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김해(金海) 출신. 아호(雅號) 또는 필명(筆名)으로 조희순(曹希醇)과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에서 따온 하인리(河仁里)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대구고등보통학교(大邱高等普通學校)와 일본의 야마구치고등학교[山口高等學校]를 거쳐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독문학과를 1929년 3월에 졸업했다. 귀국 후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京城女子醫學專門學校) 강교사(講敎師)를 거쳐 경성약학전문학교(京城藥學專門學校) 독일어 교수로 재직하다가 실업가로 변신하면서 문단을 떠나게 된다.
문단 활동으로는 해외문학파와 극예술동인에 참여하여, 1930년대 전반기까지 독일문학의 도입 과정에 전신자(轉信者)로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독일문학, 특히 괴테의 이입사(移入史)에서 조희순의 전신자적 역할은 크다.
괴테(Goethe, J. W.)의 『파우스트(Faust)』 번역은 비록 전역(全譯)이 아니고 몇 회로 중단되었으나, 그 전대의 번역들과는 달리 본격적인 것으로, 『파우스트』의 이입사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준 것으로 평가된다. 더구나 괴테의 사후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집호의 신문이나 잡지에서 서항석(徐恒錫)·박용철(朴龍喆)·김진섭(金晉燮) 등과 함께 보인 전신자적 역할은 괄목할 만하다. 이외에도 하이네를 위시하여 또 다른 독일 작가의 소설과 극본(劇本)을 많이 번역하고 있다.
조희순은 직접 창작품을 쓴 적은 없으나, 괴테와 하이네를 위시하여 독일 문학을 번역 소개한 전신자로서의 역할은 우리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조희순이 독문학 전공자로서 당시의 문단에서 많은 활동을 했음에도, 오늘날까지 묻혀있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조희순의 전신자적 역할은 1930년대 전반기에 국한되어 있을 뿐이며, 그 뒤 바로 직업 전환으로 문필 활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희순의 문필 활동이 모두 해외 문학의 번역이나 소개에 머물러 있었고, 창작 분야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전신자들의 문학사적 의미 부여는 비교문학적 관점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