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는 조선후기 실학자 박지원이 청나라에 다녀온 후에 작성한 견문록이다. 총 26권 10책이며 필사본이다. 1780년(정조 4)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연을 축하하기 위해 사행하는 삼종형 박명원을 따라 연경과 황제의 피서지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와 작성했다. 청조 치하의 북중국과 남만주 일대를 견문하고 그곳 문인·명사들과의 교유 및 문물제도를 접한 결과를 소상하게 기록한 연행일기로, 북학에 대한 주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박지원의 기묘한 문장력으로 여러 방면에 걸쳐 당시의 사회문제를 신랄하게 풍자하여 조선후기 문학과 사상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힌다.
26권 10책. 필사본. 간본(刊本)으로는 1901년 김택영(金澤榮)이 『연암집(燕巖集)』 원집에 이어 간행한 동 속집 권1 · 2(고활자본)에 들어 있고, 1911년 광문회(光文會)에서 A5판 286면의 활판본으로 간행하였다. 1932년 박영철(朴榮喆)이 간행한 신활자본 『연암집』 별집 권11∼15에도 전편이 수록되어 있다. 보유편도 있고 1956년 대만의 대만대학(臺灣大學)에서 동 대학 소장본을 영인한 것도 있다. 1780년(정조 4) 저자가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연(七旬宴)을 축하하기 위하여 사행하는 삼종형 박명원(朴明源)을 수행하여 청나라 고종의 피서지인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청조치하의 북중국과 남만주일대를 견문하고 그 곳 문인 · 명사들과의 교유 및 문물제도를 접한 결과를 소상하게 기록한 연행일기이다.
각 권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도강록」은 압록강으로부터 랴오양(遼陽)에 이르는 15일간의 기록으로 성제(城制)와 벽돌 사용 등의 이용후생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잡지」는 십리하(十里河)에서 소흑산(小黑山)에 이르는 5일간에 겪은 일을 필담(筆談) 중심으로 엮고 있다. 「일신수필」은 신광녕(新廣寧)으로부터 산하이관(山海關)에 이르는 병참지(兵站地)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관내정사」는 산하이관에서 연경(燕京)에 이르는 기록이다. 특히 백이(伯夷) · 숙제(叔齊)에 대한 이야기와 「호질(虎叱)」이 실려 있는 것이 특색이다.
「막북행정록」은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는 5일간의 기록이다. 「태학유관록」은 열하의 태학(太學)에서 머무르며 중국학자들과 지전설(地轉說)에 관하여 토론한 내용이 들어 있다. 「구외이문」은 고북구(古北口) 밖에서 들은 60여 종의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환연도중록」은 열하에서 연경으로 다시 돌아오는 6일간의 기록으로 교통제도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금료소초」는 의술(醫術)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옥갑야화」는 역관들의 신용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허생(許生)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다. 뒷날에 이 이야기를 「허생전」이라 하여 독립적인 작품으로 거론하였다.
「황도기략」은 황성(皇城)의 문물 · 제도 약 38종을 기록한 것이다. 「알성퇴술」은 순천부학(順天府學)에서 조선관(朝鮮館)에 이르는 동안의 견문을 기록하고 있다. 「앙엽기」는 홍인사(弘仁寺)에서 이마두총(利瑪竇塚)에 이르는 주요명소 20군데를 기술한 것이다. 「경개록」은 열하의 태학에서 6일간 있으면서 중국학자와 대화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황교문답」은 당시 세계정세를 논하면서 각 종족과 종교에 대하여 소견을 밝혀놓은 기록이다. 「행재잡록」은 당시 청나라 고종의 행재소(行在所)에서 견문한 바를 적은 것이다. 그 중 청나라가 조선에 대하여 취한 정책을 부분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반선시말」은 청나라 고종이 반선(班禪)에게 취한 정책을 논한 글이다. 「희본명목」은 다른 본에서는 「산장잡기」 끝부분에 있는 것으로 청나라 고종의 만수절(萬壽節)에 행하는 연극놀이의 대본과 종류를 기록한 것이다. 「찰십륜포」는 열하에서 본 반선에 대한 기록이다. 「망양록」과 「심세편」은 각각 중국학자와의 음악에 대한 토론내용과 조선의 오망(五妄), 중국의 삼난(三難)에 대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곡정필담」은 주로 천문에 대한 기록이다. 「동란섭필」은 가악(歌樂)에 대한 잡록이며, 「산장잡기」는 열하산장에서의 견문을 적은 것이다. 「환희기」와 「피서록」은 각각 중국 요술과 열하산장에서 주로 시문비평을 가한 것이 주요내용이다.
『열하일기』는 박제가(朴齊家)의 『북학의(北學議)』와 함께 “한 솜씨에서 나온 것 같다(如出一手).”고 한 평을 들었다. 주로 북학을 주장하는 내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고, 당시에 정조로부터 이 책의 문체가 순정(醇正)하지 못하다는 평을 듣기도 하였으나 많은 지식층에게 회자된 듯하다.
종래의 연행록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열하일기』는 박지원의 기묘한 문장력으로 여러 방면에 걸쳐 당시의 사회문제를 신랄하게 풍자한 조선 후기 문학과 사상을 대표하는 걸작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