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비형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공조판서, 참판, 평안도절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평보(平甫)
시호
안무(安武)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376년(우왕 2)
사망 연도
1440년(세종 22)
본관
창녕(昌寧)
주요 관직
공조판서|참판|평안도절제사
정의
조선전기 공조판서, 참판, 평안도절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평보(平甫). 어려서부터 힘이 세었고, 커서는 활을 잘 쏘았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02년(태종 2) 무과에 급제하여 호군이 되었다가 1405년 옹진병마사로 부임하여 기근에 고통받는 백성들에게 사재(私財)를 털어 구제하여 그들의 칭송을 들었다.

이듬해 대호군이 되어 울주(蔚州)에 가 박린(朴麟)·김희(金禧) 등의 노고를 선위(宣慰)하였다. 1408년 첨절제사를 거쳐 경기좌도대진등처수군첨절제사(京畿左道大津等處水軍僉節制使)가 되고, 1410년 의주도병마사가 되었다가 이듬해 동지총제(同知摠制)·상주진주도병마도절제사(尙州晉州道兵馬都節制使)·공안부윤(恭安府尹) 등의 요직을 거쳤다.

1414년 경원부가 새로 설치되자, 경원등처병마절제사가 되었고, 1419년(세종 1) 함길도병마도절제사와 우군총제(右軍摠制)를 지냈다. 이듬해 도총제로 안주에 가서 봉선온위사신(奉宣溫慰使臣)을 접견하였으며,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대통력(大統曆)』 100본(本)을 가지고 돌아왔다.

1421년에 판한성부사가 되고 곧이어 우군도총제·경상좌우도수군안무처치사가 되었다. 1423년 중군도총제(中軍都摠制)로 왕이 임석한 종친과 경재(卿宰)들의 사격대회에서 가장 명중률이 높은 성적을 올렸다. 1431년 평안도절제사가 되었다가 이듬해 중추원사를 거쳐, 공조판서·참찬 등을 지냈다. 시호는 안무(安武)이다.

참고문헌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집필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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