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채상덕(蔡尙悳). 본관은 평강(平康). 호는 심호(深湖). 황해도 사리원 출생.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생으로 최익현의 뒤를 따라 의병초모에 전심전력하였다.
황해도 사리원·재령·해주·신막·안악 일대에서 의병투쟁을 하였으며, 안필호(安弼濩)·최봉소(崔鳳韶)·최전구(崔銓九)·윤항식(尹恒植)·이승회(李承會)·채만식(蔡萬植)·이승원(李承遠) 등과 함께 의병투쟁에 동참하여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 뒤 만주 동삼성(東三省)으로 망명, 이진룡(李鎭龍)·홍재학(洪在學) 등을 만나 의병투쟁 및 항일투쟁의 방략을 논의하였다.
1922년 봉천성(奉天省) 환인현(桓仁縣)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한족회(韓族會)·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등 여러 단체가 1년여에 걸친 일제토벌성공의 축하연을 개최하는 모임에서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를 결성하였을 때 총장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그 뒤 1923년 8월 8일 평안북도 의주군 청성주재소를 공격, 일본순사를 사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힌 뒤 주재소를 소각하였다.
1925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직할 군사단체인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 군대가 고마령전투(古馬嶺戰鬪)에서 일본군에게 참패하자, 이 소식을 접한 뒤 의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하였다.
1995년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