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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진군(甕津郡)

인문지리지명

 황해도 서남단에 위치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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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황해도 서남단에 위치한 군.
영역닫기영역열기개관
동쪽과 북쪽은 벽성군, 서북쪽은 대동만을 사이에 두고 장연군, 남서쪽은 대부분이 황해에 접하고 있다. 지형적으로 굴곡이 심한 옹진반도부와 부근 해역에 흩어져 있는 섬으로 나누어진다. 동경 124°46′∼ 125°38′, 북위 37°40′∼ 38°04′에 위치하며, 면적 696㎢, 인구 12만 2291명(1942년 당시)이다. 1읍 10면 116동리로 되어 있으며, 군청소재지는 옹진읍 온천리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자연환경
군의 북부에 멸악산맥의 여맥이 미치어 학산(鶴山, 358m)·수대산(秀垈山)·녹달산(祿達山) 등이 솟았으나 그 높이는 모두 500m 이하이다. 북면 화산동리에 화산(花山)이 있으나 높지 않다. 그 밖의 지역은 노년기의 구릉이 동북부에서 서남부로 마치 물결같이 기복되어 그 사이사이에 작은 평지가 발달되었고, 말단에서는 크고 작은 반도와 만을 형성하고 있다. 하천은 대체로 짧고 작아 수량도 적으나, 강령천(康翎川)은 수리조합의 치수사업에 힘입어 유역 전답의 관개에 많이 이용된다.
해안선은 총연장 약 800m로 크고 작은 섬들이 약 70개가 산재하는데 리아스식 해안의 특징을 나타낸다. 해안 일대는 조석간만의 차가 심하여 7m에 달하고, 파도에 침식된 정선상(汀線上)의 높은 곳에 단구(段丘)가 발달되었고, 비교적 넓은 면적을 차지한 것은 이 해안지대의 특징이라 하겠다. 흥미면 등산리에는 등산곶이 있는데, 물이 맑고 소나무가 무성하여 이 근처는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주요 만과 섬으로서 동쪽으로부터 해주만(海州灣)·옹진만·본영만(本營灣)·대동만(大東灣) 등이 있고, 용호도(龍湖島)·창린도(昌麟島)·기린도(麒麟島)·순위도(巡威島) 등이 있다. 군 전체가 해양에 돌출한 반도와 섬으로 형성된 만큼 해양의 영향을 받아 같은 위도의 다른 지방보다 기온은 따뜻하다. 연평균기온 10.7℃, 1월평균기온 -4.9℃, 8월평균기온 25.3℃, 연강수량 883㎜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역사
[고 대]
구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은 발견된 바 없다. 그러나 신석기유적이 발굴되어 신석기시대부터 인간이 생활하였던 곳임이 알려지게 되었는데, 1987년 백령도에서도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철기시대의 유물·유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인접지역에서 유물·유적이 다수 발굴되었으므로 이곳에서도 발굴될 가능성이 높다.
2, 3세기경에는 낙랑문화권에 속하였다가 4세기 초엽부터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지금의 옹진은 옹천(甕遷), 강령은 부진이(付珍伊), 백령도는 곡도(鵠島)라고 불렸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모두 그 영토로 되어 757년(경덕왕 16)폭지군(瀑池郡)에 소속되었다.
[고 려]
건국 직후 옹천은 현재 지명인 옹진으로 고쳐져, 1018년(현종 9)부터 현령이 부임하였다. 부진이는 영강(永康)으로 개칭되어 옹진현에 소속되었다가 1106년(예종 1)부터 감무가 부임하였다. 백령도라는 지명은 1018년 군사요새로서 백령진(白翎鎭)이 설치되고, 장수가 파견되면서 비롯되었으며, 14세기 중엽 왜구의 침입이 격화되자 진은 문화현으로 옮겨졌다가 곧 폐지되고, 섬 자체는 장연현에 이속되었다.
몽고의 침입이 시작된 지 26년 뒤인 1257년(고종 44) 창린도에 침입한 몽고의 전함을 옹진의 현령 이수송(李壽松)이 격퇴하였으나, 계속되는 몽고의 공격에 1259년 새 현령 정숭(鄭崇)이 결국 항복하였는데, 이는 당시 수도가 있던 강화도의 안전을 의심하게 한 사건이었다. 고려 말에는 월남의 이씨 왕조가 망한 뒤, 그 왕족인 이용상이 정착하였으며, 그에게 얽힌 사연이 전하여지는 유적이 화산산성(花山山城)에 다수 남아 있다.
[조 선]
1397년(태조 6) 옹진현에 진(鎭)이 설치되어 수령직을 겸하는 병마사(兵馬使)가 부임하였고, 1423년(세종 5) 병마사는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로 개칭되었다. 영강현과 백령도는 1428년에 합쳐져 강령현(康翎縣)으로 편성되고, 진이 설치되어 병마첨절제사가 부임하였으며, 1467년(세조 13)부터는 현감이 부임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15세기 중엽의 호구는 총 716호 2,053인이었고, 강령이 옹진보다 인구가 많았다. 강령은 1637년(인조 15) 혁파되어 해주에 합속되었다가 얼마 뒤 복구되었고, 1653년(효종 4) 옹진에 합속되었다가 10년 후에 복구되었다. 1719년(숙종 45)옹진에 새로 황해도수군절도사가 두어지면서 수영이 설치되어 도호부로 승격되고, 수사(水使)가 도호부사를 겸하게 됨으로써 그 중요성이 크게 높아졌다.
1759년(영조 35) 호구는 총 5,135호 1만 6425인으로 증가하였는데, 옹진이 강령보다 인구가 많았다. 조선 후기 강령에서는 토반과 향리 중심으로 행하여지는 단오절 탈춤판이 성행하여 큰 인기를 끌면서 중요한 문화재로 계승되었다.
[근 대]
1895년해주부 옹진군·강령군으로 개편되었다가 1896년 황해도 옹진군·강령군이 되었다. 1909년강령군이 옹진군에 합속된 뒤, 1914년 해주군 서부지역의 3개 면이 합쳐졌으며, 군청도 현위치로 옮겨졌다. 1919년 3월 8일부터 4월 15일까지 여러 차례 천도교도를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났는데, 이때 안영석(安永錫)·학순(學淳)·상철(相哲) 3대가 운동에 앞장서 이채를 띠었다.
이 밖에 독립운동가로서 1944년 일본왕의 생일을 맞아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가 체포된 김명수(金明壽), 같은 해 일본군 안의 한국인 병사 초모 및 정보공작을 하다가 극장에 시한폭탄을 설치하여 일본군 수십 명을 사상시킨 함세만(咸世萬) 등이 있다. 1935년 당시 1읍 10면으로 편성되어 있었고, 호구는 1942년에 2만 3772가구 12만 3278명이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유물·유적
이 군은 황해의 해안선을 서남쪽에 끼고 있어 예로부터 많은 전란을 겪어 오랫동안 수군진영(水軍鎭營) 등 국방의 요충지가 많았다. 그래서 성곽·전적지 등의 유물과 유적이 적지 않다. 옛날 수군첨절제사의 본영이던 서면 읍저리에 소강성지(蘇江城址)가 있다. 이 성 안에는 여러 채의 관아건물이 있었는데, 당시의 망루이자 유사시 해군의 작전을 지휘한 만하정(挽河亭)과 진해관(鎭海館)은 8·15광복 때까지 남아있던 고적이었다.
용연면 송학리 고현동 동북쪽에는 영강성(永康城)의 성벽과 성터가 남아 있다. 성벽의 높이는 3칸, 성지는 약 1,200칸으로 조선 세종 때 축성하였다. 성을 쌓기 전 세종은 황해도 경차관(敬差官)을 현지에 보내 성터를 측량하고, 성을 쌓은 뒤에 읍치를 옮긴 사화가 전해진다.
광대산 마루에 둥근 형태로 쌓았던 성터가 있었는데 1719년 수군의 본영으로 축성한 본영읍성지이다. 성안에는 제승당(制勝堂) 등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으나 1894년 갑오병란으로 모두 불타 버렸다. 고려 고종 때 월남에서 귀화하여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된 이용상이 화산에 성을 쌓고 황해로 침구한 몽고군을 쳐부순 화산산성터가 남아 있다.
북면 화산동리관산(館山) 기슭에는 고색창연한 향교가 광복 때까지 있었다. 이 건물은 고려시대 이용상이 창건하여 옹진군 교육기관의 효시가 되었는데, 1511년(중종 6)에 지금의 장소로 옮겨 지은 것이다. 북면 봉소리에는 본영읍성이 있으며, 옛날 수군본영이 있던 부근에는 사찰이 많았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져 그 유지만 남아 있다.
구곡산(九曲山) 기슭에는 고려시대의 고찰 교동암(喬桐庵)이 있었는데, 사우(寺宇)는 없어지고 이 절에 봉안하였던 석불이 지금도 있다. 서면 연봉리연봉산 기슭에는 군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찰로서 고려 중엽에 창건된 청련사(靑蓮寺)가 있다. 이 절은 신천 구월산 패엽사(貝葉寺)의 말사로서 본당에는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옹진향교가 있다. 옹진향교는 고려 고종 때에 월남에서 귀화한 화산 이씨의 시조 이용상이 옹진읍 정해리 행단(杏壇) 위에 세운 것으로, 1511년(중종 6) 화산동리 관아 밑으로 이전하였으며, 1568년(선조 1)에 현령 김연광(金鍊光)이, 1639년(인조 17)에 현령 정양윤(鄭良胤)이 중수하였다.
근대교육기관은 갑오개혁 후 새로운 교육정책이 실시되면서 각 면에 1개 교씩의 보통학교가 개설되었다. 그러나 학급수가 모자라 많은 사학들이 설립되었다. 옹진읍 도원리에 세워진 4년제 사립학교인 금곡학원(金谷學院)은 주로 광산종업원들의 자녀들을 가르쳤으며, 옹진읍 당현리에는 도원학원(桃源學院)이 있었다. 중등교육기관으로는 인문계 학교는 없었으나, 용호도에 수산학교, 강령에 농업학교, 옹진광산에 기술자양성소가 있었다.
용호도수산학교는 노창안(盧蒼顔)이 설립한 2년제 전수학교로, 졸업생들이 황해도 내의 각 수산기관에 취업하여 수산업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강령농업학교는 1, 2년 단기과정의 보습학교로 직접 농업에 종사할 영농일꾼을 배출하였다. 또한, 옹진광산의 기술자양성소에서는 광산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자 양성에 주력하였다.
옹진군은 육로 및 해로의 교통수단이 발달하여 군내에서 초등교육을 마치고 해주·인천·서울·평양 등지로 유학하는 경향이 많았다. 문화행사로는 단오절에 행해지는 「강령탈춤」과, 해마다 봄이면 풍어를 빌기 위하여 임경업(林慶業) 사당에서 행해지는 대동굿이 유명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산업·교통
이 군은 구릉 사이에 발달된 작은 평지를 이용하여 주민들은 밭농사를 주로 하여왔다. 그러나 1930년대부터 옹진·강령수리조합과 용연면·북면·서면·용천면 일대 간석지의 간척사업의 발달로 논의 면적이 현저히 확대됨에 따라 쌀생산도 급격히 증가되었다. 1935년 논면적 1만 1928정보에 쌀생산량은 9만 9220석에 달하였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콩·조·보리·고구마·면화 등의 산출이 많다. 과일로는 사과·감·배·복숭아 등이 산출되며, 그 중에서도 감은 수확량에 있어 도내에서 제2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용천면 포산외리에 있는 용천약수와 교정면 판정리에 있는 교정이라는 우물도 유명하여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옹진읍·부민면·용연면 일대에는 단정학이 서식하였다.
광업으로는 금·은·철·연·아연·규사 등의 매장량이 비교적 풍부하며, 옹진읍의 옹진광산과 수대광산에서 금, 순위도에서 규사, 기린도에서 대리석 등이 산출되는 등 여러 광산에서 채광활동이 활발하다.
연안에는 대륙붕이 넓고 뱅크도 많아 어족이 풍부하여 수산업이 활발하다. 그 중에서도 조기·새우·갈치·멸치·도미·광어와 김·미역·바지락·대합·굴 등의 어패류가 어획 및 채취된다. 동남면의 용호도와 어화도에서 생산되는 김은 맛과 품질이 좋아 옹진김이라 하여 널리 알려져 있다. 시장으로는 옹진읍 온천장과 흥미면 안락장이 2·7일, 서면 염불장이 4·9일, 봉구면 부포장과 해남면 삼봉장이 1·6일, 부민면 강령장이 5·10일에 열리며, 농산물·해산물·일용잡화 등이 거래된다.
교통은 비교적 발달되어서 해주를 시발로 하는 황해선은 벽성군의 장돈에서 이 군의 신강령―냉정―옹진역으로 연결되었다. 2등도로는 벽성군―옹진군―옹진읍에 이르고, 다른 하나는 옹진읍―강령―취야―해주에 이른다. 지선으로는 강령∼송학∼봉강 간의 도로도 있으며, 3등도로는 옹진읍을 중심으로 사곶리·개평리·태탄·부포 등지로 개통되었다.
이 밖에도 각 면을 연결하는 등외도로가 있으며, 주요 섬으로 연결되는 도내관통도로(島內貫通道路)가 있다. 연안에는 부포리·용호도리·읍저리 등에 좋은 항구가 있어 내외 해운의 연결을 편리하게 한다. 광복 당시만 하여도 진남포∼인천 간을 정기운항하는 선박이 이 군의 조포·소강·용호도 등에 기항하였다. 명승지로는 강령팔경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읍·면
[옹진읍甕津邑]
군의 중앙에 위치한 읍. 읍소재지는 온천리이다. 본래 해주군의 마산면(馬山面)이었으나, 1909년 23부제 실시 때 옹진군에 편입되었으며, 1937년에 읍으로 승격되면서 옹진읍으로 개칭되었다. 광복 후 위도상 38도선 이남에 있어 남한에 속하였으나, 1953년 7월 휴전협정에 의하여 미수복지가 되었다.
면의 북부에 국사봉(國師峰)·녹달산, 서부에 수대산·백운봉(白雲峰) 등이 솟아 있으나, 산세가 남동쪽으로는 완경사를 이루어 남동부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해안지대까지 전개되고 있다. 토지가 비옥하여 각종 농산물 경작에 적당하며, 주요 농산물은 쌀·밀·보리·콩·조·메밀 등이다. 특히, 쌀은 간척사업과 관개시설의 발달로 그 생산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바다에 면하여 있어 수산업도 발달하여 조기·새우·갈치·도미 등의 어류와 대합·바지락 등의 조개류가 많이 어획 및 채취되며, 김·미역 등의 해조류도 생산된다. 광업은 수대광산과 옹진광산에서 금이 산출된다. 교통은 황해선이 읍의 중앙을 지나고 냉정·옹진역이 있으며, 읍내를 중심으로 동쪽의 부민면 강령리, 서쪽의 서면 읍저리, 북동쪽의 벽성군 가좌면 취야리로 2등도로가 통하고 있다. 그 밖의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통하여 교통은 편리하다.
온천리에 15세기 중엽부터 발전하여 온 온도 67℃, 라듐식염천인 마산온천이 있다. 온천(溫泉)·당현(堂峴)·도원(桃源)·냉정(冷井)·개평(開坪)·수대(秀垈)·송정(松亭)·구계(龜溪)·양암(陽巖)·단천(丹川)·노호(蘆湖) 등 11개 동리가 있다.
[가천면茄川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소재지는 장현리이다. 본래 해주군에 속하였으나 1909년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광복 후 위도상 면의 3분의 1이 38도선 이남에 있어 남한에 속하였으나, 1953년 7월 휴전협정에 의하여 이 지역은 미수복지가 되었다. 면의 남부 경계에 천장산(天長山)이 솟아 그 여맥이 북쪽으로 뻗었으나, 그 밖의 지역은 대체로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토지가 비옥하고 수리시설이 비교적 잘 되어 있어 농업을 주로 하며, 쌀을 비롯하여 보리·콩·조·고구마 등이 생산된다. 벽성군 대거면에서 서면 읍저리에 이르는 2등도로가 면을 남북으로 통과하며, 각 주요 마을과는 등외도로로 연결되어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장현(長峴)·한현(閑峴)·성변(城邊)·삼괴(三槐)·옥천(玉泉)·사산(沙山)·가암(架巖) 등 7개 동리가 있다.
[교정면 交井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소재지는 송림리이다. 본래 해주군에 속하였으나 1909년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광복 후 면의 남부 3분의 1 지역이 38도선 이남에 있어 남한에 속하였으나, 1953년 7월 휴전협정에 의하여 이 지역은 미수복지가 되었다.
면의 남동부에 두락산(斗落山)이 솟아 있으며, 곳곳에 100m 이하의 구릉지가 분포하고 있을 뿐 대부분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해안 일대에는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쌀을 비롯하여 보리·밀·콩·고구마·조·면화 등이 많이 생산된다. 해안지역에서는 수산업도 행하여져 반농반어의 형태가 나타나며, 조기·새우·바지락 등이 어획 및 채취된다.
교통은 송림리를 중심으로 각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연결되어 있어 편리하다. 또한,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여 북쪽의 작은 만은 항구 역할을 하고 있다. 유물·유적으로는 판정리에 원나라 순제가 대청도에서 귀양살이할 때 사용하였다는 우물인 판정이 있다. 송림(松林)·국봉(國峰)·건전(乾田)·비파(琵琶)·난천(蘭泉)·월암(月巖)·판정(判井)·구포(鷗浦)·송현(松峴)·낭암(浪巖) 등 10개 동리가 있다.
[동남면東南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소재지는 당장리이다. 본래 구옹진군의 동면(東面)과 남면(南面)지역으로, 1914년 군면통폐합시 두 면을 합쳐 동남면으로 개칭하고 새로 개편된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광복 후 위도상 38도선 이남에 있어 남한에 속하였으나, 1953년 7월 휴전협정에 의하여 미수복지가 되었다.
면의 북부에 연근산(蓮根山)이 솟아 있고, 그 밖의 지역은 대체로 구릉이 기복된 평지이며, 여러 구릉의 말단은 해안에 이르러 복잡한 리아스식해안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강령천의 하구가 되는 남동해안은 해안선의 굴곡이 매우 심하며, 조석간만의 차도 커서 간조 때에는 선박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인근 바다에는 용호도·어화도·비압도(飛鴨島) 등의 섬이 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반농반어의 생활을 하며, 농산물로는 쌀을 비롯하여 보리·콩·조·잎담배 등이 생산되고, 수산물로는 조기·새우·갈치·조개류·김 등이 어획 및 채취된다. 특히, 용호도에서 생산되는 김은 그 맛과 질이 좋기로 전국적으로 유명하며, 일본까지 수출되었다. 용호도는 어항으로 근해어업의 중심을 이루며, 수산물 가공공장이 있다.
교통은 신촌리를 중심으로 옹진읍과 용호도리로 3등도로가 통하며, 각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통하고 있다. 당장(堂墻)·송강(松江)·송현(松峴)·장척(長尺)·어화도(魚化島)·거답(巨畓)·석교(石橋)·안산(安山)·인평(仁坪)·서장(西壯)·신안(新安)·갈항(葛項)·용호도(龍湖島)·전당(錢塘)·사관(沙串)·무파(茂巴) 등 16개 동리가 있다.
[봉구면 鳳○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소재지는 장수리이다. 본래 구옹진군의 봉현면(鳳峴面)과 구주면(邱洲面)지역으로, 1914년 군면통폐합시 두 면을 합쳐 봉구면으로 개칭하고 새로 개편된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광복 후 위도상 38도선 이남에 있어 남한에 속하였으나, 1953년 7월 휴전협정에 의하여 미수복지가 되었다.
면의 북서부에 높지 않은 구릉이 분포하며, 그 중에 관각산(冠角山)이 솟아 있을 뿐 대부분 지역이 평지이다. 해안에는 사빈이 계속되어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주민의 대부분이 반농반어의 생활을 한다. 농산물로는 쌀을 비롯하여 보리·콩·조·수수 등이 생산되며, 수산물로는 조기·도미·새우·갈치·조개류 등이 어획 및 채취된다.
교통은 옹진읍∼흥미면 간 2등도로가 면의 서부를 통과하며, 각 주요 마을로 등외도로가 통하고 있다. 포구인 부포리에서는 매년 임경업장군의 사당을 중심으로 풍어를 기원하는 대동굿이 거행된다. 장수(長壽)·광암(廣巖)·신평(莘坪)·도화(都華)·평양(平陽)·부포(釜浦)·건지(乾智)·옥은(玉隱)·향가(香街)·죽교(竹轎)·무도(茂島) 등 11개 동리가 있다.
[부민면富民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소재지는 강령리이다. 광복 후 위도상 38도선 이남에 있어 남한에 속하였으나 1953년 7월 휴전협정에 의하여 미수복지가 되었다. 면의 서부에 상산(裳山), 남동부에 진수산(鎭水山), 북부에 작산(鵲山) 등이 솟아 있으며, 그 줄기가 면내에 미치어 곳곳에 작은 구릉이 기복되나, 그 밖의 지역은 대체로 평지이다.
특히, 중남부와 강령천 유역의 평야는 토지가 비옥하고 수리조건이 좋아 농작물 경작에 적당하다. 농업을 주로 하며, 쌀을 비롯하여 보리·콩·조·면화 등이 생산되고, 해안에서는 수산업도 행해져 조기·새우·조개류 등이 어획 및 채취된다. 교통은 강령리를 중심으로 2등도로와 3등도로가 옹진읍·해주시·동강면·흥미면 등 사방으로 통하고, 이 도로에서 각 주요 마을로 등외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유물·유적으로는 각도(角島)에 각도정(角島亭)이 있으며, 향토문화로 「강령탈춤」이 전승되어 오고 있다. 또 이곳은 자연경관이 뛰어나 예로부터 강령팔경이라 하여 칭송되어 왔다. 강령(康翎)·광평(廣坪)·천상(泉上)·고동(古洞)·성도(聖道)·내동(內洞)·부암(婦巖)·미산(眉山)·금병(錦屛)·석계(石溪) 등 10개 동리가 있다.
[북면北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소재지는 화산동리이다. 광복 후 위도상 38도선 이남에 있어 남한에 속하였으나, 1953년 7월 휴전협정에 의하여 미수복지가 되었다. 면의 북부경계에 천장산·백운봉, 남부경계에 연근산이 솟아 있으며, 이들의 여맥이 서쪽으로 뻗어내려 작은 구릉들을 이루나, 중부 이남은 해안까지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해안선은 봉소리의 만입(灣入)을 제외하면 대체로 단조롭고, 바다는 멀리까지 얕아 간조 때에는 해안 일대가 갯벌이 된다.
주민들은 주로 반농반어의 생활을 하며, 농산물로는 쌀을 비롯하여 보리·콩·면화·감 등이 생산되고, 수산물로는 새우·조기·갈치·조개류 등이 어획 및 채취된다. 연안에서는 김양식도 활발하다.
광업은 북부에 옹진광산과 구곡광산(九谷鑛山)의 일부가 자리하고 있어 금·은·아연 등이 산출된다. 교통은 옹진읍∼읍저리 간의 2등도로가 면의 북부를 동서로 통과하며, 남부에는 본영을 중심으로 각 주요 마을로 등외도로가 통하고 있다.
유물·유적으로는 화산동리의 화산에 고려 공민왕 때 축조된 화산성과 이용상의 유적지가 있으며, 관산 아래에 옹진향교가 있다. 봉소리는 옛 읍치(邑治)로 수군첨사의 본영과 본영읍성지가 있으며, 구곡산 산록에 교동암지가 있어 석불과 이층석탑이 남아 있다. 화산동(花山東)·고안(古安)·웅현(熊峴)·초일(蕉日)·화산중(花山中)·봉소(鳳所)·상심적(上深寂)·삼산(三山)·하심적(下深寂) 등 9개 동리가 있다.
[서면西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소재지는 읍저리이다. 광복 후 위도상 38도선 이남에 있어 남한에 속하였으나, 1953년 7월 휴전협정에 의하여 미수복지가 되었다. 면의 남부에 태행산(泰行山, 120m)이 솟아 있으며, 100m 이하의 구릉을 이루나, 그 밖의 지역은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 해안선은 다소 굴곡이 있어 서단에 옹진만이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 해안선은 천수만(淺水灣)이 되어 간조 때에는 갯벌이 된다.
토지가 비옥하고 수리시설이 잘 되어 있어 농업을 주로 하며, 특히 대지주(大地主) 경작의 농장이 많다. 쌀을 비롯하여 보리·콩·조·면화·고구마 등이 생산된다. 남동부 해안과 창린도 동안에서는 김양식이 이루어지며, 동부 해안에는 염전이 있다. 교통은 읍저리를 중심으로 옹진읍과 장연읍으로 2등도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이 도로에서 각 주요 마을로 등외도로가 연결되었다.
유물·유적으로는 연봉리연봉산에 고려 중엽에 창건된 청련사가 있으며, 읍저리에 소강성지가 있고, 성내에는 만하정·진해관 등이 있다. 읍저(邑底)·동문외(東門外)·연봉(蓮峰)·외전산(外錢山)·장포(長圃)·만진(萬珍)·내전산(內錢山)·동오(東五)·서경(西京)·창린도(昌麟島) 등 10개 동리가 있다.
[용연면龍淵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소재지는 송학리이다. 광복 후 위도상 38도선 이남에 있어 남한에 속하였으나, 1953년 7월 휴전협정에 의하여 미수복지가 되었다. 면의 북부에 진목산(鎭木山)이 솟았을 뿐 높은 산이 없고, 대부분 지역이 노년기 구릉지이며, 서부에는 넓은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해안가에도 간척에 의하여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토지가 비옥하고 수리시설이 잘되어 농업을 주로 하며, 주요 농산물은 쌀·조·콩·옥수수·고구마 등이 생산된다. 또한, 가내공업제품으로서 모자·면포·돗자리 등이 있다. 교통은 송학리를 기점으로 옹진읍·해주시로 2등도로가, 동강면으로 3등도로가 각각 통하고 있으며, 이들 도로에서 각 주요 마을로 등외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유물·유적으로는 송학리에 영강성지가 있으며, 강령천 유역의 저습지는 학의 도래지이다. 그리고 용연리에는 용정(龍井)이 있다. 송학(松鶴)·한봉(漢鳳)·장릉(長陵)·용연(龍淵)·수계(水鷄)·용산(龍山)·봉황(鳳凰)·오산(梧山) 등 8개 동리가 있다.
[용천면龍泉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소재지는 포산외리이다. 광복 후 위도상 38도선 이남에 있어 남한에 속하였으나 1953년 7월 휴전협정에 의하여 미수복지가 되었다. 면의 북부에 개룡산(開龍山)이 솟아 있으며, 그 밖의 지역은 대부분 구릉이 기복된 평지이다. 농업을 주로 하며, 평야가 적어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많이 행하여진다. 보리·콩·고구마·조·수수 등이 생산된다. 해안지역인 용암리·용작리에서는 수산업과 제염업이 행해지며, 조기·도미·새우·갈치 등이 어획된다.
교통은 포산외리를 기점으로 각 주요 마을로 등외도로가 통하고 있을 뿐이며, 용암리와 옹진항에 의한 해운을 많이 이용한다. 포산외리에 있는 유명한 용천약수는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만병이 치료된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포산외(蒲山外)·대정(大井)·손량(孫梁)·용암(龍巖)·용문(龍門)·마합(麻蛤)·제작(諸作)·포산내(蒲山內)·대기(大機)·마항(馬項)·원산(院山)·기린도(麒麟島) 등 12개 동리가 있다.
[흥미면興嵋面]
군의 남단에 위치한 면. 면소재지는 안락리이다. 본래 아미면(峨嵋面)과 신흥면(新興面)지역으로 1914년 군면통폐합시 두 면을 합쳐 흥미면으로 개칭하였다. 광복 후 위도상 38도선 이남에 있어 남한에 속하였으나, 1953년 7월 휴전협정에 의하여 미수복지가 되었다. 면의 남동부에 구월봉(九月峰, 217m)·아미산(峨嵋山)이 솟아 있고, 서부에 장현산(長峴山)이 솟아 있으며, 그 밖의 지역은 대부분 저산성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남부 해안에는 소규모의 평지가 형성되어 있고, 서쪽 앞바다에 순위도가 있으며,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반농반어의 생활을 영위하며, 농산물로는 콩·조·밀·쌀 등이 생산되고, 수산물로는 새우·조기·조개류가 어획 및 채취된다. 교통은 옹진읍과 연결되는 2등도로가 면의 중앙을 통과하며, 이 도로에서 각 주요 마을로 등외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면의 최남단에 예로부터 관방(關防)의 요지로 지목되어 만호진이 설치되었던 등산곶이 있으며, 이곳에는 백사정이 있어 옛날에는 고라니와 사슴이 많았다고 하며, 사냥터로 이용되었다. 안락(安樂)·식여(食餘)·냉정(冷井)·송산(松山)·석포(石浦)·월계(月溪)·아미(峨嵋)·봉강(鳳崗)·괘암(掛巖)·등산(登山)·창암(蒼巖)·예진(禮津) 등 12개 동리가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광복 후 변천
황해남도 남부에 있는 군. 동쪽은 벽성군, 서쪽과 남쪽은 황해, 북쪽은 태탄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4°57′∼125°27′, 북위 37°46′∼38°04′에 위치하며, 면적은 608㎢, 인구 13만 7165명(1996년 추정)이다.
1952년 12월 행정구역 개편시 이전의 옹진읍·북면·서면·용천면·교정면·가천면·동남면 일부와 벽성군 대거면 일부가 합쳐서 이루어졌다. 1956년 9월 태탄군 은동리가 분리되어 옹진군에 편입되고, 1961년 3월 도원리가 옹진읍에 통합되었으며, 1978년 8월 구곡리가 구곡노동자구로 개칭되었다.
행정구역은 옹진읍을 비롯하여 수대·냉정·노호·입석·장송·서해·본영·삼산·국봉·해방·송월·구랑·진해·은동·만진·연봉·전산·대기·용천·제작·기린도·창린도·용호도 등 23개 이, 옹진·남해·구곡 등 3개 노동자구로 되어 있다. 군 소재지는 옹진읍이다.
[자연환경]
이 군은 대부분이 낮은 산, 언덕들이 솟아 있는 평야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북동부가 높고 서쪽과 남쪽으로 가면서 낮아진다. 북동부에는 국사봉(527m)·대덕산(459m) 등이 솟아 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반도인 옹진반도에 자리잡은 이 군에는 대동만·옹진만 등 여러 개의 만과 갑, 섬들이 많다. 하천은 은동천·수대천·당산천 등 작은 하천들이 있다.
기후는 연평균기온이 10.8℃, 1월 평균기온은 -3.1℃, 8월 평균기온은 24.2℃이며, 연평균강수량은 1,000㎜ 이상이다. 첫서리는 10월 20일경, 마감서리는 4월 18일경에 내린다. 산림은 군 전체면적의 65%를 차지하며, 대부분이 소나무숲이며 감나무·오동나무 등도 퍼져 있다.
[산업·교통]
주요 산업은 농업과 공업이며, 농업은 농산업·과수업·축산업 등이며, 경작지 가운데 논이 40%, 밭이 40%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로는 무·배추·시금치·오이·가지·토마토·고추·마늘 등이 생산되고, 소·돼지·토끼·닭 등의 가축도 사육한다. 공업은 주로 채취공업을 중심으로 한 중앙공업과 식료·일용품·방직 및 피복·편직·건재·종이와 화학 부문의 지방공업이 있다. 수산물로는 김·다시마·미역·멸치·꽁치 등이 채취 및 어획된다. 교통망으로는 옹진∼해주 간의 철도와 용연·해주 등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개정 (1995년)
노도양
영역닫기영역열기 관련 멀티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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