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낙현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 경성판관, 순천군수, 죽산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운거(雲擧)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안동(安東)
주요 관직
죽산부사
관련 사건
홍경래의 난
정의
조선후기 경성판관, 순천군수, 죽산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운거(雲擧). 아버지는 군수 장몽열(張夢說)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몸이 민첩하여 무장의 재목이라 일컬었다. 1807년(순조 7) 무과에 급제하여 별군직으로 승전색(承傳色)이 되었다가 얼마 뒤 경성판관이 되었다.

1812년 홍경래(洪景來)가 난을 일으키자 의주부에 들어가서 의병을 초모하여 장정 70명과 포수 30명을 얻었다. 정주성으로 달려가서 관군을 도와 남문을 공격하여 성을 점령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이어 순천군수가 되어서는 백성을 사랑하고 세역을 감면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1818년에 홍경래의 난에 공을 세운 사람으로 응분의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을 조사할 때 명단이 올라가서 국가에서 기회를 보아서 선천(宣薦: 무과 출신으로 행실이 좋은 선전관으로 추천함.)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뒤 죽산부사가 되었으나 1840년(헌종 6) 지방관원은 교자(轎子)를 탈 수 없게 한 제명(制命: 제도적인 명령)을 어겨서 한 때 면직되었다.

참고문헌

『의주읍지(義州邑誌)』
집필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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