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첨의중찬(僉議中贊) 홍자번(洪子藩)의 손자로,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홍경(洪敬)의 아들이다.
과거에 급제, 1307년(충렬왕 33) 우부승지가 되고 정윤(正尹)에 이르렀다.
용의(容儀)가 아름다웠으며, 일찍이 신육재(辛育才)와 더불어 토지문제로 다투다가 신육재를 때려 죽게 하였으므로 신육재의 아내에 의하여 변위도감(辨違都監)에 고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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