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출생. 장악원(掌樂院)의 악공으로 출사하여 뒤에 아악부(雅樂部)의 아악수로 있었다.
특히, 가곡 반주에 뛰어났다고 한다.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는데, 그 중에서도 김계선(金桂善)을 들 수 있다. 1901년과 1902년 진연 때 대금 자비(差備), 1913년에 이왕직 아악대의 아악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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