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이조참의, 대사간,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83년(정조 7)
사망 연도
1837년(헌종 3)
본관
동래(東萊)
주요 관직
대사간|황해도관찰사
정의
조선 후기에, 이조참의, 대사간,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동래(東萊). 정태화(鄭太和)의 6대손이며, 정석인(鄭錫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연순(鄭淵淳)이고, 아버지는 정동호(鄭東祜)이며, 어머니는 이경승(李敬勝)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07년(순조 7) 생원시에 합격한 뒤 1813년(순조 1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17년 한권(翰圈)에서 3점을 얻었으나 한림소시(翰林召試)에서 낙방하고, 다시 2년 뒤에 한권에서 3점을 얻고 이듬해 한림소시에 김정희(金正喜)와 함께 합격하여 검열이 되었다.

이 후 여러 차례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고, 1824년 겸춘추로 있으면서 사관을 선발하는 한림회권에서 상사와의 충돌로 인하여 중화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풀려나와 홍문록에 올랐으며, 1827년 정자를 거쳐 수찬이 되어 이조원(李肇源)과 함께 역모를 하였다는 혐의로 김기후(金基厚)의 처벌을 상소하였다.

이 해에 진전(眞殿) 작헌례(酌獻禮) 때 대축(大祝)으로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이듬해 대사간으로 발탁되었고, 1832년 이조참의를 거쳐 다시 대사간을 지낸 뒤, 이듬해 황해도관찰사가 되었다. 문장에 능하였다.

참고문헌

『순조실록(純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사마방목(司馬榜目)』
『청선고(淸選考)』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