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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傳染病)

의약학개념용어

 병원체가 침입하여 사람으로부터 사람으로 전파되는 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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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의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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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용어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병원체가 침입하여 사람으로부터 사람으로 전파되는 질환.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염병(染病)이라고도 한다. 전염병은 병원균에 의하여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또는 동물에게서 사람으로 감염되는 것으로 급속하게 또는 만성적으로 광범위하게 전파되어 고통을 당하거나 생명을 잃게 되는 질환으로 사회의 큰 혼란을 일으키게 한다. 예로부터 인류는 이와 같은 전염병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고 그 병으로부터 해방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전염병의 예방은 19세기 후반에 결실을 보게 된 과학적 미생물학의 발전에 힘입어 결정적인 성과를 거두게 되었으나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이와 같은 전염병의 유행과 치료에 관한 지식은 국가와 민족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어 왔다.
이러한 전염병은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역질(疫疾)·질역(疾疫)·여역(癘疫)·역려(疫癘)·시역(時疫)·장역(瘴疫)·온역(瘟疫)·악역(惡疫)·독역(毒疫)이라고 불려 왔다.
이 중 역(疫)은 널리 유행하는 전염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여(癘)는 좋지 않은 병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왔다. 결국 오늘날의 처지에서 볼 때 역려란 좋지 않은 전염병이라고 해석되며 악성유행병을 의미하였다. 이와 같은 역질은 예로부터 존재해 왔다.
『삼국사기』에 보면, 백제에서는 온조왕 때에 기역(饑疫)이 있었으며, 구수왕·근구수왕 당시에 대역(大疫)이 유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고구려에서는 중천왕·소수림왕·안원왕·영양왕 때에 대역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행성 전염병 중 크게 창궐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위협을 준 경우에는 모두 역질이라고 표현되어 전염병의 개념은 매우 광범위하였다.
유행병 내지 이와 유사한 질병도 포함시켜 때로는 흉년이나 기근에 따라 생겨난 영양 부족 또는 영양 장애까지도 전염병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점차 후세에 이르러 이와 같은 전염병의 개념은 의학지식의 증가에 따라 그 범위가 분명해지고 전염병의 분류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삼국 및 신라시대에는 발진티푸스·장티푸스·말라리아·적리(赤痢)·두창·마진(麻疹) 등을 총괄해서 단지 역질, 또는 역이라고 하였으나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신라 선덕왕은 역진(疫疹)으로 죽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발진성(發疹性) 전염병은 주로 두창·홍역·발진티푸스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의 전염병
우리 나라에 유행하였던 각종 전염병은 중국과 일본의 자료는 물론 우리 나라의 의학관계 문헌을 통해서도 그 발생양상을 알아볼 수 있다.
일본의 문헌인 『의심방 醫心方』을 보면 『백제신집방 百濟新集方』과 『신라법사방 新羅法師方』의 유문(遺文)이 실려 있다. 특히, 이와 같은 유문 중에 포함되어 있는 질병을 보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하였던 전염병을 추측할 수가 있다.
이 밖에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전염병의 기록이 나온다. 우선 『백제신집방』과 『신라법사방』을 보면, 폐옹(肺癰)과 정종(丁腫)에 관한 기록이 나오며, 이 밖에도 적취(積聚)가 나온다.
이러한 세 가지 질병은 의학적인 명칭이다. 이 세 가지 병명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폐옹은 오늘날의 구루프성 폐렴 또는 폐결핵 아니면 폐괴저(肺壞疽)라 짐작된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 병은 폐의 상한병(傷寒病)으로 폐에 염증을 일으키는 급성전염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종의 기록 역시 『의심방』 제16권에 인용된 『신라집성방』에 나오는데, 정종은 풍사(風邪)로 인한 독기가 피부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풍진(風疹)과 같은데 가렵고 청황색의 농이 나온다고 하였다. 이 질환도 감염에 의한 전염성 질환이다.
이상의 설명으로 미루어 보건대, 사람의 피부나 근육에 생겨나는 일종의 전염성 농양이었으리라 추측되며, 삼국시대의 위생상태로 보아 능히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 『의심방』 제10권에 인용된 『신라법사방』을 보면 적취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이 병은 뱃속에 덩어리가 생겨서 나타나는 질병을 모두 총칭하는 것으로 아마도 각종 질병의 감별이 어려웠던 과거에는 여러 가지 전염병을 비롯해서 각종 질병이 이에 포함되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밖에도 『삼국사기』를 보면 오늘날의 정신신경성 질병과 유사한 증상에 관한 기록이 나타난다. 이것이 전염병이었는지 아니면 비전염병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신경쇠약 내지 우울증과 유사한 질병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데, 이곳에 나오는 이른바 ‘정신불쾌’의 증상은 오늘날의 우울증이나 신경성 질병과 유사한 심신병(心身病)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질병이 흔한 것이었는지 아주 드문 병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정신신체의학적 질병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유사』 제3권에 “감여질 이인상차발악병(感癘疾 二人相次發惡病)”이라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말하는 여질 또는 악병은 확실히 전염병이며 아마도 오늘날의 전염성 피부병 내지 문둥병으로 짐작되고, 다른 사람에게 전파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였다.
또한 『삼국사기』 제5권을 보면, “신문왕발저배(神文王發疽背)”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은 등허리에 생긴 좋지 않은 악성 종기로 짐작되며, 제2권 「가락국기 駕洛國記」를 보면 “심노권…… 유질채(甚勞倦…… 有疾瘵)”라 기록되어 있다.
이때 채(瘵)는 노병(勞病)을 말하며 아마도 폐결핵을 의미하는 것으로 짐작되고, 삼국시대에도 결핵환자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질병 외에도 여러 가지 질병이 삼국 및 신라시대에도 있었으리라 짐작되지만 이상의 여러 사적에는 급격하게 많은 사람들을 침범해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공포를 안겨 주어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건으로 다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역병이나 지배층의 질병에 관한 기록이 나올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염병은 대개 여귀(癘鬼) 또는 역귀(疫鬼) 때문에 생겨난다고 보았으며, 신라통일기 말까지 신라에서만도 약 32건의 전염병 유행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짧은 기간 안에 발생되는 각종 질병도 포함시켜 흉년이 들고 기근이 수반된 영양부족 내지 영양실조로 인한 사망도 역질로 간주되어 개별적인 전염병의 발생소장(發生消長)은 밝히기 어렵다.
다만 정확하게 사적에 나오는 바와 같이 적취나 폐옹 또는 정종이 있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영역닫기영역열기고려시대의 전염병
고려시대에는 신라에 이어 중국의 송나라 의학으로부터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문종부터 의종에 이르기까지 크게 발달되었다. 또한 질병 발생에 관해서도 더욱 상세한 기록을 엿볼 수 있다.
특히 『향약구급방 鄕藥救急方』과 『고려사』를 통하여 고려시대에 유행하였던 각종 전염병의 양상을 엿볼 수 있다. 향약이란 원래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제를 뜻하는 것으로 중국 대륙에서 수입되는 약품에 대응시켜 사용된 말이며, 구급방이란 위급한 질병에 응급처치를 올바로 해줌으로써 도움을 주려고 만들어 낸 일종의 의서(醫書)라 하겠다.
이러한 『향약구급방』에 기재된 병명이나 증상을 보면 신라시대에 엿볼 수 있었던 질병뿐만 아니라 각종 전염병을 비롯한 증상이 나온다. 상권에 식독(食毒) 등 18개, 중권에 정창(丁瘡) 등 25개, 하권에 부인잡방(婦人雜方) 등 9개의 병명과 증상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나오는 병명을 보면 확실히 식중독이나 어육중독, 균독 등 재빨리 구급처치법이 필요한 질병이 많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도 『향약구급방』은 우리 나라 고유 의학의 발달과 아울러 일반 대중의 의료 향상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고려시대의 질병 내지 전염병을 이해하는 데 『고려사』는 많은 도움을 준다. 첫째, 말라리아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당시의 병명으로는 학질(瘧疾)이라고 되어 있으며 1122년(예종 17) 12월에 학질이 발생하여 사람들이 죽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미 지적한 『향약구급방』에도 학질에 관한 언급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학질은 대개 방술(方術)이나 한약재로는 시호(柴胡)·항산(恒山)·우슬(牛膝)이 추천되었을 뿐이었다.
둘째, 저(疽) 내지 종(瘇)에 관한 기록이다. 『고려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종기를 앓았으며 예종도 등에 생긴 종기 때문에 고생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러한 종기는 대개 악성으로 등에 많이 발생하며 위중한 질병으로 간주되었으나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단순한 종기였는지 아니면 전염성 피부병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아마도 이 두 가지 범주의 질병이 다 함께 만연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셋째, 임질에 관한 기록이다. 특히, 충혜왕은 호색가로서 많은 여자와 관계를 가졌으며 그와 관계를 맺었던 여인들에게 임질이 생겼다고 한다.
확실히 여기에 기록된 임질은 오늘날 우리들이 알고 있는 전염성 임질이라 생각된다. 물론 『향약구급방』에도 임질에 관한 조항이 나오는데, 임질에 걸리면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병이 전염성 질병인지 아니면 비전염성인지 명확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충혜왕과 관계를 맺었던 여자들에게 임질이 많이 발생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전염성 임질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넷째, 중요한 전염병에 관련된 기록으로는 악질(惡疾) 내지 문둥병에 관한 기록이다. 고려시대까지만 하여도 문둥병은 흔히 악질이라고 불려 왔으며 『향약구급방』에서는 악창(惡瘡)이라고 되어 있다. 이상의 각종 전염병이 연대별로 발생된 유행양상은 『고려사』에 잘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역병이 발생하면 역신(疫神) 또는 온신(瘟神)에게 제사를 드리고 구호에 힘썼을 뿐 합리적인 대책이 수행되지는 못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조선시대의 전염병
조선시대에 이르자 전염병 발생에 관한 기록은 더욱 자세하게 나온다. 특히, 조선시대에 크게 발생해서 문제되었던 질병을 보면 두창(痘瘡)·홍역·콜레라 등을 들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질병은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와 밀접한 교류를 가졌던 중국대륙은 물론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유행되어왔다.
실제로 두창은 4, 5세기경에 중국에서 크게 유행한 뒤 우리 나라를 비롯해서 아시아 각국에 크게 퍼졌으며, 콜레라는 1819년에 중국에 들어와 1820년에 중국 대륙을 휩쓸고 1821년에 우리 나라에서 크게 유행한 뒤, 1822년에는 일본에 파급되어 아시아 전체에 공통된 질병의 유행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접어들자 사람들은 점차 역병을 두창이나 홍역 같은 발진을 수반하는 전염병과 말라리아 및 콜레라를 구별해서 기록하기 시작하였으며 개별적인 전염병의 기록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에는 단지 전염병을 크게 역이라 하거나 여역이라고 부르고 상한병으로 크게 다루었으나, 조선시대에 이르자 발진을 일으키는 질병은 두창·수두(水痘)·마진·풍진·홍역으로 구별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장티푸스와 발진티푸스를 의미하는 온역과 해병(咳病) 등이 구분되기 시작하였다.
이 밖에도 차츰 디프테리아 같은 병도 구분되고 백일해도 역해(疫咳)라 부르게 되어 병명의 정리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또한 말라리아는 학질로, 이질은 역리(疫痢)라 부르고 페스트는 쥐 때문에 생겨나는 것 같다고 해서 서역(鼠疫)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대로 온독역(瘟毒疫)이라고 불렀다.
또한 콜레라는 괴질이라고 하였다. 물론 이와 같은 병명만으로 과거의 전염병 유행을 구체적으로 감별하기는 어려우며 사관(史官)에 따라서는 혼동해서 기록한 경우가 없지 않으나 점차 전염병이 구체화되고 세분화되어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조선 개국 후 처음으로 발생한 역병은 1396년(태조 5) 3월에 발생한 전염병의 유행이다. 특히 “경축성역부 역려유행(京築城役夫 疫癘流行)”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도성을 쌓기 위하여 소집한 인부들에게 전염병이 크게 유행하였다는 것이다.
그 뒤 전염병은 계속해서 크게 유행하여 주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크게 희생되었다. 이와 같은 전염병의 유행과정을 훑어볼 때 질병사적 차원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을 적어 보면 우선 개별적인 질병에 따라 전염병의 발생이 기록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세종실록』을 보면 1434년(세종 16) 5월에 이르자 “경상우도선군 상한온역다(慶尙右道船軍 傷寒瘟疫多).”라 하여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발진티푸스 내지 장티푸스의 유행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와 같은 전염병 유행에 대응하기 위하여 1525년(중종 20)에 이르자 조정에서는 『간이벽온방 簡易辟瘟方』을 지어 반포하기 시작하였다. 즉, 많은 사람들이 간단하게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을 수록해서 알리도록 힘썼다.
이것은 오늘날의 전염병 예방을 위한 보건교육사업과 유사한 것으로 비록 그 내용이 과학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역사적 의의가 있었다고 본다.
또한 1550년(명종 5)에 이르자 말라리아가 크게 돌고 황달이 심해서 정부는 『황달학질치료방 黃疸瘧疾治療方』을 만들어 배포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에도 계속 전염병이 돌자 광해군 때에 이르러 새로운 『벽온방 辟瘟方』과 『벽온신방 辟瘟新方』이 발행되었으며, 효종 때에 이르자 또다시 『벽온신방 辟瘟新方』이 나오게 되었다.
그 뒤 1821년(순조 21) 8월에 이르자 평안도로부터 괴질이 퍼지기 시작해서 전국적으로 크게 유행하여 10여 년 동안 해마다 여름이 되면 발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염병의 발생에 즈음해서 많은 사람들은 우선 역귀 때문에 무서운 전염병이 발생한다고 믿었다. 불교에 의한 인과응보설이나 유교적 배경에서 나온 운기불화설(運氣不和說)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의 유행은 귀신의 조화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전염병이 많이 돌 때는 여제(癘祭)를 드렸다. 실제로 이와 같은 여제에 쓰였던 제문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편찬된 각종 의서를 보면 계절이나 기후의 변화 때문에 전염병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실제로 『향약집성방』 제5권에 보면 절기가 고르지 못해서 추위와 더위가 심하거나 좋지 않을 경우에 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는 기운이 생겨나고 이와 같은 기운이 전염병의 유행을 만든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운기불화설에도 불구하고 『벽온방』 같은 책을 보면, 좋지 않은 역귀 때문에 전염병이 발생하기 쉽다는 기록이 나온다. 따라서 기후가 불순하고 귀신의 노여움이 있거나 많은 사람들이 원망을 품었을 때 전염병의 발생은 쉽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간이벽온방』에도 귀려(鬼癘)의 기운이 있어서 역병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이상의 이론을 요약해보면 역귀나 운기부조화 때문에 생겨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전염병에 대한 예방법을 『벽온신방 辟瘟新方』에 따라 보면, 첫째로 온역양법(瘟疫禳法)이 나온다.
‘{{T62217_00.gif}}’이라는 네 글자로 된 부적을 대문에 붉은 글씨로 좌우에 써붙이면 전염병을 물리치고 걸리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방법이다. 이와 같은 글씨를 써서 가지고 다니거나 태워서 먹으면 좋다고도 되어 있다. 두 번째로는, 온역벽법(瘟疫辟法)으로서 사향소합원 같은 환약을 술에 타서 마시면 역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하였다.
세번째로는, 역귀가 집안에 들어오려면 대문을 통해서 들어와야 하므로 큰 솥에 물을 끓여서 마당에 놓고 향을 태워서 역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등의 경우가 나온다.
이와 같은 벽온방은 대개 전염병이 돌 때 정부가 편찬해서 발행해 왔다. 특히 1518년(중종 13)에 이르자 『언해벽온방 諺解辟瘟方』이 발행되어 많은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하기도 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1910년 이후의 전염병
1876년에 고종이 일본에 보낸 수신사 김기수(金綺秀)는 그의 수행원으로서 박영선(朴永善)을 데리고 갔는데 그는 우두법을 배워서 지석영(池錫永)에게 전수하였다.
이를 계기로 우두법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1885년에 지석영의 『우두신설 牛痘新說』이 나오고, 같은 해 5월에 광혜원(廣惠院)이 문을 열게 됨에 따라 우리 나라는 본격적으로 서양의학을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 1899년에는 「의학교령 醫學校令」이 제정되어 의학교육이 본격화되고 전염병관리사업이 점차로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전염병 예방에 관한 법규를 발포하여 전염병의 박멸과 만연을 방지하는 데 엄격한 행정적 조처를 취해 왔는데, 한일합병 후 1915년 6월에는 제령(制令) 제2호로서 「전염병예방령」을 다시 발포하고 그 해 8월에 세칙을 시행하였다.
이 「전염병예방령」에 규정된 전염병은 콜레라·적리·장티푸스·파라티푸스·두창·발진티푸스·성홍열(猩紅熱)·디프테리아·페스트 등 9종이었다.
그러나 방역통계에 따르면 1910년 이후에도 계속 콜레라·이질·장티푸스·파라티푸스·두창·재귀열·성홍열·디프테리아·유행성뇌척수막염 등의 전염병이 발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방역통계로 보아 거의 매년 전염병이 크게 발생해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데, 특히 1910년에는 페스트가 발생해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1945년 이후 전염병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 뒤 불행히도 1950년에 6·25전쟁이 발생하자 또다시 발진티푸스·재귀열·말라리아·두창 등이 다수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1951년 1월에는 전쟁중 경기도·충청북도·강원도 등지에서 발진티푸스가 크게 유행해서 정부의 공식 기록을 보더라도 3만2211명의 환자가 발생해서 많은 희생자를 보게 되었다. 또한 4월에 접어들자 장티푸스가 발생하기 시작하여 5월에는 크게 유행하여 방역 당국을 긴장시켰다.
특히 5월에는 김화·철원·평강 등지에서 유행성출혈열이 발생하여 새로운 전염병으로 부각되었다. 그 뒤 이 질병은 늦은 봄인 5∼6월과 늦가을인 10∼11월에 이 지역 주민이나 군인들에게 주기적으로 발생하여 우리 나라 전염병 관리사상 새로운 전염병으로 분류되었으며, 그 뒤 그 전파 양상이 밝혀져 진드기가 매개하는 전염병임이 알려졌다.
그러나 6·25전쟁 이후 생활 정도가 향상되고 방역사업이 그 성과를 거두게 되자 우선 천연두가 없어졌다. 우리 나라에서는 1959년 이후 천연두는 더 이상 발생히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6·25전쟁 때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걸려서 고생하였던 발진티푸스가 1970년대 이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20세기 초반까지 극성을 부리던 천연두·발진티푸스·재귀열·성홍열·트라코마·말라리아는 점차 줄어들어 이제는 거의 환자 발생이 없게 되었다.
계속 문제되어 왔던 장티푸스·파라티푸스·유행성이하선염 등도 줄어들었다. 아직도 1970년대 이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전염병은 인플루엔자·전염성 감기·살모넬라식중독 등이며, 이제는 우리 나라도 본격적으로 비전염병의 창궐시대에 접어들어 과학적인 의학과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에 따라 영아사망률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평균 수명이 연장되어 노인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상의 질병 전환 내지 전염병 감소현상은, 첫째, 환경위생의 개선에 힘입은 바 컸다. 생활정도가 올라가고 우리들의 환경을 합리적이고도 과학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아메바성이질이나 트라코마·발진티푸스·재귀열 등이 감소하였다.
둘째, 정부의 효과적인 방역대책에 힘입어 전염매개곤충이 크게 감소하였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발진티푸스의 급격한 감소나 재귀열의 경우를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셋째, 인위적인 면역력증가에 따라 전염병유행이 감소되거나 자연적인 면역력이 증가되어 한층 더 전염병의 유행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천연두는 효과적인 우두접종의 보편화 때문에 없어진 전염병이다. 또한 성홍열과 디프테리아도 면역력의 증가에 따라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넷째, 효과적인 치료약제가 광범위하게 이용가능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제약산업은 1960년대 이후 크게 발전하였다. 의료수준도 향상되어 폐렴이나 성홍열·유행성뇌척수막염의 급격한 감소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엄격히 따져볼 때 우리들의 생활양식이나 환경, 정신생활 등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효과적으로 방역대책을 실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변화 때문에 인플루엔자나 콜레라는 더욱 손쉽게 외국으로부터 들어올 수 있게 되어 자주 방역당국을 긴장시켜 왔다.
원래 인플루엔자는 전염력이 강하고 한번 발생하면 교통수단의 발달에 따라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손쉽게 전파될 수 있다.
콜레라도 과거에는 열대지역에서 시작하여 우리 나라로 들어오려면 상당히 시간적 격차가 있었으나 빈번한 해외여행과 교역의 증가 및 교통수단의 발달로 과거에 비한다면 훨씬 용이하게 전파될 수 있는 소지가 늘어났다.
확실히 1970년대 이후 인플루엔자나 콜레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의학적으로나 방역대책이 효과적으로 바뀌었다는 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밖에 나가 음식을 먹게 되고 여러 사람들과의 접촉이 늘어나 식중독·살모넬라병 등의 증가를 가져오기 쉽게 되었으나 그만큼 모든 면에서 향상되어 감소되어 왔다.
이 밖에도 1970년대 이후 우리 나라 전염병발생에 나타난 또 다른 변화는 환자의 연령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디프테리아·폴리오·홍역·수두 등은 과거에는 어린이들에게 잘 걸리는 소아전염병이었다.
위생상태가 좋지 않고 전염병의 전파가 용이하였던 과거에는 대개 어릴 때 이러한 병에 걸려서 면역력을 얻게 되거나 희생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디프테리아는 물론 홍역과 수두 및 전염성 감염은 어른에게도 많이 발생하는 전염병으로 바뀌었다. 위생상태가 좋아지고 전염병의 전파 기회가 줄어들자 어린이에게 흔히 발생하던 전염병도 이제는 어른들에게 자주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이환연령(罹患年齡)의 변동 내지 증가 추세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생활 정도가 올라가고 의학수준이 높아질수록 생겨나고 있다.
가까운 일본이나 유럽에서도 이와 같은 경향은 1950년대 이후 가속화되어 왔다. 그러나 효과적인 방역대책이나 특수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은 일본뇌염이나 인플루엔자의 경우에는 아직도 주기적으로 3, 4년의 간격을 두고 크게 유행하고 있다.
두번째로 나타난 전염병 발생 양상의 변화는 전염병 발생지역의 이동 내지 확대 경향을 들 수 있다. 일본뇌염의 경우 1955년까지는 전라북도·전라남도·경상남도·경상북도의 4개 도에서 약 3분의 2 이상의 환자가 발생하였으며, 특히 전라북도의 농촌지역에서 많이 발생하였으나 말라리아의 경우와 똑같이 이제는 농촌의 생활수준 향상과 함께 여러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전염병이 되어 버렸다.
유행성출혈열의 경우에도 과거에는 중부휴전선의 김화지구에서 많이 발생하였으나 이제는 경기도는 물론 강원도 등 산간지대에서 널리 발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전염매개곤충 및 동물의 이동 내지 주민의 인구이동 등 생활양식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고 본다.
세번째로는 보균자의 발생양상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과거에 많이 유행하였던 장티푸스나 파라티푸스는 특효약인 클로랑페니콜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자 생명을 잃는 사람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이 약이 처음으로 우리 나라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52년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널리 항균요법(抗菌療法)이 보편화되자 경증환자가 늘어나고 생명을 잃는 사람들은 줄어들었으나 그 대신 보균자가 늘어났다.
장티푸스뿐만 아니라 성홍열·홍역·세균성 이질·콜레라 등은 과거에 비하여 훨씬 가벼운 전염병이 되었다. 이와 같은 전염병의 경증화 경향은 치료방법의 과학화는 물론 항생물질의 보편화가 가장 큰 구실을 하였다고 본다.
우리 나라가 좀더 발전하고 생활수준이 향상된다면 이와 같은 전염병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리라 짐작된다. 단지 앞으로도 계속 우리 나라에서 문제될 전염병을 든다면 인플루엔자를 들 수 있다.
이 병은 1950년대까지만 하여도 세계적인 유행을 치르게 되면서 수개월 내에 수만 명 내지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유행할 때마다 그 병형(病型)이 달라지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유행을 저지시키기가 어려우나 앞으로 신속하고도 합리적인 백신 개발에 의하여 머지않아 없어지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우리 나라와 교역이 늘어나고 있는 동남아시아 각국의 전염병이 우리 나라에 침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직도 열대지방에서는 콜레라나 장티푸스가 흔하다. 이러한 지역과의 교역이 늘어날수록 이러한 전염병의 국내도입 내지 유행을 막도록 계속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또한 지방병적으로 발생하는 유행성출혈열이나 일본뇌염에 대한 과학적 대책이 개발되어야 하겠다. 그러나 이제 전염병이 창궐해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전염병의 창궐시대는 벗어났다.
정부가 발표한 통계자료를 보아도 우리 나라의 평균 수명은 이제 선진국에 비하여 거의 손색이 없다. 오히려 공해·환경오염·산업재해·교통사고·정신신경증·심신병(心身病) 등이 중요한 보건문제로 등장하였다.
확실히 1945년 이후 우리 나라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크게 변화하였으며, 1960년대 이후 질병 또한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외국에서 들어올 가능성이 있는 전염병이나 일부 질병에 대한 방역대책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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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1995년)
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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