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Serbia)

세르비아의 국기
세르비아의 국기
외교
지명/국가
유럽 남동부 발칸반도에 위치한 공화국.
이칭
이칭
세르비아공화국, Republic of Serbia
정의
유럽 남동부 발칸반도에 위치한 공화국.
국가 개요

세르비아 공화국의 정치, 경제적 중심지이자 수도인 베오그라드(Beograd, Belgrade)는 5∼6세기 처음 이 지역으로 이주해 내려온 슬라브족들이 ‘하얀 도시’라 부르면서 유래하였으며, 세르비아 정부에서 밝힌 베오그라드의 인구는 717만 6794명(2015년 현재)이다.

세르비아 공화국은 헝가리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북부의 보이보디나(Vojvodina)와 알바니아인들이 90% 비율을 지닌 남부의 코소보(Kosovo)라는 두 개의 자치주를 지니고 있는데, 자치주 중 세르비아의 북부에 위치해 헝가리와 접하고 있는 보이보디나 자치주의 주도는 노비사드(Novi Sad)이며, 세르비아 남부에 위치한 코소보 자치주의 주도는 쁘리쉬티나(Priština)이다.

2008년 2월 코소보내 알바니아 정부는 일방적으로 세르비아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였고, 2009년 11월 현재 미국과 EU 내 상당 국가 그리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68개국이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해 주고 있지만, UN에선 아직 독립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르비아 공화국은 「헌법」에 따라 공화국 영토 내에 거주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민주적 권리를 부여하는 민주 국가를 표방하고 있다. 2006년 10월 국민투표로 확정된 「헌법」 제10조 제1항에 따라 공화국의 공식 언어는 세르비아어이며, 공식문자로는 키릴(Cyril)문자가 선택되었지만, 라틴문자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과 세르비아 정교에서 상징적으로 쓰고 있는 국기는 세르비아 공화국 국기 바탕위에 ‘4 C’가 쓰여져 있는데, 이것은 중세 세르비아 왕국 수립 초기 로마 교회로부터 세르비아 왕국이 가톨릭으로 전환할 것을 강요받는 와중에 세르비아 독립 정교회를 수립하였던 성 사바(Saint Sava)가 세르비아인들에게 정교를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요청한 문구인 “오직 단결만이 세르비아인을 구원할 수 있다(Only Unity Saves the Serbs (세르비아어로는 Samo Sloga Srbina Spasava))”라는 문장 중 문자의 첫 글자인 4개의 ‘S’ 를 따서 만든 상징물이다(세르비아에서 주로 쓰이는 키릴 문자로 ‘C’는 라틴문자로는 ‘S’를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국기는 세르비아가 위기를 맞이할 때 마다 세르비아 민족의 단결을 위해 흔히 사용되어져 왔으며, 현재 세르비아 군대의 휘장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세르비아 공화국의 민족 구성은 매우 다양하게 구성되어져 있다. 세르비아 인구의 대다수는 세르비아인이며, 이외에도 37개의 다른 소수 민족들이 공화국에 거주하고 있다. 세르비아 공화국 헌법상 세르비아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민족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니며, 완전한 민족 평등권을 누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세르비아 공화국의 「헌법」은 국제 기준에 부합한 소수민족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더불어 1219년 성 성 사바사바에 의해 독립 정교회로서 자치권을 획득한 이래, 세르비아의 주 종교는 세르비아 독립 정교이다. 이 외에 세르비아 공화국내에는 이슬람교, 로마 가톨릭교, 개신교, 유대교 등 다른 종교들과 같은 여타의 종교 단체들도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하고 있다.

자연환경

세르비아 공화국 북부는 다뉴브강이 흐르는 평야지대로 매우 비옥한 토지로 이루어져 있으나, 남부는 알프스 산맥과 발칸산맥으로 둘러싸인 석회암 지대로 구성되어 있다. 보이보디나를 비롯해 북부 세르비아는 주로 파노니아(Pannonia) 평야에서 비롯된 평원지역이다. 반면에 중부와 남부 세르비아는 높은 고지와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지는 대부분 보이보디나 지역(파노니아 평지와 그 가장자리)이고, 세르비아 지역의 55%는 경작지로, 그리고 27%는 산림지역으로 활용되고 있다. 세르비아의 산들은 비교적 높은 고지대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 중 15개는 2,000m가 넘으며, 특히 프로클레티야(Prokletija)지역에 위치한 제라비짜(Ðeravica)산이 가장 높다(2,656m).

세르비아 동쪽으로 이르는 국경은 불가리아, 북동쪽으로 이르는 국경은 루마니아, 북쪽으로 이르는 국경은 헝가리, 서쪽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그리고 남쪽으로는 알바니아, 마케도니아와 접해있다. 지정학적으로, 세르비아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가장 중요한 구역인 발칸반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간대로는 그리니치 표준시보다 한 시간 앞선 서유럽 시간대에 있다.

지리적 특징

세르비아의 지역적 특징은 영토가 유럽을 가로지르듯이 향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세르비아의 강가와 계곡을 지나 형성된 국제적인 도로와 철로들은 한쪽으로는 서부와 중부유럽을 또 다른 쪽으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지역을 가장 빠르게 연결하는 등 지리적인 중요성을 안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이러한 도로와 철로들은 모라바(Morava)강의 계곡 길을 따르다가 니쉬 근처에서 두 갈래로 나뉘게 된다. 그 중 한 갈래는 남쪽 모라바강과 마케도니아의 바르다르(Vardar) 강에서 그리스의 데살로니카로 이어지며, 또 다른 한 갈래는 사바(Sava)강에서 불가리아의 소피아와 터키의 이스탄불로 이어져 있다.

세르비아의 강들은 흑해, 아드리아해 그리고 에게해의 분지에 속해 있으며, 대표적인 세 개의 강인 다뉴브, 사바, 그리고 티사강이 세르비아 내륙을 관통하며 흐르고 있다. 세르비아의 가장 긴 강은 다뉴브강으로 이 강은 전체 2,857㎞ 중 588㎞가 세르비아를 가로 질러 흐르고 있다.

이곳의 기후는 일년의 사계절이 점차적으로 변화하는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고 있으며, 지형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북부는 대륙성 기후로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소나기를 동반한 덥고 습한 날씨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반면 몬테네그로, 코소보와 접하고 있는 남부는 대륙성 기후와 지중해성 기후가 서로 혼재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겨울에는 폭설이 자주 내리고 여름에는 덥고 건조한 날씨를 보이고 있다.

역사 및 현황

6세기 이후로 슬라브족들은 현재의 세르비아를 포함한 발칸유럽지역에 남하하여 남슬라브족 부족 국가들을 수립하게 된다. 이후 14세기 오토만 터키가 쳐들어와 이 지역을 지배하기 이전까지 세르비아 중세 왕국은 코소보를 중심으로 왕국을 수립하고, 비잔틴 제국과 견주며 발전하였다. 특히 14세기 초 두샨두샨(Stefan Uroš Dušan)왕 시기 중세 세르비아는 비잔틴 제국을 위협할 정도로 거대 제국으로 성장하였지만, 두샨 왕 사후 오토만 터키의 공격으로 국력이 쇠락해지게 된다. 특히 1389년 하고, 1459년 마지막 요새였던 스메데레보스메데레보(Smederevo)가 터키군에게 함락됨에 따라, 세르비아 중세시대는 끝을 맺게 된다. 하지만 1878년 러·터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의 지원에 따라 세르비아는 독립하게 되었고, 이후 1912년과 1913년에 걸친 제 1, 2차 발칸전쟁에서 얻은 영토 확대를 통해 다시 한 번 발칸유럽의 주요 국가로 등장하게 된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세르비아는 이웃한 같은 남슬라브족인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와 연합해 1918년 최초의 남슬라브족 통합국가인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을 수립하게 된다. 하지만 양차 대전 사이 신생왕국은 민족 간의 이해 다툼과 권력 갈등으로 인해 혼란이 지속되었고, 이어 1929년 알렉산다르 카라조르제비치 알렉산다르 카라조르제비치왕을 중심으로 국명을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개칭하며 다시 한 번 중흥을 꾀하였으나, 주변 열강들의 간섭과 민족 간 분열로 인해 실패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르비아는 티토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연방내에서 구성 공화국중 하나로 주요 역할들을 수행하였지만, 1980년 5월티토의 사망 이후 그 동안 억눌려 왔던 여러 민족들의 민족주의 움직임이 다시 재현되면서 일련의 혼란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1991년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연방 탈퇴 선언에 뒤 이은 유고 내전과 1992년 보스니아 내전으로 인해 연방은 결국 분리되었고, 세르비아는 몬테네그로와 함께 1992년 신유고 연방을 구성하게 된다.

하지만, 신유고연방 결성 이후 세르비아의 밀로쉐비치는 알바니아 탄압과 반(反)서방 정책을 고수하였고, 그 결과 1999년에 NATO군에 의한 코소보 공습을 맞아야만 했었다. 79일간 이루어진 공습으로 인해 세르비아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많은 피해를 입게 되었으며, 결국 이것은 2000년 10월밀로쉐비치가 민주화 혁명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세르비아의 현 상황은 2006년 6월몬테네그로의 독립과 2008년 2월코소보의 일방적 독립선언이 이어지면서, 대내적으론 일련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민주화 혁명 이후 세르비아는 EU 가입을 목표로 한 친(親)유럽정책을 꾸준히 표방하여 왔고, 그 결실들을 하나씩 맺어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과의 관계

2002년 3월 주세르비아대사관 개설 후,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세르비아 수출액은 6300만 달러로 승용차, 기타플라스틱제품 등이 주종목이고, 수입액은 1억 달러로 곡류, 직물제의류, 과실류 등이 주종목이다. 117명의 한국교민이 세르비아에 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또 하나의 유럽, 발칸유럽을 읽는 키워드』(김철민·김원회, 한국외국어대 출판부, 2009)
『발칸유럽 사회와 문화』(김철민, 한국외국어대 출판부, 2008)
『세계각국편람』(외교통상부, 2008)
세르비아 정부(www.srbija.gov.rs)
주 세르비아 한국 대사관(http://srb.mofat.go.kr/kor/eu/srb/main/index.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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