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하남(河南). 자는 덕로(德魯), 호는 건천(巾川). 개성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고려 공민왕 비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입국할 때 20여명과 함께 배종(陪從)하여 고려에 들어온 정사조(程思祖)이며, 어머니는 공씨(貢氏)로 중국 전당태수(錢塘太守) 공재(貢載)의 딸이다.
본래 중국 사람으로 정이(程頤)의 후손이었으나 아버지가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따라 우리나라에 와서 귀화하였다. 공민왕 때 전중판시사(殿中判寺事)를 지냈고, 정몽주(鄭夢周) · 길재(吉再) 등과 교유하며 도학을 강마하였다. 고려 말 상례는 단상(短喪)이 성행했으나 가법에 따라 3년상을 치루었고, 집에 사당을 세워 선조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절사(節祀) · 천신(薦新) · 기제(忌祭)를 지냈다. 고려의 풍속에 불교를 숭상하여 불교의례에 의존하였으나, 정광은 홀로 불교의례를 배척하고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시행하였다.
고려가 망할 것을 예견하고 전라도 광주 금당산 자락(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조선이 건국되자 자질들에게 벼슬하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이태조가 여러 번 벼슬하도록 불렀으나 그 때마다 위로는 왕씨(王氏)를 저버릴 수 없고 아래로는 정몽주를 잊을 수 없으니 죽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거절하였다. 자식들을 데리고 농사에 힘써서 자급자족을 꾀했고, 밤에는 글을 읽어 성현의 기르침을 닦아서 조상의 업적에 욕되게 말라고 당부하였다. 저서에는 『건천집(巾川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