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군 ()

대동여지도 중 경상북도 영덕, 청송 부분
대동여지도 중 경상북도 영덕, 청송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경상북도 동해안의 중앙에 위치한 군.
정의
경상북도 동해안의 중앙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동해, 서쪽은 영양군과 청송군, 남쪽은 포항시, 북쪽은 울진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9°09′∼129°27′, 북위 36°15′∼36°40′에 위치한다. 면적은 741.10㎢이고, 인구는 3만 9199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8개 면, 204개 행정리(118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남석리에 있다.

자연환경

태백산맥의 동사면에 위치해 동쪽으로 갈수록 점차 낮아져 동해에 이른다.

북동쪽에는 태백산맥의 분수령인 칠보산(七寶山, 810m)·등운산(騰雲山, 767m) 등이 솟아 있고, 곳곳에 봉우리를 남기며 동해에 다다른다.

북서쪽 영양군과의 경계에 독경산(讀經山, 564m)·독경산(獨慶山, 683m)·울치재(泣嶺, 527m)·맹동산(808m)·명동산(明童山, 812m)이 있다. 남서쪽 청송군과의 경계에 대둔산(大遯山, 905m)·벽구등(846m)·대궐령(大闕嶺, 740m)이 있다. 중앙부에는 형제봉(兄弟峰, 704m)·국사당산(國祠堂山, 511m)·화림산(花林山, 347m) 등이 솟아 있다.

이 밖에도 망월봉(望月峰, 230m)·망일봉(望日峰, 152m)·봉화산(278m)·별학산(別鶴山, 236m)·중구봉·무둔산(蕪芚山, 208m)·관어대(觀魚臺, 183m)·면현(眠峴, 115m)·목골재(일명 송현) 등이 있다.

하천은 태백산맥이 남북으로 가로질러 큰 것은 없고, 동해로 직류(直流)하는 독립수계(獨立水系)로서 서부산지에서 발원해 동해로 흘러드는 송천(松川)과 오십천(五十川)이 있으며, 이 하천이 영덕과 영해(寧海)를 형성하고 있고 그 외는 대부분이 소하천들이다.

송천은 창수면 울치재에서 발원해 작연(鵲淵)에서 울릉천(蔚陵川)을 합한다. 송천은 다시 영해면 원구리용당(龍塘) 앞에서 남천(南川)을 합해 대진해수욕장에서 동해로 흘러든다. 연안에는 소규모의 충적지가 발달해 경지로 이용되고, 하구에는 해안사구가 발달되어 있다.

대둔산에서 발원해 지품면을 동류하다가 신안리에서 신안천을 합류한 뒤 동남류해 지품면 산양리 부근에서, 대둔산에서 흘러내려 달산면을 북류하는 대서천(大西川)과 팔각산(580m)에서 흘러내려 달산면을 북류하는 소서천(小西川)을 합류하고 영덕읍·강구면을 관통해 동해로 흘러든다.

이들 하천의 하류에는 각각 영해평야와 영덕평야·금호평야가 형성되어 경지와 취락이 집중해 있다. 이 지방 하천들의 특색은 유역(流域)이 짧고 격류(激流)이며 홍수 때에는 범람하고 가뭄이 심할 때에는 건천(乾川)이 되기도 한다.

해안선은 53㎞로 단조로우며 암애(岩崖)가 많아 해안경지가 거의 없고, 하구부에 사구가 발달되어 해수욕장이 개발되어 있다. 바다는 수심이 깊고 급경사이다.

기후는 대체로 온난해 연평균기온 12.7℃, 1월 평균기온 -0.4℃, 8월 평균기온 27.1℃이며, 연강수량은 1,016㎜이다.

역사

구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은 발견된 바 없으나 청동기시대의 지석묘와 석관묘가 병곡면 사천(沙川) 등지에서 발견되었다. 따라서 영덕·영해 지방에 일찍부터 성읍국가의 형태를 취했던 소국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삼한시대 오십천 상류에 자리를 잡아 취락형태를 이루면서 점차 그 하류로 옮겨왔던 야시홀(也尸忽)이 신라의 야성(野城)을 거쳐 현재의 영덕으로 발전해 왔다. 동해안을 장악하고 있던 예(濊)의 세력 하에 놓여 있다가 신흥세력이 일어날 때 고구려와 신라의 각축장이 되었고 결국 신라에 병합되었다.

영해는 태백산맥을 따라 동해로 내려오다가 해안 평야를 보고 자리를 잡아 우시국(于尸國)이라는 소국을 이루었는데, 그곳이 지금의 병곡이라 전한다. 위치상 이곳은 예의 세력권 하에서 진한 소국과는 접촉이 거의 없다가 신라의 북상에 따라 신라의 영역에 들어갔다.

757년(경덕왕 16) 우시국은 유린군(有隣郡)이 되고 야시홀은 야성군이 되어 위로 명주(지금의 강릉)의 관할을 받고 치하에 야성군은 진안현과 적선현을, 유린군은 해아현을 영현으로 각각 거느렸다. 930년(경순왕 4)에 유린과 야성 등 연해 군현이 신라가 멸망하기 5년 전에 고려에 귀부하게 되었다.

940년(태조 23) 전국의 군명을 개정할 때 야성은 영덕, 유린은 예주(禮州)로 바뀌었다. 이들 지역은 왜구의 침입이 잦은 곳으로 1018년(현종 9) 예주에 방어사(防禦使)를 두고 우산도 주민들 호적을 이곳에 편성한 바 있다.

예주는 농산물과 해산물이 풍부해 동해안의 웅부로 발전한데 비해 영덕은 군에서 현으로 격하되어 지방 소읍으로 존재하였다. 1258년(고종 45) 예주는 영해 출신 박송비(朴松庇)의 공로를 포상해 덕원소도호부(德原小都護府)로 승격되었다. 뒤에 다시 예주목으로 되었고 1310년(충선왕 2) 영해부로 고쳤다.

이 때부터 영해 박씨의 족세가 성해 중앙관료로 많이 진출하는 한편, 이곡(李穀)·이색·권근(權近) 등 명현들이 한 때 우거 또는 적거(謫居)함으로써 인재가 배출되었다. 고려 말기에 격심한 왜구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영해읍성과 축산성(丑山城)을 축조하였다.

1397년(태조 6)에 영해는 병마절제사를 겸한 부사가 있는 진(鎭)이 되었다. 1413년(태종 13)에는 도호부가 되어 1415년에 감무에서 현령으로 승격된 영덕을 거느린 채 동해안을 침범하는 왜적을 막는 중추 구실을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영해도호부의 본부는 호수 215호, 인구 1,538인, 영덕현은 호수 286호, 인구 1,110인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연해 지방이면서도 왜적의 피해가 적었고 영해인 박의장(朴毅長)은 경주성 탈환에 전공을 세웠다. 조선 전기에 영양·청기의 두 속현을 거느린 영해부는 북으로 강릉·삼척·울진 지방, 남으로 영일·경주 지방, 서쪽으로 청송·안동 지방과 연결되어 그곳 사족(士族)들과 왕래·교섭이 잦았다. 또한 서로 인척관계를 맺어 고기·소금과 같은 해산물을 내륙의 안동권에 공급해 주었다.

영덕현은 해읍 벽현(壁縣)으로 토착양반이 적은데 비해 영해 지방은 도처에 사족의 동족마을이 형성되어 ‘소안동(小安東)’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1675년(숙종 1) 속현 영양(英陽)이 분리, 독립함에 따라 약간의 영역 축소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 때 영덕현과 영해부가 다같이 군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에 영해군이 영덕군에 폐합되었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해 동해안의 군사·행정의 중심지였던 영해가 영덕군에 포함되어 한낱 면에 머무르게 된 것은 일제가 영해 지방의 투철한 항일의식을 꺾으려 했기 때문이다.

천민 출신인 한말의 의병장 신돌석(申乭石)을 중심으로 격렬한 항일운동이 전개되었고, 1919년 3·1운동 때에는 영해 지방에서 사흘 동안 시위를 벌였다. 양반 출신의 의병장들이 제대로 싸움다운 싸움을 하지 못한 데에 비해 신돌석 부대는 울진에서 일본군선 9척을 침몰시킨 것을 비롯해 험한 지세와 민중의 호응에 힘입어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1950년 6·25전쟁으로 혹심한 피해를 입었으나 전후 복구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동해안 관통도로의 개설로 해산물과 농산물의 수송이 활발해짐에 따라 많은 지역개발이 이루어졌다. 1963년 8월 23일 축산면 축산출장소가, 1974년 7월 10일 지품면 원전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79년 5월 1일 영덕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2월 15일영일군 죽장면 하옥리 일부가 달산면에 편입되었으며, 1988년 5월 1일 동을 이(里)로 개칭하였다. 1989년지품면 오천리 일부를 분리해 신애리를 신설하고, 1990년 1월 3일강구면 하직리를 원직리로, 병곡면 휘리를 덕천리로 개칭하였다. 1990년 6월 29일축산면 화천리가 영덕읍 화천리로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졌다. 1995년 12월 29일영덕읍 덕곡리가 덕곡 1리, 2리로 분리되고, 영해면 성내 1리가 성내 1리, 5리로 분리되었다.

유물·유적

선사유적으로 병곡면에 석관묘, 영덕읍 화수리에 세형동검이 출토된 고인돌이 있으며, 창수면에서는 간돌칼·간돌화살촉 등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고대의 성곽으로는 영덕읍의 오보리성터(일명 烏保鎭城址), 달산면의 주응리성터(일명 達老山城址), 축산면의 축산리성터 등이 있다.

봉수로는 영덕읍 창포리의 별반산봉수대(別畔山烽燧臺)와 축산면 도곡리의 영덕대소산봉수대(경상북도 기념물, 1982년 지정)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병곡면 금곡리의 유금사삼층석탑(보물, 1980년 지정), 창수면 갈천리의 장육사 대웅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영덕장륙사건칠보살좌상(보물, 1989년 지정)과 보림리탑(寶林里塔), 남정면 남호리의 이층석탑 및 석불좌상 등이 있다.

이 밖에 사찰로는 옥천사(玉泉寺)·용천사(龍泉寺)·용운사(龍雲寺)·범흥사(梵興寺)·사자갑사(獅子岬寺)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영덕읍 화개리에 영덕향교, 영해면 성내리에 1529년(중종 24) 이건된 영해향교(寧海鄕校)가 있다. 누대와 정자로는 1693년(숙종 19)에 건립되어 현재도 원형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는 창수면 갈천리의 화수루(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75년 지정)와 수리의 덕후루(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7년 지정)가 있다.

또한, 창수면 수리에는 조선 중기의 무관이며 임진왜란 때 전공을 올린 박의장 묘소가 있다. 그리고 석비로는 신돌석유허비·박겸호기념비와 이곡·이색부자유허비 등이 있다.

영해면 원구리에는 임진왜란 때 활약한 남경생(南慶生)의 관련 유물인 영해난고종가문서(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영해난고종가정침(경상북도 민속자료, 1982년 지정)과 난고정(蘭皐亭)이 있다.

한편 고가로는 창수면 인량리에 영덕충효당(중요민속자료, 1984년 지정)·인양리용암종택(경상북도 민속자료, 1985년 지정)·갈암종택(경상북도 기념물, 1991년 지정)·우계종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 축산면 도곡리에 무안박씨무의공파종택(경상북도 민속자료, 1987년 지정)·영덕도곡동충효당(경상북도 민속자료, 1988년 지정)·박원대고가·신돌석장군생가지(경상북도 기념물, 1993년 지정)와 약 300여년 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박의장생가가 있다.

또한, 영해면 괴시리의 영양남씨괴시파종택(경상북도 민속자료, 1987년 지정)·괴시동태남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괴시동물소와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괴시동해촌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대은종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93년 지정), 창수면 오촌리의 면운재고택(경상북도 민속자료, 1991년 지정) 등이 있다.

이 외에 존재종택 및 명서암·우헌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94년 지정), 병곡면 송천리의 송천세려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창수면 인량리의 영덕만괴헌(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8년 지정)·사암재(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지족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93년 지정), 영덕읍 구미리의 영덕수정재(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8년 지정)가 있다.

창수면 갈천리에는 167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독특한 건축양식과 기법의 갈천동초가까치구멍집(경상북도 민속자료, 1975년 지정)이 있다. 그리고 영해면 성내리에는 영덕별신굿(경상북도 무형문화재, 1980년 지정)이 전승되고 있다.

이 밖에 달산면 옥계리의 침수정계곡일원(경상북도 기념물, 1983년 지정), 강구면 소월리입래산(入來山)과 영덕읍 구미리공북정(拱北亭)에서 피는 거제화(巨濟花)가 유명하다.

이 꽃은 붉은색으로 크기가 매화와 비슷하고 늦은 봄철에 핀다. 조선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한 이곳 출신 신종부(申從溥)가 한성판윤·거제군수 등을 역임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올 때 거제에서 가져온 꽃이라 하여 거제화라고 불렀다 한다.

교육·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 영덕향교와 영해향교가 있다. 영덕향교는 지금의 영덕초등학교 뒤인 화개리에 있는데 6·25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1967년에 완공하였다. 영해향교는 1346년(충목왕 2)에 창건, 그 뒤 1529년에 공서린(孔瑞隣)이 영해면 성내리로 이전하였다.

서원으로는 1608년(선조 41) 영해 사림들이 중심이 되어 창수면 인량리석대봉에 세운 것을 1667년에 포항시 북구 죽장면 가사리의 봉황산으로 이전한 단산서원이 있었다. 이외에 1689년(숙종 15) 영해부의 남쪽 향사당에 설립한 향현사, 1665년(현종 6) 부서(府西) 10리 원구동 중구봉 아래 백동현(白東賢)이 설립된 구봉서원 등이 있다.

신교육기관으로는 1910년영해면 성내리에 사립 협창학교(協昌學校)가 설립되었는데, 사립으로 운영이 곤란해 1911년 공립보통학교로 전환하였다. 영덕에도 사립 영신학교(盈新學校)가 있었는데, 이 학교 역시 1912년 영덕공립보통학교로 전환하였다.

그 뒤 1921년 남정공립보통학교(南亭公立普通學校), 1928년 병곡공립보통학교(柄谷公立普通學校), 1934년 축산공립보통학교(丑山公立普通學校)가 잇따라 설립됨으로써 1면 1교의 교육체제가 정비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9개교, 중학교 8개교, 고등학교 4개교가 있다. 그 밖에 칠령회(七嶺會)가 조직되어 지역문화의 창달에 기여하면서 청소년에게 우리의 말과 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 주고 있다.

한편 군립 영덕도서관이 있어 군민의 교육·문화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1961년 영덕문화인협회로 발족해, 1966년 사단법인으로 등록된 영덕문화원은 이 군의 향토문화제인 복사꽃 잔치를 주최해 향토문화예술의 문맥을 이어가고 있다. 종교기관은 불교 사찰 43개, 천주교 성당 3개, 개신교 교회 72개, 유교 교당 2개가 있다.

민속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남정면 남호리의 달봉던지기를 들 수 있다. 이 놀이는 정월 대보름에 마을 주민이 두 편으로 나누어져 행하는 달봉던지기 시합이다.

음력 정월 13일이 되면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나누어져 서로 상대편이 알지 못하게 긴 대를 만든다. 14일 저녁에 젊은이들은 징·장구 등을 메고 산에 들어가 몸을 숨기고, 마을에서는 밤에 동제를 지낸다. 동제가 끝나면 젊은이들이 마을에 내려와 제주의 집에서 논다.

다음날 집집마다 지신을 밟고, 13일에 만든 대를 마을에 가져와 서로 그 길이를 비교한다. 그런 다음 두 개의 대를 마을 입구에 세우고, 전주민이 산꼭대기에서 들 가운데에 있는 고목나무까지 두 패로 나누어 선다. 산꼭대기에서부터 5m 정도 되는 막대기를 앞으로 이어 던져 고목나무에 먼저 도착하는 편이 이긴다. 아랫마을이 이기면 보리농사가, 윗마을이 이기면 벼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또한 민속무용의 성격으로 ‘일월이청청’이 있는데, 이는 이조중기부터 시작하여 이조말기에는 대단히 성행된 처녀들의 가무곡으로 정월보름과 2,3,8월 보름 등 손에 손을 잡고 여러 형태를 꾸미며, 노래와 춤을 추는 민속 무용이다.

정월 대보름, 2월 보름, 3월 보름, 4월 보름, 8월 보름 등 매월 보름날 둥 근 달이 뜨면 놀게 된다. 15,6세의 처녀로부터 갓 시집 온 새댁들이 주동이 되는데 나이 많은 아낙네나 할머니는 아기들을 데리고 구경만 하는 것이 보통이다. 바깥 외출이 비교적 통제되었던 남성 전제주의 시대에 있어서 이날만은 어른의 허락을 받아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저녁을 먹 은 후 보름달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처녀와 새댁들이 고운 옷으로 단장 을 하고, 동네의 마당이 넓은 지으로 모여든다.

손과 손을 이어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빙빙 돌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데 앞장 선 앞소리꾼이 선창을 하면 뒤따르는 나머지 부녀자들이 후렴인 '월월이청청'을 외친다. 처음에는 느린 가락으로 길게 봅으며 천천히 돌다가 흥이 차츰 고조되면 점점 빠른 가락으로 변하면서 춤도 빠르게 변화된다. 춤의 형식은 오른발 왼발을 교대로 얾겨가며 원을 도는데, 이 놀이를 노는 도중은 원을 절대로 좁히지 않는다. 사람이 불어나면 사이에 기어들어 원이 커지는 수는 있어도 작아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놀이를 하면서 어느 한 집에서만 노는 것이 아니라 동네의 어느 집 마당이건 놀이를 할 수 있는 장소이면 두루 돌아다니며 놀이를 행한다.

노래와 춤으로 구성되는 이 군무는 일반적으로는 '월월이청청'을 부르고 있으나 '토연노래', '생 금생금 생가락지' 등 일정한 가락을 가지고 잇는 가무이다. 또 일견 다른 노래춤 같이도 보이지 마는 이 놀이 사이사이에 '달넘세(달람새)', '재밟기', '대문 열기', '송아지떼기(청어따기)', '절구세'등이 하나의 월월이청청에 합성되기도 하는 여성군무이며 원무다. 형식은 중중모리, 자진모리 노래의 가락에 맞추어 놋다리밟기와 마찬가지로 일렬종대의 행렬무 에서 원무의 대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제는 군내의 여러 마을에서 행해지고 있는데 그 중 영해면 대진리의 동제가 특이하다. 본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동제와는 달리 대진리의 동제는 본당과 함께 천장군(千將軍)과 해불신(海佛神)까지 모신다.

해불신은 먼 옛날 바다에서 부처님이 떠내려와 이것을 땅에 묻고 동신(洞神)으로 모신 것이다. 천장군은 옛날 천씨가 이 마을에 살 때 그 조상 중 장군 벼슬을 한 사람을 모신 것이다. 본당에는 ‘동신권공지위(洞神權公之位)’라는 신위를 모신다.

제는 정월 보름과 6월 보름, 그리고 10월 중에 택일해서 모두 세 번 지낸다. 제를 지내기 이틀 전에 제관을 정한다. 이 때부터 제사 때까지는 신성기간으로 모든 일에 조심하며 전주민이 경건하게 지낸다.

제관은 본당에 4명, 천장군에 3명, 해불신에 2명인데, 14일 밤 11시경에 동사무소를 출발해서 본당·천장군·해불신순으로 제를 지낸다. 15일 아침에는 전 주민이 음복을 하고 농악놀이와 지신밟기 등을 한다. 그러나 이 농악놀이와 지신밟기는 1967년경부터 시행되지 않고 있다.

그밖에도 영해 별신굿이 있는데, 이는 음력 3월에 풍어제를 올리면서 마을의 평안과 수호, 풍어를 위해 마을에서 공동으로 벌이는 축제로 굿판은 여러 토속신들이 대거 동원되며, 성주굿·부정굿·심청굿·거리굿·원님놀이·탈놀이 등이 있다. 남녀노소 굿당에서 노래부르고 춤을 추며, 신의 힘을 빌려 변화무쌍한 자연을 달래기 위해 벌이는 행사이다.

1980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영해면의 송동숙씨에 의해 경북 해안일대에서 전수되고 있다.

설화·민요

이 고장의 대표적인 설화로는 자연물에 관한 설화와 아기장수설화·지명전설·신원설화(伸寃說話) 등이 전한다. 예로부터 영덕의 진산이라 일컬어지는 무둔산은 독특한 모양의 바위가 많아 많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마귀할멈바위라고 하는 면경대(面鏡臺)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옛날 아들을 낳지 못하는 늙은 내외가 기도 끝에 아들을 얻었는데 이 아들은 좁쌀과 콩을 군졸과 장군으로 변하게 하는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아들은 노모에게 쓸 곳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좁쌀과 콩을 구해 오라고 당부하고 북쪽으로 떠났다.

마을에서 곡식을 구해 오던 노모가 개울을 건널 때 어떤 청년이 나타나 무거운 곡식을 들어다 주며 그 이유를 묻자 노모는 고마워서 비밀을 알려주고 말았다. 아들이 돌아와 콩과 좁쌀에 경문을 외워도 군졸과 장수로 변하지 않았다. 얼마 후 한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는데 그 장수는 바로 개울을 건너 준 청년이었다.

노모는 자신의 경솔함을 자책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혼자서 싸우다가 지친 아들은 용마를 타고 북쪽으로 달아나 버렸다. 그 뒤 노모가 아들을 기원하는 정성을 드렸던 바위를 마귀할멈바위 또는 면경대라 일컫고 있는데, 고구려와 신라가 영토싸움을 할 때의 전설로 추측된다.

역시 무둔산에 있는 원님바위에는 홍수나 풍화작용으로 무너질 때 동쪽으로 떨어지면 원님이 영전을 하고, 서쪽으로 무너지면 좌천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병곡면의 송천마을은 조선 인조 때 권득여라는 선비가 지형을 살펴보고 “전유백리장천 후유만지창송(前有百里長川後有萬持蒼松)”이라는 글귀로 아름다운 경관을 읊고 그의 호를 따서 마을을 송천(松川)이라 했다 한다.

그 밖에 솔개가 도와주었다는 장윤경에 관한 「효자전설」, 부사와 사랑하다 요절한 한 기생과 그의 아기를 위로하기 위한 「아기당전설(娥妓堂傳說)」, 그 물을 마시면 힘이 세어진다는 위정사의 「장군수전설」, 방학중으로 유명한 「시정잡배설화」 등이 전한다.

이 지방에는 예로부터 농업노동요·어업노동요·유희요 등이 다양하게 전승되어왔다. 「모내기소리」·「덜구소리」 등의 노동요가 현장에서 불리고 있다는 점은 다른 지방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점이다. 그러나 생활양식의 변화로 어업노동요 등은 현장에서 구연되는 자료를 수집할 수 없을 만큼 약화되고 있다.

영덕읍 노물리에서 비교적 잘 전승되고 있는 「보리타작소리」는 목도리깨꾼이 앞소리를 메기면 종도리깨꾼이 뒷소리로 받는다. “어허 타작이야 어허 타작이야 이 보리가 누보리로 어허 타작이야 염생원네 아제네보리다 어허 타작이야 누구보리로 너도먹어라 어허 타작이야……”하며 목도리깨꾼이 사설부분을 노래하고, 종도리깨꾼이 여음 부분을 노래한다.

「모내기소리」는 남녀 교환창으로 부르는데 먼저 남자들이 “이물꼬저물꼬 헝헐어놓고 쥔네양반은 기워데갔노 담배야설합을 손에다들고 첩의방에다 놀러갔네” 하면 여자들이 일제히 “무신첩으가 유정해여 밤에가고 낮에가노 낮으로는 놀로가고 밤으로는 잠자로갑니다.”하며 받는다. 이 노래는 대구(對句)나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설이 대단히 길며 영해면 지방에까지 널리 분포되어 있다.

논맬 때 선후창으로 부르는 「논매기소리」에서는 앞소리꾼은 일을 하지 않고 때때로 춤을 추기도 하여 일하는 사람들을 지루하지 않게 하고, 흥을 돋우어 준다.

어업노동요로는 바다로 나가기 위해 육지에 올려놓은 배를 끌어내리면서 부르는 선후창의 노래가 있고, 사나운 바닷물결을 헤치고 머나먼 뱃길에 계속 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선후창의 「노젓는소리」가 있다. 또한 “어허 가래요 어허 가래요 이 가래가 누가래요 노물동네 천년출이 가래로다 어허 가래요……” 하며 노래하는 「그물당기는소리」가 전승되고 있다.

또,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월월이청청」·「달넘세」 등이 있다. 「월월이청청」은 음력 정월 보름날 밤 마을의 새댁들이 넓은 마당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돌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금상비단 외기 낭게 월월이청청 뿌리없는 낭글숭거 월월이청청 서울에나 올라가서 월월이청청……” 하는 이 노래는 원래 동해안 어촌에 두루 전승되어 왔으나 지금은 노물동에서만 전승되고 있다. 이 노래는 사설이 일정하지 않다. 어떤 사설이라도 이 곡과 여음에 맞추어 부르면 된다.

영덕에서는 「토연노래」를 이 곡과 여음에 맞추어 곧잘 부른다. 경상북도의 여러 지방에서 들을 수 있는 서사민요인 통인(通引)과 좌수(座首)의 딸 사이의 연가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노래의 하나이다.

산업·교통

동해안에 면해 농업과 어업이 주요 생업이다. 군 면적의 80.5%가 임야로 경지율이 10.8%에 불과해 총인구의 25.8%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나 영세농가이다. 총경지면적은 68.32㎢이며, 그 중 논은 34.50㎢로 50.5%를 차지하고 밭은 33.82㎢로 49.5%를 차지하고 있다.

평야로는 금호평야를 비롯해 영해평야와 영덕평야가 있다. 저수지는 대부분이 관개용으로 1963년 준공된 영해면의 묘곡저수지, 남정면의 남정저수지·도천저수지, 병곡면의 백록지, 축산면의 화천저수지 등이 산재해 있다.

주요 농작물은 쌀·보리 등 주곡작물과 마늘·복숭아·콩·잡곡 등의 생산이 많으며, 복숭아는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특히 복숭아와 배·감의 생산량이 크게 늘었으며, 이 외에도 메밀·녹두·배추 등의 생산량이 증가하였다. 반면 수박·딸기·오이·토마토·고추·마늘·시금치 등의 생산량은 감소하였고, 상추의 경우 2003년 이후 재배를 중단한 상태이다. 약용작물로는 작약·천궁·시호 등이 재배된다.

한편, 2008년 현재 임야면적은 전체면적의 80.5%를 차지하는데, 입목축적은 710만 1,541㎥이며, 산림면적의 60%가 사유림으로 양묘사업(養苗事業)과 조림사업이 활발하다. 주요 임산물은 밤·대추·송이버섯·도토리·표고버섯 등이며, 그 중 송이는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강구항·축산항·대진항을 중심으로 어업이 발달해 2008년 현재 총인구의 12%에 달하나 영세성을 면하지 못한다. 반 이상이 잡어를 잡아 사료를 만드는 영세공장을 경영하거나 양송이 재배를 겸업으로 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어자원이 급속히 감소해 최근에는 전체 어획량의 반이 노가리·쥐치 등이며, 명태·꽁치·오징어가 많이 잡힌다. 오십천은 몸에 흰 테를 두르고 향기가 좋아 1등 진상품이었던 은어로 유명하며 은어 외에도 각종 담수어가 서식하고 있다.

미역 양식은 영해면 대진 앞 바다를 위시해 강구면 삼사(三思) 앞 바다까지를 주산지로 삼고 있다. 기타 전복과 백합 등의 양식은 군내 해안의 포구마다 양식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축산면 경정리의 양식장에서 생산되는 미역과 전복은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강구항 주변은 ‘영덕대게’의 산지로 이름이 나 있는데, 최근에는 50여t의 어획으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형편이다. 껍질이 얇고 살이 많으며 맛이 담백하고 향이 독특한 영덕대게는 수증기로 쪄내며 조미료나 소금은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광업활동으로는 2008년 현재 광구수는 44개로 가행광구는 5개이며, 광산물로는 고령토만이 소량 산출된다. 창수면 오촌리에서 질이 좋은 규석이 주로 산출된다. 공업은 대규모의 제조공장은 없으나 강구면·지품면의 통조림공장 및 냉동·조선공장, 영덕읍 영해의 농기구제조공장 등 중소제조업체가 있을 뿐이다.

전통적인 재래공업으로는 도계천의 맑고 풍부한 물과 재질 좋은 닥나무를 재료로 하여 지품면 도계리의 새마을공장에서 생산되는 300여 년 전통의 도계한지, 질 좋은 안강흙으로 구워내어 한 번 사놓으면 몇백 년을 쓸 수 있다는 지품면 오천리의 오천옹기가 있다. 그 외 특산품으로 지품면 일대에서 많이 생산되는 영덕수석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진 희귀석인 화문석(花紋石)이 있다.

영덕읍의 영덕장이 4·9일, 강구면 강구장이 3·8일, 남정면의 남정장이 신안면 지품장이 2·7일, 영해면 영해장이 지품면 원전장이 5·10일, 달산면 옥산장이 1·6일에 각각 열렸다. 특히 영해·영덕·강구 등의 시장은 아주 활발하다. 그 중에서도 영해시장은 상설시장까지 갖추어 동해안·경상남도·경상북도·강원도 3개도 지역의 상인들이 운집해 성시를 이루고 있다.

주로 거래되는 품목으로는 고추·마늘·해산물·소 등이며, 영덕시장은 해산물과 소, 강구시장에서는 해산물의 도소매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2008년 현재 영덕의 일반시장과 영덕·강구·남정·영해의 4개의 5일장이 열리고 있다. 특히 영덕장의 특산물은 복숭아이며, 영해장은 영덕군 북부지역 4개면 상권의 중심지이고 안동, 영양, 청송 내륙지역에 농·수산물을 공급하는 유서 깊은 5일장이다.

군의 동부를 7번국도가 남북으로 지나며, 34번국도가 영덕읍에서 갈라져 인근의 양양군과 연결되고 있으며, 이외에도 지방도가 주요 읍·면과도 연결되어 있다. 2007년부터 부분적으로 개통을 시작한 당진영덕고속도로가 영덕군과 충청남도 당진시를 연결하고 있다. 또 동해선 철도가 지나며 영덕역이 있다.

관광

유명한 관광지는 강구면 강구리의 강구항과 삼사리의 삼사해상공원, 달산면 옥계리의 옥계계곡과 침수정, 대진·고래불·병곡·남호·장사 등의 해수욕장 등이 있다. 강구항은 영덕대게의 원산지로 유명하며, 삼사리에는 1990년에 조성된 삼사해상공원이 있다.

8만평에 달하는 넓은 터에 화강대리석으로 조성된 5m 낙차의 인공폭포, ‘천하제일석’이란 푯말이 붙은 8t 무게의 매화석, 분수대·놀이시설·주차장 등 각종 시설물이 있으며 청정한 영덕 앞 바다와 해안 풍경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옥계계곡은 팔각산과 동대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두 물줄기가 만나서 이루어진 계곡으로 폭이 넓고 물살이 센 계류가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을 만나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장관은 아름답다.

송천 하구의 대진해수욕장과 남정면의 장사해수욕장은 1979년 동해고속화도로의 개통에 따라 하계관광지로 급속히 발전하였다. 대진해수욕장은 영해면 송천 하구의 대진리에서 병곡면 병곡리에 이르는 약 4㎞의 백사장에 자리 잡은 동해안 굴지의 해수욕장으로 송천(松川)이 백사장을 가로질러 흘러 담수욕을 즐길 수 있으며, 자연샤워장으로 안성맞춤이다.

또 냇물과 바닷물이 만나 어족이 풍부해 민물낚시와 바다낚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주로 안동·영주·예천·문경 등지의 경상북도 북부지방에서 피서객이 많이 찾는다. 병곡면의 해안마을 6군데를 배경으로 한 고래불해수욕장은 명사 20리로 불리는 장장 8㎞에 달하는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병곡리의 병곡해수욕장은 3㎞의 백사장에 경사가 완만하고 송림이 넓게 울창하게 펼쳐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남정면 남호리의 남호해수욕장은 1㎞의 백사장에 경사가 완만하고 남쪽에는 암석해안을 볼 수 있으며, 장사리의 장사해수욕장은 1㎞ 남짓한 백사장이 바다쪽으로 완만하게 펼쳐져 있고 노송숲이 풍치를 돋우고 있다.

이 외에도 2005년 완공한 영덕 해맞이공원과 풍력발전단지 역시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특히 이 지역에서 주말연속극 촬영을 한 후 그 촬영지를 돌아보는 테마관광을 비롯해 복사꽃여행 등의 다양한 테마관광 프로그램이 있다.

또한 오십천의 청류(淸流)가 침식해 형성한 작은 섬인 임경대(臨鏡臺), 축산항(丑山港)의 죽도(竹島), 창수면의 반송정(盤松亭)과 작연(鵲淵), 단종복위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된 권책이 머물렀던 화수루, 부엌 위로 연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지붕을 합각(合閣) 처리해서 구멍을 내어놓은 초가까치구멍집, 장륙사와 대웅전·건칠보살좌상, 지품면의 용운사, 등운산의 유금사와 삼층석탑 등이 있다.

약수로는 창수면의 가산약수(佳山藥水), 강구면의 화전약수(花田藥水), 남정면의 남정약수·묘곡약수, 영해면의 이른바 임실약수라고도 하는 초숫골약수(椒水谷藥水), 축산면 대곡리의 대곡약수(大谷藥水), 지품면 삼화리의 삼화약수(三和藥水), 달산면 매일리의 서점약수(西店藥水) 등 약수터가 많이 있다. 삼복(三伏)을 전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또한 병곡면 영리에는 칠보산자연휴양림이 있다.

읍·면
  1. 영덕읍(盈德邑)

군의 동부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66.10㎢, 인구 7,758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우곡리이다. 신라시대에는 야성현에 속했으며, 고려 초기에 영덕으로 개칭되었다. 읍의 소재지이므로 읍내면이라 하여 우곡·독펀 등 17개 이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남면(中南面)과 외남면을 병합해, 영덕면이 되었다가 1979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1993년 6월에는 축산면 화천리를 영덕읍 화천리로 이속개편하였으며, 1995년 12월 29일에는 덕곡리가 덕곡리 1·2리로 분리되었다.

전 지역은 태백산맥의 동쪽 사면으로 읍의 경계에 화림산, 남쪽에 삿갓봉(206m) 등의 낮은 산이 있으며, 서쪽에서 오십천이 남류해 동해로 흘러든다. 오십천 연안에는 소규모의 충적지인 영덕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총 경지면적 9.15㎢로 13.8%, 임야면적 48.65㎢로 73.6%, 기타 12.6%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4.79㎢로 52.3%를 차지하고 밭이 4.36㎢로 47.7%를 차지해, 논농사가 높은 비율로 행해진다. 쌀·보리 등의 주곡생산 중심의 전통적인 농업을 경영한다.

하천부지에는 사과원의 과원과 야산지의 개간으로 복숭아 등 과실 생산이 증가하고 있다. 대추·도토리·송이버섯·산나물·토석류 등의 임산물이 생산되고, 한우·돼지·개·산양·닭·꿀벌 등이 사육된다. 동해안에 면해 있으나 어항의 발달이 불리해 어업기능은 미약하다.

상업활동으로 남석리에 4·9일장인 영덕장이 개장되어 동해에서 잡은 싱싱한 해산물과 채소 등이 거래된다. 최근 상업기능이 발달해 시가지 내에 상가의 형성과 행정기관의 집결로 도시경관을 조성해 가고 있다. 남북간의 동해고속화도로의 개통과 영덕∼안동간의 국도가 포장되어 물자교류 및 동해안과 경상북도 북부지방간의 관광산업개발에 큰 효과를 올리고 있다.

문화유적은 화개리에 영덕향교, 구미리에 수정재·공북정, 오보리에 성지, 창포리에 별반산봉수대, 우곡리에는 신돌석의 기념비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다.

우곡(右谷)·남석(南石)·구미(九美)·화개(華開)·덕곡(德谷)·천전(川前)·남산(南山)·화수(華水)·삼계(三溪)·매정(梅亭)·석(石)·노물(老勿)·오보(烏保)·대탄(大灘)·창포(菖蒲)·대부(大夫)·화천(華川) 등 17개 리가 있다.

  1. 강구면(江口面)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6.81㎢, 인구 6,85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강구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덕면에 통합되었다가, 1934년 중남면의 소월(小月)·상검(上劍)·직천(直川) 등과 동면의 하저(河渚)·금진(金津)·소하(小下) 등을 합해 현재의 강구리 등 10개 리가 강구면으로 되었다.

서쪽은 태백산맥의 지맥이 뻗어 있으며, 삿갓봉을 정점으로 동쪽으로 완만한 경사면을 이루나 동해안에도 100m 전후의 구릉성산지가 있어 해안까지 임박하고 있다. 중앙부를 남류하는 오십천은 길이 46㎞, 유역면적 335㎢로 동해안 일대에서는 큰 하천이며, 그 연안에는 금호평야 등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총 경지면적 6.45㎢로 17.5%, 임야면적 25.63㎢로 69.6%, 기타 12.9%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3.49㎢로 54.1%를 차지하고 밭이 2.96㎢로 45.9%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2004년). 밤 등의 임산물 생산과 돼지·닭·젖소 등의 가축사육이 행해진다.

강구리를 중심으로 어업활동이 성해 동해안 굴지의 어항으로 꼽히나 규모는 크지 않다. 수산물로는 노가리·명태·쥐치·도루묵·꽁치·오징어·미역 등을 어획하며, 오십천의 은어는 예로부터 유명하다. 최근에 수산양식의 장려로 전복 등의 생산이 증가하였다.

1929년 설립된 조일산업은 30여종의 통조림을 생산하며 어민의 소득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강구리의 신오마을은 사료공장 등의 공장지대로 발전하였다.

부산∼강릉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관통하고 해안을 따라 봉화∼강구간의 지방도가 나 있으며, 대진∼강구간의 군도가 이 면을 동쪽 방면과 연결한다. 동해고속화도로 개통으로 상업도 더욱 발달되었다.

문화유적으로 하저리의 문방골(文房谷)은 이황(李滉)이 처음으로 서원을 창설한 곳이다. 삼사리 효자동에는 해수욕장이 있고 화전리눌미약수터(옻약물)는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강구면에는 강구(江口)·오포(烏浦)·삼사(三思)·화전(花田)·상직(上直)·원직(元直)·소월(小月)·금호(錦湖)·하저(下渚)·금진(金津) 등 10개 리가 있다.

  1. 남정면(南亭面)

군의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73.28㎢, 인구 2,62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장사리이다. 본래 영덕군 지역으로 외남면이라 하여 구계·도천·덕성 등 2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남정면으로 개칭하였다. 1988년 5월에 동을 리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쪽은 태백산맥의 여맥으로 산지가 높고 바데산(646m)·동대산(東大山, 791m)·내연산(內延山, 710m) 등이 있으며, 동쪽으로 점차 낮은 완경사면을 이루고 이들 산지가 전면을 차지하고 있다. 산맥상에는 남정천(南亭川)·구계천(龜溪川)·도천천(道川川)·봉전천(鳳田川)·지경천(地境川) 등 작은 하천이 동으로 흘러 동해로 흘러든다.

총 경지면적 7.44㎢로 10.2%, 임야면적 61.22㎢로 83.5%, 기타 6.3%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5.12㎢로 68.8%를 차지하고 밭이 2.32㎢로 31.2%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농업은 쌀·보리 등 주곡생산을 주로 하고 있으나 영세적이다. 밤·대추·도토리·송이버섯·표고버섯·산수유·산나물 등의 임산물이 생산되고, 한우·젖소·꿀벌 등이 사육되고 있다. 최근 농업경영에 있어서도 변화를 보이고 교통이 편리한 양성리는 원예농업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부경·부흥·구계·원척 등 어촌에서는 어류와 해조류의 생산이 많다.

부산∼강릉간의 국도가 해안을 따라 나 있으며 부남∼남정간의 군도가 면을 남북으로 통과하고 있다. 동해고속화도로가 개통됨으로써 장사해수욕장이 새로운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문화유적은 남호리에 이층석탑 및 석불좌상 등이 있다. 도천리는 경주이씨(慶州李氏), 봉전리는 순흥안씨(順興安氏)의 동족마을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장사(長沙)·부경(阜境)·회(晦)·양성(洋城)·봉전(鳳田)·쟁암(爭巖)·사암(士巖)·도천(道川)·우곡(羽谷)·중화(中禾)·남정(南亭)·남호(南湖)·구계(龜溪)·원척(元尺)·부흥(富興) 등 15개 리가 있다.

  1. 달산면(達山面)

군의 남서쪽에 위치한 면. 면적 72.92㎢, 인구 1,29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대지리이다. 본래 읍내 서쪽이 되므로 서면(西面)이라 하여 상대·하대·재구 등 2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달산면으로 개칭되고 청하군(淸河郡) 죽북면(竹北面) 해월리(海月里)를 편입시켜 11개 리로 되었다. 1983년 2월에 포항시 북구 죽장면 하옥리 일부를 이속하여 옥계리로 하고, 1988년 5월에 동을 리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쪽에 태백산맥이 남북으로 달려 동쪽으로 점차 경사지고 대궐령·양설령(兩雪嶺)·돌시산(乭枾山)·삿갓봉·팔각산(八角山, 580m)·덕갈산(445m)·시루봉(393m) 등이 있어 산지가 지배적이다. 대둔산과 팔각산 등에서 흘러내리는 오십천의 지류인 대서천(大西川)·소서천(小西川) 유역에 좁고 긴 충적평야가 있어 이곳에 취락이 집중 분포한다.

총 경지면적 7.52㎢로 10.3%, 임야면적 60.74㎢로 83.3%, 기타 6.4%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3.67㎢로 48.8%를 차지하고 밭이 3.85㎢로 51.2%를 차지하며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로 행해진다.

주곡 이외에 채소류·과실류 등의 재배가 행해지고, 밤·대추·도토리·송이버섯·연료 등의 임산물이 생산된다. 축산으로는 한우·돼지·산양 등을 사육한다. 대지리의 소매기마을은 하천부지를 개간해 과수원단지를 조성해서 소득을 올린다. 인곡리의 봇둑마을에서는 겨울에 한지 원료인 피닥(닥나무껍질)을 벗겨 제지공장에 납품함으로써 소득증대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영천∼영덕간의 지방도와 청송∼영덕간의 지방도가 면의 동·서부를 남북으로 나란히 달리고, 부남∼남정간의 군도가 남부를 동서로 횡단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덕산리에 달로산성, 주응리에 성지가 있고, 옥계리의 침수정 계곡은 경치가 좋아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교육기관은 없다.

대지(大枝)·용평(龍坪)·매일(梅日)·흥기(興基)·주응(周應)·옥산(玉山)·인곡(仁谷)·용전(龍田)·덕산(德山)·봉산(鳳山)·옥계(玉溪) 등 11개 리가 있다.

  1. 병곡면(柄谷面)

군의 북동단에 위치한 면. 면적 66.05㎢, 인구 3,06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병곡리이다. 본래 영해부 지역으로 영해의 북쪽이 되므로 북면(北面)이라 하여 휘리·역리·연평 등 19개 이를 관할하다가, 2개 면으로 나뉘어 북초면(北初面)과 북이면(北二面)이 되었다. 그 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시 2개 면이 합해 병곡역의 이름을 따서 병곡면이 되었다.

면의 서쪽 경계에는 태백산맥에 속하는 칠보산·등운산 등의 높은 산이 솟아 있다. 이것이 동남으로 경사되어 남·동부를 제외한 전면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송천 하구에는 동해안에서 가장 넓은 충적평야가 있어 경지로 이용되며, 하구에는 해안사구가 발달해 병곡해수욕장이 개발되어 있다. 해안선은 단조로우며, 연안의 수심이 깊다.

총 경지면적 14.26㎢로 21.6%, 임야면적 45.62㎢로 69.1%, 기타 9.3%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11.86㎢로 83.2%를 차지하고 밭이 2.4㎢로 16.8%를 차지해 논농사의 비중이 매우 높다. 한우·젖소·개·산양꿀벌 등이 사육되며, 대추·송이·산나물 등의 임산물이 생산된다.

동해고속화도로의 개통으로 유통이 크게 촉진되고 관광산업이 발달하고 있다. 면의 동부에 부산∼강릉간의 국도가 뻗어 있어 남북의 혈맥을 이어주고 있다.

문화유적은 금곡리에 유금사와 삼층석탑, 송천리에 세려고택이 있으며, 그리고 칠보산자연휴양림이 있다. 송천리는 안동권씨(安東權氏)의 동족마을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병곡(柄谷)·삼읍(三邑)·금곡(金谷)·백석(白石)·영(榮)·거무역(居無役)·아곡(牙谷)·원황(遠黃)·이천(伊川)·각리(角里)·사천(沙川)·신평(新坪)·송천(松川)·덕천(德川) 등 14개 리가 있다.

  1. 영해면(寧海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63.97㎢, 인구 6,81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성내리이다. 본래 영해부의 소재지로 읍내면이라 하여 마흘진·사진·건달 등 16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읍내면과 묘곡면 일부를 합해 영해면이 되었다.

서쪽에는 태백산맥이 남북으로 달리고, 명동산·맹동산(808m)·형제봉 등이 있으며 산지가 지배적이다. 동쪽에서도 상대산(上臺山, 184m)·망월봉·봉화산(烽火山, 278m) 등이 해안에까지 임박하고 있다.

면의 중앙부에는 송천의 지류인 남천이 길게 동서로 흐르고 있으나 평야를 볼 수 없고, 송천과의 합류점 부근에서만 상당한 충적평야가 나타나고 있다. 서부산지는 밭농사를 주로 한다.

총 경지면적 7.01㎢로 11%, 임야면적 50.39㎢로 78.8%, 기타 10.2%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4.1㎢로 58.5%를 차지하고 밭이 2.91㎢로 41.5%를 차지해 논농사의 비율이 조금 높다.

밤·호두·도토리·표고버섯 등의 임산물이 생산되고 젖소·돼지·개·꿀벌 등이 사육되고 있다. 묘곡리의 묘곡에서는 송이버섯을 재배해 외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사진리의 말발마을에서는 미역이 많이 생산된다.

동해고속화도로의 개통으로 농수산물의 수송 및 관광개발에 큰 진전을 보게 되었다. 부산∼강릉간의 국도가 면의 동부를 관통한다. 해안을 따라 축산∼병곡간의 군도가 지나며 이 사이에 동서로 영해∼대진간의 군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성내리에 영해향교, 원구리에 난고정, 괴시리에 남씨괴시파종택·괴시동태남택·물소실고택·매촌고택·대은종택과 이색의 유허비가 있다. 대진해수욕장은 물이 맑고 사장이 깨끗해 각광을 받고 있다. 괴시리는 영양남씨(英陽南氏)·안동권씨, 대리는 평산신씨(平山申氏)의 동족마을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성내(城內)·괴시(槐市)·대진(大津)·사진(絲津)·연평(蓮坪)·벌영(閥榮)·원구(元邱)·묘곡(畝谷)·대(大) 등 9개 리가 있다.

  1. 지품면(知品面)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50.24㎢, 인구 1,62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안리이다. 본래 영덕군 지역으로 읍내의 북쪽이 되므로 북면이라 하여 신기·식률·양원·대덕 등 3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품부곡의 이름을 따서 지품면이 되었다. 1974년 7월원전리 286·1번지에 원전출장소가 설치되어 북부 6개리를 관할하고 있으며, 1989년 1월에는 오천리 일부를 분리하여 신애리를 신설하였다.

동쪽 경계에는 국사당산, 서쪽에는 산세가 험준한 대둔산·명동산 등이 있고, 남쪽에는 삿갓봉이 있다. 오십천 지류인 골짜기의 밑바닥에만 좁은 평지를 형성하고 있다.

총 경지면적 11.32㎢로 7.6%, 임야면적 130.19㎢로 86.6%, 기타 5.8%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4.48㎢로 39.6%를 차지하고 밭이 6.84㎢로 60.4%를 차지해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곡 이외에 무·배추·오이·마늘 등을 재배하고, 호두·대추·도토리·송이·연료·산나물 등의 임산물이 생산된다. 축산으로는 한우·개·산양·토끼·닭·꿀벌 등이 사육된다. 신양리의 식률(植栗)에서는 복숭아·사과 등의 과수단지를 개발하였다.

옥류리의 장밭[長田]에서는 산지를 개간해 잎담배·누에고치 등 특수작물재배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도계리에서는 도계한지를 새마을공장에서 생산하며, 오천리에서는 옹기와 영덕수석(盈德壽石)으로 알려진 화문석(花紋石)을 많이 생산한다.

당진∼영덕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부를 동서로 뻗어 있어 이 면과 동해안지방, 경상북도 북부내륙지방간의 교류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낙평리의 용운사·마고산성(麻姑山城)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신안(新安)·삼화(三和)·오천(午泉)·신양(新陽)·눌곡(訥谷)·용덕(龍德)·송천(松川)·낙평(洛坪)·속곡(粟谷)·율전(栗田)·도계(道溪)·옥류(玉柳)·신애(信愛)·원전(院前)·수암(壽巖)·복곡(洑谷)·지품(知品)·기사(其思)·황장(黃腸) 등 19개 리가 있다.

  1. 창수면(蒼水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152.31㎢, 인구 1,87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기리이다. 본래 영해부의 서쪽이 되므로 서면이라 하여 인상·인하·신기 등 14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수면이 되었다.

서쪽에는 태백산맥이 분수령을 이루고 독경산·형제봉 등이 솟아 있으며, 동쪽에는 칠보산·등운산·대봉산(184m) 등이 있다. 이들 산지에서 발원하는 송천은 중앙부를 곡류하면서 남쪽으로 흘러 유역에 좁은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총 경지면적 10.2㎢로 6.7%, 임야면적 134.24㎢로 86.5%, 기타 6.8%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4.56㎢로 44.7%를 차지하고 밭이 5.64㎢로 55.3%를 차지해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로 행해진다.

주곡농업 이외에 잡곡·채소류·과실류와 약초·잎담배 등의 특용작물재배가 이루어진다. 밤·호두·대추·도토리·표고버섯·송이버섯·산나물 등의 임산물을 생산하며, 한우·돼지·개·토끼·산양·닭·오리·꿀벌 등도 사육한다. 오촌리의 최촌에서는 전국에서 가장 질좋은 규석을 생산한다.

봉화∼강구간의 지방도와 석보∼영해간의 군도가 면을 북서·남동 방향으로 관통하면서 동해고속화도로와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갈천리에 장륙사(莊陸寺)·화수루와 초가까치구멍집이 원형을 거의 완벽하게 보존한 채 남아 있다. 그리고 수리에 덕후루, 인량리에 충효당·용암종택·사암재·지족당, 오촌리에 면운재고택 등이 있으며, 신기리에 위정관광농원과 마당두들약수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신기(新基)·인량(仁良)·가산(佳山)·신리(新里)·갈천(葛川)·창수(蒼水)·미곡(美谷)·오촌(梧村)·삼계(三溪)·수(水)·인천(仁川)·보림(寶林)·백청(栢靑) 등 13개 리가 있다.

  1. 축산면(丑山面)

군의 중앙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9.38㎢, 인구 1,03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도곡리이다. 본래 영해군 지역으로 영해부내 남쪽이 되므로 남면이라 하여 축산·양장·상반·중반·하반 등 18개 리를 관할하다가 묘곡면의 3개 이를 병합해 축산항의 이름을 따서 축산면이 되었다. 1963년 8월에는 축산면 출장소가 축산항에 설치되었으며, 1993년 6월에는 화천동을 영덕읍에 이속시켰다.

봉화산(278m)·망월봉·용당산(183m)·국사당산·화림산 등의 비교적 높은 산이 면의 경계를 이루고, 전면을 100m 전후의 구릉성 산지가 차지한다. 산지가 해안에까지 임하고 죽도산(竹島山) 육계도가 돌출해 경상북도 동해안에서 가장 복잡한 해안선의 하나를 나타내고 있으며 연안의 수심은 깊다.

총 경지면적 7.04㎢로 11.9%, 임야면적 47.42㎢로 79.9%, 기타 8.2%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4.27㎢로 60.7%를 차지하고 밭이 2.77㎢로 39.3%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농업이 주이나 경지면적이 좁아 농업경영이 영세적이다. 밤·호두·대추·송이버섯·연료·산나물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한우·젖소·개·산양·닭·오리 등을 사육하고 있다. 부곡리의 대밭마을은 고추와 잎담배를 많이 생산한다. 어업인구가 많아 어업소득이 높은 편이다. 경정리일대는 미역과 전복양식이 성하며 축산항은 동해안 굴지의 어항이다.

동해고속화도로의 개통 이후 수산물 수송 및 관광지개발에 큰 발전을 보이고 있다. 부산∼강릉간의 국도가 면의 동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며 봉화∼강구간의 지방도가 면과 해안을 연결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대곡리에 국사단, 축산리에 성지, 도곡리에 대소산봉수대·박원대고가와 신돌석의 생가가 있다. 도곡리는 무안박씨의 동족마을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도곡(陶谷)·고곡(古谷)·상원(上元)·부곡(釜谷)·칠성(七星)·조항(鳥項)·대곡(大谷)·기암(奇巖)·축산(丑山)·경정(景汀) 등 10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영덕군통계연보』(영덕군, 2008)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경상북도지명유래총람』(경상북도교육위원회, 1984)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6)
『내고장전통가꾸기』(영덕군, 1982)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2)
『영덕군지』(영덕군지편찬위원회, 1981)
『경북민요』(조동일, 형설출판사, 1977)
영덕군(www.yd.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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