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운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정언, 군수,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덕이(德而)
휴휴자(休休子)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07년(숙종 33)
사망 연도
1756년(영조 32)
본관
해주(海洲)
주요 관직
장령|병조좌랑
정의
조선 후기에, 정언, 군수,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덕이(德而), 호는 휴휴자(休休子). 정유징(鄭有徵)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치중(鄭致重)이고, 아버지는 정진후(鄭震垕)이며,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 허장(許樟)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30년(영조 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어 1733년에는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이 되고, 이듬해 병조좌랑을 역임하였으며, 1735년에는 공총도도사·해군판관을 겸임하였다. 그 뒤 1737년 지평(持平)이 되었고, 이어 정언(正言)을 거쳐 군수가 되었는데, 백성에 대한 형벌이 가혹하여 관찰사의 탄핵으로 사임하였다.

그 뒤 사성을 거쳐 장령(掌令)에 취임하였는데 세자가 토론을 게을리한 데 대한 문책으로 1754년 삭직되었다. 기개와 절조가 있는 성격으로 권귀(權貴)에게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직언하여 관도를 떨쳤다. 안정복(安鼎福)과 우정이 두터워 그의 행장을 안정복이 썼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성호문집(星湖文集)』
『순암문집(順菴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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