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의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대장군으로 초토처치병마좌도사를 역임한 관리.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목차
정의
고려후기 대장군으로 초토처치병마좌도사를 역임한 관리.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1202년(신종 5)에 경주에서 패좌(孛佐)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대장군으로서 초토처치병마좌도사(招討處置兵馬左道使)가 되어 중도사(中道使) 김척후(金陟侯), 우도사(右道使) 강순의(康純義) 등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쳤다. 그러나 김척후가 반란군을 진압하지 못하자 1203년(신종 6) 중도사가 정언진(丁彦眞)으로 교체되었다.

1203년 정월 경주의 반란군들이 기양현(基陽縣)으로 들어가자 병사를 이끌고 급습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최충헌이 왕에게 아뢰어 중사(中使)를 보내어 조서(詔書)와 약(藥)을 내리고 격려하였으며, 기양현을 지보주사(知甫州事)로 승격시켰다.

또, 태백산적(太白山賊)의 괴수 아지(阿之)를 잡아 서울에 보내어 옥중에서 죽게 하였으며, 흥주(興州: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의 부석사(浮石寺)와 부인사(符仁寺)·송생현(松生縣: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의 쌍암사(雙巖寺) 등의 승려가 반란을 꾀한다고 보고, 이들을 국문하여 섬에 귀양보내게 하였다.

강순의·이이(李頤)·이유성(李維城) 등과 함께 경주의 반란을 평정시키는 데 공이 가장 많다는 최충헌의 천거로 승진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