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휘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주부, 군자감판관, 산음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경유(景由)
궁촌(窮村)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52년(효종 3)
사망 연도
1723년(경종 3)
본관
영일(迎日)
주요 관직
군자감판관|산음현감
정의
조선 후기에, 주부, 군자감판관, 산음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경유(景由), 호는 궁촌(窮村). 정몽주(鄭夢周)의 11대손이다. 약관으로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생이 되었는데 스승으로부터 신임을 받았다.

생애 및 활동사항

평생을 두고 『대학』·『심경(心經)』·『근사록』 연구에 전념함으로써 당대 독학(篤學)의 선비로 알려졌다. 1681년(숙종 7)에 송시열이 영중추부사로 기용되자 그를 등용할 것을 민정중(閔鼎重)과 함께 천거하여 공릉참봉(恭陵參奉)에 제수되고 이어 봉사·직장을 거쳐 주부가 되었다.

이어 연산현감으로 3년간 있다가 사임하였으며, 그 뒤 평시서령(平市署令)·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을 거쳐 외직으로 나가 산음(山陰: 지금의 산청)현감이 되었다.

스승 송시열을 주야로 사모하여 제주도 초산으로 귀양갈 때 중도에 스승을 맞이하였으며, 산음현감을 사직한 뒤 공주의 유성에 복거하였다. 한편, 1679년 정몽주의 사손으로 물망에 올랐으나, 송시열의 문인이라 남인 오시수(吳始壽)의 반대로 사손이 되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인물지(人物志)』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