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부사(慶源府使)를 거쳐,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함경북도병마절도사로 해정창(海汀倉)에서 가토(加藤淸正)의 군사와 싸웠다.
이때 전세가 불리하자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 두 왕자를 놓아둔 채 단신으로 오랑캐마을 서수라(西水羅)로 도주하였다가, 도리어 그들에게 붙들려 경원부로 호송, 가토의 포로가 되었다.
앞서 포로가 된 두 왕자 및 그들을 호행하였던 대신 김귀영(金貴榮)·황정욱(黃廷彧)등과 다시 안변으로 호송되었다가 이듬해 4월 일본군이 서울을 철수할 때 허술한 틈을 타서 단신으로 탈출, 고언백(高彦伯)의 군진(軍陣)으로 돌아왔으나 처형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