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철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대사간, 도승지,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성중(聖仲)
시호
간헌(簡憲)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40년(영조 16)
사망 연도
1805년(순조 5)
본관
나주(羅州)
주요 관직
대호군
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도승지,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성중(聖仲). 임세양(林世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상규(林象奎)이고, 아버지는 임지호(林志浩)이며, 어머니는 한사검(韓師儉)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71년(영조 4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77년(정조 1) 사간에 임명되었으며, 1782년 이후 대사간·대사헌을 거쳐, 1797년 강화부유수가 되었는데, 상경하라는 왕명을 받았으나 왕의 인문(印文: 인장)이 없는 서찰만을 보고 방호(防護)의 중책을 잠시도 떠날 수 없다고 거부하였다가 파직되었다.

1799년 진위부사(陳慰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오고, 다시 그 이듬해에 세폐 겸 사은부사(歲幣兼謝恩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803년(순조 3) 대사간·도승지를 거쳐 다음해 공조판서로서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에 대한 존호를 가상하기 위해 설치한 상호도감제도(上號都監提調)로 활동하여 정헌대부(正憲大夫)의 품계로 승진되었다가 곧 도제조가 되었다.

1805년에 대왕대비가 죽자 산릉도감제조로 활약하고 오위의 대호군에 재임 중 죽었다. 1811년 공조판서에 증직되었으며, 시호는 간헌(簡憲)이다.

참고문헌

『정조실록(正祖實錄)』
『순조실록(純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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