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무대예술사상 최초의 전문분장사라 불러도 손색없는 인물이다. 황해도 황주에서 지주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관리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뜻과는 달리 황주농업학교시절에는 연극 등 과외활동에 더 흥미를 느꼈다.
농고 졸업 뒤 서울에 와서 경성법정대학에 들어갔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중퇴하고 고향에 돌아가 중학교 교사가 되었다. 해방과 함께 학교에서 학생들을 데리고 연극을 하는 한편 우익민족청년단 활동을 하다가 구속되기도 하였다.
그후 평양으로 가서 평양교통성극단 배우로 활동하다가 6·25전쟁중 월남하여 극단 신청년의 배우로 입단하여 무대에 단역으로 선 바 있다. 6·25전쟁 이후에는 신협에도 잠시 몸담았고 민중극장(1963년) 창립단원이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연기와 분장을 겸하다가 점차 분장에 더욱 매력을 느낌으로써 전문분장사로 독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연극무대에 몇 년 동안 서본 경험을 토대로 연극을 아는 분장예술가가 될 수가 있었다.
KBS TV와 TBC TV가 개국되면서 전문분장사로 입사하여 분장실장으로서 30여년 동안 1천여 편의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을 분장했다. 그는 방송국의 분장사로만 머물지 않고 영화·연극·오페라 등의 등장인물들을 분장해 줌으로써 분장예술계의 수장으로 군림할 수가 있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연극의 경우 「대수양」·「바람과 함께 사라지다」·「햄릿」·「아가씨와 건달들」 등을 꼽을 수 있고, 영화는 「김삿갓」·「안중근」·「백범 김구」·「황혼열차」 등이며, 오페라의 경우는 「라보엠」·「춘희」·「나비부인」·「아이다」·「투란도트」·「춘향전」 등을 들 수 있다.
만년에는 후진양성을 위하여 서울과 대구에 전예출 프로메이크연구소를 차린 바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분장을 예술로까지 승화시킴과 동시에 한 장르로서 정착시킨 점이라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