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5년(선조 38) 옹진현령을 거쳐, 1617년(광해군 9) 사섬시부정 등을 역임하였다. 허균(許筠)의 심복이었다.
폐모론을 주장하여 광해군의 신임을 받고 있던 좌참찬 허균이 1617년에 반란을 계획하다 탄로되어 이듬해 처형당하자, 이에 연루되어 1619년에 광해군의 친국 후 원지(遠地)로 유배되었다가 인조반정 후에 참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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