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에 고종이 일본에 보낸 수신사 김기수(金綺秀)는 그의 수행원으로서 박영선(朴永善)을 데리고 갔는데 그는 우두법을 배워서 지석영(池錫永)에게 전수하였다.
이를 계기로 우두법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1885년에 지석영의 『우두신설 牛痘新說』이 나오고, 같은 해 5월에 광혜원(廣惠院)이 문을 열게 됨에 따라 우리 나라는 본격적으로 서양의학을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 1899년에는 「의학교령 醫學校令」이 제정되어 의학교육이 본격화되고 전염병관리사업이 점차로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전염병 예방에 관한 법규를 발포하여 전염병의 박멸과 만연을 방지하는 데 엄격한 행정적 조처를 취해 왔는데, 한일합병 후 1915년 6월에는 제령(制令) 제2호로서 「전염병예방령」을 다시 발포하고 그 해 8월에 세칙을 시행하였다.
이 「전염병예방령」에 규정된 전염병은 콜레라·적리·장티푸스·파라티푸스·두창·발진티푸스·성홍열(猩紅熱)·디프테리아·페스트 등 9종이었다.
그러나 방역통계에 따르면 1910년 이후에도 계속 콜레라·이질·장티푸스·파라티푸스·두창·재귀열·성홍열·디프테리아·유행성뇌척수막염 등의 전염병이 발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방역통계로 보아 거의 매년 전염병이 크게 발생해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데, 특히 1910년에는 페스트가 발생해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1945년 이후 전염병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 뒤 불행히도 1950년에 6·25전쟁이 발생하자 또다시 발진티푸스·재귀열·말라리아·두창 등이 다수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1951년 1월에는 전쟁중 경기도·충청북도·강원도 등지에서 발진티푸스가 크게 유행해서 정부의 공식 기록을 보더라도 3만2211명의 환자가 발생해서 많은 희생자를 보게 되었다. 또한 4월에 접어들자 장티푸스가 발생하기 시작하여 5월에는 크게 유행하여 방역 당국을 긴장시켰다.
특히 5월에는 김화·철원·평강 등지에서 유행성출혈열이 발생하여 새로운 전염병으로 부각되었다. 그 뒤 이 질병은 늦은 봄인 5∼6월과 늦가을인 10∼11월에 이 지역 주민이나 군인들에게 주기적으로 발생하여 우리 나라 전염병 관리사상 새로운 전염병으로 분류되었으며, 그 뒤 그 전파 양상이 밝혀져 진드기가 매개하는 전염병임이 알려졌다.
그러나 6·25전쟁 이후 생활 정도가 향상되고 방역사업이 그 성과를 거두게 되자 우선 천연두가 없어졌다. 우리 나라에서는 1959년 이후 천연두는 더 이상 발생히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6·25전쟁 때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걸려서 고생하였던 발진티푸스가 1970년대 이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20세기 초반까지 극성을 부리던 천연두·발진티푸스·재귀열·성홍열·트라코마·말라리아는 점차 줄어들어 이제는 거의 환자 발생이 없게 되었다.
계속 문제되어 왔던 장티푸스·파라티푸스·유행성이하선염 등도 줄어들었다. 아직도 1970년대 이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전염병은 인플루엔자·전염성 감기·살모넬라식중독 등이며, 이제는 우리 나라도 본격적으로 비전염병의 창궐시대에 접어들어 과학적인 의학과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에 따라 영아사망률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평균 수명이 연장되어 노인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상의 질병 전환 내지 전염병 감소현상은, 첫째, 환경위생의 개선에 힘입은 바 컸다. 생활정도가 올라가고 우리들의 환경을 합리적이고도 과학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아메바성이질이나 트라코마·발진티푸스·재귀열 등이 감소하였다.
둘째, 정부의 효과적인 방역대책에 힘입어 전염매개곤충이 크게 감소하였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발진티푸스의 급격한 감소나 재귀열의 경우를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셋째, 인위적인 면역력증가에 따라 전염병유행이 감소되거나 자연적인 면역력이 증가되어 한층 더 전염병의 유행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천연두는 효과적인 우두접종의 보편화 때문에 없어진 전염병이다. 또한 성홍열과 디프테리아도 면역력의 증가에 따라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넷째, 효과적인 치료약제가 광범위하게 이용가능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제약산업은 1960년대 이후 크게 발전하였다. 의료수준도 향상되어 폐렴이나 성홍열·유행성뇌척수막염의 급격한 감소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엄격히 따져볼 때 우리들의 생활양식이나 환경, 정신생활 등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효과적으로 방역대책을 실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변화 때문에 인플루엔자나 콜레라는 더욱 손쉽게 외국으로부터 들어올 수 있게 되어 자주 방역당국을 긴장시켜 왔다.
원래 인플루엔자는 전염력이 강하고 한번 발생하면 교통수단의 발달에 따라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손쉽게 전파될 수 있다.
콜레라도 과거에는 열대지역에서 시작하여 우리 나라로 들어오려면 상당히 시간적 격차가 있었으나 빈번한 해외여행과 교역의 증가 및 교통수단의 발달로 과거에 비한다면 훨씬 용이하게 전파될 수 있는 소지가 늘어났다.
확실히 1970년대 이후 인플루엔자나 콜레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의학적으로나 방역대책이 효과적으로 바뀌었다는 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밖에 나가 음식을 먹게 되고 여러 사람들과의 접촉이 늘어나 식중독·살모넬라병 등의 증가를 가져오기 쉽게 되었으나 그만큼 모든 면에서 향상되어 감소되어 왔다.
이 밖에도 1970년대 이후 우리 나라 전염병발생에 나타난 또 다른 변화는 환자의 연령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디프테리아·폴리오·홍역·수두 등은 과거에는 어린이들에게 잘 걸리는 소아전염병이었다.
위생상태가 좋지 않고 전염병의 전파가 용이하였던 과거에는 대개 어릴 때 이러한 병에 걸려서 면역력을 얻게 되거나 희생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디프테리아는 물론 홍역과 수두 및 전염성 감염은 어른에게도 많이 발생하는 전염병으로 바뀌었다. 위생상태가 좋아지고 전염병의 전파 기회가 줄어들자 어린이에게 흔히 발생하던 전염병도 이제는 어른들에게 자주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이환연령(罹患年齡)의 변동 내지 증가 추세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생활 정도가 올라가고 의학수준이 높아질수록 생겨나고 있다.
가까운 일본이나 유럽에서도 이와 같은 경향은 1950년대 이후 가속화되어 왔다. 그러나 효과적인 방역대책이나 특수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은 일본뇌염이나 인플루엔자의 경우에는 아직도 주기적으로 3, 4년의 간격을 두고 크게 유행하고 있다.
두번째로 나타난 전염병 발생 양상의 변화는 전염병 발생지역의 이동 내지 확대 경향을 들 수 있다. 일본뇌염의 경우 1955년까지는 전라북도·전라남도·경상남도·경상북도의 4개 도에서 약 3분의 2 이상의 환자가 발생하였으며, 특히 전라북도의 농촌지역에서 많이 발생하였으나 말라리아의 경우와 똑같이 이제는 농촌의 생활수준 향상과 함께 여러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전염병이 되어 버렸다.
유행성출혈열의 경우에도 과거에는 중부휴전선의 김화지구에서 많이 발생하였으나 이제는 경기도는 물론 강원도 등 산간지대에서 널리 발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전염매개곤충 및 동물의 이동 내지 주민의 인구이동 등 생활양식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고 본다.
세번째로는 보균자의 발생양상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과거에 많이 유행하였던 장티푸스나 파라티푸스는 특효약인 클로랑페니콜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자 생명을 잃는 사람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이 약이 처음으로 우리 나라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52년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널리 항균요법(抗菌療法)이 보편화되자 경증환자가 늘어나고 생명을 잃는 사람들은 줄어들었으나 그 대신 보균자가 늘어났다.
장티푸스뿐만 아니라 성홍열·홍역·세균성 이질·콜레라 등은 과거에 비하여 훨씬 가벼운 전염병이 되었다. 이와 같은 전염병의 경증화 경향은 치료방법의 과학화는 물론 항생물질의 보편화가 가장 큰 구실을 하였다고 본다.
우리 나라가 좀더 발전하고 생활수준이 향상된다면 이와 같은 전염병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리라 짐작된다. 단지 앞으로도 계속 우리 나라에서 문제될 전염병을 든다면 인플루엔자를 들 수 있다.
이 병은 1950년대까지만 하여도 세계적인 유행을 치르게 되면서 수개월 내에 수만 명 내지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유행할 때마다 그 병형(病型)이 달라지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유행을 저지시키기가 어려우나 앞으로 신속하고도 합리적인 백신 개발에 의하여 머지않아 없어지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우리 나라와 교역이 늘어나고 있는 동남아시아 각국의 전염병이 우리 나라에 침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직도 열대지방에서는 콜레라나 장티푸스가 흔하다. 이러한 지역과의 교역이 늘어날수록 이러한 전염병의 국내도입 내지 유행을 막도록 계속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또한 지방병적으로 발생하는 유행성출혈열이나 일본뇌염에 대한 과학적 대책이 개발되어야 하겠다. 그러나 이제 전염병이 창궐해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전염병의 창궐시대는 벗어났다.
정부가 발표한 통계자료를 보아도 우리 나라의 평균 수명은 이제 선진국에 비하여 거의 손색이 없다. 오히려 공해·환경오염·산업재해·교통사고·정신신경증·심신병(心身病) 등이 중요한 보건문제로 등장하였다.
확실히 1945년 이후 우리 나라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크게 변화하였으며, 1960년대 이후 질병 또한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외국에서 들어올 가능성이 있는 전염병이나 일부 질병에 대한 방역대책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