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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대일전선협회(韓國對日戰線協會)

    근대사단체

     1930년대 중국 난징[南京]에서 조직된 독립운동가들의 협동전선 모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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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30년대 중국 난징[南京]에서 조직된 독립운동가들의 협동전선 모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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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1932년 10월 25일경 중국 난징[南京]·항저우[杭州]·전장[鎭江] 등지에 있던 독립운동가 송병조(宋秉祚)·이동녕(李東寧)·조소앙(趙素昻)·김규식(金奎植)·김두봉(金枓奉)·윤기섭(尹琦燮)·박창세(朴昌世)·윤세주(尹世胄)·최동오(崔東旿)·김구(金九)·엄항섭(嚴恒燮) 등이 독립운동가의 대동단결을 다지기 위해 난징에서 조직하였다가 항저우와 전장에서 보강·확장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기능과 역할
    1932년 4월 29일이동녕·김구 등의 주선으로 윤봉길(尹奉吉) 의사(義士)가 상해(上海)훙커우공원[虹口公園]에서 시라카와[白川義則] 대장 등 10여 명을 살상하는 데 성공하자, 임시정부청사는 즉시 일본 형사의 앞잡이였던 프랑스 형사가 포위, 각종 자료를 압수당하였다. 이 때 30여 명의 임시정부 핵심 인사는 즉시 항저우·자싱[嘉興]·쑤저우[蘇州]·우시[無錫]·난징·전장 등지로 헤어져 피신하였다.
    이 때문에 각지에 떨어져 있던 혁명단체는 일제 군대의 상해 출병으로 개시된 중국침략전쟁에 대해 통일된 대일항전 구축체제를 형성하지 못하였다. 자싱에 가 있던 이동녕·김구·엄항섭·박찬익(朴贊翊) 등은, 혁명단체가 많고 또 관련된 혁명투사가 아무리 많아도 단일화·체계화되지 않으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였다.
    이들은 통일전선협회의 구심체가 필요함을 역설하였고,이에 대일전선협회의 조직이 보급, 확산되어 각 지역 단체의 호응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민족사적 사명의식에 따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비롯해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조선의열단(朝鮮義烈團)·한국혁명당(韓國革命黨)·광복동지회(光復同志會) 등 10여 개 독립운동단체가 대표회의를 개최하였다.
    마침내 1932년 10월 예비실무자회의를 거쳐 그 해 10월 25일 규약기초위원(規約起草委員) 3명, 대회선언기초위원(大會宣言起草委員) 2명을 선정, 27일 규약과 선언문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11월 10일 선언문을 발표함으로써 대일전선통일동맹은 정식 발족하였다. 대일혁명전선의 지도력·물력·성력(誠力)을 한 곳으로 모으게 된 것이다.
    1933년 김규식이 남양지방을 경유하며 재미대한독립당(在美大韓獨立黨)·대한인민총회(大韓人民總會)·재뉴욕 대한인교민단(大韓人僑民團)·재하와이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하와이 대한인동지회(大韓人同志會)·재미대한인국민회총회(在美大韓人國民總會) 등이 가맹하였다.
    가입단체가 20여 개로 늘고 가입 인원도 180여 명으로 늘었고 이러한 확장을 토대로 중한민중대동맹(中韓民衆大同盟)을 결성, 김규식을 대표로 선임하였다.
    대일전선통일동맹은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의 발족으로 1935년 7월 5일 발전적인 해체를 하게 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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