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단주(湍州). 1170년(명종 즉위년) 추밀원사(樞密院使)가 되었고, 이듬해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장영재(張令才) 등 27인과 명경(明經) 4인을 뽑았다.
1172년 수사공 참지정사(守司空參知政事)가 되었으며, 형부상서(刑部尙書)를 거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가 되어 치사(致仕)하였다. 술수에 능하여 사람의 화복(禍福)을 말하고 또한 지모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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