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명은 태원(泰源)이었으나, 1919년 종혁(宗爀)으로 개명하였다. 우촌(雨村)은 「구가정의 ᄭᅳᆺ날」을 발표할 때부터 사용한 필명이다.
1925년≪조선문단 朝鮮文壇≫을 통하여 전통적 인습에 대한 비판을 그린 <구가정(舊家庭)의 끝날>이라는 작품으로 등단하여 6·25 직전까지 여러 편의 희곡을 발표하였다.
1938년에 극단 낭만좌(浪漫座)에 참여해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번안하였고, 1939년에는 <바다의 남편>이라는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광복 전의 활동은 미미하였으나 광복 직후에는 활발하게 여러 편의 작품을 썼다.
문명비판과 민족의 주체성 회복을 그린 <망향 望鄕>(일명 頭腦手術, 1945)을 비롯해서 <보검 寶劒>(1946) · <왕소군 王昭君>(1947) · <죄>(1948) 등 장막극과 새 시대에의 희망을 그린 <신념>(1946), 자연에 도전해서 파국을 맞는 인간실존을 그린 <파도>(1950) 등 단막희곡들을 발표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운명적이면서도 강인한 생명의지를 보여주며, 시정적(詩情的)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구축하고 있다. 사실주의 일변도의 동시대 작가들과는 특이하게 낭만성이 강한 극작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