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응화(應和). 1579년(선조 1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596년 황해도어사가 되었는데, 인망이 없고 어사의 자격이 없다는 장령의 탄핵을 받았으며, 1599년 장단부사가 되어 정사를 간리(奸吏)에 맡겨 백성들이 유망(流亡)한다는 탄핵으로 파직되었다.
그 뒤 다시 관계에 진출, 강화부사를 거쳐 1601년 장령·좌통례·군자감정을 역임하고, 1605년 봉상시정·성균관전적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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