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군 ()

영암군읍지
영암군읍지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전라남도 서해안에 위치한 군.
정의
전라남도 서해안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장흥군, 서쪽은 영산강을 건너 무안군, 남쪽은 해남군·강진군, 북쪽은 나주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5°52′∼126°40′, 북위 34°39′∼34°54′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603.50㎢이고, 인구는 5만 8137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9개 면, 385개 행정리(121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다.

자연환경

동쪽은 노령산맥의 줄기가 이어져 내려 산지를 이루고, 서쪽은 하천 하구에 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지질은 선캄브리아기의 편마암과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화강암과 화산암으로 되어 있다.

남동부에 월출산(月出山)이 천황봉(天皇峰, 809m)을 최고봉으로 구정봉(九井峰, 743m)·사자봉(獅子峰) 등의 많은 봉우리를 만들고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다. 주위 일대에 백룡산(白龍山, 418m)·국사봉(國師峰, 613m)·흑석산(黑石山, 650m)·주지봉(朱芝峰, 491m)·도갑산(道岬山, 376m) 등이 솟아 있다.

구정봉은 군서면과 영암읍 경계에 있는 월출산의 돌봉우리이며, 천황봉에서 서쪽 능선 약 1㎞ 지점에 있는 월출산 주봉이다. 천황봉과 함께 영암읍과 강진군 성전면의 경계를 이룬다. 정상에는 웅덩이 아홉 개가 있어, 구정봉이라고 했다고 한다.

백룡산은 신북면·금정면·덕진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가막산(加幕山)·형제봉(兄弟峰) 등을 거느리고 있는 백룡산의 남쪽 계곡은 영암천의 많은 지류들이 흐르고 있어, 취락이 발달하고 있다.

영암천은 영암읍의 주천으로 일명 덕진천(德津川)이라고도 한다. 영암읍 남쪽 월출산과 북쪽의 백룡산 계곡에서 발원해 서쪽의 도포만(都浦灣)으로 흘러든다. 특히, 월출산에서 흘러나오는 하천이 영암천의 주류를 이루면서 영암읍 춘양리·개신리·서남리·동무리·망호리, 덕진면 영등리·덕진리 일대의 관개수로 이용된다.

지류로는 송계천·망호천이 있다. 최근 하천 하구인 영암만의 경지정리사업이 완공되어 넓은 농경지가 확보되었다.

월출산의 줄기 사이로 밤재〔栗峙〕·감재·도갑재〔道岬峙〕 등이 있어 장흥·강진·해남 등지와 연결된다. 군의 북서부로 영산강이 굽이치고, 삼포강(三浦江)·영암천(靈巖川)·도갑천(道岬川)·송계천(松溪川) 등의 작은 하천들이 북서부로 좁은 평야들을 이루어 농경지가 전개되고 저수지도 많다.

영암읍과 군서면에 걸쳐 있는 영암만(靈巖灣)은 영암으로 오는 뱃길의 어귀이다. 목포에서 영암군과 무안군 사이의 좁은 해협을 지나 내륙 쪽으로 들어가면 두 개의 만이 Y자형으로 있다. 이들 2개의 만은 남북으로 서로 면하고 있는데, 영산강하구언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커다란 내륙호수인 영산호(榮山湖)가 되었다.

섬으로 나불도(羅佛島)·외도(外島) 등이 있었으나, 영산강하구언공사로 육지와 이어졌다.

기후는 연평균기온 14℃, 1월 평균기온 -1.0℃, 8월 평균기온 26.1℃이며, 연강수량은 1,483.3㎜이다.

역사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은 발굴된 바 없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유물은 서호면 장천리에서 집단취락지가 확인되었다. 군서면 구림리에서는 용범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서호면과 금정면을 중심지로 하여 전군에 걸쳐 약 830여기에 달하는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어 청동기시대에 이 지역이 문화중심지로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서 월나군과 아로곡현(阿老谷縣)·고미현(古彌縣)이 있었다. 백제 초기의 고분·옹관묘 등이 시종면과 신북면 일대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일본에 유학을 전수해 준 왕인(王仁)의 탄생지가 군서면 구림리일 것이라는 설이 있으며, 약간의 유물·유적도 전하고 있다.

신라의 통일 이후 경덕왕 때 영암군으로 개칭했고, 월출산은 신라의 소사(小祀)를 지내는 곳이 되었다. 또한, 풍수지리설의 대가인 도선(道詵)의 탄생에 대해서는 최씨원(崔氏園)의 설화가 전한다.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최지몽(崔知夢)과 도선 등의 활동으로 고려 초에 영암의 지위는 급속히 상승되어, 995년(성종 14)에 낭주로 승격되었고,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두었다.

1018년(현종 9) 안남도호부가 전주로 옮겨감으로써 다시 영암군으로 복칭되었다. 이 무렵의 영암은 남부의 황원군·도강군·곤미현·해남현·죽산현 등을 영속하는 호남 서남부의 행정중심지로서 존재하였다. 1172년(명종 2) 감무(監務)의 파견이 시작되는 것을 계기로 이들 군현이 독립해 대체로 현재의 지역에 상응하는 구역으로 축소되었다.

이 시대의 행정구역이나 등급은 거의 변화가 없이 계속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조선 초기 호수는 333호, 인구는 1,229인(남자만의 수)이었다. 이 때 현재의 완도군 일부 지역과 해남군의 송지면·북일면·북평면·옥천면·계곡면 일부, 강진군의 성전면 일부가 월경지로 속해 있었다. 임진왜란 중에 의병으로 전몽성(全夢星) 등이 활약하였다.

1895년(고종 32) 나주부 영암군이 되면서 나주군에 속했던 금마면·원정면·비음면·종남면과 진도군의 명산면을 편입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옥천면·북평면·송지면 등을 해남에 이속시켰다. 그 뒤 1932년까지 곤일시면(昆一始面)을 미암면으로 고치는 등 전반적인 면 명칭의 개정이 있었다.

한말의 의병으로는 신예교(辛禮敎)·이희초(李熙肖) 등이 월출산을 거점으로 하여 1906년부터 활동을 하였다. 1919년 4월 10일에는 조극환(曺克煥)을 중심으로 하여 만세시위가 일어났고, 다시 1931년 1월에는 영보 뒷산 형제봉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때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매년 5월 영보정(永保亭)에서 풍향제(豊鄕祭)를 지내고 있다.

1950년 6·25전쟁 때 공산치하에 있다가 10월 7일 수복되었다. 공산치하 당시 애국지사와 대한청년단 등 27인이 공산군에 의해 학살당하였다. 그 학살장소에 순절비를 세워 애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1973년 7월 1일 군서면 송평리가 영암면으로, 금정면 용산리가 신북면으로 편입되고, 1979년 5월 1일 영암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2003년에 삼호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유물·유적

서호면에 영암장천리선사주거지(전라남도 기념물, 1986년 지정)와 엄길리지석묘군(전라남도 기념물, 1986년 지정), 서호면 장천리와 시종면 월송리에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가 있다. 유물로는 동과·세형동검·용범·석촉·석도·석검·고인돌 등이 있다.

분묘로는 시종면에 영암 내동리 쌍무덤(전라남도 기념물 제83호)·영암 신연리 고분군(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영암장동방대형고분(전라남도 기념물, 1986년 지정)·영암 옥야리 고분군(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 학산면에 영암 금계리 고분군(전라남도 기념물, 1992년 지정) 등이 있다. 삼국시대의 무덤인 옹관고분이 시종면과 도포면일대에 80여 기가 있으며, 구슬·토기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산성으로는 도갑산성지·청룡리성지(靑龍里城址)·선황리성지(仙皇里城址) 등이 있다. 이 밖에 군서면 동구림리에 통일신라시대 도요지인 영암 구림리 요지(사적, 1990년 지정)와 왕인박사유적(전라남도 기념물, 1976년 지정)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영암군·강진군 일원의 영암월출산(전라남도 기념물, 1972년 지정)에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1972년 지정)이 있다. 또한, 군서면 도갑리에 도갑사 해탈문(국보, 1962년 지정)·도갑사석조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수비(보물, 2004년 지정)·도갑사 목조문수보현동자상(보물, 1992년 지정)·도갑사 오층석탑(보물, 2005년 지정)·용암사지삼층석탑(보물, 1998년 지정)·명부전(冥府殿)·도갑사석조(전라남도 유형문화, 1987년 지정) 등이 있다.

이 외에 학산면에 영암학계리석불입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7년 지정), 영암읍 용흥리에 성풍사지 오층석탑(보물, 1992년 지정) 등이 있고, 서호면에 영암엄길리암각매향비(보물, 2001년 지정)가 있다.

또한, 금정면 남송리에 쌍계사지 장승(전라남도 민속자료, 1986년 지정), 군서면 도갑리에 영암 죽정리국장승(전라남도 민속자료, 1986년 지정), 동구림리에 영암소전머리황장승(전라남도 민속자료, 1986년 지정)·영암 메밀방죽옆장승(전라남도 민속자료, 1986년 지정) 등의 장승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영암읍 교동리에 영암향교(전라남도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를 비롯해 남풍리에는 학자들의 수양처인 수성사(壽星社)가 있고, 교동리에 녹동서원(鹿洞書院), 망호리에 영호사(靈湖祠), 신북면 갈곡리에 삼충각(전라남도 기념물, 1987년 지정), 서호면 엄길리에 장동사(전라남도 기념물, 1987년 지정), 학산면 은곡리에 집영재(전라남도 민속자료, 1986년 지정) 등이 있다.

또한, 덕진면 노송리에 송양사, 시종면 만수리에 김완장군 묘소 및 신도비(전라남도 기념물, 1979년 지정), 서호면 화송리에 구고사 및 김완장군부조묘(전라남도 기념물, 1981년 지정)가 있다.

문헌으로는 영암읍 교동리에 녹동서원 소장 목판 및 고문서류(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92년 지정), 덕진면 영보리에 최덕지 초상 및 유지초본(보물, 1975년 지정), 도갑사에 수미왕사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7년 지정)·도선국사진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90년 지정)·수미왕사진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90년 지정), 덕진면 금강리에 시서영정(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 서호면 화송리에 김완영정(보물, 1977년 지정) 등이 있다.

중요민속자료로는 덕진면 영보리에 영암 삼성당 고택(중요민속자료, 1984년 지정)가 있고, 고가로는 군서면의 영암 월곡리 전씨고택(전라남도 민속자료, 1978년 지정)을 비롯해 영암읍 장암리의 문창집고가(文昶集古家), 덕진면 영보리의 최연창고가(崔然昌古家), 군서면 서구림리의 조영현고가(曺永鉉古家), 학산면 학계리의 영암현종식가옥(전라남도 민속자료, 1986년 지정) 등이 있다.

정자로는 덕진면 영보리에 영보정(전라남도 기념물, 1987년 지정), 신북면 모산리에 영팔정(전라남도 기념물, 1987년 지정), 영암읍 장암리에 장암정(전라남도 기념물, 1987년 지정) 등이 있다.

무형문화재로 영암읍 망호리의 이식우(李植雨)가 참빗장(전라남도 무형문화재, 1986년 지정)으로 지정되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영암군 서면의 느티나무(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가 있고, 노거수로는 서호면의 엄길리느티나무, 군서면의 동구림리느티나무, 양장리의 소나무, 덕진면의 영보리용나무 등이 있다.

기타로는 학산면 학계리에 김함의 묘 출토의복(중요민속자료, 1987년 지정)이 있다. 이밖에 서호면 장천리에 전씨충효문(전라남도 기념물, 1985년 지정), 시종면 옥야리에 남해당지(전라남도 기념물, 1986년 지정), 덕진면 노송리에 이우당, 군서면 동구림리에 최씨원 등이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영암읍 교동리에 영암향교가 있다. 이 향교는 1420년(세종 2)에 창건되어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오다가 1918년에는 화재로 소실되고, 1950년에는 6·25사변으로 소실되었다. 1950년부터 중건에 착수, 대성전을 복구했고 1969년에 명륜당을 복원해 1976년에는 격식대로 규모를 갖추었다.

서원은 녹동서원·죽정서원(竹亭書院)·서호서원(西湖書院) 등이 있었다. 녹동서원은 영암읍 교동리에 있는데, 1630년(인조 8)에 창건되어 1713년(숙종 39)에 사액되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지금은 영보강당이 서 있다. 서호서원과 죽정서원은 1681년(숙종 7)군서면 구림리에 설립된 것이다.

신교육기관의 개설은 1908년 영암읍 회문리에 세운 영암학교가 효시이며, 이어서 서창학교(1920)·신북학교(1922)·금정학교(1923)·시종학교(1924)·장천학교(1924)·도포학교(1925)·학산학교(1926)가 차례로 개교하였다.

중학교로는 회문리에 1946년 11월 개교한 영암중학이 처음이고, 고등학교는 1951년 11월에 회문리에 세운 영암종합고등학교가 첫 번째이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6개교, 중학교 12개교, 고등학교 6개교, 특수학교 2개교, 동아인재대학교, 세한대학교가 있다.

월출산 아래에는 청소년야영장이 있어 심신의 수양과 단련의 새 터전이 되고 있다. 매년 4월 초·중순경 왕인문화축제를 하고 있다.

민속

이 고장의 민속놀이로는 횃불놀이·윷놀이·줄다리기 및 강강수월래가 있다. 이 가운데 강강수월래는 전라남도 해안 일대에서 성행되어 온 부녀자들의 민속놀이로 주로 추석날 밤에 행해지며, 그 기원은 임진왜란 때로 보고 있다.

도포제줄다리기는 도포면 도포마을에 전해오는 민속놀이로 전래 설화를 가지고 있다. 정동정호제는 정월보름 새벽에 마을의 큰 섬에서 제사를 지내고 굿과 연희를 하는 민속놀이다.

동제로는 당산제·산제·미륵제 등이 전승되고 있다. 시종면 신학리의 정동당산제(井洞堂山祭)는 새암제·샘제·촌제·정호제·당산제 등으로 불려 왔다. 음력 정월 보름 새벽에 지낸다. 신위는 마을 가운데의 정동이라 불리는 큰 샘에 모신다.

제관은 정월 열 사흗날 3인이 선출된다. 이 중에는 제물을 준비하는 설향인이 있어 제사경비를 갹출하고 촌답에서 나오는 곡식으로 떡·술·밥을 짓게 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정월 열 사흗날 동네 샘을 청소하고 금줄을 치고 상가출입·시비·부부생활을 금하고, 매일 목욕재계하며 출타도 삼가한다.

제를 지내는 날 당산목이 있는 마을 앞 구판장에서 농악이 울리면, 설향인은 정호신에게 진설하고 마을을 한 바퀴 돈 농악대와 합류해 초헌·아헌·종헌의 차례로 배례한 다음, 강신·헌작·독축·헌찬·소지·음복·봉송·철상의 순으로 진행한다. 다음에 농악에 맞추어 샘굿을 하게 되는데, 이때 남녀가 합세해 어울린다. 샘제가 끝나면 당산목 사장나무거리에 제물 없이 농악과 인사굿으로 상쇠인 축관이 축원을 한다.

이 밖에도 도포면 원항리의 당산제는 천제(天祭)라는 명칭으로 오랫동안 지내왔으나, 1960년 무렵부터 중단되었다고 한다. 또, 시종면 옥야리에서는 남해당제(南海堂祭)를 지낸다. 1010년(현종 1) 고려 현종이 나주·영암·해남·강진·영광·함평 등 6개 고을의 군수에게 이곳 남해당에 제를 지내도록 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오늘날 옥야리에서는 당산제라는 이름의 동제가 행해지는데, 대개의 절차는 신학리의 동제와 비슷하다. 제당에서 제가 끝나면 마을 샘터에서 부녀자와 농악대가 합류해 “당산할머니 달래자 달래자 달래자. 당산샘을 달래자. 각씨 각씨 샘각씨 펑펑 솟아라.”라는 주문을 외우며 흥겹게 농악놀이를 한다.

설화·민요

설과 인물전설이 전승되고 있다. 「장독꼴샘전설」은 영암읍 서남리에 있는 장독꼴샘의 유래담이다. 을묘왜변 때 모친 상중에 있던 의병장 양달사(梁達泗)가 의병을 모집해 왜병과 싸우다 적에게 포위되어 군량미가 떨어지고 식수도 고갈되었다.

이때 양장군이 군령기로 한 번 호령한 뒤 땅을 내려찍자 ‘꽝’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이로써 사기충천한 의병은 왜적을 섬멸하게 되었고, 이로부터 이 샘을 장독꼴샘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양장군은 이 전투로 큰공을 세웠으나 부상을 입고 말았다. 상중에 피를 흘린 것을 수치로 여겨 조정에 전공을 보고하지도 않고 어머니의 묘로 돌아가 시묘하던 중, 상처로 인해 죽고 말았다고 한다.

「덕진다리전설」은 신라 여인 덕진(德津)의 소원으로 다리가 놓인 지명유래전설이다. 덕진강변에서 여인숙을 하던 덕진은 영암읍과 영산포 사이를 흐르는 덕진강으로 인해 행인들이 곤경을 겪자 여기에 다리를 놓는 것을 자신의 평생사업으로 삼았다. 덕진은 남몰래 항아리를 땅에 묻어 놓고 돈을 모았으나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그 뒤 영암에 원이 부임해 오자 그의 꿈에 덕진이 나타나 자기 소원을 다 이야기하고, 또 자신이 모은 돈을 찾게 하여 결국 다리를 놓게 되었다. 원은 다리이름을 덕진의 이름을 따서 덕진교라 했고, 또 단옷날이면 덕진에 대한 공덕심을 기리기 위해 제향을 올린다고 한다.

「벼락바위전설」은 신북면 명동 근처의 붉은 색 바위에 얽힌 유래전설이다. 옛날 이 바위 밑에 길이가 열 자나 되는 지네가 살았는데, 이 지네가 지나가는 사람을 모두 잡아먹었다. 이에 노한 하느님이 벼락을 내려 지네를 죽게 했는데, 지네의 피가 바위에 묻어 그 색이 붉게 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 구림에서 태어난 신라의 명승 도선에 관한 이야기인 「도선국사전설」과 「도갑사전설」·「용샘과 용바위전설」 등이 전승되고 있다.

이 고장의 민요로는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들노래」·「물레노래」·「베틀노래」·「밭매는 노래」와 같은 노동요와 「상여소리」·「상부소리」 등과 같은 의식요가 전해 온다.

특히, 여성들의 애환이 잘 표현된 「사랑가」·「청춘가」·「이별가」·「시집살이노래」·「후시집간 노래」·「남편을 사모하는 노래」·「늙은 영감 장가간 노래」·「첩장가 가는 노래」 등이 전해지고 있다.

그 중에서 「첩장가 가는 노래」를 소개하면, “방죽 밑에 돋는 풀아 첩의 장개가는 놈아/하늘 같은 부모 두고 머시서러 장개갔냐/반달 같은 본처 두고 세해된 아들 두고/샛별 같은 딸을 두고 머시걸려 장개갔냐/한 모퉁이 돌아가다 급살이나 마져 죽고/두 모퉁이 돌아가다 벼락이나 마져 죽고/시 모퉁이 막 돌아가다 급살 배락탕 마져 죽고/다래청에 들어서면 다래도 한둥만둥/각씨님네 웃저고리 동전배나 되어주고/각씨님네 웃치매는 어장데나 떼어주고/태풍넘에 홍상금이 천년과수나 되어주소/첩의 장개 가지마소.”와 같이 첩장가 가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 직설적으로 토로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남편을 사모하는 노래」에는 부부간의 애틋한 정이 잘 나타나 있다. “임아 임아 정든 임아/정든 임이 떠나실 때/하시든 말씀/명년 삼월에 오시마드니/춘삼월이 되어도 오시지 않고/상사불망 하시더니/손목을 잡고 만난 설음 못다 하고/달결소리 널렸구나/우리 고향 가시걸랑/임소식을 전해주소/소식이야 전해준들/답장이야 없을소냐.”하며 결혼생활에서 빚어지는 애증의 갈등이 이러한 민요 속에 절실하게 표현되고 있다.

「장부질노래」는 마을 공동으로 갯벌을 간척지로 만들어 많은 곡식을 수확하기 위해 둑을 쌓으면서 부르는 노래로 서호면 성재리, 태백리, 금강리 일대에서 오래도록 전해오고 있다.

그 밖에도 「거무타령」·「이타령」·「비룩타령」·「닭타령」 등 동물타령도 아낙네들에 의해 즐겨 불렸으며, 그들의 구체적인 생활감정이 드러나 있다. 가령, 「이타령」에서는 “이야 이야 옷엔 이야·니야 발이 육발인들/단 십리를 걸어봤냐/니 입이 훌륭한들/말 한마디 하여봤냐.”라 한다.

또, 「비룩타령」에서는 “비룩 한나 잡아서 통가죽을 비껴서/십리짓고 도복짓고 앉었거라 맵씨보자/도리지사 곱다마는 짓이 조금 낭창하다.”라고 하여 이나 벼룩 등의 미물에 빗대어 자신의 처지를 노래하고 있다.

산업·교통

동남쪽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지가 전체면적의 38.1% 정도로 매우 넓다. 농경지 면적은 2만 2810㏊(2008년 현재)이고, 이 중 논 1만 7,410㏊, 밭 5,400㏊로 벼농사가 발달되었다. 농가 비율은 60%이고 전업 농가 인구는 58%이다.

하천의 유역에는 충적평야가 발달해 마산·신흥·금호 등의 저수지가 있어 이 지역의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사과·포도·배·감·복숭아·소채류 등이며, 그 밖에 특용작물로 잎담배·인삼·유채·참깨와 약용작물 등이 생산된다. 구릉이 가파르지 않은 산에서는 젖소를 키우고 있는데, 규모가 큰 낙농회사를 비롯해 많은 목장이 들어서 있다.

수산업은 어업가구 238세대(2008년 현재) 가운데 전업은 98가구, 나머지는 1종·2종 겸업이다. 수산물 어획량은 609M/T으로 이전에 비해 대폭 증가하였다. 그러나 영산강 하구언공사로 갯벌에서 잡혔던 숭어·모치·맛·고막·바지락·굴·새우·낚지 등의 어획량은 줄어들고 있다.

광산물은 학산면에서 10만 594톤의 고령토가 생산된다(2008년 현재). 대표적 제조업은 고구마를 원료로 전분을 생산하는 덕암의 전분공장이다. 죽세품인 참빗은 예로부터 알려진 이 지방의 가내수공업품으로 한 때는 일본으로 수출되었으나, 지금은 수요의 감소로 쇠퇴해 가고 있다.

영암군의 특산물인 대나무로 만든 참빗은 크기와 빗살의 사이에 따라 대소·대중소·중소·오중소·써울치 등으로 나뉜다. 영암 참빗이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월출산에서 자란 참대의 껍질층이 두꺼워 빗을 만들기에 좋고 또 참빗을 만드는 도구가 다른 지방의 것보다 정교한 까닭도 있다. 여기에 제조 기술의 누적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300년 전 맨 처음 만든 곳은 영암읍 송평리 평창마을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망호리에서 10가구가 전통적 수공업으로 이어지고 주로 관광객에게 판매하고 있다.

조선 말기 군내의 시장으로는 읍내장(邑內場)·덕진장(德津場)·독천장(犢川場)·쌍교장(雙橋場)·송지장(松旨場)이 있었다. 그 뒤 행정구역의 구분이 오늘과 같게 된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는 동외장(東外場)·덕진장·신북장(新北場)·회동장(灰洞場)·도포장(都浦場)·아천장(牙川場)·독천장 등 5일장의 수가 7개에 달하였다.

1960년대에 이르러 영암읍 동무리에 상설시장이 들어섰다. 정기시장으로는 영암읍의 영암장이 5·10일, 신북면의 신북장이 3·8일, 시종면의 시종장과 군서면의 군서장이 2·7일, 학산면 독천장이 4·9일에 열리는데, 주요 거래품목은 무·배추·고추·수박 등의 채소와 낙지 등이다.

그러나 점차 5일장은 쇠퇴하고 있으며, 광주∼영암간의 국도가 통과하는 신북면과 도포면에 자리 잡고 있는 신북장 등이 1970년대에 교통사정이 좋아지면서 그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바다에 면해 있고 해상교통이 비교적 편리해 과거에는 각종 농수산물과 소금·직물 등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근래 거래되는 주요 품목은 역시 농수산물로서, 곡물·과일·채소 등이 다른 지방으로 매매되고 의류 및 기타 일상 생활에 필요한 잡화가 다른 지역으로부터 들어오고 있다. 가축시장은 신북장·독천장에서만 5일장으로 개장되며, 대체로 소 100∼150마리 정도가 매매된다.

영산강 하구를 사이에 두고 목포시와 면하고 있으므로, 목포에서 영암으로 오는 사람이나 물자는 무안군과 나주시를 거쳐 빙 둘러 놓인 육로를 이용하기보다는 수로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군의 앞 바다의 깊이가 얕고 영산강 하구언 공사로 해상교통이 급격하게 쇠퇴해 지금은 주로 육로에 의존한다. 국도 13번이 나주∼강진, 2번이 강진·목포·무안으로 연결되고 그 외에도 많은 지방도와 시군도가 각 면과 연결되어 있다. 영암을 기점으로 하여, 부산광역시 북구를 잇는 남해고속도로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관광

관광자원은 자연경관이 수려한 국립공원인 월출산과 선사시대 및 고대의 역사적 유적, 그리고 영산호 등이 주축을 이룬다. 월출산은 ‘소금강’이라 불리기도 하며, 사람에 따라서는 설악산·주왕산과 함께 3대 명산으로 꼽기도 한다.

기암괴석이 산의 정상에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천황봉 남쪽에 있는 마애석불은 관광명소가 되며, 동쪽의 구절계곡은 구절폭포와 함께 그 풍치가 아름답다. 월출산 사자봉 동쪽 계곡에 있는 칠치폭포(七峙瀑布)는 일명 구절폭포(九折瀑布)라 한다.

이 폭포는 바위와 암벽뿐인 월출산에 몇 개 안 되는 폭포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며, 일곱 계단의 암치(巖峙)로 이루어져서 ‘칠치’라 한다. 일곱 개의 가파른 바위절벽을 긴 면사포를 두른 듯 연속해 타고 떨어지는 광경은 장관이다.

일곱 계단의 폭포는 전국에서 월출산 밖에 없다고 전하며, 그 밖에 황치폭포·대동폭포·용추폭포 등이 쌍벽을 이루어 더욱더 경관을 절묘하게 하고 있다.

관광지로는 천황사(天皇寺)에서 구름다리로 가는 길 도중의 왼편길과 개신리저수지에서 칠치폭포로 가는 길을 택할 수 있다. 이 계곡에는 입술과 턱이 이중으로 새겨진 특이한 아미타불석상이 있다.

월출산 서쪽의 도갑사는 신라 때부터의 명찰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시종면 일대에는 고분군이 많으며, 특히 이곳은 옹관묘의 분포로 알려진 곳이다. 무안군 삼향면과 영암군 삼호면을 연결한 영산강의 하구언은 전라남도 지역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등장하고 있다.

영암읍에 있는 영암공원은 1977년에 건립된 읍민의 유일한 휴식처이며 집회장이다. 유서 깊은 객사 터전에 자리하고 있어 객사등이라 일컫는다. 수십 개의 계단을 올라서면 왼쪽에 영암 3·1운동기념비가 서 있고 반석 네 귀퉁이에 사자 머리상이 있다.

뒤쪽 정면에는 애국지사들의 충혼탑이 있고 반석 네 면에는 무궁화가 새겨져 있다. ‘월내 꽃동산’이라는 놀이터가 있어 어린이들의 낙원이 되고 있다. 주위에는 약 500여년된 노송이 100여 그루가 우거져 있어 청초한 풍치를 이루는 자연 공원이다.

광주에서 영암읍까지는 20분 간격으로 버스가 운행된다. 영암에서 도갑사까지는 영암 터미널에서 버스가 수시로 운행되며 도갑사 입구에는 호텔 및 민박 가구가 많다. 월출산국립공원에는 연간 약 5만 명이, 영산호에는 연간 약 150만 명의 관광객이 모여든다. 구림리를 중심으로 한 왕인박사유적지는 새로운 관심을 끌고 있다.

읍·면
  1. 삼호읍(三湖邑)

군의 서단 삼호반도(三湖半島)에 위치한 읍. 면적 87.81㎢, 인구 1만 3538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용앙리이다. 본래 영암군 지역으로 옛 곤미현의 끝에 해당되어 곤일종면(昆一終面)이라 하여 학송·우산 등 4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창(西倉) 등 10개 리로 개편되었고, 1917년삼호면으로 개칭되었다. 2003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유일하게 해안과 접한 읍으로 1개의 무인도가 속해 있다.

지형은 호등산(虎嶝山)·대아산(大牙山) 등 구릉성 산이 해안 부근에 솟아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며, 구릉지가 많아서 평야가 협소하다.

동쪽의 망월천 유역은 면의 주요 평야지대로서, 쌀·보리·콩·고구마 등의 식량작물과 시금치·고추·마늘 등의 채소류, 유채·잎담배·참깨 등의 특용작물이 생산되며, 특히 해안지대에서는 무화과가 많이 재배된다. 수산물로는 김·낙지가 유명하며, 남쪽 간석지에서는 천일제염의 염전이 있다.

1981년 영산강하구언이 완공되었으며, 1988년에는 해남군과 연결하는 영암방조제가 준공되어 목포와 서남부 해남·영암·강진·완도·진도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다. 육로로는 국도가 면을 동서로 가로질러 있어 편리하다. 하구언의 남단, 옛 나불도 일원에 관광시설이 확충되어 가고 있다.

문화유적으로 용당리의 축성암(祝聖庵)은 바다를 바라보는 조망이 아름답다. 용당리∼목포간에 도선이 운항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5개 교, 중학교 2개 교와 대불대학교가 있다.

용앙(龍仰)·나불(羅佛)·난전(蘭田)·동호(東湖)·망산(望山)·산호(山湖)·삼포(三浦)·서창(西倉)·서호(西湖)·용당(龍塘) 등 10개 리가 있다.

  1. 영암읍(靈巖邑)

군의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59.80㎢, 인구 8,960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동무리이다. 본래 영암군 지역으로 영암읍내 첫머리가 되므로 군시면(郡始面)이라 하여 교리·동리·남풍 등 2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군시면과 군종면(郡終面)을 병합해 영암면이라 했고, 1979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남부는 월출산·사자봉 등이 있는 험준한 산지이며 읍의 북계(北界)를 이루는 영암천이 있다. 그 남쪽에 50m 내외의 구릉지와 충적평야가 전개되어 남부산지와 북부평야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참깨·오리·딸기·유채 등이다. 특산물로는 참빗이 유명하며, 한 때는 일본에까지 수출되었으나, 지금은 수요의 감퇴로 그 생산이 쇠퇴해 가고 있다. 교통은 도로가 광주를 비롯해 해남·강진·장흥·완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문화유적은 회문리에 월출산마애여래좌상, 교동리에 영암향교·녹동서원, 동무리에 열무정(閱武亭), 학송리에 청풍사지다층석탑(淸風寺址多層石塔)·고인돌군, 남풍리에 수성사, 망호리에 영호사, 장암리에 장암정·문창집고가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다.

동무(東武)·교동(校洞)·서남(西南)·회문(會門)·역(驛)·남풍(南豊)·춘양(春陽)·용흥(龍興)·개신(開新)·송평(松平)·망호(望湖)·대신(大新)·장암(場巖)·학송(學松)·농덕(農德)·한대(寒大) 등 16개 리가 있다.

  1. 군서면(郡西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57.25㎢, 인구 3,58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월곡리이다. 본래 구영암군 지역으로 영암 서쪽이 되므로 서시면(西始面)이라 하여 성지천·미남 등 3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종면(西終面)의 율정·성호정 등 19개 리를 병합해 군서면이라 하고 1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73년송평리가 영암읍으로 편입되었다.

남쪽은 도갑산·주지봉 등의 산악이 솟아 있고, 서쪽은 해안과 접하고 있는 와시내개를 간척해 만든 학파농장이 있다. 북쪽에는 도갑천 유역에 넓은 지남평야(指南平野)가 펼쳐져 있다.

농업이 주산업이며, 쌀·보리·콩 등의 식량 작물과 참깨·유채 등의 특용작물 및 사과·감 등이 생산된다. 남쪽 산지에서 젖소가 사육되며, 사료 작물로 호밀과 옥수수가 재배된다.

문화유적은 도갑리의 도갑사와 경내의 도갑사해탈문·도갑사석조여래좌상·도갑사도선수미비, 동구림리의 왕인박사유적지·최씨원·토끼요지·소전머리황장승·메밀방죽옆장승, 서구림리의 조영현고가, 월곡리의 전씨고택·느티나무 등이 있다. 구림리에는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오는 대동계(大同契)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월곡(月谷)·도갑(道岬)·도장(道長)·동구림(東鳩林)·동호(東湖)·마산(馬山)·모정(茅亭)·서구림(西鳩林)·성양(省陽)·양장(羊場)·해창(海倉) 등 11개 리가 있다.

  1. 금정면(金井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72.96㎢, 인구 2,25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흥리이다. 본래 나주군 지역으로 사금이 많이 나므로 금마면(金磨面)이라 하여 남송·입석 등 63개 리를 관할하였다.

1895년 지방관제 개편에 의해 영암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정면(元井面)의 월평(月坪) 등 21개 리와 나주군 세화면(細花面)의 임천리(林泉里) 일부 지역을 병합해 금마와 원정의 이름을 따서 금정면으로 개칭되었다.

동·서·남쪽이 국사봉·궁성산(弓城山)·백룡산·석교산(石橋山) 등의 험준한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남동쪽의 국사봉에서 발원한 금정천이 북쪽으로 흐르며 유역에는 평야가 있다. 평야 주변에는 완만한 경사의 구릉지가 분포한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보리·감자 등의 식량작물과 고추·배추·무·잎담배·유채·참깨 등의 특용작물과 배·감 등의 과수생산이 많다. 경사지에서는 산양·소 등의 사육이 활발하며, 산지에서는 벌꿀·표고버섯·밤·약재가 생산된다. 특산물로는 감(대봉)이 있다.

교통은 영산포에서 장흥으로 이어지는 국도와 영운재를 넘어 영암읍으로 이어지는 지방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월평리에 학송재(鶴松齋), 남송리에 쌍계사터와 석장승, 청룡리에 망경대가 있다. 동족마을로는 안로리의 하동 정씨, 아천리의 여흥민씨(驪興閔氏)·밀성박씨(密城朴氏)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용흥(龍興)·남송(南松)·세류(細柳)·쌍효(雙孝)·아천(鴉川)·안로(安老)·연보(連寶)·연소(燕巢)·와운(臥雲)·월평(月坪)·청룡(靑龍) 등 11개 리가 있다.

  1. 덕진면(德津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26.23㎢, 인구 2,07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덕진리이다. 본래 영암군 지역으로 영암읍의 북쪽이 되므로 북일시면(北一始面)이라 하여 신우·용동 등 5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이종면(北二終面)의 일부를 병합해 9개 리로 개편되고, 1929년에 덕진면으로 개칭되었다.

북동쪽의 백룡산에서 산맥이 남쪽으로 뻗어 형제봉을 이루어 동부는 산지이다. 동부를 제외한 지역은 구릉지와 평야가 널리 분포한다. 서쪽은 도포만에 접해 있으며, 영암천 하구에 간척지 평야가 조성되어 있다. 특산물은 고구마와 배이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보리·콩·고추·참깨·잎담배·무·수박·복숭아·배의 생산이 많다. 영암천 하구의 가물치가 유명하며, 하구언 공사 이전까지 영암천에서의 양식업이 활발하였다. 면 소재지인 덕진리는 영암읍과 근거리에 위치하고 국도가 남북으로 중앙을 통과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영보리의 영보정·용나무·최덕지 영정 및 유지초본·최성호가옥·최연창고가, 노송리의 여운사, 이우당·송양사, 금강리의 향나무 등이 있다. 동족마을로는 영보리의 전주 최씨·거창신씨(居昌愼氏), 금강리의 광산 김씨, 장선리의 창녕 조씨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덕진(德津)·영등(永嶝)·노송(老松)·백계(柏溪)·영보(永保)·운암(雲巖)·금강(錦江)·장선(長善)·용산(龍山) 등 9개 리가 있다.

  1. 도포면(都浦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4.93㎢, 인구 2,51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구학리이다. 본래 영암군 지역으로 영암읍내 북쪽이 되므로 북일종면(北一終面)이라 하여 원목·종화 등 5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종남면(終南面)의 인덕(仁德)·학림(鶴林) 등 6개 리와 북이시면(北二始面)의 태산(泰山)·중명(中命)의 일부를 병합했고, 1932년도포면으로 개칭되었다.

구릉지가 넓게 분포하고 중앙을 흐르는 북일천(北一川)유역에 평야가 있다. 영암만과 도포만 연안의 넓은 간석지에서 각종 수산물이 산출되었다. 영암군의 유일한 포구로 각종 생선의 집산지였으나 목포항의 발달로 명맥만 유지하다가 1981년 영산강 하구언 완공으로 폐지되고 간석지가 농토로 변해 광대한 평야를 조성하고 있다.

군의 다른 지방에 비해 식량작물의 생산이 저조한 반면, 무·배추·고추·수박 등의 채소류와 잎담배·유채·참깨 등의 특용작물 생산이 활발하다. 구릉지가 넓게 분포해 경사지에서는 포도·감·배·사과 등의 과수가 많이 생산되며, 특히 포도의 생산은 이 군에서 최고이다.

문화유적은 면의 곳곳에 고인돌과 옹관무덤이 무리지어 있으며, 선사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여러 유물이 출토되었다. 동족마을로는 봉호리의 제주양씨(濟州梁氏)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가 있다.

구학(九鶴)·덕화(德化)·도포(都浦)·봉호(鳳湖)·성산(聖山)·수산(水山)·영호(永湖)·원항(元項) 등 8개 리가 있다.

  1. 미암면(美巖面)

군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47.68㎢, 인구 2,57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춘동리이다. 본래 백제 고미현의 소재지로 신라 경덕왕이 곤미현(昆湄縣)으로 고쳤다. 뒤에 2방(坊)으로 나누어 그 으뜸이 되므로 곤일방(昆一坊)이라 하다가 다시 둘로 나누어 곤일시방(昆一始坊)이라 하였다.

1898년에 방을 면으로 고쳐 곤일시면이라 하여 영선(永善)·부암(夫巖) 등 4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미암 등 9개 리로 개편되었고, 1928년 면 소재지인 미암리의 이름을 따서 미암면으로 개칭되었다.

남쪽은 두억봉·마치(馬峙) 등이 솟아 산지를 이룬다. 중앙과 북쪽에는 선황산 등의 저산지와 구릉지가 발달하고, 남산천(南山川)과 망월천의 지류 유역에 평야가 분포한다.

농산물과 수산물이 주요 산물이며, 수산물은 낙지와 김 등 인데, 특히 세발낙지는 맛이 좋다. 농산물로는 쌀·보리·콩·고구마 등의 식량 작물과 고추·마늘 등의 채소류, 유채·잎담배·참깨 등의 특용 작물이 생산된다. 특산물로는 방울토마토와 황토고구마가 있다.

교통은 지방도와 시군도가 +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미암리의 미촌마을에는 1,100여 년 전 신라시대 곤미현의 군소재지로 4대문의 폐허유적이 남아 있다. 또, 동학혁명 때 슬기로운 기지로 마을을 구출한 이상서(李商緖)의 향리 수호정신을 기린 유허각(遺墟閣)이 있으며, 두억리에 선돌이 있다. 채지리에는 선덕매향비가 있다. 동족마을로는 선황리에 창녕 조씨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춘동(春洞)·남산(南山)·두억(斗憶)·미암(美巖)·선황(仙皇)·신포(新浦)·신한(新漢)·채지(採芝)·호포(好浦) 등 9개 리가 있다.

  1. 서호면(西湖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4.00㎢, 인구 2,19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장천리이다. 본래 곤미현의 지역인데, 신라 때 영암군에 편입되고, 조선시대에 곤이종면(昆二終面)이라 하여 금강(錦江) 등 3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곤이시면(昆二始面)의 신소정(新沼亭) 일부를 병합해 10개 리로 개편되었다. 1930년영암군의 서쪽 와시내개를 끼고 있다 하여 서호면으로 개칭되었다.

서쪽에는 상은적산(上隱跡山)·하은적산(下隱跡山)·관봉(冠峰) 등의 산지가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 중앙에는 구릉지, 동쪽에는 간척지인 넓은 학파농장이 펼쳐져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콩·고구마 등의 식량작물과 고추·마늘·유채·잎담배·참깨가 생산된다. 굴·숭어 등 수산자원이 많고 질이 좋았으나, 영산강 하구언이 완공된 뒤 격감하고 있다.

교통은 남쪽으로 국도가 지나고 있으며, 옛날에는 목포와 해상으로 1시간 거리에 있었으나 하구언으로 두절되었다.

문화유적은 장천리에 전씨충효묘·선사주거지가 있다. 고려 장군 최영(崔瑩)의 사당이 있었으나 6·25사변 때 소실되고 터만 남아 있다. 쌍풍리에 소호정, 엄길리에 지석묘군·영암 엄길리 암각매향비(보물, 2001년 지정)·장동사와 느티나무가 있다. 화송리에는 조선시대 안주목사를 지낸 김완의 묘소와 그 영정을 봉안한 구고사가 있다.

동족마을로는 엄길리의 천안전씨(天安全氏), 황송리의 김해 김씨, 아천마을의 전주 이씨, 쌍풍리의 함평노씨(咸平魯氏) 등이 있다. 종교기관으로 교회 4개소, 성당 1개소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장천(長川)·금강(錦江)·태백(太白)·몽해(夢海)·화송(華松)·성재(聖才)·쌍풍(雙豊)·소산(蘇山)·엄길(奄吉)·청룡(靑龍) 등 10개 리가 있다.

  1. 시종면(始終面)

군의 북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62.01㎢, 인구 4,03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내동리이다. 본래 영암군 지역으로 영암읍 북쪽 첫머리가 되므로 북이시면(北二始面)이라 하여 구산·송정 등 5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나주군 종남면·반남면 일부와 완도군 명산면 일부, 북이종면의 일부를 합해 북이시면과 종남면의 이름을 따서 시종면으로 개칭되었다.

구릉지가 대부분이며, 하천은 단류하고 평야는 북쪽 삼포강 유역과 소하천의 유역에 산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영산강 하구언공사가 완공됨에 따라 남해안 일대의 간석지가 모두 간척지 평야로 되어 넓은 농경지를 얻게 되었다.

농업과 수산업이 주요 산업이며, 농산물로는 쌀·보리·무·배추·고추·수박이 생산된다. 특히, 이곳에서 산출되는 어란은 예로부터 진상품으로 유명하였다. 교통은 신북면을 경유해 영산포에 이르는 지방도와 도포·해창을 거쳐 영암읍에 이르는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내동리에 쌍무덤, 옥야리에 고분·남해당지, 만수리에 김완장군 묘소 및 신도비가 있다. 특히 옥야리 일대는 백제문화권 형성지로 대규모의 마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동족마을로는 봉소리의 진주강씨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2개 교가 있다.

내동(內洞)·구산(九山)·금지(錦池)·만수(萬樹)·봉소(鳳巢)·신연(新燕)·신학(新鶴)·신흥(新興)·옥야(沃野)·와우(臥牛)·월롱(月弄)·월송(月松)·월악(月岳)·태간(泰澗) 등 14개 리가 있다.

  1. 신북면(新北面)

군의 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48.91㎢, 인구 4,27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월평리이다. 본래 영암군의 북쪽 끝이 되므로 북이종면(北二終面)이라 하여 구만·산정 등 6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비음면(非音面)갈곡 등 14개 리와 북일종면의 탑동(塔洞)·호산(虎山) 등 2개 리, 종남면의 복룡동(伏龍洞) 일부와 나주군의 반남면 일부, 세화면의 황계(黃溪) 일부 지역을 병합해 신북면이라 하고 갈곡·학동 등 1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73년에 금정면의 용산리를 편입하였다.

남동쪽은 백룡산이 산지를 이루고, 백룡산에서 발원한 하천은 삼포강의 상류를 이룬다. 유역평야의 발달은 미미하다. 중부 이북은 구릉지가 많아 과일재배의 적지가 되고 있다.

농산물로는 쌀·보리·감자 등 식량 작물과 사과·배·포도·수박 등 원예 작물 외에, 특용작물로는 잎담배·인삼 재배가 활발하다. 남부의 산지에서는 목축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통은 도로가 영산포∼영암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통과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장산리에 선사주거지, 갈곡리에 삼충각, 모산리에 영팔정, 이천리에 망월암 및 석불좌상 등이 있다. 동족마을로는 모산리의 문화유씨(文化柳氏), 이천리의 경주 이씨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월평(月坪)·갈곡(葛谷)·학동(鶴洞)·금수(金水)·명동(明洞)·모산(茅山)·양계(兩溪)·용산(龍山)·월지(月池)·이천(梨泉)·장산(長山)·유곡(酉谷)·행정(杏亭) 등 13개 리가 있다.

  1. 학산면(鶴山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61.92㎢, 인구 3,22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독천리이다. 본래 곤미현의 지역인데, 신라 때 영암군에 편입되고, 조선시대에 곤이시면이 되어 윤금·초안 등 4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0개 리로 개편되었으며, 1932년학계리와 용산리의 이름을 따서 학산면으로 개칭되었다.

독천을 중심으로 동부 6개 리가 위치한 동남쪽은 주지봉·월각산·벌매산·가학산·흑석산(黑石山, 650m)이 험준한 산지를 이루고 있다. 서부 4개 리의 동쪽에는 상은적산·하은적산이 있다. 서쪽은 영산호에 접한다. 하천은 흑석산에서 발원한 망월천이 서북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동부산지에서 발원한 학산천(鶴山川)은 북류해 영암만으로 흘러든다.

하천 주변의 평야지대에서는 쌀·보리·콩 등이 생산되며, 이 밖에도 유채·참깨 등의 특용작물과 토마토의 시설 재배가 이루어진다. 교통은 도로의 목포·성전·강진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통과해 교통이 편리하다.

독천리는 예로부터 정기시장이 열려 영암군 서부 4개 면의 중심지 구실을 하고 있다. 바다와 접한 서쪽의 은곡리와 매월리에서는 수산물이 생산되었다. 그러나, 영산강 하구언공사의 완공으로 수산물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문화유적은 금계리에 고분군, 학계리에 석불입상·현종식가옥, 은곡리에 집영재(集英齋)와 광암 서북쪽 50m 거리에 있는 미륵을 봉안한 미륵당, 부춘산(富春山) 내동(內洞)에 있는 낭춘재(朗春齋) 등이 있다. 동족마을로는 학계리의 성산현씨(星山玄氏), 금계리의 해주 오씨(海州吳氏)·밀양김씨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와 동아인재대학이 있다.

독천(犢川)·금계(金溪)·매월(梅月)·묵동(墨洞)·상월(上月)·신덕(新德)·용산(龍山)·용소(龍沼)·은곡(隱谷)·학계(鶴鷄) 등 10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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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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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도서(輿地圖書)』
『호남읍지(湖南邑誌)
『영암통계연보』(영암군, 2008)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3)
『지방행정구역연감』(한국도시행정연구소, 2003)
『한국지방자치백서』(한국언론인협회, 2002)
『영암군의 문화유적』(목포대학교박물관, 1986)
『전라남도지』1∼3(전라남도지편찬위원회, 1982∼1984)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83)
『내고장전통가꾸기』(영암군, 1981)
『문화유적총람』(문화공보부문화재관리국, 1977)
『전남교육30년사』(전남교육30년사편찬위원회, 1977)
영암군(www.yeongam.go.kr)
영암교육청(www.jnya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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