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군 ()

대동여지도 / 진안, 전주, 장수, 임실
대동여지도 / 진안, 전주, 장수, 임실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전라북도의 동부 중앙에 위치한 군.
정의
전라북도의 동부 중앙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소백산맥을 넘어 경상남도 함양군과 거창군, 서쪽과 서북쪽은 진안군과 임실군, 남쪽은 남원시, 북쪽은 무주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7°22′∼127°42′, 북위 35°28′∼35°49′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533.28㎢이고, 인구는 2만 3277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6개 면, 202개 행정리(73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장수리에 있다.

자연환경

동부는 소백산맥의 서사면에 걸쳐 있고 서부는 노령산맥의 동사면에 해당되어 장수읍과 장계면 일대의 분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이 산지이다. 따라서 무주·진안과 함께 전라북도의 동부산악권에 속한다.

기반암은 대부분 화강암질 편마암이지만 곳곳에 편마상화강암과 대보화강암도 나타난다. 장수읍과 장계면은 편마암류의 기반암을 소규모로 관입한 화강암의 심층풍화에 의해 발달한 금강 최상류의 산간분지로, 형태는 분지이지만 진안고원의 일부로 간주된다.

동쪽에는 소백산맥을 따라서 솟아 있는 시루봉(1,162m)·남덕유산(南德裕山, 1,507m)·기태봉(1,015m)·백운산(白雲山, 1,279m)·봉화산(峰火山, 920m) 등이 경상남도 함양군과 경계를 이룬다.

장계 동쪽의 육십령(六十嶺, 734m)은 소백산맥을 넘어 함양군과 연결하는 고개이다. 서쪽에는 천반산(天盤山, 647m)·성수산(聖壽山, 1,060m)·팔공산(八公山, 1,151m) 등이 솟아 있어 진안군과 경계를 이룬다.

그 밖에 깃대봉(930m)·백화산(白華山, 851m)·봉화산(烽火山, 786m)·장안산(長安山, 1,237m)·마봉산(馬峰山, 724m)·사두봉(蛇頭峰, 1,015m)·묘복산(猫伏山, 846m) 등의 높은 산들이 있다.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계는 대체로 장안산·수분령·팔공산을 잇는 선으로, 이 선을 경계로 해발 250m 정도인 섬진강 유역과 400∼500m인 장수분지의 고도차가 확연해지며 지형이 구분된다. 지형의 영향으로 수분령 남쪽의 섬진강 지류인 오수천 유역의 산서면과 요천 유역의 번암면은 인접한 장수읍보다 거리가 먼 남원시와 교류가 더욱 활발하다.

금강은 장수읍 수분리의 수분령(水分嶺, 530m)에서 발원하여 장수읍을 지나면서 북류하다가 장안산에서 발원한 장계천(長溪川)과 천천면에서 합류한다. 금강은 수량이 증가하면서 심하게 감입곡류하여 각각 진안군으로 흐른다.

수분령 남쪽은 섬진강 수계로 장안산 서쪽에서 발원한 용림천(龍林川)과 백운산에서 발원한 백운천(白雲川)이 번암면에서 합류하여 요천을 이루어 남원시로 흐른다. 이들 하천 연안을 따라 소규모의 평야가 발달해 있다.

연평균 기온 11℃, 1월 평균기온 -3℃, 8월 평균기온 24℃이며, 연 강수량은 1,300㎜로 남부내륙형 기후구에 속한다. 고원상의 산간분지가 많아 여름에는 서늘하며 겨울에는 춥고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 많다.

역사

구석기·신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은 발견된 바 없으며,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지석묘가 계내면 삼봉리, 계북면 양악리, 천천면 남양리 등지에서 발견된 점으로 보아 이 시기에는 어느 정도의 부족국가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우평현(雨坪縣: 장수 천천일대)과 백해군(伯海郡: 장계면 일대)이 이 지방에 있었다. 특히, 이 지방은 신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방상 중요한 요충지였으며, 지금도 합미산성을 비롯한 많은 산성과 봉수대가 남아 있다.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키고 난 뒤부터 이 지방은 국방상 요충지로서의 기능을 잃고 한촌(寒村)이 되었다.

686년(신문왕 6) 우평현은 이웃 현인 진안현(鎭安縣)과 더불어 백해군의 영현(領縣)이 되어 완산주(完山州)의 관할이 되었다. 그 뒤 757년(경덕왕 16) 우평현이 고택현(高澤縣)으로, 백해군이 벽계군(壁溪郡)으로 각각 개칭되어 남원소경(南原小京)에 예속되었다. 830년(흥덕왕 5)에는 무염국사(無染國師)가 신광사(新光寺)를 창건하였다.

태조가 후백제를 멸망시킨 뒤 940년(태조 23) 고택현이 장천현(長川縣)으로, 벽계군이 벽계현으로 바뀌어 남원부에 영속되었으며, 강남도절도사(江南道節度使)의 통치하에 있었다. 995년(성종 14) 벽계현이 장계현(長溪縣)으로 개칭되었으며, 1108년(예종 3) 장천현은 장계현을 감무하였다.

1380년(우왕 6) 왜구가 김천·영동을 거쳐 장수지방을 유린할 때 이성계(李成桂)가 왜구의 뒤를 쫓아 추격하다가 장수읍 용계리에 머물 때 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사찰로는 팔성사(八聖寺)가 있으며, 특히 이 시대의 장수는 유배지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유배당한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이 지방에 안주하여 뒤에 학문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1407년(태종 7) 장수향교가 창건되었으며, 1413년 장천현이 장수현으로 개칭되고 장계현이 병합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당시 장수현의 호수는 320호, 인구는 812인이었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晋州城)을 함락시킨 게야무라[毛谷村六助]를 껴안고 남강(南江)에 몸을 던진 주논개(朱論介)가 1574년(선조 7) 이 곳에서 태어났다. 정유재란 때에는 육십령을 넘어오는 왜적을 맞아 싸우다 조억령(趙億齡) 등 60여 명이 전사하였다.

특히, 임진왜란을 당하여 자손교육의 필요성을 느낀 이 지방의 사족(士族)들은 흥학당(興學堂)을 세워 후세교육에 힘썼으며 이로 인해 과거합격자가 많이 배출되었다.

1879년(고종 16)에는 프랑스인 두세(Doucet,C.E.) 신부가 이 지방에 들어와 서학(西學)과 신문학(新文學)을 가르치면서 천주교를 전파하였다. 1894년 동학운동이 일어나자 이 지방에는 동학운동군의 기포(起包)가 있었으며, 접주(接主) 김학종(金學鍾)을 중심으로 이 운동에 참가하였다.

1895년 갑오개혁으로 지방관제가 개편됨에 따라 장수군으로 개칭되었고 9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7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 지방에서는 3월 5일 장수장날을 기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려 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로 끝났다. 그 뒤 3월 23일 산서면(山西面)의 궐기를 시작으로 각 지방으로 확대되었다. 근대의 인물로는 경술국치 후 의병을 모집하여 덕유산 일대를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한 문태서(文泰瑞)·박충실(朴忠實) 등을 비롯하여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백용성(白龍城)이 있다.

6·25전쟁으로 이 지방은 산간지대인 관계로 그리 많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낙동강전선에서 패해 도망가던 공산군이 지리산과 덕유산으로 들어가 인근지역을 약탈함으로써 그 피해가 막심하였다. 1955년 패잔병을 완전히 소탕할 때까지 이 지방에서는 애국청년단과 학생들이 주동이 되어 치안대를 조직하여 군경을 도왔다.

그 뒤 전후 복구사업과 1970년 새마을운동으로 오늘날의 발전된 모습으로 일신하였다. 근래에 들어서는 담배와 약초 등을 재배하여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1970년 2월 26일 장수면에 대성(大成)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9년 5월 1일 장수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93년11월 1일 계내면이 장계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94년 12월 26일진안군 동향면 신송리의 일부가 장수군 계북면 임평리에, 장수군 산서면 사상리의 일부가 남원군에, 남원군 덕과면 용산리의 일부가 장수군에,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의 일부가 무주군에, 무주군 안성면 공진리의 일부가 장수군에 각각 편입되었다. 1998년 12월장계면 송천리와 장계리간의 일부 경계조정이 있었다.

유물·유적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장계면 삼봉리 노평(蘆坪)마을 앞에 있는 삼봉리북방식지석묘를 비롯하여, 계북면 양악리의 남방식지석묘, 천천면 남양리의 남방식 지석묘 등이 있다. 장계면·천천면 등지에서는 다수의 석관묘가 발견되었다.

산성으로는 장수읍 식천리와 대성리에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축성했다고 전해지는 것이 있다. 백제 중엽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합미성(전라북도 기념물, 1985년 지정)과 방어산성(防禦山城)·사계산성(社桂山城)·사현산성(沙峴山城)·이산산성(耳山山城)이 있고, 계남면·천천면의 경계에 침령산성(砧嶺山城)이 있다.

봉수대(烽燧臺)로는 백제 국경의 초소인 침령산성의 전초기지로 이용된 명덕(明德)봉수대와, 명덕봉수를 받아 백제의 서울에 연락하는 중간 봉수인 법화(法華)봉수대를 비롯하여 장안(長安)봉수대·매봉[鷹峰]봉수대·사계(社桂)봉수대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장수읍 팔공산의 팔성사(八聖寺)사리탑, 계북면 양악리의 장수양악탑(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73년 지정)과 심방사(心防寺)석탑, 천천면 와룡리의 신광사(新光寺)삼층석탑과 신광사대웅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삼고리의 오층석탑, 산서면 마하리의 원흥석불입상(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이 있다. 830년(흥덕왕 5) 무염국사가 창건되었고 840년(헌종 6) 현감 조능하(趙能夏)가 중수한 신광사를 비롯하여 팔성사·원흥사(元興寺)·심방사 등의 사찰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장수읍 장수리의 장수향교와 장수향교 대성전(보물, 1963년 지정)과 정충복비(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가 있다. 서원과 사우로는 장수읍 선창리의 창계서원(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산서면 학선리의 압계서원(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천천면 춘송리의 용암사(龍巖祠), 장계면 월강리의 월강사(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6년 지정) 등이 있다.

정자로는 장계면 삼봉리에 자락정(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90년 지정) 등이 있고, 고가옥으로는 번암면 노단리의 장재영가옥(전라북도 민속문화재, 1986년 지정)과 산서면 오산리의 권희문가옥(전라북도 민속문화재, 1986년 지정), 사계리의 정상윤가옥(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천천면 봉덕리의 느티나무(천연기념물, 1998년 지정)가 있으며, 노거수로는 논개가 어릴 때 심은 것이라고 전해지는 장수군청 앞에 있는 소나무와, 군청사 서쪽 도로변에 있는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이 밖의 문화재로는 산서면 오성리의 어필각(御筆閣), 번암면 노단리의 어서각(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장계면 금곡리의 금남군정충신영정각(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계남면 화음리의 화산사(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수열비(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장수읍 장수리의 논개사당(전라북도 기념물, 1981년 지정)·의암주논개사적비, 천천면 장판리의 타루비(墮淚碑), 산서면 오산리의 화산영당(華山影堂) 등이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장수읍 장수리에 장수향교(長水鄕校)가 있다. 이 향교는 1407년(태종 7)에 창건되어 장수읍 선창리에 있다가 1686년(숙종 12) 지금의 장소로 이건되었다.

또 1695년(숙종 21)에 설립되어 황희(黃喜)·황수신(黃守身)·유호인(兪好仁)·강백진(康伯珍)·장응두(張應豆)를 배향하는 장수읍 선창리의 창계서원과 1789년(정조 13)산서면 학선리에 설립된 압계서원이 있다.

그 밖에 1818년(순조 18)에 천천면 춘송리에 설립된 용암서원(龍巖書院)이 있었으나 1868년 철폐되었다. 또한 초등교육을 담당하였던 계남면 화양리의 흥학당(興學堂), 궁양리의 근수루(近水樓), 산서면 하월리의 지금당(至今堂) 등의 서당이 있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12년에 장수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하였으며 현재는 장수초등학교로 되었다. 이 군에는 광복 이전까지 중학교가 설치되지 않았다가 광복 이후 1949년 장수중학교가 개교하였으며 1959년 장수종합고등학교가 개교하여 1973년 장수고등학교로 개편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8개교, 중학교 7개교, 고등학교 5개교가 있다.

주요 문화행사로는 매년 논개대제(論介大祭)가 열려 논개의 구국심을 되새긴다. 그 외에도 논개골산골문화축제와 한여름장안산도깨비축제도 열린다.

민속

이 고장에는 영등제(靈登祭)·깃절놀이·도신제·윷놀이·널뛰기·연날리기·쥐불놀이·그네뛰기 등 많은 세시풍속과 민속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영등제는 음력 2월 초하루·초열흘·스무날에 행해진다. 저녁 무렵에 부엌 선반에 삼색의 베쪽을 매단 생솔가지를 올려놓고, 달래·냉이 등 햇나물과 밥, 정화수를 각각 한 그릇씩 차린 뒤 식구 수대로 소지(燒紙)를 올려 풍신(風神)인 영등할미에게 가내의 운수대통과 풍년을 기원한다.

7월 백중에는 장수읍내의 13개 마을이 연합하여 깃절놀이를 거행한다. 이 놀이는 농기를 세워놓고 제사를 지낸 뒤 서로 절을 교환하는 놀이인데, 농기는 영감기·부인기를 비롯하여 큰아들·작은 아들 순으로 되어 있다.

먼저 부부기가 맞절을 하고 나면 큰아들기부터 순서대로 부모기에 절을 하게 된다. 기의 순차는 제작연대순으로 정해진다. 아무리 오래되어도 기폭에 그려진 용(龍)의 두 눈이 손상되지 않으면 위엄을 유지하고, 그렇지 못하면 새로 기를 만들게 되어 막내아들기가 된다. 깃절놀이에는 마을단위의 풍물패가 따라다니며 절이 끝난 뒤에는 풍물을 울리고 논 다음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도신제(禱神祭)는 10월 초사흗날에 지낸다. 먼저 거름을 주지 않고 농사지은 깨끗한 쌀을 천룡당산에 모신 천룡단지와 방안에 모신 성주단지에 새로 넣는데, 이것을 ‘부득그릇간다.’고 한다. 단지 옆에는 짚을 열십자로 깔고 햇찹쌀로 만든 쇠머리찰떡(시루떡)을 시루째 놓은 다음 소지를 올리며 천룡·성주·삼신께 축수한다.

이 밖에도 아이들 놀이로 공치기·땅뺏기·술래잡기·꼬리잡기 등이 있다. 9월 9일에는 이 고장 출신인 논개의 생일을 기념하여 기념제전이 있는데 최근 군민의 날로 제정되어 더욱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 고장에는 현재까지도 20여 개 마을이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천제(天祭)·중천제(中天祭)·동구제(洞口祭)·팥죽제·큰산제 등으로 명칭 또한 다양하다. 제일은 대개 정월 초사흗날이지만 마을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9월 9일에 행하는 곳도 있다.

신격은 거의 산신으로 당산할머니·당고(堂姑)할머니·당산할아버지 등으로 불리며, 제단은 당집이나 당산수(堂山樹)·조탑(造塔)으로 되어 있다. 조탑은 마을 앞에 30∼40㎝의 자연석을 쌓아올린 밑둘레 10m, 높이 2∼3m 가량의 누석단(累石壇)으로 정상에 40∼50㎝ 높이의 머릿돌[童子石]이 꽂혀 있다.

이 고장의 특이한 동제의 예로는 천천면 삼고리 삼장(三壯)마을의 팥죽제를 들 수 있다. 제일인 정월 초사흗날 밤 8시쯤이 되면 부녀자들은 풍물을 치며 마을돌기를 하면서 골목길에 팥죽을 뿌려 잡귀를 몰아내고, 횃불을 밝히며 마을 앞 할아버지 당산탑에 모인다.

이 조탑에 여러가지 제물과 팥죽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소지를 올리며 제를 지내는데, 제가 끝나면 팥죽과 제물을 나누어 먹으며 풍물을 치며 논다.

설화·민요

이 고장에는 「상사(想思)버섯전설」·「형제바위전설」·「당집구렁이전설」 등의 설화가 전한다.

옛날 어느 마을에 글만 읽는 선비와 갱피(먹는 피)를 훑어 어렵게 생계를 꾸려나가는 아내가 살고 있었다. 아내는 결국 가난을 견디다 못해 남의 집 후처로 갔다. 그 뒤 선비는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고향 근처의 고을에 원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행차 도중에 원님은 후처로 가서도 갱피를 훑는 옛 아내와 마주치게 되었지만 이제는 엎질러진 물이 되어 그냥 지나쳐버렸고, 볏짚 지붕에 올라 멀어져가는 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내는 지붕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뒤로 장마 뒤에 지붕의 볏짚에서 이상한 버섯이 피었는데, 이를 상사버섯이라 불렀다.

천천면 연평리신기마을 에는 큰 바위산이 있어 다음과 같은 유래담이 전해온다. 옛날 이 곳에 조금씩 자라는 이상한 바위가 둘 있었다. 백일이 지나 더 이상 자라지 않게 되면 이 곳이 서울이 된다는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 새벽에 아낙네들이 우물물을 길러 왔다가 커가는 바위를 보고 바위가 커지고 있다고 고함을 지르자, 두 바위는 깜짝 놀라 자라는 것을 멈춤으로써 그만 서울이 되지 못하였다 한다. 이 바위를 형제바위라 하는데 봉황이 날아와 살았다 하여 봉황대라고도 한다.

또한 신기마을에는 당집에 얽힌 「당집구렁이전설」이 전해온다. 언제인가 마을에 있는 작은 산이 큰 수탉으로 변하여 이 곳을 지나는 사람들을 무조건 잡아먹을 뿐 아니라 곡식까지도 빼앗아 먹는 것이었다. 그러자 마을사람들은 어떤 중의 지시로 한 달에 한 번씩 처녀를 제물로 바치고 제사를 지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동네 당집에 살던 암쿠렁이가 수탉과 싸워 함께 죽어서 산이 되었다. 그 뒤로 마을은 무사하였고, 사람들은 구렁이를 고맙게 여겨 당집을 새로 짓고 매년 그 넋을 위로하는 제를 지내게 되었다.

이 밖에도 길이 험하여 100여 명씩 짝을 지어 넘었다는 「백제고개전설」, 효성스런 현감을 도깨비와 호랑이가 도와주었다는 「관청바위전설」, 고려시대의 고승 나옹(懶翁)이 도적들을 바위로 변하게 하였다는 「도적바위전설」, 용이 매어둔 소를 잡아다 먹었다는 「용소전설」, 시어머니의 구박과 모함에 아내가 빠져 죽자 남편도 같이 빠져 죽었다는 「서방소와 각씨소 전설」 등이 전한다.

이 고장은 덕유산 줄기에 맞닿아 있는 산간지방인 까닭에 「산채캐는 노래」·「나무꾼노래」·「목화따는 노래」·「나물뜯는 노래」·「길쌈노래」 등이 성하다. 또한 밭농사가 중심이 되는 이유로 하여 「밭매는 노래」가 많이 불리고 있다. 계북면·산서면 등지에서는 논농사와 관련된 「모찌는 노래」·「모심는 노래」·「논매는 노래」 등도 들을 수 있다.

이 고장의 특이한 민요인 「음두꺼비노래」(혼자노래)는 신랑과 신부의 교환창 형식의 노래이다. 내용은 계모 슬하의 처녀를 신부로 맞이한 총각이 신부가 음두꺼비같이 생겼다는 계모의 말을 믿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나 알고 보니 절세미인으로 날새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신부)어제오신 저신랑은 잠만자러 오셨는가/(신랑)금삼(錦衫) 밑의 음두껍아 말이나말고 누었거라/(신부)들고보소 들고보소 한삼소매 들고보소/(신랑)한삼소매 들고보니 논두럭에 모마꽃은/먼지나 종종 앉으련만/닭아닭아 우지마라 흰싸래기 받아두마/개야개야 짖지마라 받은밥상 돌려주마.”와 같다.

「길쌈노래」는 「삼삼는 노래」·「삼잣는 노래」·「베짜는 노래」로 나눌 수 있다. 이 「길쌈노래」는 밤을 새워 노동을 할 때, 무료함과 졸음을 쫓고 노동을 즐겁게 하기 위해 불렀다. “아가아가 우지마라/이삼삼아 옷해입고/팔도강산 귀경가세/잠아잠아 오지말게/이삼가리 다삼우고/임의품에 잠들러가세…….”와 같다.

「산채캐는 노래」는 “멀구다래 썩는 물은 골골마다 흐르는데/우리부모 썩는 물은 어느골로 흐르는가/오늘해라 다져가고 골골마다 연기난데/우리님은 어데가고 연기낼줄 모르는가.”와 같이 부모와 임을 그리는 내용이다. 「논매는 노래」는 “에에야 에흐 방게로다/장수 원님은 곤달루쌈/남원 원님은 해우쌈/…….”과 같다.

이 밖에도 「궐마성노래」(가마메는 노래)·「그네뛰는 노래」·「들노래」·「자장가」·「상여노래」 등이 불리고 있다.

산업·교통

농가인구가 군 전체 인구의 44.7%를 차지하는 농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보이지만, 산간지대에 속해 경지면적이 7,226㏊로 13.5%의 낮은 경지율을 보인다. 논이 3,470㏊이고 밭은 3,756㏊이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도시로 전출하는 인구의 비율이 높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메밀·고구마·감자 등으로 쌀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고추·마늘도 많이 재배된다. 한랭한 고원기후를 이용하여 무·배추·사과·잎담배·인삼 등도 많이 재배된다.

무·배추 등의 고랭지채소는 고도가 낮은 산서면을 제외한 장수읍 등 전 지역에서 많이 재배된다. 인삼은 번암면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재배되며, 잎담배 재배도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기술부족으로 질 좋은 사과를 생산하지 못했으나 현재는 질 좋은 ‘장수사과’가 많이 생산된다. 근래에는 장수읍을 중심으로 사과의 재배면적이 눈에 띄게 큰 증가를 보이고 있다. 감나무가 많아 감의 생산량도 많은데, 특히 번암감은 예로부터 유명하다. 오미자·당귀·두충·작약 등의 약용작물 재배도 활발하다.

최근에는 농업구조개편에 대응하여 동양란 개화 촉진 사업 등도 행해지고 있다. 양잠 농가는 크게 줄었지만 아직도 약간 행해지고 있다. 산지를 이용한 축산업이 활발하며, 최근에는 가구당 사육 규모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축산업이 활발하여 한우·돼지·산양·닭·사슴·젖소·개·말·토끼·오리 등 다양한 가축들이 많이 사육되고 있다. 번암면에서는 꿀벌 사육이 활발하다.

임야가 전체의 약 75.09%를 차지하여 밤·호두·잣·은행과 버섯·약초·산나물 등의 임산물이 많이 생산된다. 덕유산 기슭에서는 자연산 송이버섯·약초·산나물 등이 많이 채취된다.

광공업은 미비하다. 광물은 번암면·장계리 등에서 석회석 등이 약간 생산된다. 산간지대의 불리한 입지조건으로 공업은 낙후되어 있다. 공업은 농촌 공업화사업으로 1990년에 천천면에 천천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약간의 공장이 입주했으나 거의 모든 업체가 영세한 소기업이다. 2004년 12월에 장계면의 금덕·송천 일원에 장계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적극적인 기업유치 및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기존의 천천농공단지와 더불어 군의 공업발전을 이끌고 있다.

시장분포 현황을 보면 장수장·장계장·번암장·산서장 등 4개소의 정기시장이 개설된다. 5·10일에 개설되는 장수장과 3·8일에 장계장은 한약재와 약초의 거래가 활발하다. 면 소재지인 장계면은 장수읍에 비해 상업기능이 뒤지지 않는다.

장계면은 전주·무주·남원과 경상남도 거창 등지로 통하는 국도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로 상업과 서비스업이 발달하여 무진장지방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 산서장은 2·7일에, 번암장은 1·6일에 개설되며, 농산물과 일용필수품이 거래된다. 지형적 요인으로 산서와 번암은 각각 인접한 임실군 오수면과 남원시와의 거래가 활발하다.

특산물로는 팔공산 부근 등지에서 생산되는 검푸른 색의 각섬석편마암을 가공하여 만든 곱돌그릇이 있다. 전국적으로 ‘장수곱돌그릇’으로 유명하며, 장수읍과 번암면에는 이들 석기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있다.

교통은 광주대구고속도로가 군의 남쪽 끝을 지나면서 영·호남을 연결하고 있다. 군의 북동부에는 장계면을 지나 경부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에 연결되는 통영대전고속도로의 완공으로 그 동안 불편했던 중부지방 및 남부지방과의 교통이 크게 개선되었다.

전주∼함양간의 국도가 군의 북부에서 동서로 지나고, 남원∼무주간의 국도가 군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이 두 도로는 장계면 장계리에서 교차한다.

따라서 장계는 동부산간지방의 교통의 요지로 상업·서비스업이 성장하였다. 전주∼함양간의 국도는 육십령을 통해 소백산맥을 통과하는데 겨울철에는 눈이 많아 교통에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 밖에 군의 남부에는 산서면을 통과하여 장수읍과 임실군 오수면을 연결하는 지방도가 있다. 대체로 지형이 험하고, 겨울철에는 눈이 많아 교통이 불편한 편이다.

관광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양대산맥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이 군은, 장안산(1,237m)을 비롯하여 백운산·팔공산·덕유산 등의 명산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심산유곡의 기암괴석과 폭포·소(沼)·수목과 명경지수가 한데 어우러지는 천혜의 자연경관과 도처에 유서 깊은 문화유적들이 많아 휴양지와 자연답사를 위한 여행코스와 관광명소들을 보유하고 있다.

장수읍내에는 장수향교와 논개의 의암사당이 있어 관광객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장수읍에서 장계면과 계남면에 걸쳐 있는 장안산지역에는 장안산 주봉을 중심으로 사자봉·깃대봉·무룡궁·덕산 등의 주요 산봉에 대한 등산로와 장안산계곡·덕산계곡 등의 크고 작은 계곡들, 그리고 폭포·소·반석 등의 기암괴석과 약수터 등이 있어서 자연경관 및 울창한 숲과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여름철에는 이들 계곡을 찾는 관광객과 휴양객들이 많이 모여든다. 계곡을 따라 취사장·주차장 등이 시설되어 있다.

장수읍 서쪽에 있는 팔공산의 울창한 숲과 평원은 한 여름철의 좋은 휴양지가 된다. 번암면의 백운산도 울창한 원시림과 절경을 자랑하는 지지계곡(知止溪谷)으로 유명하다. 방화동에는 국민관광지인 방갈로를 비롯한 숙박·취사시설이 정비되어 있어 좋은 휴양지가 되고 있다. 계곡을 따라 산책로가 나 있다.

장계에서 경상남도의 안의(安義)에 이르는 육십령고개와 안의계곡 또한 유서깊은 휴양지이다. 북덕유산의 무주구천동과 이어지는 남덕유산의 토옥동계곡은 매우 경치가 빼어난 계곡이다. 덕산용소·비악폭포·서방쏘·각시쏘·천천봉황대 등 경승지도 이 군에서 자랑하는 경승지이다.

예로부터 선조들은 ‘장수팔경’을 노래해 왔는데, 이는 이 지역의 아름다움을 모두 노래하고 있다. 노평낙안(蘆坪落雁), 유천표모(柚川漂母), 매산청풍(梅山淸風), 송탄어적(松灘漁笛), 용추만풍(龍湫晩楓), 단평비폭(丹坪飛瀑), 반계은린(磻溪銀鱗), 영산영월(靈山迎月)이라 노래하여 이 지방의 산과 계곡에 얽힌 아름다움과 단아한 정서를 담고 있다.

장수군에 있는 산간계곡의 경승지들은 그동안 연계관광지로 개발하려는 계획이 부진하고 워낙 내륙의 산간에 위치한 경승지들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가 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군에서는 현재 남원·전주·무주·함양 등지에서 장수군의 주요 관광지로 이동할 수 있는 다양한 코스의 테마관광을 개발하여 홍보하고 있다.

읍·면
  1. 장수읍(長水邑)

군의 중앙에 있는 읍. 면적 101.78㎢, 인구 7,565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장수리이다. 본래 장계군 지역으로 고려시대에는 장수현으로 남원부에 속하였다.

1895년 수내면과 수남면으로 나누어졌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 면이 합병되어 장수면이 되었다. 1970년 대성리에 대성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9년에 읍으로 승격되어 장수읍이 되었다.

분지형태를 가진 고장으로 남동부에 장안산, 서부에 팔공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읍의 중앙을 천천(天川)이 흐르고 있다. 수분리의 높이 480m 지점이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계(分水界)가 된다. 편마암과 화강암이 심층풍화되어 산간분지가 높이 400∼500m 위에 넓게 발달하고 주변은 700∼1000m의 산지로 둘러싸여 읍은 고원상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개정리에는 단상지(段狀地)가 발달하여 분지발달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겨울에는 적설량이 많고 기온이 낮아서 고랭지의 하나이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쌀·보리 등의 주곡작물과 담배·고랭지채소의 생산이 많아 서울 등 대도시의 시장에 출하한다. 대성리 필덕마을 같은 높이 600m의 고원에서는 축산업이 발달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재를 원료로 대성리·장수리에서는 곱돌그릇·석등·돌조각·술병·술잔 등 석기조각품의 생산이 특산물로 생산되고 있다.

교통은 전주∼무주간의 국도와 천천∼임실, 장수∼진안, 장수∼남원으로 통하는 교통이 발달하여 무진장지구의 교통과 상업중심지로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장수리의 장수향교와 정충복비, 선창리의 창계서원, 장수리의 주논개 생향수명비, 대성리의 합미성 등이 있다. 명승지로는 덕산리의 덕산용소가 있다.

장수(長水)·노하(路下)·선창(先昌)·노곡(蘆谷)·동촌(東村)·덕산(德山)·두산(斗山)·개정(開亭)·수분(水分)·송천(松川)·용계(龍溪)·대성(大成)·식천(食川) 등 13개 리가 있다.

  1. 계남면(溪南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0.26㎢, 인구 2,32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화음리이다. 본래 고려시대의 장수현으로 남원부에 속해있다가 1895년 임남면(任南面)으로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계서면 무농리 일부가 병합되어 계남면으로 불렸다.

금강 상류인 천천변에 좁은 평야가 있을 뿐 대부분 높이 400m이상의 소백산맥으로 산지이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쌀·보리·담배·들깨·참깨·고추 등의 생산이 많고, 고랭지 채소재배가 행해지고 있다.

교통은 남원∼무주간의 국도가 지난다. 문화유적은 화양리의 홍학당, 화음리의 수열비 등이 있다. 화음(華陰)·침곡(砧谷)·신전(新田)·화양(華陽)·호덕(好德)·가곡(佳谷)·궁양(弓陽)·장안(長安) 등 8개 리가 있다.

  1. 계북면(溪北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5.88㎢, 인구 1,60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어전리이다. 본래 장계군 지역인데, 1413년 장수현에 편입되어 임북면(任北面)이 되었다가 1895년 계북면으로 고쳐져 월전(月田) 등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담군 이동면 신풍리 일부와 무주군 일안면 마암리 일부가 병합되어 월현·매계·농소·어전 등 7개 리로 개편된 것을 관할하게 되었다.

동부에 남덕유산이 있어 덕유산국립공원의 일부에 속한다. 여기에서 구리향천이 발원하여 금강 상류가 된다. 양악리 북부의 무주군 안성면과의 경계에 400∼500m 높이의 산록경사면이 발달하고 있다. 농업이 주업이고 쌀·보리 외에도 담배·표고버섯·인삼·약초 등이 재배되고 양봉업과 고랭지채소 재배도 성하다.

교통은 남원∼무주간의 도로가 있다. 문화유적은 양악리에 장수양악탑과 용연정이 있다. 어전(於田)·월현(月峴)·매계(梅溪)·농소(農所)·임평(林坪)·원촌(院村)·양악(陽岳) 등 7개 리가 있다.

  1. 번암면(蟠巖面)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26.08㎢, 인구 2,49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노단리이다. 본래 고려시대의 장수현 지역으로 남원부에 속하였다. 1895년 장수군으로 편입되면서 상번암·중번암·하번암으로 나뉘어졌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들이 통합되어 번암면이 되었다.

동서남북에 백운산·장안산·상서산(627m) 등이 둘러싸고 있고, 동북부의 백운산이 섬진강과 진주 남강의 분수계가 된다. 섬진강 상류 주변에 200∼300m의 평지가 있을 뿐 대부분 산지이다. 백운산·장안산에서 발원한 요천(蓼川)이 면의 중앙을 흐른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주곡작물 이외에 감·밤·약초·고랭지채소의 생산이 많다. 산간에서 양봉업도 많이 행해지고 있다. 장안산계곡과 백운산계곡의 방화동은 피서휴양지로 유명하다. 번암온천장이 개발되어 있다.

교통은 광주대구고속도로가 면의 남단을 통과하고, 남원∼무주간의 국도가 남서부를 장수∼남원간의 국도가 지나며, 노단리에서 섬진강을 따라 군도가 지난다. 문화유적은 노단리의 어서각중 반계정, 국포리의 정종목 효자각 등이 있다.

노단(魯檀)·교동(橋洞)·국포(菊圃)·죽산(竹山)·사암(紗巖)·지지(知止)·동화(洞花)·죽림(竹林)·논곡(論谷)·대론(大論)·유정(柳亭) 등 11개 리가 있다.

  1. 산서면(山西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7.73㎢, 인구 2,40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동화리이다. 본래 고려시대의 장수현 지역으로 남원부에 속하였으며, 1895년 신서면(身西面)이라고 불리다가 수서면(水西面)으로 개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서면으로 개칭되었다.

노령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있는 내륙분지로서, 오수·남원·운봉을 잇는 삼각형모양의 대보화강암을 기반암으로 하고 있다. 경작지가 비옥하고 야산지대가 많아 개간의 여지가 많고 군내 제일의 곡창지대를 이룬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축산업도 발달하여 있다.

교통은 산서∼백운, 오성∼국포간에 군도와 순창∼동향간, 동화∼성수간의 지방도가 지난다. 문화유적으로는 학선리의 압계서원, 마하리의 원흥석불입상, 오산리의 권희문가옥, 사계리의 정상윤가옥 등이 있다.

동화(桐花)·오성(五聖)·쌍계(雙溪)·사계(社桂)·봉서(鳳棲)·사상(社上)·하월(下月)·이룡(二龍)·신창(新昌)·오산(五山)·건지(乾芝)·마하(馬下)·백운(白雲)·학선(鶴仙) 등 14개 리가 있다.

  1. 장계면(長溪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7.56㎢, 인구 4,64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장계리이다. 본래 고려시대의 장계현의 지역으로 남원부에 속하였다. 1413년 장수현과 통합되어 장수군에 속하여 임현내면(任縣內面)이 되었다.

1895년 계동과 계서로 갈라졌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계동면·계서면이 통합되어 계내면으로 되었다가 1993년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동부에 깃대봉 등 1000m 높이의 산지가 있고 이들 산지에 육십령이 있어 경상남도 거창과의 교통로가 된다. 산간분지로 천천변에 한들(大野)과 같은 넓은 들을 가지고 있으며 토지도 비옥하다. 산간에 이런 넓은 들이 있을까 할 정도이다. 농업이 주업이고 쌀·보리가 생산되며, 주변 산지에서는 양봉·축산업·고랭지채소 재배가 행해진다.

교통은 전주·진안·무주간의 국도, 진안∼거창, 남원∼무주를 연결하는 도로가 교차하여 장계리는 무진장지구(茂鎭長)의 교통·상업중심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월강리의 월강사, 금곡리의 금남군영정각, 송천리의 도암서원 등이 있다.

장계(長溪)·금곡(金谷)·무농(務農)·금덕(錦德)·송천(松泉)·월강(月岡)·삼봉(三峰)·명덕(明德)·오동(梧洞)·대곡(大谷) 등 10개 리가 있다.

  1. 천천면(天川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84.00㎢, 인구 2,22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봉덕리이다. 본래 고려시대의 장수현 지역으로 남원부에 귀속되어 신북면(身北面)이라 불리다가, 1895년 수북면(水北面)으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천천면으로 개칭되었다.

동부의 천천변에 높이 350∼400m의 평지가 있을 뿐 대부분이 화강암질 편마암으로 된 500∼1,000m의 산지로 구성되어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보리 이외에 고추·무·배추 등의 고랭지채소와 담배가 재배된다. 산간산록에서 축산업도 발달되어 있다.

교통은 전주·진안·거창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을 지난다. 문화유적은 와룡리의 신광사, 장판리의 타루비, 연곡리의 귀후제(歸厚齊), 연평리의 봉화대 등이 있다. 춘송(春松)·장판(壯板)·월곡(月谷)·와룡(臥龍)·남양(南陽)·삼고(三顧)·봉덕(鳳德)·용광(龍光)·오봉(五峰)·연평(蓮坪) 등 10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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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www.jeonbuk.go.kr)
통계청(nso.go.kr)
장수군(www.jangs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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