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적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사간원헌납, 안동부사, 길주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사훈(士勳)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41년(중종 36)
사망 연도
미상
본관
하동(河東)
주요 관직
안동부사|길주부사
관련 사건
임진왜란
정의
조선 전기에, 사간원헌납, 안동부사, 길주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사훈(士勳). 정승근(鄭承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식(鄭式)이고, 아버지는 정기문(鄭起門)이며, 어머니는 홍정(洪禎)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73년 사헌부지평을 거쳐 사간원헌납에 서임되었다. 이 때 외척을 등용하지 말도록 진언하였다가 선조로부터 관리의 등용은 인물의 현부(賢否)에 의한 것이라는 힐책을 받았다.

그 뒤 1579년 다시 서인의 등용을 막으려 하자 이발(李潑) 등으로부터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1592년 안동부사로 재임중 임진왜란이 일어났는데, 근왕(勤王)을 빙자하고 처자를 거느리고 길주로 달려가 길주부사가 되어 정문부(鄭文孚)와 호응하여 왜적과 싸웠다.

그러나 비변사로부터 안동부사로 있을 때 왜적을 막지 않고 도망한 망군부국(忘君負國)의 죄를 지었다는 탄핵을 받았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사마방목(司馬榜目)』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