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어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불린 한국의 대표적인 명산이며, 산이 높지는 않지만 크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1982년 8월 21일에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경상북도 고시 제172호)되었다. 1994년 12월 도립공원 기본계획이 수립되었으며, 2001년 3월 24일 도립공원 관리사무소가 개소하였다. 2007년 3월에는 국가지정문화재(국가지정유산) 명승으로 지정되어 학술적 · 경관적 · 역사적 가치가 입증되었다. 지정 면적은 49.509㎢이다.
청량산이란 명칭은 이곳의 뛰어난 산수 절경과 맑은 물이 중국 화엄종의 성스러운 산으로 간주되는 청량산과 비슷하다는 데에서 연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대에는 수산(水山)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청량산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청량산은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험준한 지세를 이루고 있으며, 산의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휘감아 돌아나간다. 최고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외장인봉 · 선학봉 · 축융봉 · 경일봉 · 금탑봉 · 자란봉 · 자소봉 · 연적봉 · 연화봉 · 탁필봉 · 향로봉 등의 12개의 고봉이 치솟아 절경을 이룬다. 이 가운데 금탑봉 오른쪽의 절벽인 어풍대(御風臺)는 최고의 경승으로 꼽힌다.
청량산은 이러한 지형적 요건으로 인해 일찍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발전하였다. 축융봉의 봉우리를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솟은 봉우리와 밀성대의 9∼10부 능선에는 자연적 여건을 잘 살려 청량산 내 계곡과 산성마을을 감싸는 포곡식 형태의 청량산성이 축조되었다. 지질은 크게 변성암류와 퇴적암류로 구분되며, 이 가운데 퇴적암류가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청량산에서 발견되는 식생은 618종으로 매우 다양하며, 크게 양치식물류와 관속식물로 나뉜다. 양치식물류에는 신살나무군락, 서어나무, 느티나무 군락, 갈대 군락, 달뿌리풀 군락 등이 있으며, 관속식물로는 세뿔투구꽃, 굼꿩의다리, 매화말발도리, 금강제비꽃 등이 있다. 동물은 89종이 살고 있으며, 어류는 16종이 발견되었다. 이 외에도 포유류 · 양서류 · 파충류 · 조류 등이 청량산 일대에서 발견된다.
청량산 일대는 예로부터 대궐이나 사찰의 건축재로 활용된 춘양목을 비롯하여 대추와 송이버섯으로 유명하며,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신비한 얼음굴이 있다. 청량산은 주왕산, 월출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기악(奇嶽)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뛰어난 절경으로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산이다. 높은 산봉우리는 장인봉 · 금탑봉 · 원효봉 등 36개에 이르고 10여 개를 헤아리는 동굴과 대(臺)가 있다. 조선시대 풍기군수를 지낸 주세붕이 청량산을 유람하며 명명한 12봉우리가 산의 주축을 이룬다.
과거에는 연대사를 비롯한 20여 개의 암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으며, 청량사 유리보전과 응진전이 남아 있다. 산의 남쪽 연화봉 기슭에는 내청량사가 있으며 그 동남쪽에 자리한 금탑봉의 남쪽 기슭에는 응진전(외청량사)이 있다. 응진전은 다른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사찰처럼 높은 절벽 중간에 지어져 있고, 어풍대의 절벽길을 돌아가는 경로는 아슬아슬함을 더해준다. 또한 조선 후기의 불전 건물인 청량사 유리보전이 있다. 청량사 유리보전은 197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청량산은 고승들의 발자취가 봉우리와 골짜기마다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데, 퇴계 이황이 공부한 장소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와 통일신라시대의 서예가 김생이 글씨 공부를 한 것으로 알려진 김생굴, 원효대사의 유적인 원효정(井), 최치원이 수도한 풍형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머무르면서 쌓았다는 청량산성 등이 공원 내에 자리한다.
청량산성은 2004년부터 보수공사를 시작하여 옛 모습을 되찾도록 거의 완벽하게 복원되었다. 공민왕이 숨어 지냈다고 알려진 청량산성 공민왕당은 안동시 도산면의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무병을 기원하기 위해 마을 공동으로 공민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2008년 5월에 준공된 청량산 하늘다리는 해발 800m 지점의 선학봉(826m)과 자란봉(806m)을 연결하는 산악형 현수교량(길이 90m)이다. 하늘다리는 청량산의 문화유산과 더불어 많은 탐방객들이 찾고 있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였다. 1994년 낙동강변을 따라 도로가 확장되어 사람들의 접근이 훨씬 용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