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탁보(卓甫). 1606년(선조 39) 무과에 급제하고 곧 선전관에 임명되었는데 영창대군(永昌大君)이 강화로 쫓겨갈 때 선전관으로 따라갔다.
이어 절충장군(折衝將軍)·가을파진첨절제사(加乙波鎭僉節制使)를 거쳐 조방장(助防將)으로 승임되어 1년 동안 함흥에 있다가 할머니상을 당하여 사직하였다.
1622년(광해군 14) 첨지중추부사, 이듬해 결성병마도위(結城兵馬都尉)를 지내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위장(衛將)으로 인조를 따라 강화에 호종하였다. 그 뒤 부산진첨절제사가 되고 1634년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가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내승 겸 선전관으로 왕과 함께 남한산성에 피난하였다가 이듬해 호종의 공으로 동지중추부사에 올랐다. 이어 낙안·장흥의 부사를 역임하고, 1641년 어머니상을 당하여 전려(田廬)로 돌아갔다.
독서하다가 고인의 격언을 얻으면 벽 위에 써놓고 반성의 자료로 삼았다. 1652년(효종 3) 자헌대부(資憲大夫), 1662년(현종 3)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