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군 ()

대동여지도 중 충청북도 영동, 옥천 부분
대동여지도 중 충청북도 영동, 옥천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충청북도 최남단에 위치한 군.
정의
충청북도 최남단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경상북도 상주시, 서쪽은 대전광역시, 남쪽은 영동군과 충청남도 금산군, 북쪽은 보은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7°23′∼127°53′, 북위 36°10′∼36°26′에 위치한다. 면적은 537.10㎢이고, 인구는 5만 2404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8개 면, 220개 행정리(125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삼양리에 있다.

자연환경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층인 옥천계(沃川系)의 변성퇴적암이 존재하고 옥천지향사가 북동부에서 서남 방향으로 주향하고 있어 대부분의 지역이 옥천지향사지대에 속하고 있다.

북부에 거멍산(494m)·덕대산(德大山, 573m)·금적산(金積山, 652m)·관모봉(冠帽峰, 569m)·삼승산(三升山, 574m), 남부에 망덕봉(望德峰, 420m)·장룡산(壯龍山, 656m)·마니산(摩尼山, 640m)·월이산(月伊山, 551m), 동부에 팔음산(八音山, 762m)·천관산(天冠山, 440m)·천금산(千金山, 464m)·철봉산(鐵峰山, 450m), 서부에 환산(環山, 581m) 등이 있다.

중동부에는 마성산(馬城山, 497m)과 남쪽의 도덕봉(道德峰, 407m), 서쪽의 용봉(龍峰, 437m) 등으로 둘러싸인 옥천분지를 이루고 있는데, 남동에서 북서 방향으로 흘러가는 옥천분지 내의 중심하천의 서쪽에는 용봉과 마성산을 배후산지로 하여 하부에 너비 5㎞, 길이 1.5㎞의 대규모 완사지가 발달하였고, 중앙에는 귀화봉·새보로봉 등의 소규모 구릉들이 있으며 하천변에는 평탄면이 발달해 있다.

옥천분지의 산록완사지는 충적선상지와 같은 하천퇴적지형이 아니고, 산지의 사면후퇴로 이뤄진 침식사면의 지형이다.

충청남도 금산으로부터 북류하는 금강(錦江)이 이원천(伊院川)·건진천(乾榛川)·보청천(報靑川)을 합류하면서 감입곡류를 이루어 곳곳에 절벽을 이루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나타내고 있다.

안내면의 장계리 일대는 금강의 대표적인 감입곡류지역으로 지질구조를 따라 흐르는 필종하천(必從河川)이다. 금강의 분류는 이원면 백지리로 흘러들어 북류하다가 용방리에서 서류해 옥천읍에서 다시 북류해 산간계곡을 곡류하다가 안남면 둔주봉(屯駐峰) 부근에서 대청호로 흘러든다.

보청천은 문암천(文巖川)·항건천(恒乾川)·삼가천(三街川)·예곡천(禮谷川)·장연천(長連川) 등의 지류를 합류해 청성면 고당리에서 금강 본류에 흘러드는데 평야의 대부분이 옥천분지에 전개되고 있다.

연평균 기온 12.3。C, 1월 평균기온 -2.7。C, 8월 평균기온 25.3。C이며, 연 강수량은 1,245.2㎜이다. 기온교차가 심한 대륙성기후를 나타내고 있다.

역사

군북면 용호리에서 구석기시대의 뗀석기[打製石器]와 형체조각품이 발견되었고, 신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이 금강 지류인 보청천 유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특히 동이면 석탄리 안터에 있는 고인돌떼는 북방식[卓子式]과 남방식[碁盤式]이 한 지역에 나타나며, 선돌의 특별가공 흔적이 있어 앞으로의 연구가 기대된다.

삼한시대에는 마한 땅으로, 지금의 동이면 청마리에 있는 솟대·장승·원탑 등은 이때부터 내려오는 민속신앙의 전승으로 생각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로서 양국의 싸움이 치열할 때는 교대로 점령하던 격전지였다. 486년(소지마립간 8) 신라가 이곳에 굴산성(屈山城)을 개축해 국경선을 다졌다. 관산성을 비롯해 지금의 옥천읍을 중심으로 분포된 여러 산성터는 이 지역이 삼국시대의 요충지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이 군은 본래 옥천·청산·이원·안읍을 합한 군으로서, 옥천은 신라 때 고시산군(古尸山郡), 청산은 굴산현(屈山縣), 이원은 소리산현(所利山縣), 안읍은 아동혜현(阿冬兮縣)이었다가 757년(경덕왕 16) 관성군(管城郡)·기산현(耆山縣)·이산현(利山縣)·안정현(安貞縣)으로 각각 개칭되었다. 뒤에 기산현은 삼년군(三年郡: 지금의 보은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초에 기산현은 청산현(靑山縣)으로 개칭되어 상주에 속했으며, 안정현은 안읍현(安邑縣)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현종 9) 관성군·이산현·안읍현이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의 관할이 되었다. 1143년(인종 21) 관성군이 현으로 강등되어 현령이 파견되었다.

1182년(명종 12) 이민(吏民)이 현령 홍언(洪彦)을 잡아 옥에 가두고 민란을 일으킨 사건으로 폐현되었다. 1313년(충선왕 5) 지옥주사(知沃州事)로 승격되었고 경산부 관할인 이산·안읍·양산(陽山) 등 3현이 이곳에 분속되었으며, 지금의 군서면 금천성에 있는 관청을 지금의 옥천읍 죽향리로 이전하였다. 1390년(공양왕 2) 청산현에 감무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옥천군(沃川郡)으로 개칭되었고 청산현과 함께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이관되었다. 1414년 청산이 황간에 합쳐져 황청현(黃靑縣)이라 했다가 다시 분리되어 청산현으로 복구되었다.

1584년(선조 17) 조헌(趙憲)이 안읍에 와서 후율당(後栗堂)을 짓고 인재를 양성해 임진왜란 때는 많은 의병이 배출되었다. 조선 중기의 대유학자이자 노론의 영수였던 송시열(宋時烈)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죽음을 당한 김문기(金文起), 임진왜란 때 백의종군했던 곽자방(郭自防) 등이 이곳 출신이다.

1895년 공주부 옥천군·청산군으로 개편되었다가 1896년 충청북도 옥천군·청산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청산군이 옥천군에 통합되었고, 학산면·양산면·용화면이 영동군에 이속되었다.

1919년 3월 27일 허상기(許相基)·허상구(許相球) 등이 주동해 이원장터에서 수백 명이, 청산면에서는 3월 26일과 4월 1·4일 3회에 걸쳐 수천 명이, 군서면에서는 김순구(金舜九)의 주동 하에 50여 명이 3·1운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이내면과 이남면을 합해 이원면으로 고치고, 청서면과 청남면을 합해 청성면으로 고쳐 모두 9면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8월 13일 옥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7월 1일 이원면 우산리가 동이면에, 안남면 오덕리·인포리와 군북면 장계리가 안내면에, 안내면 용호리·막지리가 군북면에 편입되었다.

1989년 1월 1일에는 안내면 오덕리 일부가 보은군 삼승면으로 편입되었으며, 1990년 4월 1일 안남면 오대리와 안내면 장계리 일부가 옥천읍에 편입되었다. 1995년 군북면의 구건리가 국원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유물·유적

군북면 용호리와 막지리의 구석기 유적에서는 뗀석기가 발견되었다. 동이면 석탄리 안터에는 옥천 석탄리 고인돌(충청북도 기념물, 2010년 지정)와 입석이 있는데, 안터 지석묘는 전형적인 남방식 지석묘의 형태를 보여준다. 이 밖에 동이면의 옥천 석탄리 선돌(충청북도 기념물, 2010년 지정)을 비롯해 군서면·청성면·안내면·청산면 등지에 많은 입석과 지석묘군이 있다. 군서면 동평리, 옥천읍 하계리, 동이면 석탄리의 청동기유적에서는 마제석검·석촉 등이 출토되었다.

옥천읍 서정리 서산성(西山城) 일대의 백제고분군을 비롯해 여러 곳에 삼국시대의 고분군이 있다.

산성으로는 군서면 월전리에 관산성(管山城), 군북면 한평리에 고리산성[環山城], 청성면 산계리에 저점산성(猪岾山城), 이원면 평계리에 마니산석성(馬尼山石城), 군서면 은행리에 성치산성(城峙山城) 등이 있다. 그리고 군북면 환평리의 환산(環山), 이원면 이원리의 월이산(月伊山), 청산면 지전리의 덕의산(德義山)에는 각기 봉수대가 있다.

한편 군서면 사정리에는 사기골이라는 요지(窯址)가 있는데, 여기서 구운 그릇이 곱고 아름다워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그릇을 징발하자 그릇 두 섬을 감추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그릇을 파갔다고 한다.

불교문화재로는 옥천읍 삼청리 용암사(龍巖寺)의 용암사 마애여래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용암사 동·서 삼층석탑(보물, 2002년 지정)·용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98년 지정), 이원면 이원리의 옥천 두암리 삼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안내면 현리사지의 삼층석탑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옥천읍 교동리의 옥천향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상계리의 옥주사마소(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7년 지정), 청산면 교평리의 청산향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가 있다.

그리고 군북면 이백리의 옥천 이지당(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77년 지정), 이원면 용방리의 옥천 경현당(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7년 지정), 안남면 도덕리의 덕양서당(德養書堂), 이원면 강정리의 삼계서원(三溪書院), 이원리의 창주서원(滄洲書院)과 묘정비(廟庭碑), 안내면 도이리의 옥천 후율당(충청북도 기념물, 1976년 지정), 종미리의 경률당(景栗堂) 등이 있다.

사당으로는 이원면 용방리의 원덕사(遠德祠)·용문영당(龍門影堂), 옥천읍 삼청리의 삼청사(三靑祠)가 있다. 그리고 동이면의 옥천 청마리 제신탑(충청북도 민속문화재, 1976년 지정)이 있다.

용문영당은 본래 용문서당으로 송시열(宋時烈)이 소년시절에 학문을 닦던 곳이다. 1697년(숙종 23) 송시열의 영정을 봉안하고 용문영당이라 했는데, 1871년(고종 8) 철폐된 것을 1971년에 중수하였다. 삼청사는 조선 중종 때 승문원정자를 역임한 곽시(郭詩)를 향사(享祀)하고 있다.

옥천읍 교동리에는 육영수 생가(충청북도 기념물, 2002년 지정)가 있다.

누정으로는 동이면 금암리의 옥천 양신정(충청북도 기념물, 1978년 지정), 청산면 교평리의 은산정(隱山亭), 안남면 연주리의 독락정(獨樂亭), 군서면 동평리의 관풍정(觀豊亭) 등이 있다.

독락정은 1607년(선조 40)경에 건립한 정자로, 아래로는 강물이 흐르고 위로는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싸 주변 경관이 매우 수려해 선비들이 즐겨 놀던 곳이다. 관풍정은 봄이면 피어나는 팽나무 잎을 보고 그 해의 풍년을 점치고, 가을이면 들판의 풍작을 바라보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묘와 비로는 이원면 백지리에 옥천 김문기 유허비(충청북도 기념물, 1984년 지정), 용방리에 송시열의 유허비인 옥천 송시열 유허비(충청북도 기념물, 1979년 지정), 이원리에 창주서원 묘정비(충청북도 기념물, 1996년 지정), 동이면 평산리에 이기윤 망북비(충청북도 문화재자료, 1996년 지정), 안남면 도농리에 조헌 신도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96년 지정)와 조헌의 묘인 조헌 묘소(충청북도 기념물, 1976년 지정)와 신도비, 옥천읍 삼양리에 옥천 척화비(충청북도 기념물, 1976년 지정)가 있다.

그 밖에 군북면 증약리에 옥천 청석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가 있다.

동이면 금암리에는 전식초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92년 지정)이 보존되어 있다.

이원면에는 금강의 어름치(천연기념물, 1972년 지정)가 있으며, 청산면 판수리에는 수령 400년 된 왕버드나무가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옥천향교와 청산향교가 있었다. 옥천읍 교동리에 있는 옥천향교는 1398년(태조 7)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그 뒤에 재건하였다. 청산향교는 1398년에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1602년(선조 35)에 백운동에 재건했다가, 1654년(효종 5)에 현재의 청산면 교평리로 이전하였다.

이 밖에 1621년(광해군 13) 이원면 강청리에 삼계서원이 설립되었다가 1657년에 철폐되었다. 1636년(인조 14) 이원면 이원리에 설립된 창주서원은 고종 때 철폐되고 묘정비만 남아 있다.

또한, 1701년(숙종 27) 청산면 하서리에 세워졌던 덕봉서원(德峰書院)과 1711년 이원면에 세워졌던 호탄서원(虎灘書院)은 고종 때 철폐되었다. 1765년(영조 41) 동이면 금암리에 세워졌던 목담서원(鶩潭書院)도 고종 때 철폐되고 1936년에 영당만 복건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창건된 덕강서원이 안남면 도덕리에 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4년에 사립신명학교(私立新明學校)가 설립되어 뒤에 청산초등학교가 되었다. 1909년에는 사립창명보통학교(私立彰明普通學校)가 개교해 뒤에 죽향초등학교가 되었다.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12개교, 중학교 5개교, 고등학교 3개교와 충북도립대학이 있다.

또한 옥천문화원이 있어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조헌과 칠백의총의 넋을 기리는 군의 향토예술제인 중봉충렬제(重峰忠烈祭)를 주관하는 등 지역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그 밖에 향토문화동호회인 관성동호회(管城同好會)가 1984년에 발족되어 향토문화 조사와 수집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옥천향지(沃川鄕誌)』를 비롯해 옥천문화원과 함께 『옥천민속지(沃川民俗誌)』를 발간하였다.

이원면 용방리에는 옥천청소년야영장이 있어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심신 단련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민속

이 고장의 민속놀이로는 윷놀이·널뛰기·줄다리기·달집태우기·그네뛰기·호미씻이 등이 있다. 이 중 달집태우기는 정월 보름날 저녁에 짚을 가지고 마을 뒷산에 올라가 소나무 가지와 짚으로 조그마한 집을 만들어놓고 불놀이를 하다가 보름달이 떠오르면 집을 태우면서 달구경을 하는 놀이이다.

또한, 7월 백중 무렵에 행하는 호미씻이는 농사일을 마치고 호미를 씻어두는 행사이다. 이 날은 온 마을사람들이 모여 농악 기구인 풍장을 치면서 즐겁게 논다. 이 밖에 아이들 놀이로 제기차기와 돈치기 등이 있지만 가장 성행하는 아이들 놀이는 닭싸움이다.

이 고장의 동제로는 산신제도 있지만, 마한시대 소도신앙(蘇塗信仰)의 유속으로 보이는 탑신제가 널리 분포되어 있어 주목된다. 이 탑신제의 대표적인 예로는 제신탑(祭神塔)이 있는 동이면 청마리의 탑신제를 들 수 있다.

마을 앞에 지름 5m, 높이 2.3m의 원추형으로 돌을 쌓은 신당인 탑이 있고, 그 옆에 긴 장대 끝에 나무로 새를 깎아 꽂은 솟대가 있는데 일명 짐대라고도 한다. 매년 정월 열나흗날 밤에 산신제를 지내고 나면 보름날 아침에 이 탑 앞에 제물을 차려놓고 마을 남자들이 모여 유교식으로 제를 지낸다. 탑신제가 끝나면 장승제를 지내고 풍장을 치면서 하루를 즐긴다.

설화·민요

이 고장에는 「청석교전설(靑石橋傳說)」·「오뉘힘내기전설」·「단혈전설(斷穴傳說)」·「말무덤전설」·「홍수전설」·「떠내려온 산 전설」·「사찰연기설화」, 그리고 송시열과 김옥균(金玉均)에 대한 인물전설 등이 두루 전승되고 있다.

「청석교전설」은 강감찬(姜邯贊) 장군이 경주부윤으로 부임하는 도중 이 다리를 건널 때의 전설이다. 고을 백성들이 지나가는 장군에게 모기를 베어줄 것을 간청하였다. 이에 장군이 모기떼에 물러나지 않으면 종족을 멸종시키겠다고 호통을 쳤더니 그 뒤 이 일대에는 모기가 없어졌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떠내려온 산 전설」은 청성면에 위치한 독산(獨山)에 연관된 전설이다. 이 산은 원래 속리산 법주사에 있었는데 홍수가 나서 이곳으로 떠내려 왔다. 그 뒤 법주사에서는 해마다 독산의 지세(地稅)를 받아갔다. 어느 젊은 현감이 부임하자 독산이 필요 없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하여 그 뒤로 지세를 물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는 옥천읍 삼청리의 「절골지명유래전설」은 욕심 많은 중이 쌀 나오는 구멍을 쑤셨다가 쌀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 망했다는 전설이다. 안내면에는 탑산골이 있다.

옛날에 용문산에 사는 용과 뱀이 싸웠는데 뱀이 힘이 부쳐서 ‘피신골(용문재)’로 도망치고, 용은 뱀과 싸워 이긴 뒤로 ‘승지골’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이 전설에 따라 절과 석탑을 세웠는데 이 절은 빈대의 극성으로 승려들이 살 수 없어 결국 폐사하고 말았다고 한다. 지금도 기와 조각이 발견되며 4층의 석탑은 어디론가 옮겨졌다고 한다.

이 밖에 하늘나라에서 귀양 온 공주와 장수의 비극적 사랑이 얽혀 있는 「문바위와 장수발자국전설」, 이여송(李如松)이 등장하는 「말무덤전설」, 비극적 결말이 아니라 오뉘간의 우애로 행복한 결말을 이끌어내는 청성면 산성(山城)에 얽힌 「오뉘힘내기전설」, 산의 혈을 자르려고 쇠를 박았다는 「철봉산전설」, 백제와 신라의 격전지를 증명하는 「장군묘전설」 등이 있다.

이 군의 민요는 노동요로서 「가래질노래」와 「지정다지기노래」 및 농업노동요가 있다. 의식요로서는 「상엿소리」가 있다. 「가래질노래」는 가래로 흙을 떠 옮기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에-일성가래야/ 추로지신심에 성김을 받아/ 에-일성가래야/ 신농씨의 가르침을 받아/ 에-일성가래야/ 우리대본에 방둑가래로다/ 서대산하 너른들에/ 에-일성가래야/ 오곡풍년이 들리로다/ 에-일성가래야/ 이가래한삽에 만년뚝이로다……”는 「느린가래」이다. 이에 대해서 「자진가래」도 있다.

「지정다지기노래」는 집터를 다지면서 일을 능률적으로 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에헷드럿다 지정이야/ 응천상지 상광이요/ 에헷드럿다 지정이야/ 비인간지 오복지로다/ 에헷드럿다 지정이야/ 한번다져 천석이면/ 에헷드럿다 지정이야……조상님이 물린터전/ 에헷드럿다 지정이야/ 우리네힘으로 지켜가세/ 에헷드럿다 지정이야……” 하는 「지정다지기노래」는 「지경소리」라고도 한다.

이 고장의 「시집살이노래」는 시집가서 열심히 일했으나 시집식구들의 구박에 견디다 못해 친정에 왔으나 친정부모는 죽고, 오라버니가 하는 말이 “산이막혀 못왔더냐 물이깊어 못왔더냐/ 어제아래 왔더라면 부모얼굴 뵈올것을/ 은가락지 끼던손에 호미자루 웬말인가/ 감공갓신 신던발에 엄집시기 웬말인가/ 비단공단 감던허리 석새무명 웬말인가……”라고 하여 시집살이의 서러움을 노래한다.

또한 “비야비야 오지마라 우리언니 시집간다/ 비야비야 오지마라 가마꼭지 물흐른다/ 비야비야 오지마라 초록치마 얼룩진다/ 비야비야 오지마라 비단저고리 다졌는다/ 비야비야 오지마라 대추꽃이 떨어지면/ 보은청산(報恩靑山) 새악씨들 시집못가 눈물난다.”라는 노래도 있다.

이 밖에 「오륜요(五倫謠)」·「방구타령」·「장타령」·“형님오네 형님오네” 하는 노래 등이 전승되고 있다.

산업·교통

이 군의 토지 이용은 총 면적 537.10㎢ 중 임야 346.58㎢, 밭 55.68㎢, 논 44.91㎢, 기타토지로 되어 있다. 1970년대 중반까지도 주곡 위주의 영농이었으나 최근에는 교통이 편리하고 대전과 거리가 가까워 채소·과실 등의 근교농업 형태로 전환되고 있다.

경제작물 재배현황을 지역별로 보면, 옥천읍·동이면·군서면을 중심으로 포도·복숭아·딸기·버섯, 이원면을 중심으로 상추·시금치·사과·수박, 군북면을 중심으로 상추·시금치·부추·참외·토마토·배, 안남면·안내면·청산면·청성면을 중심으로 고추·마늘·참깨·인삼·잎담배·버섯·옥수수 등이 주산지를 이루고 있다.

가축으로는 한우·젖소·돼지·닭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다. 비금속 광구가 가행되어 연간 석회석 2만 6767M/T, 장석 3만 2206M/T을 생산하고 있다. 관내에는 옥천읍·동이면·청산면·이원면 등의 농공단지가 있어 총면적 927,609㎡에 79개의 입주업체가 운영되고 있다.

관내에는 금속산업 업체 16개의 종업원 273명, 종이·인쇄출판 업체 8개의 126명, 식료품 업체 46개의 987명, 섬유 업체 19개의 354명, 화학·섬유·고무·플라스틱 업체 39개의 674명, 나무·가구 업체 3개의 23명, 비금속광물 업체 5개의 76명 등 총 200개의 업체에 4,532명의 종업원이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지역별로 보면 대부분의 제조업체는 옥천읍·동이면·군서면에 위치하고 있다. 1980년 초반까지는 섬유·화학·기계공업이 주였으나 1980년 후반에 와서는 화학·기계공업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농가부업단지로는 장연단지·하서단지·하예곡단지 등이 있다.

정기시장은 1972년까지도 8개였으나 1979년에는 6개로 줄었고, 지금은 5·10일의 옥천읍 옥천장, 2·7일의 청산장과 이원장 등 3개만이 남아 있다. 옥천읍에는 정기시장 이외에도 1개의 상설시장이 있어 주변지역 주민이 이용함으로써 청산장과 이원장은 쇠퇴하고 있다.

시장별 이용 현황을 보면, 일용품과 식료품은 옥천읍·동이면·군서면·안남면 주민의 대부분이 옥천시장을 이용하고 있고, 청산면·청성면 주민은 주로 청산시장, 군북면 주민의 약 70%는 대전시장, 이원면 주민의 반은 이원시장을 이용하고 있다.

의류품 구매는 이원면·군북면 주민의 3분의 2는 대전시장, 청성면과 청산면 주민의 대부분은 청산시장을 이용하고, 그 외의 지역은 대부분 옥천시장을 이용하고 있다.

교통은 남부에 경부선 철도의 지탄역과 이원역이 있고, 경부고속도로의 옥천인터체인지가 있으며, 옥천읍을 중심으로 보은읍·대전시 간에 시내버스가 운행되고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청산면과 청성면의 옥동권은 보은읍과 영동읍 간에는 교통이 편리하나, 상대적으로 옥서권에 비해서는 불편한 편이다.

관광

옥천군에는 예로부터 청산(靑山)8경·서화(西華) 8명당, 그리고 군북의 추소(楸沼)8경 등 명승지가 많다.

이 중 청산팔경으로는 망일암의 새벽 종소리(望日曉鐘), 백운리에 돌아오는 백학군(白雲歸鶴), 보청천 잔디밭에 내리는 이슬(芝田細雨), 하서리 하동의 저녁 짓는 연기(紫霞暮煙), 고학정보(高學汀洑)의 밤고기 잡는 불빛(鶴汀漁火), 죽포의 대나무밭에 부는 맑은 바람(竹浦淸風), 봉황대의 깊은 달빛(鳳凰沆日), 갈전 고개의 폭포(葛嶺飛瀑) 등이 있다. 군북의 8명소로는 이지당·청석교·용호담(龍虎潭)·오봉산·소금강·감로사(甘露寺)·명월암·장계교 등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지역은 금강유원지, 장룡산의 자연휴양림, 장계국민관광지와 서화천 유역 등이다. 금강유원지와 동대휴게소는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개발된 관광지로, 특히 금강유원지는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장계국민관광지는 안내면 장계리의 6만 평에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었고 산수가 수려해 군 내 제2의 관광지를 이루고 있다. 군서면 금산리의 장룡산 자연휴양림에도 각종 편의시설이 있고 자연경관이 수려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이 외에도 청성면 장수리에는 천연석회동굴인 강절굴이 있다. 역사유적지로는 군서면 월전리의 구천(狗川)과 식장산의 탄현 등이 있다.

한편 1996년에는 정지용 생가를 복원하고 곁에 정지용 문학관을 지어 문화관광 자원으로 삼고 있다.

읍·면
  1. 옥천읍(沃川邑)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47.56㎢, 인구 2만 9764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문정리이다. 본래 옥천군청이 있었으므로 군내면(郡內面)이라 하였으며 18개 리(里)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군남면(郡南面)의 15개 리와 군내면의 마항리 일부를 병합해 군내면과 군남면의 이름을 따서 내남면(內南面)이라 하여 17개 리로 개편되었다. 1917년 옥천면으로 개칭했으며 1949년 군서면의 서정·옥각 2개 리와 동이면의 수북리를 편입해 옥천읍으로 승격되었고, 1990년 안남면 오대리를 편입하였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분기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동부는 철봉산(鐵峰山, 450m), 서부는 마성산(馬城山, 410m)이 솟아 있어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을 이루고 있다. 옥천천(沃川川)이 가풍리에서 발원해 북서쪽으로 흘러 읍의 중심부를 지나 군서면의 서화천(西華川)으로 흘러든다.

주요 농산물은 미곡을 비롯해 사과·포도·감 등과 채소 등을 재배하는 근교농업이 활발하다. 가축은 소·닭·개·토끼·돼지 등을 사육하고, 임산물은 표고버섯·산나물·도토리 등을 생산하고 있다. 옥천농공단지에서는 총면적 28만 2235㎡, 24개 입주업체에서 여러 가지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경부선 철도와 경부고속도로가 읍을 동서로 관통하고 국도가 남북으로 통해 교통이 매우 편리하며, 대전과의 교통이 편리해 대전생활권에 속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삼청리의 삼청사와 용암사쌍석탑·마애불, 교동리의 옥천향교, 서정리의 서산성, 상계리의 사마소 등이 있다.

죽향리(竹香里)·문정리(門井里)·상계리(上桂里)·하계리(下桂里)·교동리(校洞里)·수북리(水北里)·동안리(東岸里)·매화리(梅花里)·구일리(九逸里)·서대리(書垈里)·가풍리(加豊里)·삼청리(三靑里)·대천리(大川里)·마암리(馬巖里)·양수리(兩水里)·금구리(金龜里)·장야리(長夜里)·삼양리(三陽里)·서정리(西亭里)·옥각리(玉覺里)·오대리(五垈里) 등 21개 리가 있다.

  1. 군북면(郡北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65.63㎢, 인구 3,11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이백리이다. 본래 옥천읍 내의 북쪽이 되므로 군북일소면(郡北一所面)이라 하여 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군북이소면의 11개 리, 군서일소면의 각신리 일부를 병합해 군북면이라 하여 13개 리로 개편되었다. 1973년 장계리가 안내면으로 편입되고 안내면의 용호리와 막지리가 이 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에는 구건리가 국원리로 개칭되었다.

서부에 꽃봉(285m)·꾀꼬리봉·마달봉, 서부의 중앙부에 환산(環山, 581m), 동부의 면 경계에 비교적 높은 산지가 솟아 있다. 북부는 대청호의 상류를 이루고 있어 평야는 적은 편인데, 1978년 대청댐의 건설로 경지면적의 33%가 감소되었다.

산간지역은 잡곡과 잎담배 재배를 하고 있으나 영세농을 면치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대전의 근교인 이백리·자모리·증약리 등에는 시설원예작물을 재배하고 있어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초지가 풍성해 농가의 대부분이 한우를 사육하고 개·닭·양·젖소 등의 가축도 사육하고 있다.

고속도로·국도·철도가 이백리와 중약리를 가로지르고 있고, 옥천읍과 대전 간에는 시내버스가 운행해 교통은 편리하다. 대청댐 유역의 석호리·대정리·이평리·환평리·추소리 등은 경관이 아름다워 관광지로서 각광받고 있다.

문화유적은 이백리의 이지당, 중약리의 청석교 및 환산의 성지와 봉수지, 자모리의 요지, 막지리의 손대창(孫大昌)효자문 등이 있다. 이백리와 군서면 오동리 경계에는 노고산성(老姑山城)이 있고, 그 외에도 석호리의 명월암(明月巖)은 아름다운 경승지이다.

이백리(二栢里)·자모리(自慕里)·증약리(增若里)·대정리(大亭里)·항곡리(恒谷里)·환평리(環坪里)·추소리(楸沼里)·지오리(支五里)·국원리(菊園里)·소정리(疎亭里)·막지리(莫只里)·용호리(龍湖里)·이평리(梨坪里)·석호리(石湖里) 등 14개 리가 있다.

  1. 군서면(郡西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5.95㎢, 인구 2,32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동평리이다. 본래 옥천읍내 서쪽이 되므로 군서일소면(郡西一所面)이라 하여 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군서이소면(郡西二所面)의 13개 리, 군북면의 백석리와 전라북도 진산군(珍山郡) 동이면(東二面)의 검동 일부를 병합해 군서면이라 하여 12개 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서정·옥각 2개 리가 옥천읍으로 편입되었다.

동쪽에 장룡산(壯龍山, 656m), 서쪽에 성치산(城峙山, 350m), 서북의 대전광역시 경계에 식장산(食藏山, 598m)이 솟아 있다.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의 국사봉에서 발원한 서화천이 북쪽으로 흘러 면의 동부와 군북면의 중앙부를 관통해 이평리에서 금강으로 흘러들고 있는데, 서하천 유역에는 넓은 곡저(谷底)에 비옥한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미곡이나 1970년 초부터 딸기·포도·표고버섯 등을 재배해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고, 가축으로는 소·닭·돼지·토끼를 많이 사육하고 있다.

옥천읍∼충청남도 금산 간 국도가 중앙부를 관통하고 있고 옥천읍 시내버스가 사양리와 금천리까지 운행되고 있다. 서화천과 금천천(金川川)은 계곡과 맑은 물로 산수가 아름다워 봄부터 늦은 여름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다.

문화유적은 동평리의 반공투사위령비·충효비와 동평성지, 금산리의 마성(馬城)산성지·김건(金建) 효자문·김영복(金永復) 효자문·옥금 효녀문, 사정리의 청자요지·백자요지, 은행리의 성치산성지, 상중리의 구절사(龜截寺), 하동리의 김순구(金舜九) 순절비 등이 있다. 오동리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탄현(炭峴: 숯고개)이 있다.

동평리(東坪里)·금산리(金山里)·사정리(沙亭里)·상지리(上地里)·은행리(銀杏里)·사양리(舍陽里)·상중리(上中里)·하동리(下東里)·오동리(梧桐里)·월전리(月田里) 등 10개 리가 있다.

  1. 동이면(東二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0.25㎢, 인구 3,35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평산리이다. 본래 옥천군청 동쪽이 되므로 군동면(郡東面)이라 하여 1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남이소면(伊南二所面) 의 6개 리를 병합해 군동과 이소의 이름을 따서 동이면이라 하여 10개 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수북리를 옥천읍에 넘겨주었고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원면 우산리를 편입하였다.

동쪽에 200∼400m의 산릉이 연속되고 금암리와 석탄리 방향으로 산륵면이 발달해 있다. 남동부에는 금강이 산간계곡을 감입곡류하고 있다. 대륙성기후의 성격이 강하며 여름에는 집중호우로 농경지가 침수하는 경우가 많고 봄과 가을에는 안개가 잦다.

주요 농산물은 미곡이며, 세산리·적하리·금암리는 포도의 주산지를 이루고 있다. 가축으로는 소·닭·개·토끼를 많이 사육하고, 임산물로 호두·대추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 동이농공단지는 총면적 16만 1029㎡, 입주업체 26개에서 기계·전자·섬유·고무 및 플라스틱 등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와 일반국도가 중앙부를 동서로 관통하고, 평산∼세산간의 지방도, 적하∼조령간의 국도가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석탄리의 안터 고인돌·선돌, 금암리의 양신정, 청마리의 탑신제당, 적하리의 고인돌, 남곡리와 세산리의 선돌, 적하리의 학사골선돌·용죽선돌 등이 있다. 조령리의 금강유원지는 1970년에 준공된 금강변의 유일한 경부고속도로 휴게소로서 주변 경치와 수중 댐의 호수가 어울려 피서와 관광을 즐길 수 있다.

평산리(坪山里)·세산리(細山里)·적하리(赤下里)·금암리(金巖里)·조령리(鳥嶺里)·청마리(靑馬里)·우산리(牛山里)·지양리(紙羊里)·석탄리(石灘里)·남곡리(南谷里) 등 10개 리가 있다.

  1. 안남면(安南面)

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1.77㎢, 인구 1,45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연주리이다. 본래 안읍현(安邑縣) 지역으로 1895년에 안읍현의 남쪽이 되므로 안남면이라 하여 2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보은군 삼승면의 시촌을 병합해 10개 리로 개편되었다. 1973년 오덕리와 인포리를 편입하였다. 1990년 오대리를 옥천읍에 넘겨주었다.

남부에 둔주봉(屯駐峰, 384m)과 국사봉(國師峰, 400m)이 솟아 있다. 연주천(蓮舟川)이 도농리에서 발원해 서남쪽으로 흘러 청정리에서 안남저수지를 이루고 연주리에서 금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안남저수지를 이용해 연주리·도덕리 일대에는 논농사가 이뤄지고 있으나 최근에는 마늘 재배도 활발하다. 잎담배·고추·참깨·포도·딸기·인삼 등의 경제작물도 재배하여 소득 증대에 힘쓰고 있다. 가축으로는 닭·소·개·돼지 등을 사육하고 임산물로는 도토리·산나물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서부의 면 경계 가까이에 옥천∼보은 간의 국도와 인포리∼지수리 간의 군도가 있으나 교통은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도농리의 조헌 묘소·신도비·고인돌, 청정리의 선돌·조천성지(助川城址), 도덕리의 덕양서원, 화학리의 화학성지 등이 있다. 대청댐 상류인 연주리에는 독락정(獨樂亭)이 있다.

연주리(蓮舟里)·종미리(從薇里)·지수리(池水里)·도덕리(道德里)·청정리(淸亭里)·화학리(禾鶴里)·도농리(道農里) 등 7개 리가 있다.

  1. 안내면(安內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64.41㎢, 인구 2,10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현리이다. 본래 안읍현(安邑縣) 지역으로 1895년 안읍현의 읍내가 되므로 안내면이라 하여 1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보은군 수한면의 질신리 일부와 회인군 동면의 노성리 일부를 병합해 12개 리로 개편되었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용호리와 막지리가 군북면으로 편입되고 군북면 장계리, 안남면 오덕리와 인포리가 안내면에 편입되었다.

동부에 덕대산(德垈山, 500m)·금릉산(金稜山, 625m)이 솟아 있다. 월외천(月外川)이 월외리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흘러 도율리에서 인포천(仁浦川)에 합류해 금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월외천 유역과 서대저수지 부근에는 좁은 하곡평야가 있을 뿐 대부분의 지역은 해발 200∼400m의 산지이다.

대륙성기후의 성격이 강하며 여름철에는 집중호우로 홍수의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 봄에는 높새바람으로 농작물의 피해가 크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이나 최근에 현리와 정방리에는 옥수수, 동대리와 오덕리에는 사과, 인포리·현리·오덕리·도율리에는 인삼 등의 재배가 활발하다. 가축사육으로는 월외리에 한우와 양돈 사육단지가 조성되어 군 내에서 가장 많이 사육하고 있다.

옥천∼보은 간에 국도 37호선이 지나고 현리∼오덕, 용촌∼신대, 답양∼도율 간의 지방도와 인조∼안남, 거수, 현리∼월외 간의 군도가 있어 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장계리수영장은 맑은 물과 고운 모래, 주변의 경치가 어울린 여름철 피서지가 되고 있다. 동대리의 육강정은 보은군 속리산을 찾는 관광객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문화유적은 도리리의 후율당, 답양리의 가산사 불상, 정방리와 인포리의 고인돌, 용촌리의 선돌 등이 있다.

현리(縣里)·정방리(正芳里)·도리리(桃李里)·동대리(東大里)·서대리(西大里)·오덕리(五德里)·인포리(仁浦里)·장계리(長溪里)·방하목리(方下目里)·도율리(道栗里)·월외리(月外里)·용촌리(龍村里)·답양리(畓陽里) 등 13개 리가 있다.

  1. 이원면(伊院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66.38㎢, 인구 4,54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강청리이다. 본래 신라 초에 소리산현(所利山縣)이라 부르다가 757년(경덕왕 16)에 이산현(利山縣)이라 했으며, 1895년에 이산현의 안쪽이 되므로 이내면(伊內面)이라 하여 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남일소면(伊南一所面)과 이남이소면(伊南二所面)의 각 일부와 영동군 서일면(西一面)의 일부를 병합해 6개 리로 개편되었다. 1929년 지방행정구역 변경에 의해 이남면(伊南面)의 10개 리를 병합해 이원의 이름을 따서 이원면으로 개칭하였다. 1973년 우산리가 동이면으로 편입되었다.

북부에 도덕봉·구둔치(九屯峙, 271m)·철봉산(鐵峰山, 449m), 서부에 장룡산(壯龍山, 656m), 동부에 월이산(月伊山, 551m), 동남에 마니산(摩尼山, 640m) 등이 솟아 있다. 평계리의 마니산에서 발원한 이원천(伊院川)이 북쪽으로 흘러 중앙부를 관통해 이원리 북쪽에서 금강으로 흘러든다.

개심리의 개심저수지는 1932년에 착공해 1955년에 완공된 몽리면적 271㏊의 저수지로서 부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장찬리의 장찬저수지는 몽리 면적이 523㏊로서 군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을 비롯해 과수묘목을 많이 생산하고 있고, 금강변의 지탄리와 원동리에서는 우엉·마·수박·배추·오이·무 등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가축으로는 닭·개·소·돼지 등을 많이 사육하며, 임산물로는 표고버섯·도토리·산나물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이원농공단지는 총면적 14만 1,618㎡로서, 10개의 입주업체에서 섬유·기계·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 등의 제품을 생산한다.

경부선 철도와 국도가 관통하고 버스가 수시로 운행되어 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이원리의 삼층석탑·마니산성지·월이산봉수·토성지·창주서원(滄州書院) 묘정비, 용방리의 경현당과 선돌, 백지리의 김문기 유허비, 원동리의 적등루가 있다.

건진리(乾榛里)·장찬리(長贊里)·강청리(江靑里)·윤정리(潤亭里)·의평리(義坪里)·개심리(開心里)·평계리(坪溪里)·수묵리(水墨里)·지정리(池亭里)·미동리(美洞里)·이원리(伊院里)·원동리(院洞里)·백지리(白池里)·지탄리(池灘里)·용방리(龍坊里) 등 15개 리가 있다

  1. 청산면(靑山面)

군의 동단부에 위치한 면. 면적 72.37㎢, 인구 3,29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지전리이다. 본래 청산군청이 있었으므로 군내면(郡內面)이라 하여 1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면(東面)의 7개 리, 북면(北面)의 13개 리, 군내면의 국화동을 병합해 청산군의 이름을 따서 청산면이라 하고, 옥천군에 편입되어 18개 리로 개편되었다.

서북에 삼승산(三升山, 574m), 동부에 팔음산(八音山, 762m), 동남에 천금산(千金山, 465m), 남부에 천관산(天冠山, 440m), 서북부에 도덕봉(道德峰. 543m)이 솟아 있어 산지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북서부에는 넓은 산록면이 발달되어 있다. 신청천(新靑川)이 교평리에 이르러 서쪽으로 꺾이면서 중앙을 가로질러 금강으로 흘러든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잎담배·인삼·고추·참깨를 많이 생산하며, 임산물로는 밤·호두·대추·도토리 등을 생산한다. 청산농공단지는 총면적 6만 5,390㎡, 4개의 입주업체에서 식료품·전기제품 등을 생산하고 있다. 보은∼영동읍 간의 국도와 관기∼심천 간의 지방도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교평리의 청산향교·고인돌, 하서리의 선돌, 지전리의 덕의산(德義山)봉수·밀양손씨열녀문, 예곡리의 박문강(朴文綱) 충신묘, 삼방리의 양천룡(梁天龍) 효자문, 의지리의 풍천임씨 열녀문·도명화(都命華) 효자비 등이 있다. 신청천 유역에는 여름철에 많은 피서객들이 찾으며, 예로부터 청산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청산8경이 있다.

백운리(白雲里)·지전리(芝田里)·교평리(校坪里)·하서리(下西里)·신매리(新梅里)·대덕리(大德里)·장위리(長位里)·한곡리(閑谷里)·인정리(仁政里)·판수리(板藪里)·효목리(孝木里)·의지리(義旨里)·예곡리(禮谷里)·삼방리(三方里)·명치리(明峙里)·법화리(法禾里)·대성리(大成里)·만월리(萬月里) 등 18개 리가 있다.

  1. 청성면(靑城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82.77㎢, 인구 2,43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산계리이다. 본래 청산군청의 서쪽이 되므로 서면(西面)이라 하여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면(北面)의 하장련동과 보은군 삼승면 원남리의 일부를 병합해 청서면(靑西面)이라 하고 옥천군에 편입되어 8개 리로 개편되었다가 청남면(靑南面)의 9개 리를 병합해 청산과 산성의 이름을 따서 청성면이라 하였다.

북부에 관모잠(冠帽岑, 509m), 동북에 만월령(萬月嶺), 중앙에 국사봉이 솟아 있고, 남부에도 높은 산맥이 있어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예곡천(禮谷川)이 팔음산(八音山)에서 발원해 서쪽으로 흘러 보청천으로 들어가고 있으나 감입곡류 하천으로서 동부의 산계리 일대를 제외하면 평야는 거의 없는 편이다. 따라서 농경지는 매우 협소하며 논보다 밭이 많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을 비롯해 서류·잡곡을 생산하고 특용작물로는 인삼·잎담배·고추·깨 등을 많이 생산한다. 가축으로는 소·돼지·개·닭 등이 사육되고, 임산물로는 호두·대추·표고버섯·산나물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동북부에 영동∼청산∼보은 간의 국도가 달리고 있고, 남부를 관통하는 경부고속도로에는 2개의 정류장이 있어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장수리의 강절굴(姜節窟)은 천연동굴로서 길이가 약 2㎞이나 아직은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산계리의 저점산성지(猪岾山城址)·굴산성지(屈山城址)·고인돌·충효탑, 장수리와 묘금리의 고인돌·선돌, 화성리의 선돌 등이 있다.

산계리(山桂里)·거포리(巨浦里)·장수리(長首里)·궁촌리(弓村里)·소서리(小西里)·삼남리(三南里)·조천리(鳥川里)·묘금리(猫金里)·고당리(高堂里)·합금리(合金里)·양저리(兩猪里)·구음리(九音里)·대안리(大安里)·도장리(道場里)·능월리(陵月里)·화성리(和城里)·장련리(長連里) 등 17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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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지』(건설부국립지리원, 1984)
『중원문화권유적정밀조사보고서·옥천군·』(청주대학교박물관, 1984)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3)
『문화재지』(충청북도, 1982)
『내고장전통가꾸기』(옥천군, 1982)
『충북의 문화재』(충청북도, 1978)
『옥천군지』(옥천군지편찬위원회, 1978)
『충청북도지』(충청북도지편찬위원회, 1975)
『옥천읍지』(옥천군, 1975)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70)
옥천군(http://www.oc2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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