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군 ()

강원도평강군산천지도
강원도평강군산천지도
인문지리
지명
강원도 서북단에 위치한 군.
정의
강원도 서북단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회양군과 김화군, 서쪽은 이천군, 남쪽은 철원군, 북쪽은 함경남도 안변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7°01′∼127°25′, 북위 38°17′∼38°50′에 위치하며, 면적 1,374㎢, 인구 8만 8649명(1944년 현재)이다. 1개 읍 6개 면 49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평강읍 동변리이다.

자연환경

군의 중앙부에 마식령산맥과 광주산맥 사이에 형성된 추가령지구대가 있다. 동쪽은 백봉(白峰, 1,095m)·장암산(長巖山, 1,052m), 서쪽은 양암산(楊巖山, 1,123m)·사태산(四泰山, 1,150m)·대왕덕산(大王德山, 789m), 남쪽은 고성산(姑城山, 589m)·서방산(西方山, 717m)·호암산(虎巖山, 574m), 북쪽은 흘령산(屹靈山, 1,344m)·고말봉(古末峰, 1,049m)·두적봉(豆積峰, 1,281m)·마상산(麻桑山, 1,126m) 등이 있어 산지를 형성한다.

남부의 용암대지는 평강군·철원군을 중심으로 이천군·김화군·회양군 등 5개 군에 걸쳐 있으며 해발 200∼600m, 평균 300m의 홍적세 현무암의 분출로 형성되었다. 평강읍 서남단에는 넓은 분화구를 가진 오리산[鴨山]이 있으며, 이 대지를 화강암 산지가 둘러 있어 일대 분지를 이룬다.

또한 현무암의 분출로 안변의 남대천(南大川, 43.6km) 상류가 연장되고 두부침식(頭部浸蝕)으로 분수령이 남쪽으로 이동해 지금은 그 분수령이 검불랑(劒佛浪)으로 되었다. 추가령지구대는 화강암지가 침식된 침식곡 지구대이므로 용암대지를 지나는 하천은 유년곡(幼年谷)의 깊은 협곡을 이루며, 기반에는 화강암력(花崗岩礫)이 보인다.

하천은 고미탄천(古味呑川)이 군의 서북부를 지나 임진강에 합류하고 평강 부근은 한탄천이 유년곡을 이루며 남류해 임진강에 흘러 들어간다. 또한 평강읍 부근에 농업용 저수지인 봉래호(蓬萊湖)가 있다. 남대천이 군의 북부에서 협곡을 이루며 북류해 안변군을 지나 동해에 이른다.

평야로는 평강읍을 중심으로 광활한 대지가 분포하며 주변 산지에는 초지가 많다. 기후는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심하고 강수량이 여름에 집중하는 대륙성기후이다. 연평균기온 8·9℃, 1월 평균기온 -8.8℃, 8월 평균기온 24.2℃, 연평균강수량 1,269㎜이다.

역사

[고 대]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이 발굴된 사실은 없으나, 김화군과 철원군 지역에서 고인돌 등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부터는 이 일대에 사람들이 거주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초기철기시대에는 연맹왕국의 한 부족국가와 같은 사회를 형성했던 것으로 보이며, 삼국시대에는 광개토왕 때 고구려에 흡수되어 부양현(斧壤縣) 또는 어사내(於斯內)라 하였다. 통일신라에서는 경덕왕 때 광평현(廣平縣)으로 개칭되어 부평군(富平郡 : 김화)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그 뒤 후삼국이 정립하자 태봉의 영역에 속하였다.

[고 려]

1018년(현종 9)평강현으로 개칭되어 동주(東州 : 철원)의 속현이 되었다. 1172년(명종 2)에는 감무(監務)가 파견되었으나, 뒤에 폐지되고 김화현(金化縣)의 감무로 하여금 겸무하도록 하였다.

1217년(고종 4) 거란족이 침입했을 때 그 통로가 되어 격전지가 된 일이 있고, 1231년부터 시작된 몽고족의 침입 때에도 그 길목이 되어 많은 피해를 입었다. 고려 말인 1389년(공양왕 1) 다시 감무가 파견되었다.

[조 선]

이 시대에 들어서도 평강현으로서 강원도에 속했으며, 1413년(태종 13)에는 전국의 감무를 현감(縣監)으로 개칭함에 따라 현감이 파견되기 시작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조선 전기에 평강현은 호수 163호, 인구 212인, 군사 67인이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서울을 점령한 왜군의 제4진이 동두천을 지나 북상해 철원·평강·김화·회양을 침략하여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1759년(영조 35) 당시에는 읍내면(邑內面)·현내면(縣內面)·남면(南面)·초서면(初西面)·서면(西面)·목전면(木田面)·고삽면(高揷面)·유진면(楡津面) 등 8개 면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4,377호, 1만 6650인(남자 8,156민, 여자 8,494인)이었다.

[근 대]

1895년(고종 32)평강군으로 고쳐져 춘천부에 편입되었으며, 이듬해에 전국이 13도로 개편되면서 강원도로 재편입되었다. 1899년에는 호수가 4,635호, 인구가 1만 7691인이었다. 한편 1895년 을미의병에서 시작해 1910년까지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던 의병투쟁에 평강군민들도 참여해 1908년 3월에는 평강 남쪽 10리 지점에서, 5월에는 서북쪽 90리 지점에서, 그리고 1909년 12월과 1910년 2월에도 일본군과 접전하였다.

그 뒤 1919년 3·1운동 때에는 서울천도교본부의 안상덕(安相德)이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평강천도교구장 이태윤(李泰潤)이 강원도 북부지방의 각 군에 배포했고, 평강면 장날인 4월 5일에 만세시위가 일어난 것을 시작으로 4월 7일에는 평강과 서면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 군청과 면사무소를 공격하였으며, 같은 날 현내면 백룡리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나 4월까지 계속되었다.

이 만세운동 때 붙잡힌 사람은 이태윤을 비롯해 김창석(金昌錫)·김병철(金炳喆)·김동률(金動律)·권병식(權炳植)·최명구(崔明九)·최일룡(崔一龍) 등 수십 명에 달하였다. 1942년에는 평강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현 대]

1945년 8·15광복과 함께 남북분단이 되면서 평강군 전역이 38도선 이북에 위치했으며, 1950년 6·25를 거치면서 휴전선이 북상함에 따라 남면 정연리가 흡수되었다. 1954년 10월 〈수복지구 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정연리의 행정권이 철원군에 이관되었다.

유물·유적

선사시대의 유물은 아직 발견된 것이 없으며, 인접한 철원군 일대에서 고인돌·민무늬토기와 각종 석기 등이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이 곳에서도 발견될 가능성이 있으나, 현재로서는 조사할 길이 없다.

산성지로는 현내면 하보리에 있는 둘레 438m의 청룡산성(靑龍山城)을 비롯해, 유진면 후평리·사창리 일대의 성황당산성(城隍堂山城)이 277m, 평강읍에서 북쪽으로 24㎞ 지점에 있는 유진산성(楡津山城)이 둘레 399m, 평강읍 나매리의 고소산성(姑蘇山城)이 둘레 366m, 높이 1.2m, 현내면 하주리의 신성산성(新城山城)이 둘레 756m, 높이 0.9∼1.8m, 세포면 북평리의 가래산성(架來山城)이 둘레 90m 정도로 대부분 붕괴된 채 일부만 남아 있다.

이 밖에 태봉 때 축조했다고 전하는 세포면세포리산성과 현내면이목리산성이 남아 있고, 서면 문봉리산성(文峰里山城)은 둘레 230m, 높이 0.9∼1.8m의 규모로 건물지가 함께 남아 있다. 봉수지로는 세포면 가래산과 남면 천마리·가곡리에 봉화대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현내면 임단리 보월사지(寶月寺址)에 보월사중수비와 부도 7기가 있고, 유진면 천기리 양암사지(陽巖寺址)에는 석탑 1기와 불상 24구가 있으며, 남면 지암리 사지에는 현적당승운대사부도(顯寂堂勝雲大師浮屠)와 처사정수석비(處士正修石碑)가 있다.

이 밖에 중봉산 유적사지(幽寂寺址)와 만운산 원적사지(圓寂寺址), 청룡산 영주암(靈珠庵), 평강읍 나매리의 고암산 부석사(浮石寺)·계운사, 희령산의 백련암(白蓮庵)·도선암·삼일암·신암 등이 있다.

사적으로는 평강읍 서변리에 평강향교(平康鄕校), 목전면 중삼리에 삼청재(三淸齋), 현내면 백룡리에 백룡재(白龍齋), 평강읍에 산앙재(山仰齋) 등이 있다. 또한 세포면 세포리의 검불랑은 궁예(弓裔)가 군사훈련장으로 사용하던 곳이며, 평강읍 동변리에는 태봉에서 과거를 보던 시험장인 문과원(文科原)이 있고, 평강읍 서쪽의 갑천(甲川)은 궁예가 왕건(王建)에게 쫓기면서 갑옷을 벗어버린 곳이라고 한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평강읍 서변리에 평강향교가 있다. 이 향교는 조선시대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다. 그 밖에 1739년(영조 15) 건립된 평강읍의 산앙재는 오윤겸(吳允謙)·이희조(李喜朝)·전유향(全有享)을 추향하고, 목전면 중삼리의 삼청재는 오윤겸·이희조·이한원(李翰遠)·오태재(吳泰齋)·홍길주(洪吉周)·권호덕(權好德)·이채백(李采白)을 배향하고, 현내면 백룡리의 백룡재는 이채백을 모신 사당이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1909년 창흥학교가 평강읍에 최초로 설립되어 기독교선교·신문화교육·민족사상함양 등을 했으나 1919년 3·1운동 직후 폐교되었고, 평강읍의 창동학교도 1909년 설립되어 1919년 3·1운동 이후 폐교되었다.

공립학교로는 1913년 평강읍에 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교육기관으로는 1944년 현재 국민학교 8개교가 있다. 종교상황은 불교사찰 11개소, 천주교성당 1개소, 천도교교당 1개소가 있다.

이 고장의 설화로는 인물형의 설화, 지명과 관련된 설화, 불교형의 설화, 풍수지리설을 소재로 한 설화, 동식물을 소재로 한 설화 등이 있는데, 인물형의 설화로는 유진면 유연리의 마암소에 얽힌 평강채씨의 시조에 관한 것과 평강읍용전연못의 잉어와 이희조와 관계되는 전설 등이 있다.

민요로는 〈꽃노래〉·〈배추 씻는 처녀노래〉·〈놋다리요〉·〈상엿소리〉 등이 전하고 있다. 민속놀이로는 횃불싸움·석전·백중놀이·단오놀이 등이 있는데 횃불싸움과 석전은 동짓달부터 이듬해 정월까지 계속되는 놀이이다. 그 밖에도 답교, 정월보름의 달맞이, 서낭제와 여러 가지 전통오락이 행하여진다.

산업·교통

이 군은 주로 산지이므로 논보다 밭이 많아 밭농사가 중심이 되지만 평강읍 남부에서 철원에 이르는 평탄지에는 논이 비교적 많은 편으로 논농사도 활발하다. 따라서 주요 농산물은 쌀·콩·옥수수·감자 및 각종 소채류 등이다. 누에치기도 활발하며 초원이 곳곳에 있으므로 소·면양의 방목도 한다.

지하자원은 금·동·무석·지르코늄 등이 있으며 금·동을 채광하는 광산이 있다. 한편 시장으로는 평강읍평강장이 5·10일, 복개장이 1·6일, 세포면세포장과 목전면 중삼장이 3·8일, 세포면검불랑장과 유진면후평장이 2·7일, 서면옥동장이 4·9일에, 그리고 현내면이목장 등 8개의 5일장이 있어서 각종 농산물의 거래가 활발하다.

교통은 경원선철도가 추가령지구대를 따라 통과하고 이와 병행해 경원국도가 평강∼김화로 연결되고, 그 밖의 국도는 철원과 연결되며 서북방향으로는 이천 및 황해도 곡산에 이른다.

읍·면

[평강읍平康邑]

군의 남부에 있는 읍. 면적 115.24㎢, 인구 2만 347명(1944년 현재). 읍 소재지는 동변리이다. 본래 구(舊)평강군의 군내면(郡內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초서면(初西面)을 합쳐 새로 개편된 평강군에 속했으며, 그 뒤 평강면으로 개칭하고, 1942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이 읍은 추가령지구대 고원의 일부에 해당되는데 동부에 송라산(松羅山, 578m), 서부에 고성산, 남부에 압산(鴨山, 453m) 등이 솟아 있으나 그 밖의 지역은 대체로 평지이다. 경작지로는 주로 100m 내외의 평지가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보리·조·면화·감자 등이다.

교통은 경원선철도가 남북으로 통과해 평강·복계의 2개 역이 있고, 평강읍을 중심으로 신고산·철원 방면으로 3등도로가, 그 밖의 주요 마을을 연결하는 등외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유적으로는 서변리에 평강향교, 동변리·나매리에는 사지(寺址)와 성지(城址)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2개교가 있다. 동변(東邊)·서변(西邊)·복계(福溪)·압동(鴨洞)·간(間)·나매(羅梅)·상갑(上甲) 등 7개 이가 있다.

[남면南面]

군의 동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102.96㎢, 인구 9,493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지암리이다. 이 면은 지형상 철원고원(鐵原高原)의 동쪽 가장자리가 되는데, 면의 중앙에 있는 서방산을 비롯해, 서부에 왕재봉(王在峰, 608m), 북부에 송라산 등이 있다. 한탄강이 동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데, 그 유역에 깊고 좁은 평지가 형성되어 왕재봉 북쪽 기슭의 고원지대와 함께 이 면의 주요 경작지대가 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대마·메밀·조·감자 등이다. 당원금광(唐院金鑛)에서 금·은 등이 채굴된다. 교통은 금강산전철이 면의 남단을 지나고 정연역이 설치되어 있다. 평강읍과 김화읍간의 2등도로가 면의 동부를 통과하고 등외도로가 정연리를 기점으로 각 주요 마을에 연결된다.

유적으로는 지암리의 사지에 현적당승운대사 부도와 처사정수석비가 남아 있다. 그 밖에 정연리에 2개의 사지, 천마리·가곡리의 봉수지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지암(芝巖)·천마(天馬)·학전(鶴田)·가곡(佳谷)·정연(亭淵) 등 5개 이가 있다.

[목전면木田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30.55㎢, 인구 6,335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기산리이다. 이 면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동부에 범북산(凡北山, 908m), 서부에 조덕산(鳥德山, 882m), 남부에 복진산(福辰山, 816m), 북부에 청룡산(靑龍山, 849m), 서북단에 감투봉(甘套峰, 717m) 등이 솟아 있고, 그 여맥이 면내로 뻗어내려 일반적으로 산지가 많다.

고미탄천이 면의 북부를 서쪽으로 흐르며, 남부 산지에서 발원하는 여러 작은 하천을 합치지만 유역에는 넓은 평지는 없고 다만 작은 계곡을 따라 좁고도 긴 평지가 산재해 경작지로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보리·콩·조·메밀·대마 등이다.

교통은 기산리를 기점으로 각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통하고 있을 뿐이어서 불편하다. 다른 지방으로 가려면 경원선철도의 복계역·검불랑역 등까지 가야 한다. 유적으로는 중삼리에 삼청재가 있으며, 명승지로는 청룡산이 있어 주민들은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기산(箕山)·사흘(沙屹)·정동(鼎洞)·장촌(墻村)·복만(福滿)·직동(直洞)·중삼(中三) 등 7개 이가 있다.

[서면西面]

군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183.98㎢, 인구 8,187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옥동리이다. 면의 동부에 고성산, 서부에 대왕덕산, 북쪽에 복진산 등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전지역에 산지가 많지만, 지세는 서남쪽으로 완경사를 이룬다.

사방의 산지에서 발원하는 여러 작은 하천들이 모여 평안천(平安川)이 되어 서남쪽으로 흐른다. 강 연변에 규모는 작지만 좁고 긴 평야가 형성되어 이 면의 주요 경작지대가 되고, 그 밖에 산간의 작은 분지와 산악의 경사면 등이 경작지로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콩·귀리·조·면화·대마 등이다.

교통은 옥동리를 중심으로 2등도로가 동서방면으로 평강읍과 이천 방면으로 통하고 각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연결되지만 불편한 편이다. 유적으로는 문봉리에 석성터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옥동(玉洞)·문봉(文峰)·금곡(金谷)·정산(定山)·화암(化巖)·망일(望日) 등 6개 이가 있다.

[세포면洗浦面]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383.33㎢, 인구 1만 8411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세포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삽면이라고 했다가 1943년 세포면으로 개칭되었다. 면의 동부에 백봉, 서부에 흘령산, 북부에 두적봉 등의 산들이 솟아 있고, 그 여맥이 전역에 미치어 산지가 많으나 산세는 서남쪽을 흐르는 고미탄천 방면으로 경사되어 이 방면에 약간의 평지가 형성되었다.

면내의 작은 하천들이 모여 용치천(龍治川)이 되어 서쪽으로 흐르다가 서쪽 면계를 흐르는 고미탄천에 들어간다. 백봉과 성산(城山, 871m) 사이의 추가령지구대에는 남대천의 상류가 흐른다. 이들 하천 유역에는 규모는 작으나 평지가 형성되어 있고, 산악과 산악 사이에도 고원상(高原狀)의 평지가 있어 경작지나 목장으로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보리·귀리·콩·감자·메밀 등이다. 한편 세포리 부근의 고원지대에서는 가축을 방목한다. 북평리에는 은광이 있다. 교통은 면의 동부를 경원선철도가 통과해 검불랑과 세포의 2개 역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 역들은 모두 해발 500m 이상의 고원에 위치한다. 3등도로가 경원선철도와 병행하고 등외도로는 용치천과 그 지류를 따라 각 주요 마을에 연결된다.

유적으로는 북평리의 가래산(架來山)에서 함경남도 안변군에 걸쳐 산성지·봉수지가 남아 있고, 세포리에는 태봉국 때 축조한 성지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세포(洗浦)·서하(西下)·중평(中平)·북평(北平)·근남(近南)·동상(東上)·원남(遠南) 등 7개 이가 있다.

[유진면楡津面]

군의 서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275.09㎢, 인구 9,657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후평리이다. 면의 동부에 흘령산, 서부에 사태산, 남부에 장지문산(長旨門山, 929m), 북부에 고말봉 등이 사방을 둘러싼 긴 지역이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고미탄천이 도중에서 사방의 산지에서 발원하는 작은 하천들을 합치는데, 유역에 규모는 작으나 평지가 형성되어 이 면의 주요 경작지대 및 거주지역이 된다.

경작지로는 산간의 작은 분지와 산악의 완경사면이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콩·조·감자·옥수수·대마·메밀 등이다. 교통은 고미탄천과 그 지류의 연변을 따라 등외도로가 겨우 지나고 있을 뿐이어서 불편하다. 따라서 다른 지방으로 가려면 남쪽 범북산의 험준한 고개를 넘어 경원선철도의 이목역이나 복계역을 이용한다.

유적으로는 흘령산 아래 유연리에 심적사, 천기리의 양암사지에 초석·석탑·불상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후평(後坪)·유연(楡淵)·천기(泉岐)·적전(赤田)·상술(上述)·사창(社倉) 등 6개 이가 있다.

[현내면縣內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93.14㎢, 인구 1만 6219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백룡리이다. 면의 동부에 운마산(雲磨山, 765m)·장암산 등이 솟아 산지를 이루지만, 서부는 북쪽의 세포고원, 남쪽의 철원고원에 계속되는 해발 400m 이상의 현무암대지이다.

한탄강은 이 고원지대를 침식하며 남쪽으로 흐른다. 고원 일대는 여름철에도 서늘하고 초생지(草生地)가 많아 독특한 경관을 이루는데 피서지로 적당하다. 주요 농산물은 감자·메밀·귀리 등 고랭대(高冷帶)작물에 한정되어 있다.

교통은 경원선철도가 서부의 용암대지 위를 남북으로 통과해 면내에 이목역이 설치되어 있고 세포∼평강간의 3등도로가 경원선철도에 병행하고, 이목리를 중심으로 각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연결된다.

유적으로는 임단리의 보월사지(寶月寺址)에 초석·비석·부도 7기가 있고, 하보리에 청룡산성, 하주리에 신성산성(新城山城), 이목리에 태봉국 때에 축조되었다는 토루성(土壘城)과 궁지(宮址)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백룡(白龍)·신정(新井)·하주(下注)·하보(下洑)·이목(梨木)·신대(新垈)·북촌(北村)·마장(馬場)·임단(林丹)·문산(文山)·상원(上元) 등의 11개 이가 있다.

광복 후 변천

강원도(북한) 남부에 있는 군. 동쪽은 김화군, 북쪽은 세포군·판교군, 서쪽과 남서부는 이천군·철원군(북한), 남쪽은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철원군(남한)과 접해 있다.

동경 127°02′∼127°28′, 북위 38°19′∼38°38′에 위치하며, 면적 708㎢, 인구는 11만여 명(1996년 추정)이다.

1952년 12월 행정구역 개편시 유진면이 판교군에, 서면의 일부가 철원군에 이관되었으며, 회양군의 일부가 편입해 군 행정구역이 이 단위로 통폐합, 개편되었다. 1961년 3월 구읍리가 평강읍으로 되고 본래의 평강읍은 복계리로 개칭되었으며, 이목리가 세포군에 이관되었다.

1963년 3월 남양리가 분리되어 봉래리가, 1965년 1월 자원리의 일부가 분리되어 가곡리가 신설되었다. 1984년 5월 장촌리가 장촌노동자구로 개편되었다.

행정구역은 평강읍과 장촌(墻村)노동자구, 복계(福溪)·신정(新井)·문산(文山)·이수덕(李壽德)·압동(鴨洞)·해방(解放)·전승(戰勝)·자원(資源)·가곡(佳谷)·천암(天巖)·낭하(浪下)·하송(下松)·상송관(上松館)·상원(上元)·송포(松浦)·하주(下注)·상갑(上甲)·봉래(鳳來)·남양(南陽)·화암(化巖)·낭월(朗越)·정동(鼎洞)·중삼(中三)·기산(箕山)·복만(福滿)·옥동(玉洞)·문봉(文峰)·금곡(金谷)·정산(定山)·내천(內川) 등 30개 이로 되어 있다. 군 소재지는 평강읍이다.

[자연환경]

군의 북서부에는 마식령산맥이, 동쪽에는 광주산맥이 뻗어 있으며, 중심부에는 평탄한 평강고원과 철원고원이 펼쳐져 있다. 군 경계의 변두리를 따라 백암산(1,110m)·남미봉(1,010m)·장지문산(931m)·청룡산(843m)·대왕덕산(788m) 등이 솟아 있고, 중부 고원지대에도 북진산(816m)·박자산(1,108m)·운미산(775m) 등이 솟아 있다.

하천은 임진강의 지류인 평안천과 역곡천이 남서방향으로 흐르고 한탄강이 동부경계지대를 남쪽으로 흐른다. 군의 남쪽에는 봉래저수지, 중부에는 감둔저수지·하송저수지·상갑저수지·계헌저수지·송포저수지 등 저수지가 많다.

기반암은 차돌·편암·화강암·현무암이고, 토양의 대부분은 갈색산림토·충적토·논토양이다.

기후는 연평균기온 8.2℃, 1월 평균기온 -7.0℃, 8월 평균기온 22.1℃이며, 연평균강수량은 1,660㎜로 다우지역에 속한다. 첫서리는 10월 초순, 마감서리는 5월 초순에 내린다. 산림은 군 넓이의 68%를 차지한다. 주로 소나무·참나무·이깔나무·잣나무가 자라며, 동부지역에는 초지식물군락이 펼쳐져 있다.

[산업·교통]

이 군의 주요 산업은 농업이다. 경작지는 군 넓이의 30%로 도내에서 제일 넓으며, 그중 밭이 70%, 논이 30% 정도이다. 주작물은 쌀·옥수수·콩이고, 밀·보리·채소도 많이 생산되고 있다. 평강무는 맛과 수확량에 있어서 예로부터 널리 알려져 있으며, 담배·들깨·박하 등 공예작물도 많이 생산되고 있다.

야산에는 수백 정보의 과일밭이 조성되어 배·사과·복숭아가 주로 재배되고 있으며, 밀원식물이 풍부하므로 꿀벌을 많이 친다. 현무암대지의 ‘닭우리벌’을 개간해 2,000여 정보의 뽕밭을 조성하고 국영잠업농장을 설치함으로써 양잠업이 발전하였다.

축산업으로는 소·돼지·양·닭이 많이 사육되고 있으며, 토끼목장과 오리목장이 있다. 지방공업은 식료품·일용품·직물·피복·지물·제약공업 등이 발달했으며, 주방용구에서부터 학용품에 이르기까지 각종 생활필수품들이 생산된다. 군에는 트랙터와 자동차 부속품을 생산해 도내 각지에 공급하는 트랙터부속품공장이 있다.

‘불개미술’은 이 곳 명산물로 알려져 있다. 철도는 강원선(고원―평강)이 통과하며, 세포·고산·김화로 통하는 도로와 복계리에서 철원·이천을 연결하는 도로가 있다.

남양리에는 궁예가 쉬었다는 게현(憩峴)이라는 고개가 있으며 옛 성터가 있다. 교육난 기관으로는 평강농업전문학교·평강고등중학교·하두고등중학교 등이 있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
『평강군읍지』(1979)
『강원도지』(강원도지편찬위원회, 1979)
『평강군지』(평강군지편찬위원회, 1979)
『인물의 고향』-북한편(중앙일보사, 1991)
『북한지지요람』(통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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