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호는 춘파(春坡). 교명(敎名)은 관(寬). 서울출생. 1950년 교의회(敎議會)의 의결에 따라 교주계승방식을 전임교주의 권한에 의한 교통전수제(敎統傳授制)에서 교의회의 공선(公選)으로 바꾸고 교주의 명칭을 도사교(都司敎)에서 총전교(總典敎)로 개정한 이후, 1955년 9월 제2대 총전교에 취임한 것을 비롯, 제4·8·10대 등 네 번에 걸쳐 공선되어 교단을 이끈 최고원로이다.
18세 되던 1910년기독교청년학관(基督敎靑年學館) 중학과를 졸업하였다. 다음 해 1월부터 황해도 배천군 이포사립명신학교(梨圃私立明新學校)에서 3년간 교편을 잡았고, 그뒤에는 주로 의료기관에 종사하였으며 한의원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1910년 3월 대종교에 입교하여 1911년 5월 참교(參敎)가 됨과 동시에 이포시교당(梨圃施敎堂) 찬무(贊務)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6월 배천지사(白川支司) 종리부장(倧理部長)에 임명되면서 지교(知敎)로 승진되었다. 광복 후 동지들과 남도본사(南道本司)를 재건하고 선리(宣理)에 임명되었다.
1946년 2월 총본사가 환국하자 상교(尙敎)로 되었고, 이어 남도본사 전리(典理), 경의원참의(經議院參議), 총본사 전강(典講) 및 전범(典範)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48년 1월 정교(正敎)로 승진됨과 동시에 대형(大兄)의 호를 받았다. 같은 해 8월 도사교위리(都司敎委理:교주권한대행)에 취임하였고, 이어 경의원 부원장·총본사 전리 등을 거치면서 1950년 8월에는 사교(司敎)로 임명됨과 동시에 도형(道兄)의 호가 수여되었다.
1954년 9월에는 원로원 원장에 취임하였으며, 1955년 9월에는 제2대 총전교로 공선되어 3년간 교단의 최고책임자로서 6·25전쟁 후 야기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처리하였다.
그뒤 제4대 총전교 1년 4개월, 제8대 3년, 그리고 제10대 6년간 재임하는 등 1980년 9월 사임할 때까지 약 14년간 교단의 최고지도자로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