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구 ()

도봉구청
도봉구청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서울특별시의 동북부에 위치한 구(區).
정의
서울특별시의 동북부에 위치한 구(區).
개관

서울특별시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경기도 남양주시와 구리시, 서쪽으로는 경기도 고양시, 남쪽으로는 성북구와 동대문구, 북쪽으로는 경기도 의정부시와 양주시 장흥면에 접하고 있다. 위치는 동경 127°01'~127°03', 북위 37°36'~37°41'이다. 면적은 20.70㎢, 인구는 35만 1242명이다.(2015년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14개 행정동(4개 법정동)이 있고, 구청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해 있다.

자연환경

지형적으로 북한산에서 도봉산에 이르는 봉우리의 화강암은 중생대 쥐라기의 대보조산운동(大寶造山運動)에 의해 형성된 대보화강암(大寶花崗巖)이다. 이 지형은 기후적으로 풍화작용을 받다 형성된 화강암 풍화지형으로 전형적인 기후지형(氣候地形)이다. 이 일대는 잔구성(殘丘性) 또는 경지구릉(硬地丘陵)을 이루고 있다.

서쪽의 우이천과 동쪽에서 서류하는 태릉천이 모여 중랑천이 되는데, 홍수 때 큰 수해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 하천지역은 두꺼운 충적층으로 덮여 유입되는 토사로 하상(河床)이 매우 높으며, 하천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넓은 평야가 전개된다.

역사

도봉구 지역 일대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선사시대로 추정되나 아직 선사시대의 유적이나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은 넓은 의미에서 한강 유역 서울의 일부라는 점에서 한강변 선사 문화권에 포함될 수 있다.

강 하류의 서울 지역은 일찍이 삼국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던 곳이며, 구체적으로 역사에 등장한 시기는 백제가 고대국가 체제를 갖추면서 한강 중심의 통치 구역에서 점차 남북으로 영토를 넓혀갈 무렵인 백제 고이왕(古爾王) 때로 알려져 있다.

고대 사회에서 군사적 요충지이며, 농업생산 활동을 위한 필수조건인 배산임수의 지형이 잘 발달된 도봉구 지역은 그 특성으로 인하여 각국의 선점 노력이 경주된 곳이기도 하다.

그 후 이 지역은 백제의 한성시대를 지나, 장수왕(長壽王)의 남하정책에 의해 고구려 영토에 편입되었고, 고구려는 군현제에 따라 현재의 도봉구, 양주군 일대에 매성군(買省郡)을 설치하였다. 이후 757년(경덕왕 16)에는 현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군 일대에 내소군(來蘇郡)이 설치되었다.

고려 태조는 이 내소군을 견주(見州)라 개칭하고, 신라 때의 한양군을 양주(楊州)라 고쳐 견주를 관할하게 하였고, 1081년(현종 9)에는 견주를 양주에 편입시켰다.

1394년(태조 3)에는 양주 범위 내에서 도읍 한성부를 정하고, 현재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기타 양주 지역은 그대로 양주로 속하게 하였다. 2년 후인 1396년에는 한성부의 오부방리(五部方里)를 정하여 경계 표석을 세웠는데, 이때 도봉구 일부 지역은 동부 숭신방(崇信坊)에 속하였다. 따라서 도봉구의 일부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한성부의 성 외 지역이 되어왔다.

1895년(고종 32)에는 한성부 소속의 양주군은 칙령에 의거, 13도제에 따라 경기도의 3등 군이 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2년경 노원면과 해등촌면은 양주군에 계속 속해 있다가 2년 후인 1914년 노원면과 해등촌면이 노원면으로 통합되게 되는데, 창동·도봉·방학·쌍문리 등의 도봉구 전체 지명이 비로소 나타나게 되었다.

1949년에는 서울의 행정구역이 확장됨에 따라 고양군 숭인면에서 새로 편입된 지역과 동대문구 일부 지역이 합해져 성북구로 편입되었고, 도봉구 지역은 숭인출장소가 관할하게 되었다. 그리고 1963년 양주군 노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 성북구에 편입되었고, 성북구 노해출장소가 설치되어 도봉·방학·쌍문·창동리 등을 관할하게 되었다.

1973년 7월 1일에는 숭인출장소와 노해출장소 관할 지역이 합해져 22개 행정동을 관할하는 도봉구가 신설되었고, 이후 분동을 거듭하여 1979년 35개 행정동으로 규모가 증가되었다. 1988년에는 도봉구에서 노원구가 분리되었다.

도봉구의 남부는 서울의 시가지로 연속되는 주택 지구이고 북부는 산지를 이루고 있는데, 대체로 도봉로를 중심으로 주택이 밀집되어 있고, 도로 양쪽은 상가지역을 이루고 있다. 1995년 도봉구에서 미아동·수유동·번동의 18개 동이 강북구로 분리되었고, 현재는 14개 동이 있다.

유물·유적

도봉동의 문화재로는 만월암 석불좌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99년 지정), 도봉사 철불좌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002년 지정)이 있으며, 전주이씨 영해군파 묘역(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97년 지정)가 있다.

방학동에는 서울 연산군 묘(사적, 1991년 지정)와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가 있다. 연산군 묘는 연산군과 그 부인 거창 신씨(居昌愼氏)의 묘소이고,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은 세종의 딸 정의공주(貞懿公主)의 부군 안맹담(安孟聃)의 신도비와 묘이다.

창동에는 서울 초안산 분묘군(사적, 2002년 지정)이 있다. 초안산 야산에는 조선시대 내시들의 분묘와 내시 부부 묘, 양반 분묘, 서민 분묘 등 다양한 계층의 분묘 1,000여 기가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또한 15세기 이후 서민·중인·내관·상궁·사대부 등의 문관석과 동자상들이 시기별로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어, 조선시대의 묘제와 석물 변천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편, 창동은 옻나무의 수액인 칠(漆)을 다루는 칠장(국가무형문화재, 2001년 지정)의 전승지이기도 하다.

교육·문화

도봉구는 가장 북쪽에 있는 서울의 관문이며, 북한산 국립공원의 도봉천과 무수천이 흐르는 쾌적한 주거지역이다.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23개교, 중학교 13개교, 고등학교 10개교, 특수학교 1개교가 있으며, 대학으로는 덕성여자대학교가 있다.

1981년에 개교한 서울특별시 소방학교는 전문소방인을 양성하는 요람이다. 특수학교로는 서울인강학교, MBPA종합발달활동센터가 있어 장애인 특수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정보교류진흥재단은 우리나라 고등교육기관의 국제 교류와 국제사회가 인증하는 경쟁력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데 기여하고자 국제자격증 과정을 도입하였다.

이밖에 도봉문화정보센터, 도봉여성센터, 쌍문동 청소년랜드, 문화의 집에서는 지역주민들의 문화 교육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문화시설로는 도봉문화원, 창동문화마당 공연장, 서울열린극장창동, 도봉소극장과 애니피아 등이 있다.

도봉문화원 대강당은 종합공연장 구실을 하며 연극·영화와 음악회 공연을 개최하고 있으며, 창동문화마당 공연장은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공연, 행사 및 음악회 등이 열리고 있는 문화휴식 공간이다.

서울열린극장창동은 동북부 지역의 문화발전을 위해 2004년 10월 개관된 최첨단 이동식 공연장이며, 도봉소극장과 애니피아는 도봉구립여성합창단, 도봉소년소녀합창단, 도봉청소년리코더합주단, 도봉문화원 풍물패 등의 정기연주회 활동에 활용되고 있다.

도서관으로는 도봉정보문화센터, 시립 도봉도서관, 구청 종합자료실, 어린이 전자도서관, 도봉 청소년 독서실, 새마을문고 종합자료실 등이 있다.

박물관으로는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과 각종 옹기 200여 종 및 목공예·종이공예·관혼상제·무속신앙·민속생활 용품 등 3000여 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옹기 민속박물관 등이 있다.

한편, 체육시설로는 도봉실내배드민턴장, 구청부설 체력단련실, 창골잔디축구장, 중랑천 자전거도로 등이 있고, 수영장, 헬스장, 에어로빅실, 실내체육관, 축구장, 배드민턴장 등을 갖춘 창동 스포츠문화 콤플랙스가 운영되고 있다.

설화·민요

도봉구에는 쌍문동(雙門洞)의 동명 유래인 효자·효부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려서부터 부모 섬기기에 정성을 다하였던 남궁지(南宮遲)는 부친의 병환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드리고 부친의 대변을 혀에 대고 병세를 살폈고, 남궁지의 처 하동 정씨(河洞鄭氏)는 시아버지가 2년간 병환으로 누워 계실 때, 해산한 아이를 남에게 맡기고 항상 시아버님 곁에서 시중하였다. 또한 아들 남궁조(南宮鋽)는 암회리(현재 방학동)에 살면서 모친의 병환이 위독하자 옷차림을 한 번도 풀지 않고 정성껏 약을 달였고, 밤에 북두칠성을 향해 자신이 대신 죽게 해 달라고 축원하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드렸는데, 이것이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1893년, 남궁지와 그의 처 하동 정씨, 그의 아들 남궁조의 행실을 기리는 효자문 쌍문(雙門)을 세우게 되었으며, 현재 쌍문동(雙門洞)의 동명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방학동에는 연산군과 관련한 하마비(下馬碑) 이야기도 전해진다.

대개 왕을 비롯하여 훌륭한 어른과 관련이 있는 곳에는 하마비를 세워 그 어른에 대해 예의를 지키도록 하였다. 현재의 방학동 하마들 뒷산에는 덕수 이씨 묘가 많은데, 조선시대 3대 정승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세도가 상당하여 가족이나 일가친척은 물론 그 집에서 부리는 남녀 하인들도 위세가 당당하였다. 이 때문에 이 집 앞에서는 누구나 가릴 것 없이 타고 있던 말에서 내리게 되었고, ‘하마(下馬)’라는 지명이 생기게 되었다.

방학동에는 또 하나의 하마들 이야기가 있다. 연산군 묘에 있었던 하마비와 관련한 이야기인데, 비록 왕위에서 쫓겨났으나, 왕을 지냈으므로 하마비가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또한 연산군 묘가 있던 앞 들은 하마평(下馬坪)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한편, 방학동의 용바위 이야기도 전해진다.

예전 천주교 공동묘지 자리에는 용바위가 있었는데, 큰 바위인 한가운데에 1m 정도가 파여 있어, 사람들은 용이 승천하는 바위라고 하였고, 용이 승천하다가 꼬리로 바위를 치고 가 용바위가 생겼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후 천주교 공동묘지가 만들어지면서 이 용바위는 없어지게 되었다.

산업·교통

도봉구의 전체 면적은 20.70㎢ 로 이 중 41.4%가 녹지지역이다. 상업지역은 1.5%에 불과하고 49.7%가 주거지역이다.

도시화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채소·화훼·과수재배와 양계·양돈·육우 사육 등이 활발하였으나, 도시 하층민이 집단 거주하게 되면서 잡화·의류·가발 등과 하청에 의한 기계·전자부품 생산 등 가내공업이 활발해져 도봉로와 중랑천을 끼고 준공업 지대가 형성되었다.

창동의 경우, 샘표간장공장·서울미원공장·쌍용양회 등 크고 작은 공장이 무려 700개가 넘어 서울 전 공업의 6.6%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이에 큰 종합상사에서부터 평화시장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업체들과 그 하청업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도봉로 좌우에는 상가가 길게 형성되었으며, 수유삼거리와 대지극장이 있는 미아삼거리는 도봉구의 상업중심지가 되었다.

교통으로는 강북구 미아삼거리에서 의정부로 이어지는 도봉로와 의정부와 천호대교로 직결되는 동1로가 주요 간선도로이다. 경원선 철도에 지하철 1호선이 연계되어 있으며,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북부를, 지하철 4호선이 남부를 가로지르고 있다.

대체로 도봉로를 중심으로 주택이 밀집되어 있고, 도로 양쪽은 상가지역을 이루고 있다. 도봉로와 동1로의 간선도로를 중심으로 삼양로, 상계로, 장수로, 화랑로, 월계로, 수락산길 등이 있어 동서 방향으로 교통이 원활하다.

1974년 8월 15일 경원선 철도에 지하철 1호선이 연계되어 개통되었다. 1993년 4월 21일에는 4호선이 개통되었으며, 지하철 7호선이 2000년 8월 1일 완전 개통되어 도심과의 소통이 편리해졌다.

관광

북한산·도봉산·수락산·불암산 등은 산세가 수려하고, 암자가 많이 자리 잡고 있어 많은 오래전부터 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다. 우이동 계곡은 무더운 여름철에 서울시민의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울창한 숲 속에 자리 잡은 아카데미하우스는 갖가지 회의와 교육, 연구 토론 등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발바닥공원은 약 5,300여 평에 나무를 심고, 아이들을 위해 각종 동식물 100여 종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산책로는 물론, 습지 식물과 생태연못을 조성해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2002년 5월 주민들에게 본격 개방되면서 이 일대 주민들의 쾌적한 휴식공간은 물론, 도봉구의 명소가 되었다. 이 밖에 물방울 어린이공원, 쌍문근린공원 등이 있다.

방학동 도깨비시장은 주로 농수산품을 판매하고, 매일 오후 1시가 되면 대형마트 못지않은 할인 행사와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이 외에도 창동 신창시장, 쌍문 제일종합시장, 도봉 제일시장 등의 재래시장이 있다.

또한 도봉구에는 도봉산 서원마을축제와 도봉서원 춘·추향제가 행해지고 있다. 서원마을축제는 마을 안녕 고사와 유가행렬 재현, 길놀이 행사, 전통국악공연 등이 펼쳐지며, 향제는 전통향사 재현으로 전국의 유림을 중심으로 정암 조광조, 우암 송시열 선생의 학문적 사상과 덕행을 추모하는 전통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이 밖에 도봉문화예술제, 도봉산 축제, 도봉 사진 공모전, 도봉 미술작가 초대전, 시 낭송회 등 다양한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동(洞)
  1. 도봉동(道峰洞)

도봉구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한천(漢川)을 끼고 상계동과 이웃하고, 서쪽은 우이동과 양주군 장흥면, 남쪽은 방학동, 북쪽은 의정부시와 접해 있다. 동명은 도봉산 아래에 마을이 위치한 데서 유래되었다.

1963년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도봉동이 되었고, 1973년 도봉구 관할로 편입되었다. 1975년 도봉동에서 방학동이 분동되어 나갔고, 1977년 도봉1·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노원구로 관할이 바뀌었다가, 1989년 다시 도봉구에 속하게 되었다.

도봉서원(道峰書院)의 옛 사당이 있으며, 만장봉(萬丈峰) 아래에는 673년(문무왕 13) 의상대사가 제자들을 시켜 창건한 천축사(天竺寺)가 있다. 또한 도봉산 기슭에는 조선시대 사상도고(私商都賈)들의 활동지였던 누원점(樓院店)이 있었다.

  1. 방학동(放鶴洞)

도봉구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한천(漢川)을 사이에 두고 상계동과 이웃하고, 서쪽은 우이동, 남쪽은 창동·쌍문동, 북쪽은 도봉동과 접해있다. 동명 유래에 관해서는 조선시대에 왕이 도봉서원의 터를 정하기 위해 도봉산 중턱에 앉아 중다리를 내려다보다가 학이 평화롭게 노는 모습을 보고, 이 마을을 ‘방학굴(골)’이라 칭하였다는 설이 있으며, 또 하나는 이곳 지형이 학이 알을 품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방학(放鶴)’으로 칭하였다는 설이 있다.

1963년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방학동이 되었고, 1973년 도봉구 관할로 편입되었다. 1975년 도봉동에서 분동하였으며, 1980년 방학1·2동으로 분동, 1988년 2동이 다시 2·3동으로 분동되었다.

교통은 방학로가 마을의 중심을 지나며, 성북구에서 의정부시로 나가는 도봉로가 동쪽을 지나고 있다. 예로부터 도심에서 멀지 않은 지역이어서 북한산 자락에 왕실과 귀족들의 묘소가 많이 있었다. 문화재로는 방학로 변에 연산군 묘와 그의 부인 거창 신씨의 묘,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가 있다. 그 밖에 연산군 묘역이 있는 산기슭 앞에는 1,000년 된 은행나무(서울특별시 지정보호수 제1호)가 있다.

  1. 쌍문동(雙門洞)

도봉구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창동, 서쪽과 남쪽은 수유동, 북쪽은 방학동과 접해 있다. 동명은 이곳에 효자문 2개가 세워진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일설에는 현 창동우체국 부근에 열녀문(烈女門)이 두 개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쌍갈래 길에 이문(里門)이 있었는데, 이것을 ‘쌍갈무니’라 하던 것이 ‘쌍문’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1963년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쌍문동이 되었고, 1973년 도봉구 관할로 편입되었다. 1980년 1동에서 3동이 분동되고, 1991년 2동에서 4동이 분동되었다. 1960년 이전까지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을 위주로 하고 있었으며, 이후 인구가 급증하여 쌍문로와 도봉로 주위에 상가가 밀집되었다. 쌍문1동에 덕성여자대학교가 있다.

  1. 창동(倉洞)

도봉구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상계동, 서쪽은 쌍문동, 남쪽은 번동, 북쪽은 방학동과 접해 있다. 동명은 조선시대 이곳에 양곡(糧穀) 창고가 있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1963년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창동이 되었고, 1973년 도봉구 관할이 되었다. 1988년 노원구로 관할이 바뀌었다가 1989년 다시 도봉구로 편입되었다.

창1동은 도봉로와 접해 있으며, 지하철 4호선 쌍문역과 창동역에 걸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창2동은 남서쪽으로 우이천이 흐르고, 도봉로와 창동순환도로가 지나는 항아리 모양의 준공업지역으로 100여 개의 공장이 밀집되어 있다.

창3동은 북동쪽의 많은 부분이 주안산 기슭에 있어 다른 지역보다 개발이 늦게 진행되고 있다. 창4동은 동쪽으로 중랑천, 서쪽으로 경원선 철도를 경계로 길게 자리 잡고 있으며, 1989년 택지 개발사업으로 인해 대부분 지역이 아파트 단지가 되었다. 지하철 4호선과 1호선이 만나는 창동역 주변 상업지역은 업무용 빌딩이 많이 있고, 도봉구청 별관과 보건소, 도봉경찰서, 노원세무서, 노동부 서울북부사무소 등 관공서가 밀집되어 있다.

창5동도 창동역을 끼고 있으며, 도봉구청·북부교육청·도봉등기소 등의 관공서와 대형 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참고문헌

『서울통계연보』(서울특별시도봉구, 2006)
『통계연보』(도봉구청, 2005)
『서울민속대관』11 종교편(서울특별시, 1996)
『서울의 전래동명』(이재곤, 1994)
『서울민속대관』3 풍속과 놀이편(서울특별시, 1993)
『서울민속대관』1 민간신앙편(서울특별시, 1990)
『서울의 가로명연혁』(서울특별시, 1986)
『동명연혁고』Ⅸ 도봉구편(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4)
『서울의 전통문화』1·2(서울특별시, 1982~1986)
도봉구(www.dobong.go.kr)
관련 미디어 (2)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