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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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방송
개념
뉴스나 뉴스자료를 수집하여 신문 · 방송 · 잡지 등 매스 미디어나 정부기관 · 상사 등 단체에게 일정한 대가를 받고 계속해서 공급하여 주는 전문적인 언론기관.
목차
정의
뉴스나 뉴스자료를 수집하여 신문 · 방송 · 잡지 등 매스 미디어나 정부기관 · 상사 등 단체에게 일정한 대가를 받고 계속해서 공급하여 주는 전문적인 언론기관.
내용

통신사는 수집한 뉴스 자체를 독자나 시청자에게 직접 전달하지 않고 신문이나 라디오·텔레비전 등의 매스 미디어를 통하여 재편집하여 공급한다는 점에서 다른 매스컴 형태와 다르지만, 매스컴 못지 않은 시설과 대규모의 분업조직을 갖춘 조직커뮤니케이션의 주체로서 뉴스 모집을 전문으로 하는 매스 미디어의 한 형태이다.

따라서 통신사는 뉴스나 뉴스자료를 수집하여, 그것을 통신사의 고객인 신문·방송이나 그 밖의 단체·개인에게 제공하는 것을 가장 주요한 기능으로 하는 뉴스의 도매상(whole sale)이라 할 수 있다.

뉴스는 본질적으로 부패하기 쉬운 상품으로 시간이 경과하면 그만큼 그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뉴스의 수집·전달을 가장 중요한 업무로 하는 통신사에게는 뉴스의 신속한 전달을 위한 통신수단이 매우 중요하다. 통신사의 발달이 전신 등 통신수단의 발달과 병행하여 온 것은 그 때문이다.

또 통신사는 여러 가지 상이한 성격을 지닌 신문이나 방송에 뉴스를 전달하여 그들을 고루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 뉴스가 정치적으로나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고 최대한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일 것이 요구된다. 이러한 통신사는 그 기준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그 활동영역에 따라서 국제통신사(international agencies)와 국내통신사(national agencies)로 나눌 수 있다. 국제통신사는 세계통신사(world news agencies)라고도 하는데, 이는 전세계에 걸쳐 특파원을 상주시키거나 지국(支局)을 설치하는 등 취재망을 가지고 세계의 뉴스를 수집하여 세계 각국의 신문·방송 등에 배포하는 세계적인 규모의 통신사이다.

현재로는 미국의 에이피(AP:The Associated Press)·유피아이(UPI:United Press International), 영국의 로이터(Reuter), 프랑스의 에이에프피(AFP:Agence France Presse)만이 국제통신사로 지칭된다. 국내통신사는 주로 자국 내의 뉴스를 수집하고 외국뉴스는 국제통신사로부터 제공받아 국내의 신문·방송 등에 배포하는, 자국만을 업무영역으로 하는 통신사이다. 우리 나라의 연합통신(聯合通信)이 이에 속한다.

그 밖에 국제통신사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세계적으로 취재망을 형성하여 독자적으로 세계 뉴스를 취재, 보도하고 있는 서독의 디피에이(DPA:Deutsche Presse Agentur), 일본의 교토통신사(共同通信社), 중국의 신화사통신(新華社通信) 등과 같은 중간통신사와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등에서 국제통신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하여 지역 내의 여러 통신사들이 공동으로 설립하는 지역통신사도 있다.

한편 경영형태에 따라 분류하면 영리통신사(營利通信社)와 비영리통신사(非營利通信社)로 나눌 수 있다. 영리통신사는 개인소유 또는 주식회사 등의 기업으로, 하나의 상행위로서 뉴스나 뉴스자료를 수집하여 이를 고객에게 판매하는 상업통신사이다.

초기의 유럽통신사들과 미국의 UPI, 우리 나라의 합동(合同)·동양(東洋) 통신사 등이 이에 속한다. 비영리통신사는 다시 협동조직통신사와 국영통신사로 나누어진다. 협동통신사는 신문사나 방송국들이 공동출자하여 협동조직으로 운영하는 통신사이다. 본래 이 통신사는 신문사들이 뉴스취재에 소요되는 막대한 경비와 인력을 절약하고 과다한 경쟁을 억제하기 위하여 일정한 뉴스 취재를 대행시키고자 설립한 것인데, 현재는 AP·로이터 등 세계의 많은 통신사가 이에 속한다.

국영통신사는 국가가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는 통신사로서 소련의 타스(TASS:Telegrafnoe Agentstvo Sovietskovo Soyuza)통신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업무의 성격에 따라 분류하면 일반뉴스통신사와 특수통신사로 구분된다. 일반뉴스통신사는 매일의 일반적인 뉴스를 수집하여 빠른 통신수단으로 신문·방송 등에 이를 공급하는 통신사를 말한다.

AP·UPI·로이터나 우리 나라의 연합통신 등이 이에 속한다. 특수통신사 중에 텔레비전뉴스 필름의 공급을 전문으로 하는 텔레비전뉴스통신과 업계통신(業界通信) 및 신디케이트(syndicate) 등이 있다. 텔레비전뉴스통신사는 영국의 비스뉴스(Visnews)와 미국의 유피아이더불류티엔(UPIWTN:United Press International World Television Network)이 대표적인 것이다.

업계통신으로는 우리 나라의 무역통신을 들 수 있다. 신디케이트는 신속함을 필요로 하는 일반뉴스가 아니라 보도자료나 읽을거리·논설·해설·만화·사진 등을 모아서 신문·잡지 등에 판매하는 기업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미국의 킹피처스(King Features)·연합피처신디케이트(United Feature Syndicate) 등을 들 수 있다.

통신사의 기원은 12, 13세기경 베네치아의 상인이 일종의 부업으로 거래현황이나 상품시세 등을 알리는 통신업무를 영위한 일이나, 16, 17세기경 벨기에의 앤트워프 부근에서 수천의 고객을 가진 통신사와 유사한 조직이 있었다는 것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16세기경 우편제도의 발달에 따라 신문인쇄업자들에게 뉴스를 제공한 우편업자들이 통신사의 효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근대적인 통신사가 처음 생긴 것은 1835년 프랑스인 아바스(Havas,C.L.)에 의해서였다. 당시 나폴레옹이 패배하고 세력이 재편성되는 과도기에 있던 유럽에서는 신속하게 뉴스를 원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처음에는 유럽 각국의 신문을 모아 번역하여 개인이나 상사(商社)·금융업자 등에게 배포하는 것을 업으로 하던 아바스는 ‘빨리 알고 빨리 알린다.’는 간판을 내걸고 아바스통신사를 창설하였으니 이것이 세계 최초의 근대적 통신사라고 하겠다. 1848년에는 유럽 각국 수도 사이의 송수신을 개시하고 신문사들도 그 고객이 되었다. 이 아바스통신사는 1940년 나치독일의 침공에 의하여 소멸되었다가 1944년에 AFP로 발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어 1849년에는 한때 아바스통신사에서 일하던 독일인 볼프(Wolff,B.)가 베를린에서 통신사를 설립하고 처음에는 상황(商況)뉴스를 주로 공급하였으나 1855년부터는 일반뉴스를 신문사들에게 배포하게 되었다. 이 통신사는 제1차세계대전 후 국내통신사로 전락하였다가 1933년 이후 히틀러(Hitler,A.)의 등장으로 나치통신사로 흡수되었다.

또, 1851년에는 역시 아바스통신에서 출발한 독일계 유태인 로이터(Reuter,P.J.)가 런던으로 건너와서 로이터통신을 설립하였다. 처음에는 주식시세에 대한 신속한 보도를 위주로 하는 경제통신이었으나 1858년부터는 일반뉴스를 신문사에 제공하였다.

유럽에서 나타난 아바스·볼프·로이터의 3대통신은 상호간에 경쟁을 억제하고 취재경비의 절감 등을 목적으로 배타적인 뉴스 수집 영역을 정하는 카르텔(cartel)적인 성격을 지닌 뉴스교환 협정을 체결하였다.

한편 미국에서는 1848년 뉴욕의 6개 신문이 그들끼리의 과다한 뉴스취재 경쟁을 억제하기 위하여 설립한 뉴욕항 뉴스조합이 협동통신사라는 새로운 형태의 통신사로 탄생하였다. 세계 최초의 협동통신사인 이 통신사는 곧 뉴욕AP(New York Associated Press)로 개칭되었다.

그 뒤 각 지방의 신문집단이 따로 서부AP·남부AP 등을 조직하였으나 그 중 시카고의 서부AP가 뉴욕AP를 병합하고 1900년에 뉴욕으로 진출하여 오늘의 AP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 1907년에는 당시의 신문계 거물인 스크립스(Scripps,E.W.)가 유피(UP:United Press)를, 1909년에는 허스트(Hearst,W.R.)가 아이엔에스(INS:International News Service)를 설립하였는데 이 두 통신사가 1957년에 합병하여 오늘날의 UPI가 되었다.

한편 소련에서는 볼셰비키혁명 후인 1918년에 설립된 로스타(ROSTA:Rossiyskoe Telegraphy Agentstvo)가 1925년에 TASS로 개칭,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근대적인 통신사의 역사는 1945년 광복 이후부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비슷한 형태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외국통신사의 뉴스를 받아서 판매하는 근대통신사의 기능을 수행한 서재필(徐載弼)의 ≪독립신문≫이었다.

서재필은 1897년 로이터통신과 계약을 맺고 뉴스를 수신하여 이를 ≪독립신문≫과 영문 ≪인디펜던스 The Independence≫에 게재하였을 뿐 아니라 서울에 주재하는 각국 공사관 등에 판매하는 통신사업무도 겸영하였다. 그 계약은 약 1년간 계속되었다.

그 뒤 한말과 일제시대를 거치는 동안 동아전보통신(東亞電報通信)·대륙통신(大陸通信)·전통(電通) 등 일본인들의 통신사는 여러 개 있었지만 한국인이 설립한 통신사는 하나도 없었다. 광복이 되자 곧 우리 나라에는 본격적인 통신사가 잇따라 나타났다.

그 중 가장 최초로 나온 것은 일본의 도메이통신경성지사(同盟通信京城支社)의 한국인 종업원들이 8월 17일에 그 시설을 접수하여 설립한 해방통신(解放通信)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사원들은 좌우익으로 분열되었고, 우파가 좌익분자들을 몰아낸 후 국제통신(國際通信)으로 개칭하였다.

이 통신은 다시 미군정에 접수되어 군정관리하에 김동성(金東成)이 그 주간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한편 같은 해 9월 4일에는 조선통신(朝鮮通信)이 설립되어 미국의 UP통신과 계약을 맺고 뉴스를 수신하여 통신발행을 시작하였는데, 외국통신사와 정식 수신계약을 맺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뒤 국제통신은 민원식(閔瑗植)이 설립한 연합통신(聯合通信)과 합병하여 1945년 12월 20일 합동통신(合同通信)으로 새로 발족하였는데 이 통신은 미국의 AP·INS, 영국의 로이터, 프랑스의 AFP 등 여러 국제통신사와 계약하여 국내 최대의 통신사가 되었다.

이렇게 광복 직후 우리 나라에 근대통신사가 생겨나는 과정에서 나타난 특징적인 사실은 제2차세계대전 후에 독립한 다수의 신생국들이 국영의 단일통신사 체제를 택한 것과는 달리 처음부터 복수의 사기업 상업통신사가 병존, 경쟁하는 체제를 취하였다는 점이다.

합동통신의 설립 이후 1950년까지는 조선통신이 고려통신을 거쳐 한국통신으로 개칭된 것 외에 산업경제통신·무역통신 등 10여 개의 군소통신이 나타났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통신사들은 피난지 부산에서 일시적으로 ≪전시연합판 대한통신 戰時聯合版大韓通信≫이라는 연합판을 발행하였으며, 각 사가 곧 빈약한 시설이나마 제 기능을 회복하였다.

부산에서는 1952년 양우정(梁又正)·김성곤(金成坤) 등이 대한통신을 인수하여 동양통신을 새로 설립하였으며, 1953년에는 다시 영국의 로이터통신과 계약한 세계통신이 나타났다.

휴전이 되고 서울로 환도한 뒤에는 1956년 9월 1일 삼호방적(三頀紡績)의 정재호(鄭載頀)가 동화통신(同和通信)을 설립하여 당시 합동통신과 계약중이던 AP와 계약을 맺었다. AP는 이로써 합동·동화 두 통신사와 이중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변칙적인 사태는 1961년까지 계속되었다.

동화통신은 당시 대통령 비서관이던 박찬일(朴贊一)의 정치적 지원으로 거액의 외화를 배정받아 AP와 계약을 한 것인데, 동화통신의 출현 이후 합동·동화·동양·세계 등 4개의 통신이 영세한 신문들을 상대로 치열한 출혈 경쟁을 벌여 경영에 심한 압박을 받게 되었다.

1957년에는 자유당 정권이 세계통신을 매입하여, ‘기관통신(機關通信)’으로 만들었으나 1960년 4·19혁명과 함께 폐간되고 말았다. 4·19혁명 이후에 언론을 통제하던 여러 법령이 폐기되자 대소 통신사가 연이어 나타나서 그 전에 14종에 불과하던 일간통신이 285종으로 늘어 무려 20배가 넘는 증가율을 보였다.

그러나 5·16군사정변 이후 군사정부의 대폭적인 언론기관 정리재편 계획에 따라 중앙의 11개 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폐쇄되었다. 또한 합동·동화·동양의 세 통신사를 통합하기 위한 계획을 발표하였다가 여의치 않자 다시 AP와 이중계약중인 합동·동화 두 통신사만의 통합으로 계획을 바꾸었으나 통신사들의 반발과 AP의 반대 등으로 결국 통합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1970년에는 정부에 의하여 다시 통신사 통합이 시도되었으나 통신사와 언론단체들의 일치된 반대로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1973년에는 동화통신이 AP와의 계약을 합동통신에 빼앗기면서 자진 폐간하였다. 1974년 1월에는 내외통신(內外通信)이 창설되어 공산권, 특히 북한에 관한 뉴스와 연구자료를 공급하였다.

그리하여 합동·동양 통신은 일반뉴스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나머지 시사·경제·무역·건설·산업·내외 통신 등은 특수통신사로서 각 부문의 전문뉴스를 다루었다. 그러다가 제5공화국이 출범하고 1980년 12월 ‘언론기관통폐합조처’에 따라 새로운 변혁기를 맞게 되었다.

즉, 1981년 1월 1일을 기하여 기존의 양대 통신인 합동·동양 통신을 발전적으로 해체하여 대형 단일 민간통신사인 연합통신을 설립하였다. 이 통신사는 동양·합동 통신이 49%의 자본을 출자하고 신문·방송협회 산하의 전 회원사가 51%의 자본을 출자하여 주식회사로 발족하였다.

한편 특수통신이었던 시사·경제·산업 통신은 1980년 11월 25일자로 종간되어 신설 통신사에 흡수되었으며, 무역통신은 통신보도기능을 없애고 무역협회의 기관지로서의 기능만 수행하게 되었다.

1980년 12월의 통신사 통합조처에 의하여 일반통신사인 연합통신과 공산권뉴스를 보도, 전달하는 특수통신사인 내외통신 등 단 2개의 통신사만이 남게 되었다. 연합통신은 AP·UPI·로이터·AFP 등 4대 국제통신사를 비롯하여 전세계 47개 통신사와 뉴스교환 및 제휴계약을 맺어 외부 세계로부터의 뉴스를 받아들이는 가장 중요한 창구로서의 구실을 담당하였다.

또한 신문계 재편에 따라 신문사가 서울과 지방에 주재기자를 두지 못하게 됨에 따라 중앙과 지방 간의 뉴스교환은 거의 전적으로 연합통신의 보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국내뉴스의 가장 중요한 공급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통신사 통합은 과거 다수의 민영통신사의 병존에 따라 발생하였던 무리한 경쟁현상과 재정난 등의 이유로 언론기관으로서의 건전한 발전을 이룩할 수 없었던 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되지만, 한편 단일통신사가 존재함에 따라 정보유통의 통로가 통제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한편 1987년 11월 11일 국회에서 <언론기본법>이 폐지되어 중앙지와 지방지가 서울과 지방에 주재기자를 두고 취재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지의 경우는 여전히 연합통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1998년 12월 연합통신이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를 맞아 회사명을 ‘연합뉴스’로 바꾸고 북한전문 보도기관으로 기능해 온 내외통신을 통합하였다. 또한 연합뉴스 이외에도 2001년 9월에 뉴시스, 2011년 4월에 뉴스1이 창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동양통신사사』(성곡언론문화재단, 1982)
『커뮤니케이션학개론』 하(차배근, 세영사, 1976)
『합동통신 30년』(합동통신사, 1975)
「한국통신사의 구조적특성에 관한 연구」(팽원순, 서울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82)
집필자
팽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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