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상백(相伯). 함경남도 원산 출생. 1919년 3·1운동 때 항일투쟁에 참여한 뒤 일본경찰을 피하여 서울로 들어왔다. 1920년 9월 동지 이종영(李鍾瑩) 등 10여 명과 함께 서울 관철동 조선여관에서 조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위해서는 무장투쟁만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데 의견일치를 보고 무장계획단을 조직하였다.
1차로 보합단원(普合團員) 장석두(張錫斗)와 이성규(李成珪) 등 5명을 무장계획단에 입단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들은 무장투쟁을 지속하기 위하여 군자금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같은 해 11월 서울 운니동에 사는 부호 변석연(邊錫淵)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 3만원을 요구하였으나, 무기가 없고서는 군자금모집이 원만히 되지 않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보합단원 김도원(金道源)과 서로 기맥을 통하여 이종영 등과 함께 보합단원과 공동보조를 맞추기로 하고 보합단에 가입하여 보합단원으로부터 무기를 제공받았다. 그 후 변석연 집에 다시 가 군자금 3만원을 요구하여 장남 변덕영(邊德永)으로부터 현금 300원을 받아가지고 왔다.
그 뒤 동지들과 함께 한일은행(韓一銀行)을 습격할 것을 모의하다가 잡혀 1922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1977년에는 건국포장, 1990년에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