살무늬토기·화덕자리와 간돌도끼·골각기 등이 출토되었다.
고려시대 왕자의 태를 묻었던 지대석(地臺石)이 고잔동에서 발굴되었다. 1982년 경희대학교박물관조사단이 발굴한, 목내동에 있던 조선 문종의 비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의 폐릉지인 소릉(昭陵)에서는 난간석주(欄干石柱)·돌기둥·지대석·석양(石羊)·석물(石物) 등 28점이 출토되었다.
초지동에 별망성지(別望城址, 경기도 기념물 제73호)가 있고, 수암동에 안산읍성 및 관아지(경기도 기념물 제127호)가 있다. 신길동에는 조선시대에 궁중에 해산물을 공급했던 새뿔사옹원분원지[新角司甕院分院址]가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일동에 이익선생 묘(李瀷先生 墓, 경기도 기념물 제40호), 성곡동에 안탄대선생 묘(安坦大先生 墓, 경기도 기념물 제83호), 사사동에 한응인(韓應仁)영정 및 재실 유물 일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3호)과 한응인 묘역(경기도 기념물 제157호), 와동에 사세충렬문(四世忠烈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8호)가 있고, 대부동에는 홍효자정문·이찬자선비 등이 있다.
사찰로는 대부동에는 쌍계사(雙溪寺)가 있다.
건축물로는 화정동에 오정각(경기도 문화재자료 제7호)과 고송정지(탄옹고지)(경기도 기념물 제101호), 부곡동에 안산 청문당(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4호) 등이 있다.
보호수로는 반월동에는 팔곡리 향나무(경기도 기념물 제31호)가 있다.
무형문화재로는 발탈(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등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교육·문화
근대교육의 효시는 1906년 안산군 와리면에 이민선(李敏善)이 초지보통학교를 설립한 것이며, 1912년에는 안산공립보통학교가 세워졌다. 또한 1931년 최용신이 농촌계몽운동의 일환으로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기 위해 천곡교회에 야학당을 개설하였다. 그 뒤 1939년 사리간이학교(지금의 본오초등학교)가 문을 열었고, 대부분의 학교는 현대에 와서 세워졌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54개교, 중학교 29개교, 고등학교 24개교, 특수학교 2개교와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안산대학교, 신안산대학교, 서울예술대학교 등이 있다.
신생공업도시의 취약점인 문화공간의 확충을 위해 안산문화원이 1987년에 개원했고,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이 2004년에 개관하였다. 안산문화원은 향토문화유적의 보존은 물론 잿머리서낭제와 와동민속농악을 재현하고 별망성예술제·성호문화제를 개최하는 등 향토문화의 활성을 기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민속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연날리기·씨름·널뛰기·종경도놀이·꼭두각시놀이·윷놀이·실놀이·제기차기·장치기·갈퀴치기·낫치기·그네뛰기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꼭두각시놀이는 사당패의 인형극이 아니라 소녀들의 단순한 놀이를 말하는데, 여기서의 꼭두각시는 풀과 나뭇가지로 만든 장난감의 일종이다.
긴 풀잎을 한데 모아 손바닥으로 꼭꼭 비벼 나뭇가지에 빙 둘러 붙인 다음, 위쪽에 실을 매 그것을 거꾸로 뒤집어 놓으면 긴 머리를 늘어뜨린 인형 모양이 된다. 꼭두각시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지만 대개 가지고 놀기에 좋을 만큼 손바닥 길이만한 것이 보통이다.
『동국세시기』에 “소녀들이 풀을 뜯어, 나뭇가지에 머리카락처럼 땋아서 분홍치마를 입히고 각시라 부른다.”라는 기록이 있어, 이 놀이가 예로부터 소녀들의 보편적인 놀이였음을 알 수 있다.
낫치기는 ‘낫거리’라고도 하는데, 나무를 하는 청년들이 주로 하던 놀이이다. 나무를 한 다발 해서 열 발짝쯤 되는 거리에 세워 놓고, 낫을 던져 제대로 꽂히면 이기게 되어 상대의 나무까지 소유하고, 꽂히지 않고 땅에 떨어지면 지게 된다.
성곡동잿머리[城頭] 뒷산에 서낭당이 있어 잿머리성황제를 거행하였다. 이 성황제는 비교적 유래가 깊어 고려 성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내부시랑이었던 서희(徐熙)가 송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잿머리 해안에서 배를 타게 되었다. 그때 별안간 폭풍우가 몰아쳐 일행은 바다가 잔잔해지기를 기원하는 제를 지내고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서희가 잠시 잠이 들었을 때였다.
꿈에 소복한 여인 둘이 나타나 자신들은 억울하게 죽은 신라 경순왕의 비 홍씨와 그녀의 어머니 안씨의 혼령이라고 신분을 밝힌 뒤, 자신들이 거처할 곳을 마련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놀라서 잠이 깬 서희는 그곳에 아담한 당(堂)을 짓고 꿈에 본 모습대로 영정을 모시게 한 다음 위령제를 지냈다. 이때부터 이 성황제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매년 음력 10월 초순에 거행되었는데 제물로는 떡 한 시루, 돼지머리, 북어 3마리, 약주 3잔, 정화수 한 양푼을 진설한다. 이 성황제에는 마을주민은 물론 인근 마을 주민들까지 참여해 이 지방의 전래행사를 형성해왔다. 그러나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1986년 안산시의 시 승격을 축하하기 위해 ‘안산성황제’로 재현되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설화·민요
이 고장에는 「현덕왕후의 신벌」과 같은 인물전설을 비롯해 지명전설 등 많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현덕왕후는 조선 제5대 문종의 왕후이자 단종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단종을 낳자마자 죽어 안산 목내동에 묻혔고, 능 이름을 소릉이라 하였다.
얼마 후 세조가 단종을 없애자 꿈속에 현덕왕후가 나타나 세조를 꾸짖으며 “나도 너의 자식을 살려두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그날 밤 세조는 동궁을 잃었는데 동궁의 나이 겨우 20세였고, 다음 세자인 예종 또한 즉위 1년 만에 죽고 말았다.
노한 세조는 소릉을 파헤치고자 사람을 보냈지만 능에서 여인의 곡성이 울려 나오는 바람에 모두가 가까이 가기를 꺼려하였다. 세조가 개의치 말고 관을 꺼내라고 엄명을 내려 사람들은 마지못해 봉분을 파헤치고 관을 들어올리려 했지만, 고약한 냄새가 풍겨 나오고 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할 수 없이 도끼를 들고 관을 쪼개려 하자 관이 벌떡 일어서서 나오는 것이었다. 세조는 관을 불살라 버리려고 했으나 별안간 소나기가 퍼부어 결국 바닷물에 집어던지고 말았다. 던져진 관은 소릉 옆 바닷가에 떠밀려 닿았는데, 그 뒤 그 자리에 우물이 생겨 ‘관우물’이라 불리게 되었다.
관은 다시 물에 밀려 며칠을 표류하다가 양화나루에 닿았고, 한 농부가 이를 발견해 밤중에 몰래 건져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그날 밤 농부의 꿈에 현덕왕후가 나타나 앞일을 일러주어 농부는 가세가 점점 번창하게 되었다.
그 뒤 50년이 지나 조광조(趙光祖)의 상소로 능을 복구하게 되어 관의 행방을 찾았으나 농부는 겁을 집어먹고 이를 계속 숨겼다. 그러자 다시 농부의 꿈에 현덕왕후가 나타나 걱정 말고 관가에 알리라고 해 농부가 이튿날 관에 신고했더니 나라에서 많은 상금을 내렸다. 그리하여 관은 마침내 동구릉의 문종릉 동편에 모셔지게 되었다.
원래 왕릉과 현덕왕후릉 사이에는 우거진 소나무가 있었는데, 왕후의 능을 모신 뒤 그 나무가 저절로 말라버려 서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 밖에 「별망산전설」·「실골 지관이야기」·「광덕산 부채보살이야기」·「서낭굿유래」·「노적봉」·「왜두들기마을」 등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이 고장에서 구비 전승되고 있는 민요는 노동요를 비롯해 의식요·여요(輿謠)·신앙요·일반요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배치기노래」와 「방아소리」가 일반에 널리 불려 왔다. 황해와 접하고 있는 지리적인 여건으로 인해 능길·둔배미포구·성머리포구가 있어 이곳 주민들은 농업 이외에 어업에도 종사해왔다.
이 때문에 계절에 따라 성어기가 되면 마을사람들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떠나고, 배가 떠날 때는 만선을 기원하는 「배치기노래」를 부른다. 한편,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떠난 뒤 농사일을 도맡아 했던 아낙네나 마을사람들은 농요인 「방아소리」로 농사일을 하면서 한데 어울려 대동축제를 벌였다.
「배치기노래」의 경우 메기는 소리는 경기굿거리 4장단이고, 후렴은 경기굿거리 6장단으로 받으며, 꽹과리·징·북·호적으로 반주한다. 농요는 느린소리는 거의 장단 없이 「양산도」 후렴을 쓰고 빠르게는 경기굿거리 4박으로 맺는데, 특이한 점은 「양산도」와 「방아타령」으로 후렴을 받는다는 점이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메기는 소리는 “봉죽을 받았다/ 봉죽을 받어/ 도당할아버지한테/ 봉죽을 받어/ 도당 신령님/ 귀히보셔/ 우리배에다/ 도장원 주신다/ 안산바다에/ 널린고기를/ 양주(암수)만 남기고/ 다잡아 올리자”이고, 받는 소리는 “에헤 에헤 어하요”라고 한다.
배를 저어 나가는 소리로 메기는 소리는 “어기야 디여차 어이기야/ 빨리저어라 어야디야/ 손길맞춰 빨리저어/ 저배보다 먼저가세/ 안산바다에 널린고기/ 우리배 선인들 다잡아보세”이고, 받는 소리는 “어야디여차/ 어기야디야/ 어이어기야/ 에이야 허어두루나/ 배가 들어올 땐 본당 성황님 귀히모셔/ 우리 구지에 오색꽃 피었다/ 배쥔네 아줌마 정성덕에/ 일대등 만대등 도장원했구나/ 봉죽을 질렀다 봉죽을 질러/ 이물 고물에 쌍봉죽 질렀다/ 우리배는 고기풍년/ 들판엔 오곡풍년/ 안산천지에 돈풍년들었다”라고 한다.
「방아소리」는 어깨에다 우장을 메고 우장에다 호미를 걸고 농기를 들고 농악을 치며, “우리 모두 논매러가세/ 여보시게 농군님네들 이내말씀 잘들어보소/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니 농사밖에 또있으랴/ 농사를 잘지어야 태평성대를 맞을 것이다/ 앞산에는 꾀꼬리울고 뒷산에는 뻐꾸기우니/ 풍년이로다 풍년이로다 안산들녘엔 풍년이로다”라고 노래한다. 이 노래들은 서해안지방 중 안산시에서만 유일하게 간직되어 전해 내려왔다는 데에 특성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산업·교통
전 토지의 36.1%가 산지이고 경지는 16.1%이다. 경지 중 논이 1,230㏊, 밭이 1,181㏊인데 경지가 많은 지역은 대부·반월·원곡동 등이다. 저수지로는 고잔저수지·화랑저수지·반월저수지가 있어 관개용수를 제공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 이외에 소채류로 배추·무·고추·파·마늘·수박·참외·오이·호박, 과실류로 포도·복숭아 등이 생산된다.
농업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0.88%, 제조업 인구는 13.0%이다. 공업은 조립금속·섬유·화학·비금속·식료품·종이·인쇄공업 등이 발달하고 있다. 서울시의 공해 공장을 이전하기 위해 1979년 반월공단이 가동되기 시작한 이후 이곳에는 염색·금속·섬유·종이 등 1,000여 개 이상의 공해 공장이 입지하게 되었다.
철도를 중심으로 공장지역 북쪽은 주거지로 계획된 이 도시는 여러 가지 산업시설, 레저시설, 연구기관, 대학교, 대학병원 등이 입지하고 있다. 상업시설로는 쇼핑센터·연쇄점·백화점 등이 입지하고 상설시장은 40여 개가 있다.
안산은 공장지와 주거지 모두 도로가 바둑판 모양으로 잘 짜여져 있고 서울·수원 등 대도시와도 연계가 잘 되어 있다. 도로는 서울외곽순환도로, 서해안고속도로와 국도 39호선이 동서로 지나 성포동에서 국도 42호선과 만나고, 북에서 남진한 국도 42호선은 성포동에서 국도 39호선과 합류해 동진하며, 국도 47호선은 반월동에서 국도 39호선과 분기해 북진한다.
국도 39호선과 국도 42호선은 확장되어 수인산업도로가 되었고, 국도 47호선은 서울~안산 간의 4차선 고속화도로가 되었다. 1988년에 경부선 금정역에서 안산까지의 안산선이 개통되었고, 협궤철도인 수인선이 지나다가 1994년에 철거되었다. 전철의 안산선 개통으로 서울~안산 간의 교통 혼잡이 크게 완화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관광
우리나라 도시 가운데 녹지율이 가장 높은 이 시는 지역 내에 녹지공원이 많이 조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성호 이익선생 묘를 중심으로 한 성호공원, 미국의 자매도시를 상징하는 라스베가스공원과 예술인공원·성포공원·다이아몬드광장공원·호수공원 등이 시민과 관광객의 휴식처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유원지인 화랑저수지 주변에는 자동차전용극장과 여러 위락시설들이 마련되어 있다.
에어쇼를 개최할 때 설치된 경비행기 비행장도 관광명소의 하나이다. 시화방조제 조성으로 육지와 닿게 된 대부도·선감도 등의 해안은 낚시와 드라이브 코스로 좋은 곳이다. 또한 천곡마을(샘골)은 문맹퇴치의 계몽소설로 알려진 『상록수』의 무대가 있어 유명해졌다. 지금도 이곳에는 천곡교회가 있고, 그 옆 언덕에는 채영신의 모델 최용신의 묘가 있다.
또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폐릉지 소릉이 있는데 난간석주와 석물들만 남아 있다. 그 외의 관광명소로 부곡동에는 제일컨트리클럽이 있다.
해안가에 위치한 소래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사거포구(밀물 때만 어선이 드나듦)와 젓갈시장이 있어, 김장철이면 관광객들로 파시를 이룬다.
영역닫기영역열기구(區)
1. 상록구(常綠區)
시의 동부에 위치한 구. 면적 57.99㎢, 인구 37만 9517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사동이다.
본래 인천과 시흥군 지역이었으며, 1986년 안산시로 승격되면서 편입된 후, 2002년 11월 1일 상록구와 단원구가 생기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상록이라는 명칭은 일제강점기에 농촌문맹퇴치의 산실로서 소설 『상록수』의 작품 배경이 되었던 청석골, 즉 천곡(泉谷, 샘골)마을이 있기 때문에 비롯되었다. 지금도 본오동에는 당시 강습소로 사용되었던 천곡교회가 있고, 교회 옆 언덕에는 주인공 채영신의 모델이었던 최용신(崔容信)의 묘가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일동에 이익선생 묘, 사사동에 한응인 묘역, 팔곡동에 팔곡리 향나무 등이 있다.
일(一)·이(二)·사(四)·본오(本五)·부곡(釜谷)·월피(月陂)·양상(楊上)·성포(聲浦)·사사(沙士)·건건(乾乾)·팔곡(八谷)1·팔곡2·수암(秀巖)·장상(獐上)·장하(獐下) 등 15개 동이 있다.
2. 단원구(檀園區)
시의 서부에 위치한 구. 면적 91.51㎢, 인구 31만 8368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초지동이다.
본래 인천과 시흥군 지역이었으며, 1986년 안산시로 승격되면서 편입된 후, 2002년 11월 1일 상록구와 단원구가 생기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단원이라는 명칭은 안산에서 출생하여 그림수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단원 김홍도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단원은 이 시의 대표적 인물이며 매년 10월 전국규모의 단원미술제가 개최되고 있고 해당구역에 단원각이 존재하여 중요행사시 시민 모두가 모여 타종을 하는 등 역사성과 상징성이 커 단원이라는 구 명칭이 비롯된 것이다.
안산의 하와이로 불리는 대부도는 시화방조제를 통해 가까워진 관광휴양지이다. 특히 시화방조제로 연결이 되어 육지가 된 섬이지만 아직도 섬이 가진 낭만과 서정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대부도 가는 길목은 섬과 섬을 잇는 색다른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으며, 대부도 갯벌에서 맛조개, 동종 등을 직접 잡을 수 있고, 그 이외에도 고동, 조개 등을 손쉽게 잡을 수 있으며, 망둥이, 넙치, 우럭, 놀래미 등을 바다낚시로 즐길 수 있다. 이밖에 선감동 누에섬 등대전망대와 초지동 화랑유원지 등이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성곡동에 안탄대선생 묘, 와동에 사세충렬문, 대부동에 쌍계사 등이 있다.
와(瓦)·고잔(古棧)·원곡(元谷)·신길(新吉)·초지(草芝)·원시(元時)·목내(木內)·성곡(城谷)·선부(仙府)·화정(花井)·대부동(大阜東)·대부남(大阜南)·대부북(大阜北)·선감(仙甘)·풍도(豊島) 등 15개 동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楊州
주02
水原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강대욱|이도남
개정 (2009년)
이도남(건국대학교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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