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민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 「취수선생진영」을 저술한 경주의 문인.
이칭
순지(淳之)
기암거사(棄菴居士), 수거사(睡居士), 안처사(安處士)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작품
「취수선생진영」
관련 사건
무신 정변
내용 요약

안치민은 고려 후기 「취수선생진영」을 저술한 경주의 문인이다. 뛰어난 문장가이며, 글씨와 그림에도 조예가 있었다. 문학에 있어 뜻을 중요시하면서 풍자·권선·교화의 기능을 가진 문장, 즉 시대와 사회의 교화에 도움이 되고, 도(道)를 실현할 수 있는 시문을 써야 한다는 고문 정신(古文情神)을 구현하였다. 무신 정권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경주에서 처사로서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도, 당시의 정치적 환경에 몸담고 있는 중앙 지식인과 깊은 교분을 이어 갔던 인물이다.

정의
고려 후기, 「취수선생진영」을 저술한 경주의 문인.
가계 및 인적사항

경상도 경주(慶州) 안강(安康) 출신으로, 자(字)는 순지(淳之), 호는 기암거사(棄菴居士) · 수거사(睡居士) · 안처사(安處士)이다.

주요 활동

뛰어난 문장가이며, 글씨와 그림에도 조예가 있었다. 문학에 있어 뜻을 중요시하면서 인륜 대도(人倫大道)를 표현하며 풍자 · 주1 · 주2의 기능을 가진 문장, 즉 시대와 사회의 교화에 도움이 되고, 도(道)를 실현할 수 있는 시문을 써야 한다는 고문 정신(古文情神)을 구현하였다.

또한 시와 그림을 하나로 보는 시화일치론(詩畵一致論)에 입각하여, ‘심지수응(心指手應, 마음이 가리키는 대로 손이 따름)’ · ‘수위심사(手爲心使, 손이 마음의 심부름꾼이 됨)’의 바탕 위에서 시대와 사회의 교화에 도움이 되고 도를 실현할 수 있는 의식적인 그림을 그리고자 하였다. 그랬기 때문에 안치민은 무신정권(武臣政權) 아래에서 정치적 도구로 전락한 문풍과 고문의 형식적 모방에 급급한 문풍을 일삼는 문인들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할 수 있었다.

특히 「취수선생진영(醉睡先生眞影)」을 통해 ‘도가 있어도 행하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당시의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는 당시 문신들이 무신정권에 예속되어 정책의 잘못됨을 알아도 한마디 주4조차 못하는 모습을 비판함과 동시에, 문신들을 그러한 상태로 몰고 가는 무신 정권에 대한 비판이었다.

‘도행일치(道行一致)’를 주장한 안치민은 때로는 주5들에게 주6을 묻고, 주7과 문자를 주16, 주9 베는 농부나 천한 종일지라도 진실로 그 말이 도에 맞으면 버리지 않는다는 적극적 태도를 취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기존 권력 체계에 대한 철저한 비판으로 나타났으며, 안치민의 지적 성숙성과 도덕적 용기가 전제되었기에 가능하였다.

안치민은 세상을 등진 채 현실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주10가 아니라, 개경(開京: 개성)과 경주 등을 넘나들면서 도의 실현과 시대 · 사회의 교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이세장(李世長)에게 그려준 대나무 그림에서는, 주11에서 내려가 죽순을 볼 것을 권하였다. 이는 당시 관리들에게 최씨 정권(崔氏政權)에 맹목적으로 추종 · 굴종하지 말고, 누 아래 내려가 백성들의 고통을 살펴 그들의 편에 선 정사를 펼칠 것을 염원한 것이었다.

안치민은 이리저리 흩어져 떠돌아 다니는 백성과 정권에 저항하는 백성을 안정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사회를 안정화함으로써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이루는 시대를 소망하였다. 이 점은 당시 농민 항쟁을 주도하고 있었던 여러 세력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안치민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무신 정권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경주에서 처사로서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도, 당시의 정치적 환경에 몸담고 있는 이규보(李奎報) 등 중앙 지식인과 깊은 교분을 이어갔다.

그러나 안치민이 살고 있었던 경주를 중심으로 일어난 신라 부흥 운동(新羅復興運動)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강력한 왕권 강화를 통한 백성들의 주13를 바랐던 안치민으로서는 고려 왕조 자체를 부정하는 신라 부흥 운동은 결코 도에 합치되는 것이 아니었다. 안치민의 염원인 시대와 사회의 교화 및 도의 실현은 위로부터 아래로 퍼져 내려가는 것이지 결코 아래로부터 무력에 의해 쟁취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참고문헌

원전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보한집(補閑集)』

단행본

김호동, 『고려 무신정권시대 문인지식층의 현실대응』(경인문화사, 2003)

논문

김호동, 「고려 무인정권시대 문인지식인 안치민의 현실인식」(『교남사학』 5, 영남대학교 국사학회, 1990)
주석
주1

착한 일을 하도록 권장함. 우리말샘

주2

가르치고 이끌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함. 우리말샘

주4

웃어른이나 임금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하는 말. 우리말샘

주5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남자 승려. 우리말샘

주6

삼장(三藏) 가운데 경장과 논장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7

홀을 큰 띠에 꽂는다는 뜻으로, 모든 벼슬아치를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9

말이나 소에게 먹이는 풀. 우리말샘

주10

예전에,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초야에 묻혀 살던 선비. 우리말샘

주11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이 지은 집. 우리말샘

주13

어진 임금이 잘 다스리어 태평한 세상이나 시대. 우리말샘

주16

여럿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며 다투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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