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청하 출신. 1907년 군대해산 이후 후기의병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경상북도 일대에서 활동 중이던 정환직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1907년 10월 29일 백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경상북도 흥해 읍내의 우편취급소를 공격하였고, 우편취급소 소장 시원위태랑(市原爲太郞) 등 수 명의 일본인을 처단하였다.
이어 경무분파소 등 일본인 가옥을 불태웠다. 1910년 11월 3일 경 경상북도 신령군 읍내를 공격, 군청에서 총 백수십 정을 탈취하고 경무분파소를 소각하였다. 11월 4일에는 경상북도 의흥군으로 이동, 경무분파소를 공격하여 총 수백 정을 군수품으로 노획하고 분파소를 소각하였다.
11월 15일 경 다시 홍해에 이동하여 일본군과 격돌하였고, 일본인 가옥을 소각하였다. 1908년 6월 4일 영덕군 외남면에서 군수품 모집 활동을 하였다. 윤흥곤은 경상북도 지역을 대표하는 산남의진에서 게릴라 대일항전의 주요 인물로 활동하였는데 1907년 후반에 활발히 활동하였다.
그리고 한국침략에 전위대 역할을 수행했던 일제군사, 경찰기관을 중점적으로 공격대상으로 하였다. 이러한 철저한 배일의식에 근거한 활동으로 인해 피체되어 1910년 9월 20일 교수형 판결을 받아 순국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